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3)

먹고사는게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는 해도,
믿음의 사람의 중요한 특징은 먹고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직장에 존재함으로써,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먹고 살게 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출세를 하는 것이라던가, 내가 더 돈을 많이 받는 것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내게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필요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승진도 하고 출세도하고 해야할 일이겠지만,
정말 출세를 위한 출세, 성공을 위한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아주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래서,
필요에 대한 것들을 많이 생각해보고,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을 많이 생각해보고, 그리고 나서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비전 같은 것을 논의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순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일단은 지금 이 직장에 최소한 조금 더 있을 예정이다. ^^

어제도 Carl이 내게 text도 해오고… 괜히 text로 뜬금없는 소리를 하면서…
내년 초에는 어쨌든 오랜만에 Carl이랑 점심이라도 한번 먹어야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당에 급하게 좀 정리해본다. ㅎㅎ)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1월 3일에 뵙겠습니다. 꾸벅~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2)

어쨌든 내가 요즘 하는 가장 중요한 생각은,
직장생활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수단이라던가,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던가.. 뭐 그런 것 보다도
우선 일차적으로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소위 ‘기독교 세계관’ 그런거 이야기하는 분들이 듣는다면 화들짝 뭐라고 할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그렇다.

아… 직장생활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한다거나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전도를 한다거나 하는 등등의 일들이 무의미하거나 그것에 반대하는건 전혀 아니다. 모두 가치있는 일이고 (비록 이런 생각의 일부는 내 개인적으로 약간 skeptical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including myself)

그렇지만,
일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먹을것과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의 직장윤리가 괜히 이상하게 꼬이게된 큰 이유가운데 하나는,
직장을 밥먹고 사는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을 덜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 직장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고,
그 본질을 본질로 집중할때에야 비로소 어그러진 개인의 야망/욕망을 유사-기독교적 가치로 포장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1)

두주에 예전에 내 boss였던 사람이 또 연락을 해왔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이 사람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자기 밑으로 뽑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약간 농담삼아서 “아… 거기 써있는 IMD나 CAD관련된 qualification만 내가 더 있다면 나머지는 나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
이렇게 이야기했더니만,
“너라면 그런거 못한다고 해도 내가 무조건 데리고 오지! 그런데 지금 네가 하고 있는거 재미있어 보이는데 여기에 오라고 할수가 있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쪽의 opening은 지금의 내 자리보다도 더 높은 position이고,
여태껏 내가 함께 일하면서 가장 chemistry가 잘 맞았던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이고,
게다가 job description 자체도 꽤 재미있어 보이는데…

이제 이 직장 온 지 1년되었는데 그렇다고 후다닥 옮기는 건 너무 이르고,
그래도 지금 이 직장에서 어느정도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또 다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이렇게 Carl하고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후딱 넘어갈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과연 내가 직장을 찾고 옮기는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좀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민우와 여행하다!

지난 목요일에 민우 대학 합격 발표가 나고,
동시에 역시 같은 날 기말고사가 끝났다.

무지하게 스트레스 많이 받고 고생 많이한 민우가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 늘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민우가 Early decision에 합격하면 바로 민우가 원하는대로 일본이나 유럽 어디로 여행을 데리고 가겠다고 민우와 약속을 했었다.
민우 합격 발표를 보고나서 인터넷으로 가격도 알아보고, 내가 가진 마일리지도 톨톨털고…
해서 보니 유럽보다는 일본이 쌌다. ^^

그래서,
우선 민우가 가게될 학교를 찍고, 일본을 찍고 오겠다고 계획을 잡았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싼 비행기가 한국을 경유해서 오길래, layover를 더 길게 잡고 한국도 하루 찍고 오는 걸로.
(엄마는, 연말에 무지하게 바빠서… 그냥 집에 있다. -.-;)

민우와 장난도 치다가,
진지한 이야기도 하다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사진도 찍고…
하루에도 몇번씩 안아주면서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

출장다니면서 뭘 보거나 뭘 먹어도 하나도 재미도 없었는데,
이렇게 민우랑 가면 참 신이날 것 같은 생각이다.

민우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
내게 참 좋은 성탄선물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

다음주 초까지 blog update이 잘 안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Joy가 가득한 성탄 보내십시오!

민우 대학

민우가 처음 태어날때부터,
나는 민우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스스로 많이 다짐했었다.

민우의 능력을 넘어서는 대학을 가게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었고,
민우의 최대 능력으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약간 덜 competitive한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민우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빤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잘 못하거나 내 기준으로 보아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많이 답답해하고 가끔은 민우를 다그치기도 하였다.

A+ 학생이 되어서 A0 수준의 대학을 가는건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A0 학생이 되어서 A- 수준의 대학을 가는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뭐 그런 식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민우 성적표에 B가 찍혀 나오면 그게 그렇게 마음에 힘이 들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 내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구나. 나는 민우를 하나님께서 붙드실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민우의 학벌이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그런 반성을 참 많이 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가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아닌 내 능력, 내 resume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지 않으니, 내 딸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것이었다.

어제 민우가 가고싶어 하던 학교에서 admission을 받았다.
Early decision 이었으므로 다른 학교는 아예 이제 더 이상 apply도 하지 않고 이 학교에 무조건 가게 된다.

내가 내 딸아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래도 지금 민우가 가게되는 학교가 민우의 최대 능력치로 갈 수 있는 학교보다는 약간 덜 competitive한 학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실제 ACT 점수 같은 것으로 따져보아도 사실 그렇다…
그래도 아깝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나.도. 없다. ^^
그냥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그저 민우가 거기 가서 좋은 친구와 스승을 만나고, 좋은 교회와 믿음의 동료를 만나게되길 간절히 바란다.

늘 잠이 모자라서 힘들어했는데,
민우는 어제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admission을 받고 나더니…
20시간동안 잠만 자겠다고 어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

믿음을 제대로 보여주며 양육하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민우가 자라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전매특허이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민우는 믿음과 은혜를 아는 여인으로 자라나게되길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란다.

좋은 학벌이라는 족쇄

학벌이 되었건, 재력이 되었건, 권력이 되었건, 아니면 출중한 외모가 될수도 있겠고…
그저 무엇이라도 내세울 것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꽤 강력한 무기가 된다.

내가 어릴때에는 그런 좋은 profile을 가지고 있는 경우 특별히 더 조심해서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나 자신을 쳐서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는 일을 더 치열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학벌, 재력, 권력, 외모… 이런 advantage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신앙에 있어서 족쇄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조금 더 겸손하기 위해 노력하고, 치열하게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하고, 많이 기도하고… 무슨 짓을 다 하더라도,
이런 advantage들은 신앙에 있어서 극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disadvantage인 것 같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정말 과장이 아닌 것 같다.

나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입 수험생인 민우를 보면서는 정말 늘 여러가지 생각이 무쟈하게 복잡하게 나를 붙잡는다.

또 한명의 귀여운 조카가 태어나다!

어제, 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동생네의 둘째가 태어났다고!

카톡으로 사진도 몇장 보내주고, 짧은 비디오도 두어개 보내주어서 귀여운 얼굴을 잘 보았다.
사진으로는 그 형과 아주 많이 닮아있었다.

내가 형(민호)를 생각하면서 참 많이 감사한건, 무엇보다도 그 아이가 참 성품이 예쁘다는 것이다. 그 부모가 그렇게 아마 교육을 시킨 것이겠지만, 얘는 작은 아이가 배려심도 많고, 참 착하다.
사람에 대해 정(情)도 많고.

동생(민재) 사진을 보면서 혼자서 고놈참… 예쁘게 생겼다… 를 몇번이나 되뇌었다.
그래, 너도 그렇게 착하고 건강한 아이로 크거라.

평생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세상을 깊이 사랑하는 건강한 아이로 계속 잘 커주길 깊이 기도하였다.

어제는 몇가지 일로 기분이 좀 꿀꿀한 것들이 있었으나,
전화 화면에 떠 있는 그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웬지 모를 포근함이 마음에 가득해졌었다.

참 감사한 날이었다.

하나의 씨앗교회 12월 추천 도서

  • 하나님의 모략 (달라스 윌라드)
  • 너는 특별하단다 (맥스 루케이도)
  • 재즈처럼 하나님은 (도널드 밀러)
  •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본 다니엘서 (김회권)
  • 나의 성소 싱크대 앞 (정신실)

12월 추천도서가 조금 늦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거 이렇게 열심히 추천해서 나누면서,
괜히 읽지도 않는데 부담만 주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게 사실이다. ^^

그래도 뭐 맡겨진 일이니 그냥 열심히…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이사야 40:1-6)

이사야는 기원전 700년 남짓의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이 예언을 메시아의 도래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렇다면 이 예언 이후 자그마치 700년이나 지나서야 그 예언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것도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already but not yet의 애매한(?) 형태로.

내가 살아가는 삶, 내가 경험하는 시간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 그분의 백성이 가져야 하는 hallmark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급해하고 초조해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예수께서 여전히 온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버티고 지켜내는 것이 이 땅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세상이 가지지 못한 궁극적 낙관론을 하나님의 백성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그 근본은.
‘믿음’ 이다.

과연, 이번에는 정말 나라가 바뀌고 역사가 진보할 수 있을까?

과연 지금 한국의 부패한 보수 정치권력의 인적 청산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과연 한국의 망가진 언론의 개혁이 가능할까?
과연 경제적 부정의의 온상인 재별개혁이 가능할까?
과연 한국 국민의 수준이, 다시는 박근혜나 이명박 같은 사람을 뽑지 않을 수 있는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을까?

이것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면 이루어지기 불가능할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준혁명적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정말 바뀌는 것이 가능할까?

고려는 불교 때문에 망했고,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했고,
만일 한국이 망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때문이다.

예전에 어디에선가 들은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여전히 어느정도 유용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긍정적인 변화의 걸림돌이되는 것만이라도 좀 피할 수는 있을까?

여전히 비관적인 나로선,
그냥 계속 마음이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