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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은 슬프다

어릴때, 크리스마스는 늘 기분 좋은 날이었다.

머리 맡에 ‘산타’가 가져다주는 선물도 좋았고,

크리스마스라고 거리에서 나오는 캐롤도 듣기 좋았고,

교회에서 성극 연습하며 노닥거리는 것도 좋았다.

좀더 철이들어 세상을 보니,

사람들은 심하게 어그러져 있고,

그 어그리진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더 심하게 망가져 있다.

젊은 시절에 꿈꾸었던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무기력함도 몰려오고,

싸워야할 대상이 ‘저 나쁜놈’이 아니라,

내 이웃, 내 가족, 내 자신임을 발견하며 어쩔줄 몰라하게 된다.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 ‘다른 소망’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높고,

그 와중에 ‘참 소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그러져 들어가는 듯 하다.

첫 성탄 역시 그렇게 슬펐다.

남자를 모르는 틴에이저 여자아이는 임신을 했고,

결국 돌보아주는 사람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총각 남편’밖에 없는 마굿간에서 애를 낳았다.

그 즈음에 당시 독재자는 아이들을 학살했고,

폭력으로 이스라엘을 되찾으려는 시도, 종교적 율법주의로 회복해보려는 시도 등등이 어지럽게 나돌고 있었다.

그때,

하층민 가운데 하층민이었던 목동에게,

새로운 소망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그것은 아무런 파급효과도 없었다.

30여년 뒤,

그 어린아이는 십자가 처형틀에서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승리’의 이야기이다.

성탄이 슬프지 않다면,

아마 충분히 세상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성탄이 슬픔에만 머물러 있다면,

복음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한때 나는,

세상을 모른채 복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었고… 정말 내가 복음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걸까 싶을때가 많다.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Merry Christmas

어제 설교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예수의 삶이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그 상태가 어떠하던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quotation은 제대로 못받아 적었다. ^^)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설교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설교후 기도 시간에 흐르는 눈물을 열심히 닦아낼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조금 흐르는 눈물 말고도, 내 마음 속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참, 안녕하지 못한 세상이다.

너무 심하게 깨어져 있어… 우리 안에 어떤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

예수께서는 가장 힘없는 어린아이로 오셨다.

Merry Christmas!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

1.

나는 재료공학을 공부했다. 

그것도 박사까지 했다. 석사학위도 두개나 있고…
15살에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나는 늘 ‘이공계’ 학생, 직장인이었다.
이제 30년 넘게 이 바닥에 있게 된 것이다.
2.
대학교 3학년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는 멘붕을 겪었다.
또한 새로운 세계가 열려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가치관의 변화와 혼란을 겪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내 전공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되었다.
소위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관점으로 보아 내 전공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도 있었고,
어쩌면 더 큰 것은… 내가…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이 전공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것이 컸다.
복음으로 나 자신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3.
스무살에, 나는 나름대로 많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몸에 맞지 않는 이 옷을 이렇게 평생 입고 갈까.
고민하던 끝에, 그냥 이대로 가기로 결심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내 삶을 내가 다 optimize해서 가지 않겠노라고,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겠노라고 하는 내 일종의 신앙의 표현이었다. 
4.
지난 25년여동안, 참 많은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했다.
나랑 성경공부 하다가 목사가 된 친구들도 있다.
어떤 목사는, 20년전 나랑 일대일로 성경공부 한 것이 자신의 신앙의 base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중 어떤 친구는, 참 목사되지 않아야 하는데… 목사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자기가 기존에 하던 일이 잘 안되니까… 방황(?)하다가 에라 신학교 가자… 이렇게 결정하는 것도 봤다.
그때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그 친구의 그런 결정을 막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 나를 사로 잡는다.
그런데 그렇게 목사가 된 친구들이,
대부분 목사로서 잘 산다!
설교도 잘 하고, 성도들도 잘 섬기고… 물론, 예수도 잘 믿고. ^^
5.
내 나이 40이 되기 전까지,
나는 거의 매년 신학교를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신학교 원서를 써놓고 보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었다. ^^
6.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가고 있던 길을, 신앙 안에서 계속 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다른 경우에는, 자가가 가는 길을 과감하게 바꾸어서, 신앙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경우,
소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려는 자세보다,
내 의지와 생각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내가 결정을 내리는 일이 그 사람을 매우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런 결정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친밀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7.
목사가 된 후배들, 엔지니어로 계속 살기로 한 나…
나는 그 결정의 결과보다, 그 결정의 과정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정의 과정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8.
뭐 이 나이에 내가 새롭게 신학교에 간다거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위치가 permanent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인식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9.
세상은 안녕치 못하고, 사람들을 분완전한데,
하나님께서는 통치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 평화의 왕. Merry Christmas!

Transition

이전 회사에 다닐때,

소위 ‘Vendor’에 많이 방문 했었다. – 한국식으로 하면 하청업체라고나 할까.

Vendor에 가면,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회사의 CTO 정도랑 맞장을 떠서, 그 CTO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듣도록 할수도 있었다.

기차 역에서 내리면, 그 Vendor의 project manager가 기차 역 바로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렸다가 나를 픽업하기도 했다.

어떤 회의실에 들어가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모두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들어가서,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 노트에 내가 말한것을 적었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인양 뻐기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이제 30대의 엔지니어가, 50이 넘은 다른 회사의 중역에게 고함을 치고, 무례하게 대하는 것도 봤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망가지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 결심, 또 결심 했다.

=====

지난주는 독일에 있는 한 Vendor에 갔었고,

이번주는 미국 동부에 있는 한 Vendor에 왔다.

이 사람들은,

위에서 적은 것 같이 나를 그렇게 대접하지 않는다. ^^

기차역에서 ride를 주지도 않고, 모두들 넥타이 정장으로 나를 맞아주지도 않는다. 내가 이야기한 것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내 말을 노트에 받아적지도 않는다. 


음…

그런데…

막상 이런 대접을 받는게 살짝 이상하다.

아니, 왜 이 사람들은 나를 막 대하지?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건데.

지난 회사에서,

그렇게 망가지지 않겠다고 다짐, 다짐 또 다짐을 했음에도…

내 자세의 한 구석은 망가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성탄 묵상

최근 몇년간,

미국 성서 유니온에서 하는 The Essential Journey to Bethlehem 이라는 묵상 자료집으로 성탄 묵상을 해왔다.


참 신기한 것은,

매년 성탄 묵상을 할때, 약간씩 다른 관점에서 묵상을 하게되곤 했는데…

금년 내 성탄 묵상의 theme은, ‘평화의 왕’ 이다.

소위 ‘안녕하지 못한’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평화를 주러 이땅에 오신 주님.

그 주님이 이미 세상에 오신 것이라면,

그 주님을 경험하고,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일텐데…

부끄러운 과거

최근,

P형이 우리 동네를 방문해서, 하나의 씨앗교회 podcast에 대담을 올렸다.

내 아내는 그 녹음 file을 구해서 듣고 나더니 (아직 공식적으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 당시 청년부 회지를 열심히 수배했다.

드디어,

그 당시 회지를 열심히 만들던 형이, 원본을 사진을 찍어 facebook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 회지를 보는게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왜 그럴까?

아마, 그 당시 복음의 증거가 왕성하게 나타났던 모습이 더 이상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이기도 할게다.

혹은,

그 흐름에 차가운 물을 끼얹어 버린 사람들에대한 원망도 있는 것 같고…

그때 조금만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참 크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참 부끄럽다.

얕은 지식과 통찰로 대단한 것인양 떠벌렸던 모습, 

사랑 없는 지식을 추구했던 모습,

너그럽지 못하고, 참을성 없었던 모습.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내 모습은 그저 20년 전의 내 모습만은 아니다.

사실 불과 1-2년 전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더라도, 참 많이 부끄럽다.

최근에는, 내가 K 운동을 섬기면서 미숙했던 것, 잘 못했던 것들에 대한 자각이 한꺼번에 밀려와, 

마음이 많이 힘든적도 있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몇년 후에 뒤돌아 보면, 

과연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지금을 볼 수 있게 될까?

영.. 자신이 없다.

처음 독일 출장 (4)

1.

내가 갔던 지역은, 옛 동독 지역이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동독 출신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짧게나마…

동독인으로서 겪은 독일 통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했다.

“통일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key는, 결국 동독 사람들이, 자신이 서독의 일부가 되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소위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 저 모습을 보면서 과연 북의 주민들이 남한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겠나… 싶다.

일부 무식한 보수주의자들은,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만 하면 통일이 되는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글쎄…

2.

독일은, 종교개혁의 나라다.

마틴 루터가, 95개조 항을 써 붙인 날은, 여전히 국경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처럼, 어정쩡하게… happy holidays 라는 인사가 아니고,

사람들끼리도, 당당하게(?) Merry Christmas 라고 인사한다.

뭐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그런데,

막상 기독교의 ‘역사’를 많이 볼 수는 있었지만,

기독교의 ‘생동감’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예전 같으면,

아…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이 필요하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고 말았겠으나…

(물론 그런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독교 전통의 나라에서 바라보는 ‘기독교’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들의 삶과 문화에 묻어있는 기독교에는 어떤 깊이가 있지는 않을까.

자유주의 신학이 이 독일의 사회 속에서 찾으려 했던 것을,

정말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매도해버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의 고민과 관심과 구도는, 지금 독일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특히 공산체제를 지내온 동독인들에게, 기독교 전통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뭐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소위 Christmas market 이라는 것이, 내가 묵었던 호텔 바로 옆에서, 밤 늦게까지 열렸다.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고, 크리스마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돌아오기 전날 밤,

이런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그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기도해야할까 하는… 내 안에 어떤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처음 독일 출장 (3)

1.

새로운 회사에 들어와서, 

첫 한달이 되기 전에, 4만마일에 육박하는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첫 한달 중에서, 거의 3주를 집 밖에서 지내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아마 처음 당분간은, 

독일, 미국 동부, 홍콩, 어쩌면 일본 등등을 뻔질나게 다니게 될 것 같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일인데,

어느정도 개발된 기술을 실제로 받아서 생산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느라 이렇게 뻔질나게 다니고 있는 중이다.

금년에,

내가 항공사를 다 하나로 몰아서 탔더라면, 아마 United 1K 가 되었을텐데,

아쉽게(?) 금년에는 United platinum으로 마무리 하게 될 것 같다.

2.

해외여행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 좋겠다…

뭐 그런 반응을 보이지만,

막상 이렇게 맨날 다니는 입장에서는 뭐 딱 그렇게 좋지 않다.

대개는,

비싼 돈 주고, 출장을 갈 때에는, 꽤 중요한 ‘미션’을 가지고 가기 마련이다.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에, 그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정말 스트레스 박박 받아가며 일을 하기 마련이고,

낮에는 현지 일, 밤에는 home office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훨씬 더 많다.

시차 때문에,

낮에는 졸음과 싸우고, 밤에는 잠이 안오는 것과 싸워야 한다.

운동하기는 어렵고, 음식은 많이 먹게되어, 건강 관리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은 피곤하고 마음을 쫓기다보니, 건강한 영적 밸런스가 깨지기 마련이다.

3.

이번에 이렇게 멋진 도시로 출장을 와서 보니,

밤에 조금만 여유를 내면, 한 시간 정도 앞에 여기저기 구경도 하는게 가능할 수도 있을텐데, 

그게 뭐 별로 땡기진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내가 여행/관광을 하는 이유가, 좀 독특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만 생각을 해보면, 나는 내가 여행/관광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나와 함께 가는 사람이 그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러니 나 혼자 멋진 도시 보는게 뭐 그리 신이 나겠나. -.-;

괜히 가족만 더 보고 싶고, 우리 다람쥐가 이거 보면 참 좋아할텐데… 뭐 그런 생각이나 나고.

4.

이번 출장에서는,

원래 계획했던 것의 대충 50% 밖에는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 것 같다.

덕분에 돌아가서 일은 더 많아지고, 아마 1월에 여기 다시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땐 제대로 해야한다는 부담은 더 커졌다.

한주 지내면서 알게된 중요한 사실은, 내가 독일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으으… 느끼해…

5.

집에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