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미문의 거지

오늘 QT 본문은 사도행전 3장 전반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 거지를 베드로와 요한이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는 이야기.

그런데,
정말 graduate student 로서의 내가 성전 미문의 거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주위에 ‘잘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지도교수며, 우리 분야의 다른 사람등) 나를 바라보며 지나갈 때,
어떻게든 그 사람들의 attention을 끌어보려고 애쓰는…
좋은 논문을 쓴다, 학회에서 좋은 발표를 한다, 결과를 잘 낸다…. 하는 등의 framework에 가두어져서…

성전 미문에서 멀쩡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던 앉은뱅이 거지,
논문도 쓰고 학회 발표도 하면서 이 분야의 잘 나가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내 결과를 좀 봐주세요’ 하고 애걸하는 권오승.

성전 미문 거지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돈을 좀 더 받아 볼까 하는 것,
대학원생으로서의 내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명예/돈을 더 받아볼까 하는 것.

그렇지만,
성전 미문의 거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금과 은’이 아니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것’ 이었듯이,
내게도 정말 필요한 것은 ‘논문 몇편, 사람들의 관심사, 좋은 결과’ 등등이 아니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실제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전 미문의 거지 신세를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는 건데, 그래서 거지가 할 수 있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은 일을 더 훌륭하게 할 수 있는데…
나는 겨우 사람들의 관심이나 더 끌어보겠다고 버둥버둥 하고 있구나….

그렇게 말씀 묵상을 하고….
지도교수를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 오늘 엄청 깨졌다. ^^ 그러니 금방 엄청 비참해 지더군.

정말 나는 아직 먼 것같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겠지. ^^

Sometimes it’s slow going, but there is knowing
that someday perfect I will be.~

Little by little bit everyday
Little by little bit everyday
Jesus is changing me.
Oh Yes He’s chaning me

2003년 9월

0일 0시 – play

0일, 0시

나오는 이 : 혁준,
혁준이의 아버지,
혁준이의 어머니.
우편 배달부 & 효과

때 : 0일 0시


대는 그리 크지 않은 소극장이 좋다. 무대 왼쪽은 혁준이의 기숙사 방, 무대 오른쪽은 혁준이 부모의 집이다. 각각의 집에는
전화가 하나씩 놓여 있다.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으로 하고, 특히, 양쪽 전화 근처에만 조명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한 모든 소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냥 있는 시늉만 내어도 좋다. 효과음도 사람 입으로 낼 수 있다.
처음, 무대는 무척 어둡다. 차츰 무대 밝아지면 무대 왼쪽에서 혁준, 등장한다.

혁 준 : (시계를 보며 무대로 걸어 나온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부모님께 전화드릴 시간이네. 잠깐, 전화하기 전에 준비부터 해야지.
(주머니에서 전화할 내용이 적혀 있는 종이를 꺼낸다) 옳지, 여기 있구나. 자, 번호가… (다이얼을 돌린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 부모님 집쪽에서 난다. 무대 오른쪽 차차 밝아 지며 부모님 등장한다. 어머니, 전화를 받고 아버지 곁에 선다.

어머니 : (수화기를 들며) 여보세요.
혁 준 : (종이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억양도 없고 감정도 없이 읽는다)
‘잠들기 전에 내가 당신을 부릅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비오며
내가 만일 오늘 밤 잠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나를 슬퍼해 주십시오, 나를 위하여’
어머니 : (반가운 듯) 얘, 혁준이구나.
혁 준 : (전화를 귾고,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어머니 : 얘, 얘… 여보세요? (실망하여 전화를 끊는다)
아버지 : 혁준이가 뭐래?
어머니 : 모르겠어요.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리네요.
아버지 : 그래? 참 이상하네…

아버지, 어머니 퇴장. 무대 암전
다시 무대 왼쪽 밝아지면 혁준이 등장

혁 준 : 오늘도 벌써 전화할 시간이네
(다이얼을 돌리며) 이 전화 받으면 부모님이 기뻐 하시겠지.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 부모님 집쪽에서 난다. 무대 오른쪽 차차 밝아 지며 부모님 등장한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 : (수화기를 들며) 아, 여보세요.
혁 준 : (처음과 같은 식으로 전화 대화문을 읽는다)
‘잠들기 전에 내가 당신을 부릅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비오며
내가 만일 오늘 밤 잠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나를 슬퍼해 주십시오, 나를 위하여’
아버지 : (반가와서) 얘, 혁준이구나. 잠깐만 기다려라.
(뒤를 돌아보며) 여보, 혁준이 한테서 전화 왔어.
혁 준 : (전화 끊고 퇴장한다)
어머니 : (달려 나오며) 그래요? 뭐래요?
아버지 : 글쎄, 지금 막 왔어.
(수화기를 다시 들며) 얘, 혁준아.

뚜- 뚜- 뚜- 하는 소리

아버지 : 얘, 얘? 혁준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화기를 놓는다) 이상하네.
어머니 : 혁준이가 뭐래요?
아버지 : 몰라.
어머니 : 네?
아버지 : 그냥 끊었어.
어머니 : 지난번 같이 혼자서만 중얼거렸나요?
아버지 : 그래, 혼자서만 중얼 거렸어. 이상하네…
어머니 : 글쎄요…

아버지, 어머니, 퇴장하고 무대는 다시 암전.
무대 다시 밝아지면 혁준, 등장.

혁 준 : 오늘도 전화를 해야지.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 부모님 집쪽에서 난다. 무대 오른쪽 차차 밝아 지며 부모님 등장한다. 어머니, 전화를 받고 아버지 곁에 선다.

어머니 : (수화기를 들며) 여보세요?
혁 준 : (노래를 흥얼거리며 있다가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 갑자기 표정과 말투가 굳어진다)
‘잠들기 전에 내가 당신을 부릅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비오며
내가 만일 오늘 밤 잠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나를 슬퍼해 주십시오, 나를 위하여’
어머니 : (이번에는 혁준이가 전화 내용을 읽고 있는 도중에도 막 부른다)
얘, 혁준아. 혁준아. 잠깐만 혁준아.
혁 준 : (일방적으로 전화를 끝낸 뒤 퇴장)
어머니 : (아버지를 보며) 또 그 전화예요.
아버지 : 거참…
어머니 : (갑자기 생각난 듯) 그래, 우리 그렇게 합시다.
아버지 : 어떻게?
어머니 : 혁준이에게 편지를 쓰는 거예요. 우리와 이야기를 하자고.
아버지 : 그거 좋은 생각인데. 지금 씁시다.
아버지 : (종이에 쓰는 시늉하며) 사랑하는 아들 혁준아
어머니 : (역시 종이에 쓰는 시늉하며) 우리는 너의 사정이 어떤지 알고 싶구나.
아버지, 어머니 : (약간 큰 소리로) 제발, 우리와 이야기를 좀 하자!
아버지 : 아버지,
어머니 : 어머니가 씀.
아버지 :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는다. 이때 우편 배달부 등장한다)
배달부 : (아버지로 부터 편지를 받아서 혁준이네 집까지 배달해 준다)
(무대를 2바퀴 정도 돌며 자전거 타는 시늉을 한다) 따르릉, 따르릉…
(혁준이에게 도착해서 편지를 전해준다) 편지요!
(무대 밖으로 퇴장)
혁 준 : (편지를 뜯어 읽어 보고) 이 편지는 내 성실한 전화 내용을 흩어 놓을지도 몰라. 그냥 내가 하던 대로 전화를 해야지.
(다시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건다)

따르릉 소리.

어머니 : 혁준이 전화 인가봐.
아버지 : 받아봐요.
어머지 :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혁 준 : (이번에는 전화 대화문을 보지 않고 외워서 한다)
잠들기 전에 내가 당신을 부릅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비오며
내가 만일 오늘 밤 …
어머니 : 얘, 혁준아, 우리는 너의 사정을 알고 싶구나. 제발, 우리와 이야기를 좀 하자!
혁 준 : 내가 만일 오늘 밤, 내가 만일 오늘 밤, 오늘 밤, 오늘 밤…
(잠시 머뭇거리다가)… 에이,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는 바람에 까먹었잖아.
아버지 : (어머니가 들고 있는 전화를 뺏어 들고) 얘, 혁준아, 혁준아.
혁 준 : 오늘밤, 오늘밤,… 에이 모르겠다.
(전화를 끊는다) 에이, 오늘 전화는 망쳤네. (퇴장)
아버지 : (관객을 보며) 참말로 안된 일이예요!
우리 혁준이는 전화를 할 때 꼭 하나님에게 기도하듯이 한단 말이예요…
암전…

@ 원래 이 글은 제가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을 가지고 만든 것인데 그 원작자가 기억이 안나네요…

나는 흑인들이 싫다!?

흑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나는 흑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엉덩이 아래쪽에 이상하게 걸치는 헐렁한 바지에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도 싫고, 도대체
알아듣기 힘든 억양으로 하는 영어도 듣기 싫다. 한 무리의 흑인들이 번쩍번쩍 광을 낸 차에 우루루 타서, 쿵쿵 하는 베이스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이상한 손 모양을 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랩(rap)을 따라 하는 모습도 싫고, 자기들 끼리 만났을 때
Yo- 어쩌고 해 가면서 복잡하고 이상한 악수를 하는 모습도 싫다. 차를 타고 가다가 흑인들이 길거리에 주루루 서 있는 길을
지나면, 반사적으로 차 문을 잠그게 되고, 그저 그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이 싫어진다. 컴컴한 골목길에서 어쩌다 흑인들을 만나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하거나 삥 돌아가기 일수이다.

그런데, 지난 달에 내가 출석하는 미국 교회에 어떤 흑인
목사님이 와서 설교 하셨다. 보스턴 근교의 어떤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라고 하는데, 바로 내가
싫어하는 바로 그 흑인 억양으로 내내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무지 알아듣기도 힘들게, 설교 내내 이쪽 저쪽을 막 돌아다니면서,
흑인 특유의 큰 몸동작을 섞어서 하는 그런 설교였다. 물론 내게 무척이나 그 모습이 거북하게 보였다. 그 가난한 동네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그렇게 번지르르한 정장을 떨쳐입고 설교하는 모습도 위선적으로 보였고, 비교적 논리적이고 정리된 설교에 익숙한
나로서는 좌충우돌 뛰어다니며 감정만을 북돋우는 것 같은 모습도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설교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그 내용에 내가 깊이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날 때 즈음엔 눈물까지 글썽거려가며 그 설교에 공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쨌든, 내가 흑인들을 다짜고짜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흑인 차별과 호남 차별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얼마든지 전라도 사람이 아닐 수 있는 전라도 사람이다. 내 아버지께서 전북
출신이시긴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내가 거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잠깐 전주에 산 이후엔 늘 서울에 살았다.
내 말투에 전라도 사투리는 전혀 있지 않고, 오히려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직장생활을 대전에서 한 탓에 약간 충청도 사투리가 한때
내 말 투에서 배어 나왔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 때였던가, 본적도 서울로 아예 옮겼기 때문에 무슨 나의 공식적인 기록에서
전라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학교 때 이후 억척스럽게 스스로를 전라도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 국민학교 2년 반을 전주에서 다닌 연고로, 어쩌다 전주 출신 사람을 만나면 좀 오버를 해가면서 반가워 했었다.

그렇게 했던 유일한 이유는, 중학교 1학년때 어른들로부터 들어서 알게된 호남 차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기업에서 승진을 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 박정희 정권 이후 계속된 영남 정권이 계속 정치적인 이유로 호남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등은 그래도 이를 악물고 들어줄만 했다. 그런데, ‘누가 돈의 떼먹고 달아났는데 호남사람이더라.’. ‘호남
사람하고는 사돈도 맺으면 안된다.’, ‘호남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종족이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들을 땐 아니 도대체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왔다. 거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 모멸감까지 느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호남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반쪽 호남 사람으로서 스스로 호남인임을 거부하는 것은 괜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름대로 호남인이
되어 성공해 보겠다는 어줍잖은 객기를 부리고 싶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대구 출신 친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늘 나는 스스로 마치 호남인의 변호인이라도 된 양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호남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가 쓴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호남인들에 대한 차별, 아니 차별을 넘어 혐오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호남인들이 가난하다는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 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핀잔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높으신 분들’께서 호통을 쳐서 당장 ‘바로’ 잡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셋 가운데 하나가 사는 수도권에서 이런 밑바닥 직업을 거의 다 전라도 사람들이 하는데, 그들이 멸시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 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 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다시, 내가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돌아가 본다. 과연 내가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무엇 때문인가? 100 여년 이상 지속된 끔찍한 노예제도로부터 벗어나서 1900년 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외형적으로나마 ‘시민’으로 대접받게 된 이들. 원래 그들을 무자비하게 ‘포획’해 온 그 땅 아프리카는 아직도 정치적 경제적
낙후성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후진한 모습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반복되는 사회적 차별과 학대로 인해 어쩌면 스스로
당당한 시민으로 설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던 길고 긴 지난 역사. 이런 속에서 이들이 구조적으로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빈곤과 낮은 교육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더 악화시켰고, 나 같이 흑인들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대했던 아시아인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아직 단 한명의 흑인 친구도 사귀어 본 일이 없다. 정말 마음과 마음을 터 놓고 흑인과
이야기 해 본적이 없다. 호남 차별에 대해 주먹을 불끈쥐고 분개하던 “자칭 의인”은 어느덧 여기서 이번에는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경상도 여자와 결혼한 전라도 남자

내 아내는 골수 경상도 출신이다. (사실 내 아내도
반쪽짜리 경상도 여자다. 왜냐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으니까.) 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모두 대구지역 출신이시고,
아주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신다. 처음 결혼을 해선, 처가 식구들이 쓰시는 경상도 사투리를 내 머리 속에서 ‘번역’해서
이해하는데 꽤 애를 먹었었다. 이번 대선에도 내 처가 식구들은 대부분 두말 않고 “기호 1번”을 찍었다고 한다. 내 친가쪽
식구들이 두말 않고 “기호 2번”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름래도 반쪽짜리 전라도 청년으로서 호남 차별에 대해
분개했던 것, 흑인들에 대해 매우 불합리한 가학적 편견을 가졌던 것, 그리고 이제 반쪽짜리 경상도 아가씨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 것. 마음을 열고 편견 없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내 불합리하고도 몰상식한 편견을
비교해 보면서 스스로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게 된다.

새해엔, 함께 복음의 감격을 나눌 수 있는, 멋진 흑인 친구하나 사귀어 봤으면 좋겠다.

@ 이 글은 eKOSTA http://www.ekosta.org 2003년 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