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7)

민우는 KOSTA 집회 준비를 1월경부터 시작한다.
저녁집회 설교하시는 설교자보다도 일찍 집회준비에 돌입하는 민우!

내게 하는 말투가…

‘아빠는 코스타에서 뭐 별로 하는 일도 없지만, 내가 코스타에서 얼마나 바쁜지 아느냐. 일년동안 못만났던 친구들과 미리 정보교환하면서 준비해야지, 휘튼에 가서는 여기 저기 사람들 만나면서 안부 묻고 인사해야지, 어린이 코스타 정규 프로그램 참석해야지, 끝나고는 친구들과 소그룹모임 해야지’..

뭐 이런 식이다.

민우가 매년 휘튼에서 함께 노는 애들이… (모두 동갑이다.)

강동인 간사님의 딸 민주,
유남호 집사님의 딸 Esther,
이철 목사님의 딸 Kayla

주로 이렇다.

얘들은 집회 몇달전부터 서로 이메일로 정보를 교환하며 집회 준비를 하고,
만나서는 밤늦도록 자기들끼리 자발적인 ‘소그룹’ 모임을 하고, (얘네들도 하루에 5-6시간 정도 밖에 못자는 것 같다! 아아… 잔인한 코스타 ㅋㅋ)
끝나고 헤어질때는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운다.

민우에게,
예수님을 언제 개인적으로 accept 했느냐고 물으면…
“어린이 코스타”라고 얘기한다.

생후 7개월때 처음 코스타 집회에 참석했고,
두해정도 빠지긴 했지만 나머지는 그후 매년 참석을 했으니..
휘튼 컬리지의 구석 구석을 다 잘 안다.
어제는 내게 자기가 ‘소그룹’ 모임을 하는 장소를 설명해 주는데… 나는 한번도 안가본 곳이었다!

물론 민우는 태어나면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매일밤 기도소리 혹은 ‘내 영혼이 은총입어’ 찬송가 소리에 잠이 들었고,
‘좋은꿈’이라고 하면 예수님과 함께 풀밭에서 토끼랑 다람쥐랑 노는 꿈인.. 그런 아이이지만,
어린이 코스타가 매우 중요한 계기들을 제공한것은 확실해 보인다.

게다가 함께 마음에 맞는 신앙의 동료들도 만나고…
연중 계속 이메일과 chatting으로 연락하고.

완전히 훌륭한 ‘학생운동’의 모습이다! ^^

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6)

내가 혼자서 만들어본 report card
(시카고 conference 기준, 아직 인디것은 들어보지 못해서…)

전체집회 contents B-/B0
세미나 커리큘럼 A-
조장 훈련을 비롯한 jjKOSTA contents A0
jjKOSTA 수양회 contents A-
전반적인 Logistics A0
참석자들 B+
KOSTA의 운동성에 대한 고찰과 고민 A-
자봉, 간사들의 헌신도 A+

대충 이런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집회’로서의 Chicago conference는 썩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KOSTA는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싶다.

만일, 성공한 집회/실패한 운동 과, 실패한 집회/성공한 운동 두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 나는 당연히 후자이다!
그 effectiveness가 후자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집회를 통해, 그리고 이번 집회의 전후의 여러 일들을 통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5)

내 개인적으로는 몇가지가 참 좋았다.

우선, 각종 logistics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실제로 집회가 흘러가는 모습을 좀 더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이 집회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하는 것도 더 보였다.

둘째, 전체집회 광고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고 나니, 실제로 소리내어 기도도 할 수 있었고, 찬양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는 목이 약해서, 기도를 한번 하거나 찬양을 좀 열심히 하고 나면 쉽게 목이 쉬어버려, 전체집회 광고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셋째,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많은 분들이 내게 이야기를 걸어오셨다. 한국과 미국에서, 복음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토론, 학생운동의 모멘텀에 대한 조언, 정치적 상황과 복음에 대한 이야기, Christus Victor와 같은 Atonement theory에 대한 이야기나, New perspective, NT Wright에 대한 이야기등 신학적 이야기도 몇분들과 짧게 나눌 기회도 있었다. 하나님 나라와 학문, 개혁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 등도 나누었다.

넷째, 기존에 ‘멀리’, 혹은 ‘높이’ 보이던 사람들을 실제로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관심이 부족해서 였을까 아니면 내가 부족해서 였을까. 그저 ‘훌륭한 분’으로만 알고 있었던 분들의 사상 체제, 논리의 흐름, 그분이 처한 context에 대한 이슈등을 찬찬히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가지의 benefit을 통해…
나는 참 많이 컸다! ^^

실제로 내가 좀 더 성장한… conference 였다.

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4)

어느 모임나 단체든 갈등과 도전이 없는 경우는 없다.
아주 지저분한(?) 중상모략에 의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인간의 탐욕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어리석은 리더에 의한 혼란과 어려움도 있고,
집단적인 무지가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KOSTA도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로부터 큰 희망을 찾았다.

이번 집회 전후에, 그리고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섬기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이것들을 이겨내는 것을 보았다.

권모술수의 치사함을, 때묻지않은 순수한 눈물이 이기는 것도 보았고,
무지에서 비롯된 혼란을, 낮아지는 섬김으로 극복하는 것도 보았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하나님께서 KOSTA로부터 은혜를 걷어가시면,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되는 날도 오겠지.
아마 그때가 되면… KOSTA의 배너를 내려야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때 까지는…
아직은 이렇게 복음의 건강한 운동력이 살아있는 한…
건강한 헌신의 열정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 집회를 계속 그렇게 사용하지지 않을까 싶다.

참 가슴 벅차다.

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3)

함께 섬기는 사람들을 보며 받는 감동은 해가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
정말 온 몸을 던져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그 고생을 하며 모여든다.

잠을 주무시지 못하고 학생들 상담을 해주시는 분들,
조원들을 밤 늦게까지 섬긴 후에도 아침에 새벽기도에 나오는 분들,
휴가를 내고 와서는, 전체집회 한번 참석하지 못한채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분들,
중보기도실에 ‘틀어박혀’서는 기도만을 일주일 하시는 분들,
등록비와 교통비를 모두 자비로 부담하고 와서는 조장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코디들,
하루에 3-4시간 씩 쪽잠을 자면서도 밝은 웃음으로 땀을 흘리는 빨간조끼들,

이 섬기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아직은 우리에게 소망을 품을 이유가 있음을 발견한다.

금년에도 이들의 섬김은 ordinary 한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욱 고무적인 것은,
jjKOSTA 관련 섬기는 사람들, 빨간조끼를 입고 뛰는 사람들, 조장들, 학생 참가자들 가운데에서…
건강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수년전,
고난과 공동체에 대하여 주제강의를 해 주실것을 부탁드렸던 어떤 강사님께서,
전체 집회 시간에 ‘친북좌파 청산하자’는 얘기만 줄창 하시는 바람에 섬기던 많은 사람들이 좌절과 분노와 실망에 싸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KOSTA가 학생운동으로서 모멘텀을 갖도록 일부 학생들을 깨우는데 좋은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이번 집회에서 나누어진 이야기 가운데 어떤 message를 건강하게 비판하고, 감정적이 아닌, 논리적인 토론을 나누는 것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2)

처음 KOSTA 집회에 참석했을때,
나는 세수수건을 가지고 집회에 참석해야 할만큼 많이 울었다.
이러다 탈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었다.

KOSTA를 지난 10여년 간 섬기면서,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서 겨우 2-3시 경에 잠깐 눈을 붙이려 침대에 눕더라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 때가 많았다.
가슴이 뛰어서, 흥분이 되어서, 감격스러워서 하루에 3-4시간을 겨우 자면서도 피곤한줄 몰랐다.

집회 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소그룹으로 모여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눈물 흘리고, 중보기도실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 흘리고, 상담을 신청하기 위해 시간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즐겁고 기쁜 찬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울고, 서로 농담을 하며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젊은 부부를 보면서도 운다.

왜 그럴까. 내가 왜 이토록 KOSTA 집회에 광분하는 걸까.

그것은 참석한 이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함께 뛰며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일이, 단지 모일때 뿐 아니라 흩어져서도 계속될 기대 때문이다.
말씀에 변화를 받아 삶의 새 의미를 찾은 이들이 그 말씀대로 살아내며 이루어낼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었던 조원들이 흩어져서 서로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며 network을 만들어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기대 때문이다.

그 기대가 얼마나 현실적이냐고?
글쎄.

참석한 이들 모두가 100% 변화되어서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을 다 회복하게 될 가능성은 물론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1만분의 1이라 하더라도, 그 작은 가능성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리고, 언젠가는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이땅의 모든 악을 심판하실때가 되면,
우리의 찬양도, 공동체도, 마음도, 생각도 다 회복될 것으므로…
언젠가는 그 작은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나는 그런 가능성에 감격하며 또 한번 가슴 터져라 울었다.

KOSTA/USA-2009 Conference 후기 (1)

감사, 감사, 감사…

감사 이외에 다른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올해도 나는 코스타 집회를 섬기며… 말할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다!

앞으로 며칠간의 글들을 통해, 이번 집회에서 깨달은 것들, 생각한 것들, 아쉬운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1996년부터 KOSTA 집회에 참석해 왔으므로 이제는 꽤 익숙할만도 한데,
이번 집회를 통해서 또다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아무래도 이 블로그가 public한 setting 이므로 좀 더 private 하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은 하지 못하겠지만, -.-; (사실 그런 내용들이 무지 많은데…)

그러나 공개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아직은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내내 졸립고… 피곤하고… 목소리도 잔뜩 쉬어있는 상태이지만,
이 감동이 사라지기 전 글로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과연 감동과 감사를 글로다 표현할수 있을까.

KOSTA/USA-2009 집회를 기대하며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동민이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아니, 그저 군대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 그에게 군대 이야기를 처음 해 주었던 동네 아저씨에게서 들은 군대는 사람이 지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 죽음의 위협을 느낄만한 고된 훈련, 아주 열악한
생활환경
, 끊임없는 구타 등이 군 생활의 일상이었다. 그 허풍쟁이 아저씨가
해준 무용담은
, 높은 절벽에서 병사들을 무작위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사람만 제대하게 했다든가,
정기적으로 산에 가서 곰이나 호랑이와 같은 야생짐승을 맨손으로 잡은 사람들이 진급하게 된다든가, 맨손으로 독사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날로 먹도록 훈련을 받는 다든가 하는 살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아저씨는 큰 악의 없이 8살짜리 꼬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꽤 나이가 들어서까지 군 복무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은 동민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는
현재 상황에서
, 세상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 당장 매우 급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두려움이 그저
8
살짜리 꼬마의, 군 복무에 대하여 잘못된 두려움과 같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잔인한 일일 것이다
. 그러나 이 8살 꼬마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없을까
. 그 아이가 가진 두려움이 실체혹은 진실을 잘못 파악한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영적 실체에 대한 바른 지식이 그들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만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지한 질문들을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된다
.

우리에게 과연 안정(security)을 가져다주는 궁극적 실체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 이러한 질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얼마나 다를까
?


KOSTA-2009의 주제문의 일부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그러진 질서에 거스르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그릇된 가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하다고,
또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사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며, 효율을 위해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속삭이는 유혹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어졌기에
, 그를 통한평화’(Shalom)가 현실화되었기에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움과 두려움이, 허풍에 속은 8살짜리 꼬마가 가지는 수준의, 가벼운 것은
분명히 아니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 없는 소망이 외부로부터 (extra
nos
) 주어져 있다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과 땅이 만났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통해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Shalom)를 주셨고, 그 평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 2,000여 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조가 바로 그 평화와 용기로 세상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하지 않았던가
.


이런 맥락에서, 이번 KOSTA/USA-2009 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소망한다.


첫째, 참된 평화(Shalom)
만들어낼 근거가 우리 안에 없음을 가슴 시리도록 깨닫게 되기 원한다
.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어떤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우리가 노력해서 세상의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없음을 발견하기 원한다. 우리 안에 소망의 근거가 없다는 간절한 목마름 속에서, 그 평화의 근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오게 되기 원한다
.


둘째, 예수의 평화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 있기 원한다.
이 세상이 잃어버렸던, 그러나 예수께서 이루신 일로 인해 우리가 그 안에 거할 수
있게 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 원한다
. 마치 참된 보석 앞에서 모조품이 빛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참된 예수의 평화를 보게 될 때, 우리가 의지하고자 했던 거짓 평안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


셋째, 그 평화의 감격에 흠뻑 적시길 원한다. 세상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평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화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깊이 깨닫고 그 안에서 함께 모여 우리 모든 힘을 다해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 있기 원한다
. 그 큰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 흘리며 감사하길 원한다
. 우리가 흘리는 감사의 눈물과 함께, 우리가 기대고자 했던 거짓된 안정에 대한 환상도 함께 씻겨져 나가게 될 것이다.


넷째, 내 삶, 내 가정,
내 결혼, 내 진로, 내 꿈,
내 소유, 내 직업 등에 매달려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 있던 천박한 모습에서 벗어나,
세상에 주신 예수의 평화라는 거대담론(Meta-Narrative)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게 되길 원한다
.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의 이야기에 생명력이 없음을 발견하고, 이제는 예수의 평화라는 새로운 이야기전개(Storyline)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길 원한다.
그런 과정을 거칠 때에야 비로소 세상을 향한 참된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한 놀라운 용기를 가질 근거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음을
발견하고 그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로 헌신하게 되기 원한다
.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수준의 삶이 아니라
, 세상을 이기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도 목말라하는 평화와 용기가 바로 예수 안에 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 밝히 드러내겠노라고 함께 목청 높여 선언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24년간 KOSTA/USA
통해서 일하셨던 주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가 선포되고 선언될 천국 잔치를 기대해본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표준새번역)

성실함 (6)

 성실함 없이 일을 대하는 것은,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독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성실함은 성숙함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성숙함이 수반되지 않은 ‘일’은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때로 내가 아주 힘들어 하는 것은…
성숙함으로 부터 비롯된 성실함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일’에 뛰어는 사람을 보는 일이다.

물론, 내 자신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볼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성실함 (5)

내가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준은 안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성실해진 것 같다.

또한,
내가 대단히 성숙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기엔 형편없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내 스스로 지난 세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 온 발자취를 보면,
내 성실함은 내 성숙함을 드러내는 표지였고,
내 성숙함은 내 성실함을 이끄는 힘이었다.

내 스스로 성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절망하고 좌절할때,
내가 아끼는 이의 성실하지 못함을 보며 안타까워할때,
하나님의 손길이 당신의 자녀를 성숙함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의미에서 큰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