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초중반의 두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경험이자 작지 않은 챌런지입니다. 겪어보신 분들은 아십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함께 놀아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저희 가족은 한달에 두번 정도 Family
Movie Time(FMT)를 가집니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DVD를 빌려서 집에서 팝콘을 먹으면서 보는 것이지요. 영화는
막내 민주가 주로 고릅니다. 최근에 ‘Cloudy with a chance of Meatball’ 이라는 만화영화를 보았습니다.
메뉴를 프로그램하면 하늘에서 치즈버거, 스테이크, 아이스크림 등이 비, 눈 오듯이 온다는 내용의 상상력 풍부한 영화입니다.
나중에는 인간의 욕심으로 기계를 무리하게 가동하다가, 기계가 이상해져서, 집채만한 meat ball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거대
음식 폭풍 앞에 인류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제 관심을 끈 것은 중심인물들 보다는 조역을 맡은 아이와 그 아빠의
대화였습니다. 음식 폭풍이 다다르기전에 서둘러서 도망을 가야하는 상황에서 아빠와 아이가 잠시 떨어지게 됩니다. 그 때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 아빠가 매우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면서 “You know I love you.”라고 말합니다. 혹시나 다시 못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 자기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Yes, I
know. You say it every day.” 라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하고는 아빠를 떠나서 달려갑니다.
저는 그 상황을 보면서, 그것이 저희 아이들과 저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잠자리에 들때는 거의 매일 “I love
you.”라고 제 마음을 다해 아이들에게 표현합니다. 그 때 아이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장난스럽게 “I lov-oo”라고 건성으로
이야기하고는 자기 방으로 휙하고 가버리지요. 아빠가 의미하는 사랑과 아이가 말하는 사랑이 비록 같은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저는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그 순간이 제게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또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얼마나 많이 고백하는지요. 하지만, 간혹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Yes, I know. You say it every day.”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I lov-oo”
라고 건성으로 말하고 하나님 상관없이 나의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Do you love me?”라고 직접 물어보는 것은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드문일입니다. 아마 “I love you.”라고 수십번 이야기 한 후에 한번 정도 물어볼까요? 물론 아이들은 “I
lov-oo” 정도의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답변도 제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만드는지요. 아마 아직은 저희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제가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성년이 되고 그들도 아빠, 엄마가 되었을
때, 그 때에 저와 제 아이들의 대화는 조금 달라져 있기를 소망합니다. 습관적이고 장난기 섞인 “I lov-oo” 나 “I
know you love me. You say it everyday.”라는 천진난만한 답변보다는,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아본
‘사랑’의 경험과 ‘사랑’의 깊이를 이해한데서 나오는 “I came to know (your) love. Yes! Now I
love you with that love.” 라는 답변을 듣는 행복한 아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마 그런 고백을 들으면,
눈물이 핑 돌 것 같습니다. 제 꿈이 너무 야무진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시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자신을 다
바쳐 아낌없이 사랑했건만 마지막 순간에 어이없이 무너져버리고 “I lov-oo”는 커녕 “I don’t know the
man.” 이라고 말한 자녀를 찾아간 아버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라고 상상해 봅니다. 한편, 아들은 자기가 “I lov-oo”라고
하며 ‘사랑’했던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자신을 내어주는 아가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고,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겠지요. 그 아들에게 “Do you love me?”라고 물어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I still love you. You are my son. I want you to love me.”였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그 아들에게 아버지가 바라는 대답이 있다면, “I want to love you.”라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감히 그 ‘사랑’을 자기가 하겠다고 고백하지 못하고,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세상에서 육신의 자녀를 통해 경험하는 사랑이 어찌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아주 아주 조그만 부분을 육신의 부모됨을 통해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너무나 보잘 것없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그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해보겠다고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언젠가 “I came to know your love.
Yes! Now I love you with that love.”라는 고백을 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짐승입니다!! 한놈은 호랑이 띠고 또 한놈은 백말띠 입니다!! 기가 쎈 말띠라고 합니다!!
아주 지랄입니다!! 저희는 짐승입니다!! 그런데 정말 가수는 하고싶습니다.
◆군대나 가라~~~
죄송합니다!! 저희는 군대를 다녀오고야 말았습니다!!
한명은 11사단 테니스장 관리병으로 26개월에 특명이 늦어 3일 더 하고 늦게 마지막까지 테니스장 바닥을 다지고 나왔습니다! 또 한명은 32사단 PX 관리병이었습니다!
◆지대 굴욕이다~
저희에게 이런 단어를 써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애들 쓰레기 아냐?
맞습니다. 저희는 쓰레기 입니다.
1집때 회사 야유회를 간적이 있는데 같은 회사의 다른 가수들은 카니발을 타고 가는데 저희는 자리가 모자라 매니저도 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간 적도 있을만큼 1집때는 사무실에서 거의 쓰레기로 대접 받다가 요즘은 스케줄 끝나면 집에도 데려다주고 밥은 끼니를 거르는
일이 없을 만큼 훌륭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갈비를 좋아하는데..먹어본지가 언젠지… 언제 한번 여러분들 모셔놓고 갈비한번 쏘겠습니다!! 오~~ 갈비 ^o^
◆저 변태시키
맞습니다!! 저희는 변태구요~~야동도 진짜 많이 봅니다!!!
◆니들이 한류스타면 난 장동건이다~~
맞습니다!! 저희는 잔류스타입니다!
◆난 니가 부끄럽다!!
꼭 그렇게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집안에 꼭 이런놈 하나씩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욱끼고 자빠졌네….
자빠지면서라도 웃길수있다면 연골이 무릎을 떠나시도록 자빠지겠습니다.
◆이것들 완또아니야?
여러분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즐겁게 노는 방법은 완또가 되는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하신다면 개또까지도 가능합니다.
◆이런거 찍을시간 있으면 엿이나쳐드삼 ㅡ,.ㅡㅗ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주시는거라면 감사히 받아먹겠습니다. 그것이 엿아닌 그무엇이라해도…
◆쥰내 재수털린 썩소 어쩔래?
죄송합니다!! 거울보고 좀더 여러분께 호감으로 다가갈 수 있는 웃음의 얼굴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 하겠습니다! 그후 진정한 웃음이 만들어 졌을때 같이 환하게 웃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니네 무뇌냐??
네 무뇌 맞습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잔머리를 쓴다고 드릴수 없는 것이기에 뇌를 버리고 오로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제가 보기엔 님들 정신과 치료좀 받아 봐야 할 듯
사실병원에 가본것도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정상인 같냐고…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리려 면 맨정신으론 안된다는걸 알기에… 좀더 미치겠습니다!!
◆니네들 오크냐? 왜그렇게 생겨머거써?
죄송합니다! 오크분들께~~면목이 없습니다! 오크분들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노라조가 되겠습니다!! 예뻐해주셔요~~
◆이런 시밤새퀴들 놀고있네~
감사합니다!! 최고의 칭찬 이십니다! 저희가 누굽니까!! 여러분곁에서 놀아드리는 노라조 아니겠습니까?
◆찌찌리들 가서 잠이나 쳐자라~
사실 저희는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린다는 일념으로 잠도 못자고 고민중입니다!!!
잠은 나중에라도 푹 잘수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만 즐거우실수 있다면 잠 쯤이야~~
◆니들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보낸지 100만년이냐?
죄송합니다!! 보낸지 꽤 됐는데 그게 벌써 100만년이나 되었다니…이제는 찾아오겠습니 다!
◆혹시 무명가수?
아직도 저희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국민이 저희를 알고 사랑해주시는 그날까지 백골이 진토되도록 열심히 노라드리겠습니다!
◆이거 국제적으로 망신 시키고 다니는거아냐?
일본에서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키시단의 보컬 DJ OZMA가 노라조 공연때와서 존경한다는말과 함께 해피송과 날찍어의 안무를 방송에서 써두 되냐고 물어보기도하고
한국에서 100장나간 음반이 일본에선 3000장 그것도 한방에 나가는~~ 라스베가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환타스틱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저희는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는 모습으로 활동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오롯이 세상에 알리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더욱더 훨훨 나는 노라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가끔,
내게 옷을 선물해주는 사람들이나 가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행한 사람들을 곧 많이 실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준 옷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나는 나름대로 매우 까다로운(?) 옷입는 방식들이 있다.
우선,
옷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멋이나 격식등은 늘 내게 이차적 고려대상이 된다.
그러다보니, 나는 일년중 약 360일 정도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는 패션감각(?)을 발휘하게 된다.
다림질을 하는 옷은 거의 무조건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
드라이 클리닝은 말할것도 없다.
그리고 또,
옷은 가능하면 검소하게 입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통 청바지는 15불-20불짜리를, 티셔츠는 10-20불 짜리를 사서 입는다.
신발은 조깅을 할때 신는 running shoes를 제외하고는 보통 20-40불 짜리를 사서 신는다.
그러다보니 대개는 약간 후줄근한 느낌을 주게 입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나는 내 패션이 내 삶의 performance에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치는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멋을 내야만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옷맵시를 뽐내게 된다. ㅋㅋ
이렇게 다소 까다로운(?) 옷입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보니,
내게 옷선물을 해주는 사람들 (주로 가족)은 내게 좋은 소리를 못듣는다.
심지어는 옷을 사주고 내 투정/불만을 받아야 하는 황당한 일들도 겪는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 나도 나이가 들고 있으니…
청바지에 티셔츠로부터 조금씩 벗어나야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괜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입는 주책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패션감각’이 뛰어나지도 않고,
옷맵시가 잘 나는 멋진 몸매를 가진것도 아니고,
옷을 멋지게 입어야할 필요가 있지도 않으므로…
그저 편하고 검소하게 입고 살겠다는 고집을 조금 더 피워보려한다.
911 이후 미국은 거의 정서적 공황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 살고 있던 내게도 그 충격이 대단했는데, 애국심이 투철한 미국인들은 오죽 했으랴.
그 이후,
WMD가 있다면서 이라크를 공격하자는 의견이 나왔을때,
미국의 의회는 압도적으로 그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의 여론 역시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압도적 여론도, 의회의 결의도 모두 착오였음이 드러났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위 ‘just war’ theory에 따르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미국민들에게 있던 정서적 공황상태, 분노 등이 적절하지 못하게 인도된 것이었다.
아랍의 무슬림들이 왜 그렇게 미국을 증오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채,
거의 아랍권 무슬림 전체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기라도 하겠다는 nonsense가 정당화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조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들으며…
무엇이 북한을 그토록 코너에 몰아넣었는지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있기를 기도한다.
전쟁과 대립이 아닌 평화를 추구해야한다는, ‘인기없는’ 목소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오길 기도한다.
북한의 정권이 악한 정권인 것도 맞는 말이고,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규탄받아야할 일인 것도 맞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이나 탈레반이 악한 것도 맞는 말이고, 911 공격은 규탄받아야할 일인것 처럼)
그렇다고 무작정 감정적으로, 무력으로, 폭력으로, 전쟁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우려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지금 들고 있는 것과 마찬 가지로.)
평화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전략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말을 깊이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