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마무리)

내가 왜 start-up company를 하느냐…
몇가지를 정리해서 써보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혹은 이 가운데 헛된, 잘못된 이유들을 없을까.

아마 내 앞에 펼쳐진 adventure를 하나님과 동행하여 해 나가면서 그 해답들을 더 찾아야 할 듯 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조언과 충고,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린다.

참고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HP Labs의 우리 그룹에서 어떤 특별한 기술을 개발을 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flexible한 플라스틱 필름 위에 전자회로를 쉽고 빠르고 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이 일을 하면서 Iowa에 있는 그 당시로는 작은 어떤 회사와 함께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회사는 이제는 직원 수백명 수준의 회사로 커졌고, 얼마전에는 유럽의 주식 시장에 상장도 했다.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것은 제약이 많아 더 힘들다고 한다. 당분간은 유럽시장에서만 거래될 예정이다.)

그러면서, 그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 우리 그룹의 리더, 그리고 우리 그룹의 사람들 몇몇이 함께 회사를 만들어서 이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았다. (주로 우리 그룹 리더가 주도를 했었다.)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내가 지난 몇번의 글들을 통해 기술한 “가치”의 문제가 있었고,
HP는 지금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바로 상용화 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지금 우리 기술의 시장은 기껏해야 수천만불 크기 정도인데…  총 매출 천억불 수준의 회사가 뛰어들기엔 지금 현재의 시장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Iowa의 그 회사가 주도가 되어,
HP로부터 기술 사용 계약을 맺었고,
미국 육군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연구비를 받았다. (앞으로 2년동안, 그리고 1년 더 연장 가능)

그래서,
처음 2-3년 동안은 내 월급은 미국 육군 연구소 연구비에서 나오게 된다.
지금과 같은 나쁜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안정적인 수입원인 셈이다.

그 이내에 기술을 더 개발시켜서 실제 대량생산 상용화를 하여 시장에 내놓고, 대외 투자도 더 받고… 그리고 아마도 상장도 하고… 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는다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6)

나의 inadequacy를 인정해 보고 싶었다.

Do I really have what it takes?
늘 내가 내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과연 내가 그 일을 감당해낼 만한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과연,
훌륭한 연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network을 갖고, 인격으로 학생들을 키우는 그런 교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학문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기여를 하면서 현세와 후세에 큰 영향을 키치는 학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corporate world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인간 관계를 맺고, 내 career development를 하고, 내 조직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그런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많이 stretch 하면,
다시 말하면 내 삶의 다른 많은 영역들을 희생해가면서 (가족, 말씀사역, 내 인격 수양 등) 노력을 하면 그것에 매우 근접하게 갈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과연 그것이 내가 가진 competency일까.
나와 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면서 노력해야만 내가 그 goal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내 competency는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그 goal들을 이루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부터,
단 한번도 나는 inadequacy를 인정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나는 할수 있다. 나는 더 잘 할수 있다….
그리고 그런 drive는 어떤 의미에서 잘 먹혔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잘 cultivate해 나가는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내 inadequacy를 인정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최근의 career choice를 내린 또 다른 이유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5)

재화보다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함께 회사를 하는 사람들이 물론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작게 시작하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그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만들어가는데 좀 더 의미있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그저 cost 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기술(technology)은 선전효과나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가치,
기업이 단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 넘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치,
많은 돈을 소유하여 그 돈을 잘 굴려서 돈을 버는 것보다, 땀흘려 성실하게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고 정당한 일이라는 가치,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합당한 정도의 보상을 받아야 하고, 그보다 더한 보상을 받는 것은 부정직이요, 그보다 덜한 보상을 받게되는 것은 사회적 부조리임을 인식하는 가치…

이러한 가치들을 가지고도 회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다섯번째 이유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4)

적어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교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꿈은 교수였다.
그리고 어쩌면 교수가 되는 과정을 그래도 나름대로 잘 밟아왔고 어느정도 성취도 했다.
실제로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교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첫째,
꿈이 없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현재는 한국도 미국도 모두 (한국은 더 심하지만) 공대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어떤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껏 졸업해야 취업에 목매야 하는 상황. 공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좌절이고 절망이 되는 상황, 자신이 좋아하는 공학의 이상을 현실에 다 팔아 넘겨야 살아남는 상황.
내가 교수가 되어, 내가 길러낸 사람들을 그렇게 꿈이 없는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겠지만… 내가 내 제자들에게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며, 이 연구와 노력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설명해 줄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둘째,
적어도 현재 학교에서 하는 소위 ‘뜨는 분야’의 연구는,
지극히 선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멋지게 포장하여 과대 선전하고,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하여 연구비를 따고, 그 돈으로 학생들을 고용해서 학생들의 싼 노동력으로 연구 결과를 짜내는.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님들도 계시지만, 실제로 ‘뜨는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떤 연구와 발명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그것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롭게 하는지, 진리를 밝혀내는데 어떤 기여를 하는지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들은 그저 조소거리가 되어가고 있고,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얼마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지,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따오는지, 얼마나 많은 publication을 내는지 하는 부차적인 것들을 더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기만이자 무책임한 선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교수가 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교수 지망생들이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로 교수를 하려고 한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엄청난 consequence들을 academia가 짊어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는 정말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미 교수가 되었거나 교수 지망생들도 있고.

적어도, 내게는, 2008년의 context 속에서,
공대교수가 되는 rational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네번째 이유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3)

훌륭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배우고 싶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이들과 일하면서 engineer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다른이들을 배려하고 세우면서도 탁월함을 가질 수 있음도 보았다.
당장의 이익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배웠다.

이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일 감사했다.
내가 가진 것들로 이들을 섬기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세번째 이유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2)

짜여진 틀이 아닌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싶었다.

중학교때 그래도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수학을 재미있어 한다는 이유로…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나는 한번도 하나님의 active한 인도하심을 따라 내 삶을 운행한 적이 없었다.

물론, 어느 학교로 진학을 할 것인가,
박사를 어디에서 받을 것인가,
박사를 받고 어느 직장에 갈 것인가 등등의 고민과 기도가 있었지만…

대학때 공부 잘 했으니, 미국의 소위 ‘좋은 학교’로 박사 받으러 유학 왔고,
거기 졸업했으니 ‘좋은 직장’ 잡아서 커리어 쌓고…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명성도 쌓고… 논문 많이 쓰고… 학회에서 이름 날리고…

그저 고민하지 않고 계속 가면 가게되는 그런 길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으로서,
내 삶의 운전대를 진정으로 주님께 맡겨드리고 그분이 운행하시는 것을 한번 구경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제 나이 40이 된 이제껏,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나의 주님과 동행해온지 20년이 되어가는 이제껏, 과연 그런 적이 있었던가.

하나님께,
하나님 과연 이렇게 틀에 박힌 길이 아닌 길로 간다 해도 여전히 주님께서 나의 주님이시지요. 이런 속에서 주님의 active 하면서도 dynamic한 인도하심을 따라간다면 그것만한 blessing이 없겠지요.
그렇게 기도했다.

이것이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두번째 이유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1)

후배들에게 해줄 말을 갖고 싶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 후,
내 마음 속에서 한번도 떠나지 않은 소망은,
내가 나의 삶을 통해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게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며,
내 실수와 실패, 내 성공과 성취를 통해 후배들이 살아갈 길을 보여주고 밝혀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내 소망이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각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나의 후배들 –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거나 대학원생이 된 이들,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이들 -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심하게 세속화 되어 있는 세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다. 내가 그 나이에 꾸었던 세상과 사회를 향한 꿈도, 자기 자신에 대한 소망도, 자신의 삶을 던질 가치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생존’과 ‘성공’에 매달려 사는 모습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후배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야 나로부터 배울 사람이 아닐테고.

지금 내가 세속화된 세대를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생존과 성취에 매달리지 말고 가치를 위해 모험을 선택하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대의 세속화에의해 정복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MIT 졸업하고 HP labs에서 연구 잘하고 논문 잘 쓰고… 어디 교수되었고… 잘 풀렸다.
나는 이것이 그들에게 impact를 주는 life story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내 삶의 context 속에서 나름대로 ‘모험’을 했던 경험이 있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후배들에게 모험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나의 이 경험들을 통해,
후배들에게 내 삶으로 해줄 story를 갖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새로운 회사에 join 하는 첫번째 이유이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introduction)

이제 며칠후면 나는 HP를 떠나,
작은 start-up company를 시작하게 된다.
뭐 내가 혼자 회사를 시작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가 founder인 것도 아니지만,
처음 시작하는 4명짜리 회사의 일원이니… initial employee 라고 부를 수는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이런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앞으로 며칠에 나누어서,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하는 내용들을 쓰면서 나 스스로도 정리도 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 부터 소중한 충고와 격려도 듣고자 한다.

기대하시라~ ^^

KOSTA/USA-2008 연차 수양회를 기대하며

그렇다면,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초월해서 영원을 갈망하며 살고, 한편 초월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비복음적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그 길을 찾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해답을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거시적 관점에서의 헌신은 옛날 얘기?

한 달 남짓 전에 미국 서부의 어느 지역에 사는 한 동역자가 직장일로 필자가 있는 동네를 찾았다. 함께 식사를 나누고 저녁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요즘 젊은 학생 세대에게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서정적인 신앙만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의 추세 속에서 신앙도, 헌신도 모두 개인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함께 그러한 현실에 깊이 동의하며 안타까워했다

그 저녁의 대화 이후 필자의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정말 이제 그러한 세대는 지나갔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대는 함께 부를 노래도, 함께 외칠 구호도, 함께 흔들 깃발도 잃어버린 그런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인가. 그리고 이제는 다시 이 세대를 움직일 그 무엇은 개인적, 서정적 신앙 이외에 대안이 없는가.

미래의 꿈은 정규직? 

얼마 전 본 한국의 어느 TV 드라마에서 본, 대학을 가기 싫어하는 어떤 고등학생과 그 학생에게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부모의 대화가 생각난다. 학생이 대학을 왜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모는 대학을 가서 네 꿈을 펼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느닷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째 취업 준비생으로 있는, 옆에 있던 삼촌에게 미래의 원대한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취업 준비생 삼촌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자신의 꿈은 ‘정규직’이라고 답했다. 그 고등학생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더러 대학졸업 후 장래 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대화를 더 극적으로 그리고자 과장을 사용했다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캠퍼스와 지역교회에서 만나는 학생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꿈도 이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직장 잡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생활 하는 것.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꿈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결국은 그 꿈이 ‘정규직’인 것이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일,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일,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일들은 따지고 보면 장래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약간 세련된 표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규직이 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얻고자 하느냐, 그것을 얻고자 하는 뒤에 숨어 있는 동인(motivation)과 세계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 잃어버릴 수 없는 꿈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할 수 없는 세대가 정말 되었다고 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럼 이제는 그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언급하는 일 자체를 포기해야 할까? 하나님과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을 서정적, 개인적 영역에만 제한시킨 채 그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만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자 했을 때 처음 이야기했던 것,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선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 아닌가. 그 핵심가치를 위해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헌신, 희생하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를 붙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삶과 신앙의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에게서, 바로 그들의 삶 전체를 꿰뚫어 통합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목마름을 여전히 볼 수 있지 않은가. 20세기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인생을 던질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 나라는, 포기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우리 모두의 궁극적 꿈이자 희망이 아닌가. 문제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같은 핵심 가치가 더는 이야기되지 않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KOSTA/USA-2008 집회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KOSTA/USA-2008 집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대해 본다

첫째,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통합하여 살아갈 가치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음을 깊이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이미 가진 삶의 길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심하게 비뚤어져 있는가 하는 내용을 보며 함께 애통해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둘째,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의 길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 안의 거짓되고 어그러진 가치관들이 상대적으로 더 초라하게 드러날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제시된 궁극적 삶의 가치들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목마름이 우리 안에 생길 것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제시되는 삶의 길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아직 그 가치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궁극적 삶의 길을 내 것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고, 이미 그 가치를 알고 있으나 삶 속에서 통합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새롭게 정리하고 결단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유일한 삶의 바른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변화가 있기 원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서 유일한 삶의 바른길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들에 많은 이들이 함께 헌신하기 원한다. 세상이 그토록 목말라 보고 싶어 하는 올바른 삶의 길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고, 이제 우리에게 함께 부를 노래가, 함께 외칠 구호가, 함께 흔들 깃발이 있음을 선언하기를 원한다

KOSTA/USA-2008 집회를 통해 큰 감동을 하고, 집회가 성황리에 마쳐지는 것은 분명히 이 집회를 준비하고 참석하는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집회를 통해 부어주실 큰 은혜에 대한 기대 이상으로, KOSTA/USA-2008 집회 이후 하나님께서 미국 내 한인 청년 학생 디아스포라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그로 말미암아 바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선포되고 확장될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흥분시킨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그 길을 보게 하시고, 그 길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허락하시며, 그 길을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이메일 트래픽

요즘 여러가지 급박한 일들이 많이 겹쳐서 좀 정신없이 지낸다.
회사애선 곧 있을 학회에서 발표할 자료와 flexible display demo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정신없이 실험을 하고 있고,
몇몇분들과 길게는 한시간 짧게는 30분 가량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의견을 듣고 상의하고 해야할 일들이 계속 있었고… 아직도, 일주일 내에 heavy한 전화통화나 논의들을 해야할 것들이 5건 정도 더 남아있다. 어제 하루동안에도 그렇게 전화통화를 한 시간이 총 2시간이 넘었다.
그리고, 어제는 드디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이메일의 트래픽이 100개에 달했다. 아마도 기록이 아닐까 싶다. ^^ (그냥 읽을 필요도 없는 이메일 말고… 내가 읽고 생각하고 respond 해야하는 이메일 +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이메일을 더한 것이다.) KOSTA 관련 이메일이 그중 70% 이고… 회사 이메일이 15%… 그리고 이 지역에서 섬기는 것 관련된 이메일, 가족, 아는 사람 이메일들이 나머지이다. 그중 어떤 이메일은 그 이메일 하나를 쓰기 위해서 30분 가까이 고민하고 다시 생각하고 해야하는 것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해야할 일들을 다 못하고… 이렇게 버벅대고 있지만.

때로는… 이런 짐을 좀 나누어 질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내가 물론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말 faithful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회사 일이든, KOSTA 일이든… 뭐든 간에)
혹, 함께 짐을 나누어지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내게 일이되어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지면 더더욱 그 짐을 나누는 것이 힘들게 된다. 해야할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하도록 돕고 잘 되었는지 같이 점검하고… (사실 리더로서 해야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리더쉽도 참 부족한 사람인 듯 하다)
그러다보면 지치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뛰는데… 저 사람은 내가 이런것을 알면서도 왜 도움의 손길 한번 내밀지 않는 걸까.

그런데,
내가 최근 배우고 있는 것은,
치열하게 사는 lifestyle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순발력, 체력, 열정, 기획력, 분석력… 등등이 모두 필요한 듯 하다)
따라서 그렇게 살지 않는/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들 나름대로의 role이 있는 것이고… 나와는 다른 영역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런 사람들로부터 많은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을 알고… 처음 10-15년 동안은…
예수님을 위해,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사는 법을 배워왔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 7-8년 동안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struggle 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진보가 때론 너무 더디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