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묵상

1993. 11.
몇가지 묵상들…
권 오 승

– 모세는 살인을 범한 살인범이었다. 그때문에 그는 도망할수 밖에 없었다. 분명 젊은 날에 범한 잘못은 상당기간 그를 자책감에 빠지게 하였을 수도 있고, 스스로에 대해 실망을 하게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모세가 그때 살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양을 치다가 시내산에 이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시내산에 이르지 않았던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내가 범한 크고 작은 실수들… 분명 하나님은 그런 구질구질한 것들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야곱의 장인 라반은 아주 악독한 사람이었다. 야곱을 속여 자기의 두 딸을 다 떠넘기고 야곱의 사랑을 이용해서 자신의 부를
축적했다. 아마 야곱도 그러한 라반을 좋아했을것 같지는 않다. 아니, 무척 싫어하고 증오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을
위해서’ 성실히 일했다. 그는 라반의 양들을 철저하게 위험으로부터 지켜내었고, 자신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일로 양을 잃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잃어버린 양을 보충했다. 그러한 야곱의 덕택으로 라반은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직장 상사는 내게 라반과 같이 악독하지도 않다. 또 나와 함께 일했던 학교 실험실 선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야곱처럼
열심히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저 내 욕심만 채우고 아슬아슬하게 내 책임만 다 했을 뿐이다. 아니, 더 많은 때에는
그것도 못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늪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실수하여 힘을 잃고 피곤하여 지칠 때
자신에게 실망하여 기운을 잃고 말 때
반복되는 잘못에 고개가 떨궈질 때
더이상 기도마저 드릴 자신이 없을 때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연약한 존재로
지으셔서 나를 낙망케 하시나요

내가 네안에 착한 일을 시작했노라 또한 내가 이루리라
너의 영혼, 낙망치말고 나를 바라라
내가 아름답게 하리라…

이제 가을이 되었다. 이 가을에 한번 더 들어보고 묵상해보고싶은 찬양이다.

짧은 치마를, 아니면 짧은 바지를, 그것도 아니면…

1993. 9.
짧은 치마를, 아니면 짧은 바지를, 그것도 아니면 옆이 깊게 터진 치마를.

대덕제일교회 청년부
권오승


난 주에는 나와 연구소에 같이 입소(入所)한 신입 소원(所員)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즈음엔 여자들을 보면 얼굴이 아니라
다리부터 보게 된다고. 또 어떤 사람은 요즈음 여성의 아름다움의 ‘승부처’는 얼굴이 아니라 다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요즈음, 시내에 나가보면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얼마나 예쁜 여자들이 많은지, 또 그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니는지… TV 광고에선 노골적으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다리만을 강조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예쁘고
날씬한 다리를 만드는 약을 신문, 잡지 등에서 광고 하고 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다리처럼 보이게 하는 스타킹도 있고, 다리만
예쁘게 태워서 ‘건강한 다리’로 보이게 하는 기술도 발달한 듯 하다. 가끔 짧은 치마를 입지 않은 여자들은 짧은 바지를 입고,
그것도 아니면 옆이나 뒤가 쫘아악- 갈라진 긴 치마를 입는다. 하여간 ‘다리 노출의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 미니 스커트 입은 사람들을 대할 기회가 훨씬 더 많아졌고, 그 때마다 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어쩔줄을 몰라 고민할
때가 많다. 특히 소그룹 모임과 같이 그리 크지 않은 모임에서는 의자를 빙 둘러 놓고 앉을 때가 많은데, 그럴때마다 난 내
시선을 어쩌지 못해 무척 곤혹스럽다.
그래도 자꾸만 봐서 그런지 이젠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이전과 같이 괜히 나 혼자
얼굴 빨개져서 어쩔줄 몰라하는 경우는 최소한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짧은 치마에 예쁜 다리를 보면 ‘시험에 들어’
어쩔줄 몰라할 때가 많다. 요즈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될수 있는대로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는 방법인데, 그 방법도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속수무책으로 시선에 뜨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는 이런 문제는 그냥
많이 봄으로써 익숙해져 그러한 것들에 둔감해져 버리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인가?
역시 하나님께서 여성을 참 아름답게
만드셨다.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한부분, 한부분을 아름답게 만드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아름답게 만드신 여성,
그리고 그 아름다운 여성의 아름다운 다리를 아름답게 내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도 합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경이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에 대해서 경고하시는 것은 물론 알고 있지만, 짧은 치마가 반드시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인지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차원의 것이라면 그것도 가(可)한 것일텐데.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가(可)한 것이라면,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 보며 참 잘생겼다던가 참 예쁜 눈을 가졌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매우 실례가 된다던가 민망한 일이 아닌것 처럼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바라보며 참 다리가 예쁘다던가 무릎의 모양이 유난히 귀엽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여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것을 보면…
짧은 치마가 정말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짧은 치마를 입는 자매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또 다른 이들의 생각과 의견도 들어보아야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잡힐것같기도 하다.

아! 여성의 다리는 아름답고, 나의 생각은 혼미하구나. 그나저나 우리 부서의 P양은 왜 그렇게 짧은 치마만 입고 다니는거야, 업무에 방해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