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어부와 하버드 MBA

한 보트가 작은 멕시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인 관광객은
멕시코 어부가 잡은 물고기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거 잡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

그러자 멕시코 어부왈, “별루 오래걸리진 않았어요”

“왜 좀더 시간을 들여 잡지 않아요? 더 많이 잡을 수
있을텐데..” 그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멕시코 어부는 적은 물고기로도 자기와 자신의 가족들에는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인 왈, “그럼 남은 시간에는 뭐하세요?”

“늦잠자고, 낚시질 잠깐하고, 애들이랑 놀고, 마누라하고
낮잠자고…밤에는 마을에 가서 친구넘들이랑 술한잔 합니다.
기타치고 노래하고…아주 바쁘지요…”

미국인 그의 말을 막았다.
“나는 하바드에서 MBA를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도울수 있어요!
당신은 매일 좀더 많은 시간을 들여 낚시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거예요.
더 많은 수입이 생기고 더 큰 보트를 살 수 있겠죠.
더 큰 보트는 더 많은 돈을 벌게 하지요.
그러면 두번째, 세번째 보트를 살수있게 되고, 어업회사를 세울 수 있니다.
중간상과 씨름할 필요없이 제조공장(물고기)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요,
어쩌면 당신의 제조공장을 갖게 될수도 있지요.
당신은 이 조금만 마을을 떠나서 멕시코 시티나 로스앤젤레스,
혹은 뉴욕으로 이사할 수 있다구요!”

“그렇게 되는데 얼마나 걸리죠”

“20년..아니 25년 정도요”

”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 그 다음에는 신나는 일이 있죠”

그렇게 말하고 미국인은 웃었습니다.

“당신 사업이 진짜로 커졌을때는 주식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되는 거예!!!!!”
백만장자요?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은퇴해서, 바닷가가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잠자고 아이들이랑 놀고, 낚시질로 소일하고,
낮잠자고…그리고 남는시간에 술마시고 친구들이랑 노는거죠!”

불확실한 미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사람을 매우 유치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이든 붙잡으려하고, 어떻게든 확실함을 확보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함을 의미하겠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는 기대를 의미한다.

나는,
내 미래가 불확실한 것에 감사한다.

단 한번 만이라도

나는 유난히 이 말이 참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내 일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때로는,
그 소망이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하더라도,
내 일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식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어차피 일회적이니,
단 한번 만이라도 라는 표현은 인생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내게,
‘단 한번 만이라도’ 라고 이야기할 소망과 기도는 무엇이 있을까.

“반윤리적” 기독교

해적선장 이야기

어느 해적선이 어느날 크게 약탈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수많은 보화와 진귀한 물건 뿐 아니라, 여러명의 아름다운 처녀들도 납치해 오는 큰 성과였다. 해적선상에서 이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다. 잔치가 한참 무르익었을 무렵, 선원 몇 명이 해적선장 앞에 아리따운 처녀 몇 명을 데리고 왔다. 재미있게 한탕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해적선장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 이놈들, 너희들은 내가 결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크리스천임을 몰랐단 말이냐! 나는 결코 이 여자들에 손대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해적선장은 잠자리에 들기 전, 무릎을 꿇고 자신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 이야기는 복음주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신실한’ 신자들의 모습을, 해적선장이라는 비윤리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신실함을 지켜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비유한 내용이다. 과장이 되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 모습은 어쩌면 아주 전형적인(typical)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슬픈 모습을 그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A군의 직장생활 이야기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A군은 한국의 어느 국가출연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학생으로 있으면서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했었고, 지역교회에서도 성실한 일꾼으로 인정받던 A군은, 직장에 가서도 신우회 활동등을 통해 ‘직장 복음화’를 이루겠다는 꿈에 부풀어 직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직장에서 A군이 부딪혀야했던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있는 회식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술을 거부하는 것이 마음 늘 부담이 되었다. 한약을 먹는다, 개인적으로 술이 안받는다, 운전을 해야한다는 등의 핑계도 이전 거의 떨어져 가고 있다. 주일마다 나와서 일을 하라는 압력을 받는 것도 A군에게는 심각한 도전이다. 교회에서 여러가지 일로 섬기고 있는 터에 주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있는 A군은 이 원칙을 깨지 않으려 정말 힘들게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A군을 또 힘들게 하는 것은 가끔 ‘전문가 초청’ 가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가끔 세미나를 부탁한 전문가가 세미나를 펑크내면, 그냥 그 세미나가 열린 것으로 보고서를 써 내고 거기서 나온 경비로 연구실 회식을 하는 것이었다. 거짓 보고서로 회식이 마련되면 A군은 또한 여러가지 핑계를 대고 회식에 빠지려 노력하였다. 부정에 동참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가끔 직장 상사에게 피치못할 거짓말을 하는 것도 늘 마음에 걸렸다. 어쩌다 일이 밀려 기한내에 끝내지 못하면, 일을 이미 다른 부서로 넘겼는데 그쪽에서 아직 넘어오지 않아서 그렇다고 몇번 둘러대곤 했는데 이런 사소한 거짓말에도 A군은 심하게 마음이 찔렸다. 매일의 삶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도전들에 정정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기도 외에는 없다는 생각에 A군은 힘들지만 매일 새벽기도에 나갈 것을 결심한다. 거짓말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어다. 이런 성경구절들이 A군의 QT 노트에는 자주 적히게 된다.

이것은 가상의 어떤 ‘경건한’ 그리스도인 청년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져 있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작은 것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노력하며 분투하는 모습. 그러나, 이 모습을 위의 해적선장 이야기에 대비시켜보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반윤리적인 기독교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비판의 소리 가운데 하나는, 한국 기독교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개인적인 비리와 부정축재, 당회장의 권력을 투명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아들에게 물려주는 문제, 교회가 다른 ‘사업’을 벌이면서 터져나오는 각종 탈세 혹은 비리 의혹들. 그 외에도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이 터질 때 마다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교회의 집사, 장로, 권사, 목사님들. 이런 우리의 자아상이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서 일까, 어떻게든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워야한다는 사명감에서일까, 아니면 함께 싸잡아서 욕먹는 것이 못내 분해서일까, 우리 안에서도 이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는 목소리들이 높다.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노라고. 적어도 세상의 상식 수준의 도덕만이라도 우리안에서 회복하자고. 사실 우리는 얼마나 교회나 기타 기독교 관련 단체 혹은 집회 등에서 ‘종교적’ 혹은 ‘도덕적’이길 도전받는가.
주일성수, 금연, 금주, 십일조와 같은 ‘종교적 규율’들과 정직, 청렴, 사랑, 자비와 같은 ‘윤리적 규율’ 등을 나열하면서 이것들을 지키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그리고 우리 복음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윤리 기준은 세상의 타락한 가치기준보다 우월하다고. 그러나, 정말 그런가.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기반에서 미국내의 불법 이민자들, 미혼모들을 돌보는 social worker들을 보았는가. 이들은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에 일부러 흑인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가서 자기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박봉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의 도덕기준보다 과연 기독교의 도덕기준이 얼마나 더 우월하단 말인가.

자크엘룰(Jacques Ellul)에 따르면,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반윤리적’인 종교다.

“하나님과의 만남에 방해물로 나타나는 모든 도덕을 초월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어떤 도덕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떤 도덕도 만들지 않는다. 계시된 진리들(자유, 진리, 빛, 말씀, 거룩)은 어떤 것도 도덕과 관계하지 않으며, 또한 도덕을 탄생시킬 수 없다. 그 진리들이 일깨우는 것은 존재 양식과 삶의 모습이다. 그 삶의 모습은 지극히 자유로우며, 끊임없이 위험에 처하지만 항상 새롭게 되는 것이다. 도덕이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간에, 하나의 금지이며 장애물이고 또한 그 안에 정죄를 내포한다. 정확히 예수께서 모든 도덕적 인물들에의해 어쩔 수 없이 정죄받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비극들 가운데 하나는 이 자유한 말씀이 도덕으로 변형된 것이다.” (자크엘룰, 뒤틀려진 기독교, p120-121,대장간 199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윤리적이냐 그렇지 않느냐, 혹은 윤리적으로 누가 우월하고 열등하냐하는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을을 비그리스도인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원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즉, 전적타자(全的他者)로서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도무지 채울 수 없는 간극(gap)이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하나님같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절대적으로 인정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하여 모두 상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는 하나님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만들어진 윤리적 강령들 심지어는 도덕적 강령들이 절대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복음의 근본을 흔드는 심각한 도전이다.

앞의 A군의 예를 다시 생각해 보자. 물론 A군이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열정은 분명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A군이 지키려 했던 주일성수, 금주와 같은 종교적 강령들이나 정직, 성실과 같은 윤리적 강령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때, A군의 노력은 매우 소모적인 것이 될수도 있다. 또한, 경건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반복해서 종교적, 윤리적이되는 이유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계속 점검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가 비윤리적, 비상식적인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윤리적 강령들을 강조함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강조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고난 (박해 : Persecution)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종교적 윤리적 강령들이 소모적인 것이라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으로부터 출발하는 순종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성경의 예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그 결과는 고난 혹은 박해(persecution)였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외치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다’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심각한 갈등과 충돌을 필연적으로 갖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박해는 세계관의 충돌에서 비롯한다. ‘나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이 아님’을 발견했을 때, ‘나를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쌓아왔던 모든 전제들은 더 이상 이 새로운 세계관의 사람들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로마시대의 세계관이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세계관을 도무지 담을 수 없어 그리스도인들이 사자밥이 된 것, 세속화된 중세교회에서 성경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려했던 초기 종교개혁자들이 받았던 박해도 이 세계관의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과 초기 신도들이 받았던 박해 역시 구한말의 유교 봉건적 세계관이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을 참아낼 수 없었던 것에 기인한다. 그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의 시대정신이 복음적 세계관과 충돌할 때 일어나는 것이 박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충돌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는 많은 연구와 고찰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더 이상 그러한 박해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해의 근본적인 뿌리가 세계관의 충돌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기꺼이 받아야만하는 박해의 내용들을 조금 자세히 볼 수 있다. 매우 치열한 충돌과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도 별로 그렇지 못한 예를 몇 개만 들어보자.

(1) 경쟁 하덕규씨가 노래했듯이, 우리 시대는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보다 혼자 살아남는 것을 배우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살아간다면, 비록 그것이 정정당당한 경쟁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들을 위해 스스로 패배자가 된다면, 아니 적어도 자신이 당연히 차지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산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시대정신, 혹은 세상의 가치관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으로 정면으로 대항하는 ‘박해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것같이 공감하며 함께 고통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러다가 어쩌면 자신도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어쩌면 진정으로 시대에 대항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러한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을까.

(2) 성공주의 모두가 성공을 하고자 바둥바둥 하면서 사는 세상이다. 서점의 기독교 섹션에 가보아도 ‘성공’에 대한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진열되어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모두가 ‘성공’을 향해 매진해 갈 때, 아내 혹은 남편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의 ‘성공’을 양보하고 스스로 한 단계 내려 앉는 삶을 선택했다면, 그 후에 주변에 자신과 함께 ‘성공’을 향해 달려갔던 사람들이 모두 어떤 성취와 성공을 과시할 때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비교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성공’만을 향해 달려갈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삶의 모습을 지켜나간다면 이 사람 역시 성공주의라는 거대한 시대정신에 맨몸으로 맞서도 있는 사람일 것이다.

(3) 직업선택 어떤 직업이 가지는 수입에는 두가지 결정 요소가 있다. 하나는 그 직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문화적 가치이다. 즉, 그 일의 사회적 기여의 정도에 따라 그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시적 혹은 장기적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그 직업이 가지는 사회적 기여와 무관하게 그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직업이 창출하는 사회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수입의 정도를 가지고 직업선택을 할 때, 임금 수준이 낮다 하더라도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선택을 한다면, 혹은 자신의 임금 수준이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그 가치보다 더 많이 정해져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그 잉여 부분을 다른 이들과 나눈다면, 이런 선택 역시 이 시대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자세일 것이다.

여기에 제시되어 있는 예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대항하여 사는 가장 좋은 예들을 선별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따라야할 지침들은 물론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각 사람에 맞게 어떤 길로 부르시고 그 부르심은 때로 세상의 시스템에 깊숙히 들어가서 사는 것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전략적으로 겉보기에 세상의 가치관에 순응해서 사는 형태로 살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매 순간이 정말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자세가 아닐까.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

거대한 세상의 힘에 맞서는 일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과 맞서 싸우다 낙오하고 ‘박해받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낙오하는 것은 과연 실패일까. 여기에 공동체의 중요성이 있다. 물론 세상에 맞서 비성경적 시대정신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낙오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경건의 영역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일단의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함께 비성경적 시대정신에 저항할 때, 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아주 단순히 자신들의 신앙의 양심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로마의 권력이, 시대 정신이, 사회적 통념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던지 간에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해야만하는 일들은 반드시 하고야 말았다. 성경말씀 그대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다시 해적선장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가 해적선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정면으로 대항해서 싸워야 하는 가치기준들을 외면한채 개인적인 종교적 윤리적 경건만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모습이 해적선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수도 있다. 조금 극단적인 비교가 되겠으나, 성적순결을 지키는 해적선장과 난봉꾼이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한 해안경비대장 가운데 누가 더 유익한 사람이겠는가.

복음은 원천적으로 모든 권력과 모든 권세를 뒤집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권력이 돈이건, 정치 권력이건, 사회적 통념이건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을 때 그것을 뒤집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가 세상의 경쟁주의, 성공주의, 배금주의, 인본주의에 대해 정면으로 대항하여 그것을 뒤집는 예를 얼마나 볼 수 있는가.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에 대하여 태클을 걸며 유일한 하나님되신 그분의 뜻 이외에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당당함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정치권력, 금전권력, 쾌락주의, 사회적 통념등과 끊임없이 타협하면서 만들어내는 구차한 변명들을 얼마나 우리 공동체 안에서 많이 접하는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당당하게 거부하고,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타협함없이 지키는 진성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낙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맞서 나가는 모습을 우리 안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동체가 함께 고난을 기꺼이 감당해 나가는 자세를 견지하며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선포하는 일들이 편만해 지길 소망한다. 그렇게 할 때 이땅의 우리 공동체들은 천박한 종교적 윤리적 강령들에 얽매여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를 세상에 벤치마킹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 있으리라.

사족

이 글은 아직 미숙한 한 유학생의 묵상 글입니다. 많은 분들의 조언, 충고, 첨언들을 기대합니다.

gpKOSTA-UT

Thanksgiving 휴가 기간 (25-27일)동안
Utah 에서 gpKOSTA를 합니다.
gpKOSTA는 지역의 학생들 leadership training program 입니다.

Utah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몰몬들이 ‘성지’로 여기는… 몰몬의 주(state)입니다.

정말 영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알고 나서…
제 마음 속에서는 깊은 부담과 애정이 생겼었습니다.

대도시가 아니므로,
많은 resource를 접할 수도 없고,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Korean Christian community를 구성할 수도 없고,
학생들도 잠시만 있다가 떠나기 때문에 정착해서 학생들을 복음으로 섬길 여건도 열악하고…
게다가 주위의 몰몬들에 의해 intimidate 될만한 환경.

이번엔,
제가 그쪽에서 organize 하는 것을 KOSTA contact person이 되어서 돕고,
가서 강의도 하고 여러가지로 섬기게 됩니다.

현지의 학생 준비위원들이 정말 열심히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정말 얼마나 제 마음을 깊이 움직였는지 모릅니다.
퀄리파잉 시험을 앞두고도 대표로 섬긴 자매님을 비롯해서…
힘든 중에도 교회들을 다니며 홍보하고,
fundraising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참석을 독려하고…
그리고 기도하고.
새벽 시간이 되도록 함께 전화를 붙들고 기도하면서 고민하고…

하나님께서 Utah의 이 소중한 형제 자매들을 향해서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저는 알수 없지만,
이분들이 이번 gpKOSTA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기대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gpKOSTA는,
보통 지역마다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의 지역교회, 캠퍼스 모임의 리더들을 훈련시켜주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지역 모임인데요…

KOSTA를 섬기는 제가 보기에,
gpKOSTA에 ‘투입’되는 분들은… 정말 KOSTA가 가진 최고의 resource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령 이번에 함께 가서 말씀으로 섬기실 간사님들은
그분들이 제게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제가 그냥 믿을만큼 제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들입니다!
다들 소중한 thanksgiving 기간에 가정을 포기하고(^^) 학생들을 섬기려는 마음으로 가시죠.

불과 40여명의 학생들이 모이는 수양회를 위해서,
KOSTA의 ‘드림팀’이 투입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낭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합니다.

눈에 보이는 파급효과로 봐서야…
대도시에서 사람들 많이 모으고,
찬양팀 빵빵하게 조직해서 집회 하는 것이 훨씬 더 크겠지만요…

이렇게 resource가 낭비된다고 보여질만큼
하나님께서는 각 지역의 학생들 한사람 한사람에 말 할 수 없이 깊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모르지요,
이번에 섬기게 되는 형제 자매님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들을 더 행하실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잠깐 시간을 내어서… 30초만이라도 gpKOSTA/UT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http://gp.kosta.ws 로 가시면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I Love You, Have a Nice Day!

아침에 민우를 교실에 데려다 주고는,
꼭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고 볼에 뽀뽀를 받고나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Edith, I love you. Have a nice day. See you in the afternoon!’

오늘은 민우를 그렇게 데려다 주고 나오면서 문득…
어쩌면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벙하게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해 주시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승아, 너를 사랑한다. 멋진 하루가 되거라! 그리고 오늘 하루도 너와 종일 함께 있을께.”

민우는 제가 아침에 꼭 안아주는 것을 하고 나서야 학교 교실로 힘차게 뛰어갑니다.
저도…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안아주시면서 삶의 현장으로 저를 보내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민우가 저로 부터 받는 포옹에 힘과 자신감을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의 그 포옹을 받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저의 하루를 힘차고 신나게 만드는 것이겠죠. 문제는 제가 그걸 자꾸 잊는다는데에 있지요.

권리를 위한 삶과 소명을 위한 삶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조롱당하시면서…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을 묵상해보면,

그것처럼 unfair 한 재판이 또 있을까 싶다.
창조주께서 피조물로부터 공평하지 못한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런 부조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순간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부조리한(absurd)’ 상황을 받아들이신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의 자신의 ‘권리(right)’보다 ‘소명(calling)’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는 지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인 것 같다. 특히 미국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인가!

그런 사회 속에서,
소명을 위해 권리를 포기하면서 사는 삶은…
또 다른 Contra Mundum (세상에 대항하여) 의 한 모습이 아닐까…

크리스천 청년의 때에 읽어야 할 책들

IVF의 성향을 많이 띄고 있지만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크리스찬 리더들의 필독서 들입니다~
저도 반정도밖에 읽지 못한 것 같네요…

IVP 주제별 권장도서

I. 복음의 기초
1) 하나님과 창조
하나님을 아는 지식(제임스 패커, CLC)
창세기의 시공간성(프란시스 쉐퍼, 생명의 말씀사)

2) 죄와 구속
기독교의 기본진리(죤 스토트, 생명의 말씀사)
그리스도의 십자가(죤 스토트, ivp)

3) 예수님의 부활
부활의 증거(노르만 앤더슨, ivp 소책자)
예수님의 부활(마이클 그린, 생명의 말씀사)
누가 돌을 옮겼는가?(프랭크 모리슨, 생명의 말씀사)

4) 믿음과 신앙
편견없이 기독교를(죤 알렉산더, ivp 소책자)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죤 스토트, ivp 소책자)
복음이란 무엇인가?(김홍전, 성약)
하나님의 열심(박영선, 새순)

5) 복음에 대한 확증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박영덕, ivp)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프란시스 쉐퍼, 생명의 말씀사)
이래서 믿는다(폴 리틀, 생명의 말씀사)
순전한 기독교(C. S. 루이스, 홍성사)

6) 기본적인 신앙생활
균형잡힌 신앙생활(챨스 라이리, 생명의 말씀사)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갓프리 로빈슨 외, 성서 유니온)
신앙 생활 지침(죤 화이트, 생명의 말씀사)
신앙의 도리(김홍전, 성약)
영혼을 위한 10가지 비타민(알리스테어 벡, 두란노)
중생자의 생활(김홍전, 성약)

7) 구원의 확신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두란노)
그리스도인의 확신(죤 스토트, 엠마오)
회의에서 확신으로(알리스터 맥그래스, ivp)
구원 그 이후(박영선, 새순)

8) 교리 기초
복음주의자는 무엇을 믿는가?(ivp)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하워드 마샬, ivp)
기독교교리 핸드북(브루스 밀런,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기독교신앙 핸드북(패커 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II. 균형 잡힌 제자로서의 삶
1. 하나님과의 관계
9) Q. T.
조용한 시간(프랭크 호튼, 생명의 말씀사)
묵상의 시간(윤종하, 성서 유니온)
경건의 시간(ivp)
나의 주 나의 하나님(송인규, ivp)

10) 기도
기도 걸음마(스티븐 크로츠, ivp)
기도(O. 할레스비, 생명의 말씀사)
기도(리챠드 포스터, 두란노)
예수님의 기도(존 맥아더, 생명의 말씀사)

11) 예배와 찬양
예배란 무엇인가?(죤 맥아더, 두란노)
찬양의 생활(데렉 프라임, 생명의 말씀사)

12) 율법과 은혜
하나님의 설복(박영선, 크리스챤 서적)
자유에 이르는 오직 한 길(죤 스토트, 아가페)
구원의 그 즉각성과 점진성(박영선, 새순)

13) 헌신
헌신(하의진, ivp 소책자)
희생(하워드 기니스, ivp)
헌신의 기쁨(죤 화이트, ivp)

14) 주되심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앙리 누앙, ivp)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죤 스토트, ivp)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죤 스토트, ivp)

15)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폴 리틀, ivp 소책자)
하나님의 인도(올리버 바클리, 개혁주의 신행협회)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게리 프리슨 외, 생명의 말씀사)

16) 영성
진정한 영적 생활(프란시스 쉐퍼, 생명의 말씀사)
인간 하나님의 형상(레널드 맥컬리 외, ivp)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기독지혜사)
헌신(앤드류 머레이, CLC)

2. 자신과의 관계
17) 자아상
자존감(조안 로이드 게스트, ivp 소책자)
상한 감정의 치유(데이빗 시멘즈, 두란노)
성경이 말하는 적극적 신앙(안토니 후크마, 총신대출판부)

18) 영적 침체
그리스도인과 정서의 성숙(필립 스위하트, ivp)
영적 침체(마틴 로이드 죤스, 새순)
침체로부터의 자유(돈 베이커 외, 비젼북)

19) 자기 관리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챨스 험멜, ivp 소책자)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고든 맥도널드, ivp)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자세(죤 알렉산더, 생명의 말씀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테판 코비, 김영사)

20) 시간사용
그리스도인의 삶과 시간 관리(조 베리, 생명의 말씀사)
크리스챤의 우선순위(그랜트 하워드, 순 출판사)
크리스챤의 시간관리(테드 엠스트롬, 보이스사)

21) 신앙과 지성
그리스도인의 사고활용과 성숙(죤 스토트, ivp)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해리 블레마이어, 두란노)
이성에서의 도피(프란시스 쉐퍼, 생명의 말씀사)

22) 재물 사용
섹스, 돈, 권력(리챠드 포스터, 두란노)
사람과 돈(쟈끄 엘룰, 보리)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래리 버켓, CUP)

23) 성 문제
성 더럽혀진 하나님의 선물(아가페)
올바른 삶을 위한 성(나비, 루이스 스미디스)
크리스천의 성(루이스 스메디스, 두란노)

24) 성령의 은사
영적 은사를 발견하려면(오데이, ivp 소책자)
은사란 무엇인가?(마이클 그리피스, 엠마오)
성령의 은사와 교회 성장(피터 와그너, 생명의 말씀사)

3. 이웃과의 관계
25) 대인관계
까다로운 사람 상대하기(레스 패로트 3세, 요단출판사)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고든 맥도날드, ivp)
사랑과 우정의 비결(맥기니스,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인간관계지능(슈테판 F. 그로스, 청년정신)
친구 만들기(엠 그리핀, 선한 이웃)

26) 공동체적 생활
형제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게파 세팡기, ivp 소책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송인규, ivp)
신도의 공동 생활(본훼퍼, 대한 기독교서회)
그리스도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로핑크, 분도 출판사)

27) 가정 생활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추아 위 히안, ivp)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보이스사)
가정이란 무엇인가?(에딧 쉐퍼, 생명의 말씀사)
좋은 아빠 되기(고든 맥도날드, 비젼북)

28) 이성교제
그리스도인의 데이트(스코트 커비, 생명의 말씀사)
파란 불꽃(월터 트로비쉬, ivp)
데이트와 사랑의 미학(죠이스 허기트, ivp)

29) 결혼
사랑과 행복에의 초대(양은순, 두란노)
결혼 건축가(로렌스 크랩, 두란노)
그리스도인 부부와 행복한 성(허버트 마일스, 크리스챤다이제스트)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월터 트로비쉬, 생명의 말씀사)
생애의 반려자(추아 위 히안, ivp)
결혼과 사랑의 미학(죠이스 허기트, ivp)

30) 교회 생활
현대교회와 평신도 훈련(죤 스토트, 엠마오)
기억 상실증에 걸린 교회(마이클 그리피스, ivp)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죤 스티븐스, ivp)

31) 지역교회
교회의 이중구조(랄프 윈터, ivp 소책자)
그리스도의 공동체(하워드 스나이더, 생명의 말씀사)
혁신적교회갱신과 웨슬레(하워드 스나이더, 대한기독교출판사)

4. 세상과의 관계
32) 전도
개인전도(죤 스토트, ivp 소책자)
빛으로 소금으로(레베카 피벗, ivp)
이렇게 전한다(폴 리틀, 생명의 말씀사)
전도의 동기와 방법(죤 스토트, ivp 소책자)
초대 교회의 전도(마이클 그린, 생명의 말씀사)

33) 해외선교
당신과 해외선교(마이클 그리피스, ivp 소책자)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송인규, ivp)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왜 되어야 하는가?(허버트 케인, 죠이)

34) 직업과 소명
그리스도인과 일(밴 패터슨, ivp 소책자)
그리스도인이 본 노동(해리 안토니데스, ivp)
내 맘에 쏙 드는 직업(케빈 내레모어, 비젼북)
소명(오스 기니스, ivp)
직업과 소명(데이빗 필드, ivp)
직업과 소명(김재영, ivp)

35) 사회참여
누가 나의 이웃인가?(죤 스토트, ivp 소책자)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김세윤, ivp)
복음전도,구원,사회정의(로널드 사이더, ivp)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쟈크 엘룰, 대장간)

36) 윤리적 삶
행하는 자라야(기윤실, ivp)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크리스토퍼 라이트, ivp)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올리버 바클리, ivp)
현대 사회 문제와 기독교적 답변(죤 스토트, CLC)

37) 신앙과 학문
신앙과 학문(이원설, ivp 소책자)
기독신앙과 전공과목(케네스 헤르만 외, ivp)
신앙의 눈으로 본 학문 시리즈(ivp)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아더 홈즈, 크리스챤다이제스트)

38) 기독교 세계관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송인규, ivp)
그리스도인의 비젼(브라이안 월쉬 외, ivp)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제임스 사이어, ivp)
창조,타락,구속(알버트 윌터스, ivp)
지성의 제자도(제임스 사이어, ivp)

39) 그리스도인과 문화
복음과 문화(조종남, ivp)
기독교 문화관(로버크 웨버, 엠마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프란시스 쉐퍼, 생명의말씀사)

40) 영적 전투
그리스도인의 영적전투(마이클 하퍼, 두란노)
영적 전투(티모씨 워너, 죠이 선교회)
기도는 전투다(피터 와그너, 나눔터)

Ⅲ. 교회지도자를 위한 주제
1. 리더의 자세
41) 지도력
지도자가 되려면(호스트, 성서 유니온)
기독교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죤 스토트, ivp)
열정적인 사역자입니까(게일 맥도날드, 비젼북)
영적 지도력(샌더스, 요단출판사)
영혼이 성장하는 리더(고든 멕도날드, 비젼북)
오늘을 위한 성경적 리더쉽(추아 위 히안, ivp)
이야기로 푸는 예수님의 리더십(빌 하이벨즈 외, 두란노)
탁월한 지도력(죤 화이트, ivp)
최고경영자 예수(로리 베스 존스, 한언출판사)
함께 일하는 지도자(찰스 스윈돌, 생명의 말씀사)

42) 제자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탐 사인, 두란노)
제자도(데이빗 왓슨, 두란노)
나를 따르라(본 훼퍼, 대한 기독교서회)
가난한 자들의 친구(비브 그릭, ivp)

43) 전기
5인의 복음주의 지도자들(크리스토퍼 캐서우드, 엠마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조나단 에드워즈 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불타는 세계비젼(봅 포스터, 네비게이토)
세계를 변화시킨 믿음의 거인들(조이스 브라운, 베다니출판사)
아름다운 빈손 한경직(김수진, 홍성사)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정부흥, CLC)
하나님의 사람 칼빈(엠마누엘 스티켈베르거, 나단)
허드슨 테일러(로저 스티어, 두란노)
헨리 마틴의 생애와 일기(존 사전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 리더와 성경 연구
44) PBS 방법론
창조적인 성경연구(에이더 럼 외, ivp)
효과적인 성경공부(마갈릿, ivp)
성경 연구 핸드북(자료개발부, ivp)

45) 성경해석 방법
성경을 아는 지식(스프로울, ESP)
성경 해석의 원리(노튼 스테렛, 성서유니온)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고든 디 피 외, 성서유니온)
성경 해석학(버클리 마이켈슨, 크리스챤다이제스트)

46) 성경 개론
성경의 권위(죤 스토트, ivp 소책자)
성경연구 입문(죤 스토트, 성서 유니온)
성경 연구 가이드(시릴 브리지랜드, ivp)

47) 성경 신학
성경 교향곡(마크 스트롬, ivp)
복음과 하나님 나라(그레엄 골즈워디, 성서유니온)
복음과 하나님의 계시(그레엄 골즈워디, 성서유니온

3. 리더와 재생산
48) 일대일 양육
영적 갓난아이를 격려하려면(마이클 그리피스, ivp 소책자)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알리스 프라일링, ivp)

49) 제자 만들기
일대일 제자 훈련(마이클 베슬러, ivp)
제자 삼는 사역의 기술(리로이 아임스, 네비게이토)
주님의 전도 계획(로버트 콜먼, 생명의 말씀사)
예수님의 제자 훈련(챤다필라, ivp)

50) 소그룹 운동
소그룹을 인도하려면(마이클 위베, ivp 소책자)
소그룹 리더 핸드북(자료 개발부, ivp)
소그룹 운동과 교회성장(론 니콜라스 외, ivp)

51) 그룹 성경 공부
성경공부의 모든 것(짐 나이퀴스트, ivp)
성경 공부 인도법(네비게이토)

52) 상담
격려와 책망(고든 맥도날드 부부, ivp)
격려를 통한 상담(로랜스 크랩 외, 나침반)

53) 치유 제 3의 바람(피터 와그너, 임마누엘)
치유(프란시스 맥너트, 무실)

4. 리더와 복음주의 학생 운동
54) 복음주의
학생운동과 세계 복음화(데이빗 하워드, 생명의 말씀사)

55) 복음주의 학사운동
IVF 학사운동 핸드북
성서한국을 꿈꾼다(이승장, ESP)
일상 생활 속의 그리스도인(로버트 뱅크스, ivp)

5. 리더를 위한 신학적 주제
56)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최낙재, 성서유니온)
하나님 나라의 신학(죤 스토트 외, 한국 로고스 연구원)
하나님 나라(헤르만 리델보스, 엠마오)

57) 복음주의 신학
변론자 그리스도(죤 스토트, 성서 유니온)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버나드 램, 생명의 말씀사)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프란시스 쉐퍼, 생명의 말씀사)
자유주의자와의 대화(죤 스토트, 여수룬)

58) 성령론
성령 충만(챨스 험멜, ivp 소책자)
오늘날의 성령의 사역(죤 스토트, 한국 기독교 교육 연구원)
성령을 아는 지식(제임스 패커, CLC)
성령 세례(마틴 로이드 죤스, CLC)

59) 종말론
미래, 미래, 미래인(빔 리트께르끄, 호도애)
개혁주의 종말론(안토니 후크마, CLC)
마지막에 될 일들(죠지 래트, 엠마오)
천년 왕국(로버트 지 클라우스, 성광 문화사)

60) 여성학
여성 그대의 사명은(폴 투르니에, ivp)
성경적 여성관(메리 에반스, ivp)
성경이 말하는 남녀의 역할과 위치(제임스 헐리, 여수룬)
일곱가지 여성 콤플렉스(여성을 위한 모임, 현암사)
여자, 여성, 그리고 여인들(송길원, 한국문서선교회)

<참고>
이 필독서는 한국기독학생회(IVF) 멤버들이 들어야 할 기본적인 강의 주제 60개를 self-study 할 수 있도록 만든 목록을 기초로 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구호와 노래와 깃발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함께 외칠 구호가 없고,
함께 부를 노래가 없고,
함께 흔들 깃발이 없다고.

그래서 이들이 방황할 수 밖에 없다고.

그런데,
복음 안에서는
함께 외칠 구호도,
함께 부를 노래도,
함께 흔들 깃발도 모두 있지 않은가!

정말 이것을 위해 내 삶을 완전히 다 던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하나님과 함께 롤러 코스터를

롤러 코스터를 타는 것은 재미있다. 물론 그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for example, 우리 어머니^^)

롤러 코스터를 탈때 느끼는 머리 뾰쪽 서는 느낌은 일종의 무중력감이다. 중력과 함께 낙하를 하기 때문에 잠간동안이나마 중력을 경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중력감을 느끼는 다른 event가 있다면, 고층빌딩에서 자살하기위해서 낙하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롤러 코스터는 재미로 타지만 아무도 자살을 재미로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롤러 코스터는 안전함을 믿지만, 자살은 한번 떨어지만 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든 불완전한 롤러 코스터도 이렇게 재미있게 탈진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인생의 롤러 코스터는 어떠한가?


생을 살다보면 승리의 순간과 절망과 패배의 순간을 모두 경험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만 확실하다면, 나는
절대로 안전하다! 그러므로 내가 빠른 속도로 높은 고지를 올라가고 있건, 가장 낮은 곳을 지나고 있건, 정신없이 빙빙 공중회전을
하고 있던 간에… 이것을 통해 내게 제공해주시는 하나님의 blessing들을 기대하고 그것에 흥분할 수 있다.

만일 up & down이 없는 롤러코스터라면 그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up & down이 없는 인생이라면 그것이 순탄할수는 있겠으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짜릿함은 없겠지.

하나님과 함께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