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두주전 교회에서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형제는 지난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될때 한국에 있었다.)

내가 물어보았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한국에서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것과 어떤 것이 더 놀랍고 충격적이냐.
그랬더니 그 형제는 한국의 상황이 더 충격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 박근혜가 당선되는 충격도 봤는데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 정도는 훨씬 충격이 덜하죠.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당연히 문재인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음…
참 재미있는 대답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보기엔,
지난번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되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멀리서 듣는 소식들, news feed를 통해서 들어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한국 국민들이 또 뻘짓을 하겠구나… 싶었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있었던 그 형제는 박근혜가 대통령된것이 그렇게 충격이었단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문재인을 지지하니까, 이런걸보면 당연히 문재인이 되겠네… 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 트럼프가 된 것이 왜 그렇게 충격이었을까? 힐러리 지지자들 (엄밀하게는 anti-Trump 진영의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자신과 자신 주변 사람들이 다 트럼프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연히 힐러리가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만 더 소통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줄어들게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각종 social media를 든다.

가령 나만해도,
트럼프라던가, 테드 크루즈, 아니면 한국의 김무성이나 김문수 이런 사람을 facebook 같은데서 당연히 follow 하지 않는다.

또, 뉴스앤조이 같은 것은 follow하지만 김홍도 목사, 최성규 목사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follow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당연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들만을 선택해서 듣게 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더 단절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통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렇다고 김무성이나 트럼프를 follow하는건 진짜 싫은데… ㅋㅋ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는 cost

linkedin이나 이메일등을 통해서 Verily / Google에 자리 있느냐, 나 이런 사람인데 resume좀 봐달라… 뭐 이런식의 job referral request를 일주일에 5~10개 정도씩 받는다.

경우는 다양하다.
다짜고짜 윽박지르는 사람으로부터 부드럽게 대화를 하고자하는 사람까지.
이제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까지.
내가 이미 잘 아는 사람도 있고, linkedin에서 3rd connection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그야말로 머나먼 ‘남’도 있다.
설명을 해주면 그걸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완전 다짜고짜 막무가내인 사람도 있다.

처음엔 그래도 나름대로 대답도 해주고 조언도 해 주었는데, 그런 경우가 바쁜데 많이 밀리면 나도 짜증을 내게되기도 한다.
아무리봐도 도저히 안될 것 같은데 몇번씩이나 이메일을 또 해오고, linkedin 메시지를 몇번씩 보내는 사람들은 정말 피하게 된다.

물론,
profile을 보고 좋아보여서 hiring manager에게 toss를 해 주거나 referral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또, 내가 이미 잘 아는 사람인데 도움을 주고 싶은 경우라면 내가 오히려 나서서 어떤 job이 없는지를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지난 1주 정도는 유난히 그런 이메일과 message를 많이 받았다.
이게… 같은 내용의 reply를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뻔한 답변을 여러번 하다보면 지치기도 한다.

어제는 유난히 귀찮게 하던 어떤 사람이 막무가내로 계속 이메일을 보내서 완전 짜증이 나 있었는데…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기꺼이 치루어야할 cost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job referral도 그렇지만 소위 vendor들을 상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어떤 형태로든 contact을 하고 그쪽의 기술을 알아보고 약간이라도 discussion을 하는 회사가 대충 어림잡아서 50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 회사들이 밤이고 낮이고 이메일을 해오면 정신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꼭 전화를 하고 싶어한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서 voice message를 남기고 call back 해달라고 하는데…
50개 되는 회사의 전화를 다 그런식으로 받아주면 나는 전혀 일을 할수가 없다. -.-;

그래서 사람들에게 전화 못받아서 미안하다. 나는 전화를 늘 받기가 어렵다. 이메일이 더 빠르니 이메일로 연락해라… 이런 식으로 가능한 공손하게 설명을 해주고…
최근에는 웬만하면 사람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다.
얼마전 새로 찍은 명함에는 아예 전화번호를 없앴다.

그래도 이메일도 넣지 않을순 없으니 이메일을 넣어두면…
당연히 이메일로 꽤 많은 sales pitch 이메일들이 날라온다. -.-;

그렇지만…
이것 역시..
내가 지금 이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치루어야하는 일종의 cost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특권을 누리려하고 cost는 지불하지 않으려하는 생각… 이게 사람을 망가뜨리게 되는데 말이다.

Optimism을 빼앗긴 기성세대?

87년 항쟁때,
나는 정말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이 약간 바뀌긴 했지만, 친일-독재-수구의 강력한 카르텔은 반격했고 대통령 선거에서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 물론 5공 청산, 역사 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남북 화해 등등의 일들이 일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일종의 무력감이 나를 지배했고,
정의에 관심이 없는 한국 사회, 무엇보다도 한국 대중에 많이 실망했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청문회는 예전의 5공 청문회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거의 30년전 그것을 보면서 흥분하고 기대했던 나는, 지금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에 그렇게 흥분하고 기대하지 않는다.

내게는 여전히 하박국의 외침이 남아있고,
낙관론은 개나 줘버려식의 냉소주의가 남아있다.

나는 그저… optimism을 빼앗긴 기성세대에 불과한걸까.

NBC News에 나온 한국의 시위 모습

미국의 NBC News에서 한국의 시위 모습을 이렇게 올려놓은 걸 보았다.
이렇게 보도한것이야 그렇다고 치고…
나는 사실 이 보도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궁금했다.

몇개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았다.

This is what we’re going to have to do in this country to get rid of trump if the electoral college doesn’t do it first or if he is not impeached for his abuse of power scandals and amid all other personal and business scandals he’s got going.

Now that is a real protest! America will never be like that because people are too content in front of their computer or phone screens.

This is what happens when the masses are educated and stays informed. The result is a true democracy created for the people and maintained by the people. Not the corporations who corrupt our politicians. America could learn a LOT from the South Korean people.

When people protest in America, police show up in riot gear and the media brands them as thugs. See: Occupy Wall Street.

아주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다들 몇년후에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못할 것이라는 것

이 두가지의 의견이 아주 많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까…

싼타 할아버지

대단히 불행하게도,
나는 싼타를 믿었던 적이 있었던 기억이 없다. -.-;
어릴때부터 순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반면에 민우는 아주 클때까지 싼타를 믿었다. ^^
santa4edith 라는 id의 이메일 주소를 하나 만들어서 민우에게 이메일을 했었다.
‘나는 싼타인데 민우는 뭘 갖고 싶냐’고 이메일을 하면
민우는 ‘이런 이런 선물을 갖고 싶다’고 대답을 해왔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사서 성탄 전날 머리맡에 가져다 주면 민우가 좋아했었다. ^^

그런데 그게 들키게 된것이…
민우가 santa4edith 이메일주소의 패스워드를 해킹해서 알아내면서였다.
내가 그 당시 많이쓰던 어떤 패스워드가 있었는데 민우가 그걸 알아내서 거기에 넣어보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민우가 이메일도 쓰고, 패스워드도 해킹해서 알아낼만큼 클때까지 민우는 싼타를 믿었다는 것이다. ^^
그게 아마 3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우가 이제 성인이 되었음에도,
나는 아직도 민우에게 싼타 할아버지 선물을 주고 싶다.

santa4edith 이메일에 다시 login을 해서 민우에게 이메일을 쓰고 싶다.

한국 국민은 위대하지 않다

촛불 집회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한국 국민이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말 그럴까.

우선,
나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촛불집회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 국민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 국민은 박근혜-이명박을 당선시켰고, 새누리당을 1당으로 만들었었고, ‘색깔론’에 대책없이 휘둘렸고, 지역감정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역사를 진보시키는데 꼭 필요한 것은 뛰어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가 적어도 내게는 아직 보이질 않는다.
그것은 지도자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좋은 지도자를 제대로 지지하고 발굴하고 세워낼 토양이 한국 국민 사이에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이 위대하다, 촛불 민심이 새로운 세상을 요구한다, 이제 세상이 바뀐다 는 식의 생각은 자칫 환상일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이 한국 국민에게 좋은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한국 정치에도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긴 하지만,
한국 국민이 위대하고, 촛불 민심이 모든 것이라는 환상은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Ghost In The Shell

Thanksgiving 휴가 전에 민우가 매우 ‘열받아서’ 이야기한 내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Ghost in the shell 이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holywood에서 영화로 만들고 있는데 그 주인공을 Starlet Johansson이 맡는다는 것이었다.
Ghost in the shell의 주인공은 일본인인데 그걸 금발의 백인이 하면 되느냐고, holywood에서 Asian의 representation이 너무 없다면서 막 열받아서 이야기했다.
아마 자기의 다른 Asian 친구들이 다들 그렇게 많이 열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Ghost in the shell 이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본적이 없었지만, 민우와 이야기한 Scarlet Johansson casting과 관련된 논의를 인터넷에서 잠깐 본적이 있어서 그 애니메이션이 과연 뭐길래… 하고 많이 궁금해졌다.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이게 아주 대단한 작품인 것 같았다. 1995년에 나왔는데도 대단히 획기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철학적인 고민을 할만한 주제들도 담았고, 과학기술의 이슈, 진화와 생명 등등 다양한 내용을 cover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거기에서 나오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Matrix같은 영화에서 차용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음…
완전 관심… 관심… 과연 무슨 내용이 어떻게 담겼기에…

그래서,
Thanksgiving break중간에 결국 그걸 한편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고야 말았다.

완전 대단하다!
내년에 영화가 나오면 영화도 봐야겠다고 마음을 확 먹어버렸다. ^^

나는 20년도 전에 나온 이런 명작을 여태껏 안보고 뭐했단 말인가….

얼마나 프로인지 볼까

직장에서 어떤 중요하게 생각하는 project를 위해서 중요한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할때,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대화 상대방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에 따라서 다양한 대응방법을 미리 마련한다.

또,
내가 중요한 presentation을 해서 사람들을 설득시켜야할때,
예상되는 중요한 반응이나 질문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효과적으로 미리 대응하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쭈루룩~ 뱉어버리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이건 직장생활 1년차들이라면 허용되는 일이지만…
약간이라도 ‘프로’의 세계에서 뛰어본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제 박근혜의 담화를 누가 써 줬는지는 모르지만 꽤 영리한 한수였다.
어쨌든 아주 코너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한숨 돌리게 만드는 수였다.

이런 악하고 꾀 많은 집단과 정치적으로 상대하는 ‘프로’라면,
당연히 이런 반응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있었어야 했고,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contingency plan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정도의 정치력도 없다면, 사실 수권능력 자체가 의심된다고 할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그런 정도의 정치력이 없다면 조중동이나 친일독재당의 이런 식의 변칙공격에 계속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정권을 보면 결국 그런 정치력의 부재가 치명적이 아니었던가.

야당이 정말 프로인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국민은 정말 프로인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히틀러를 겪은 독일

예전에 독일에 출장을 갔을때,
오전에 실험을 하고 거기 엔지니어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뜬금없이 이런걸 물어봤었다.
“독일 문화에서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터부(taboo)는 뭐가 있습니까?”

뭐 대단히 깊이있는 질문은 아니었고, 그냥 점심 먹으면서 하는 가벼운 대화 수준이었다.

그랬는데…
그중 한 사람이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면서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를 찬양하거나 히틀러를 가지고 독일을 희화화 하는 것입니다.”

음…
갑자기 가벼운 대화에서 확~ 대화가 무거워졌다.

그후에 알게된 것은,
대부분의 정상적인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의 존재를 자신의 치욕/수치로 여긴다.
그래서 그걸 들추어내면 자신의 수치를 들추어내는 것이므로 그게 웃을일이 아닌 것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어떤 트럼프 지지자들이 Heil Trump 라고 외치며 나찌식의 경례를 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완전 미친새끼들이다.
수치가 무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몇년전 한국에서는,
18년동안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를 그리워하며
그 딸을 대통령으로 당선 시켰다.
완전 미친짓이다.
수치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결국 역사가 바로 서려면,
공주마마 한 사람 쫓아내고 감옥 보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우리 나라의 수치’로 남을때에야 비로소 해결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수치로 인정할때에야 비로소 한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감사절

1.
한국말로 Thanksgiving day를 ‘추수 감사절’ 이라고 번역을 하지만,
사실 그 단어를 직역하면 그냥 ‘감사절’이라고 해야 맞을 듯 하다.

감사절이라…

2.
사실 감사절을 맞는데 가장 난감한 사람은 별로 감사한 일이 없거나,
현재 많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있거나,
깊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3.
내가 국민학교 1~2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뜬금없이 ‘가훈’이 무엇인지를 조사했었다.
나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때 범사가 뭔지도 몰랐고, 뭐 그냥 좋은 뜻이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어머니께서 급하게(?) 지으신것이 분명했다. ^^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깊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아니셨고,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와는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가훈이 ‘범사에 감사하라’일것 같지는 않다. ㅎㅎ

4.
그런데 어쨌든 그게 졸지에 우리집의 가훈이 되었다.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나는 그 가훈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진취적이고 뭔가 행동강령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독교적 클리쉐를 사용한 것 같아 뭐 별로 뽀대가 안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내것으로 받아들인 후에도 그랬다.

5.
점점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신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는 감사라는게 과연 무엇일까.
감사는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지금도 감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진정한 감사는 상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박국에 나오는 것 같이,
무화과 나무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고 무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여호와를 인해’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의 핵심이자 근원이자 포인트라는 것을 더 많이 깨닫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그 여호와께서 내 일을 잘 풀어주시기 때문에 감사한게 아니다.
그냥 여호와로 인해서 감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이 감사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되신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고,
그 하나님의 나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다.

6.
인터넷에서 최순실이 강남의 대형교회에 출석하면서 감사헌금을 하고 거기에 감사한 이유를 적은 내용이 주보에 실린 것을 보았다.
정말 쪽팔려서 죽을뻔 했다.

7.
그.런.데.
사실 대부분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접하는 감사가 사실 최순실의 감사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대부분 경험하고 아는 여호와가 최순실의 여호와와 다르지 않다.
소위 ‘기도제목’이라는 것을 나누면, 다들 최순실의 기도를 나누고,
서로 최순실의 기도를 해주고,
그 최순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감사한다.
정말 쪽팔려 죽을 일이다.

8.
감사절에…
세상이 뒤숭숭한 이 금년의 감사절에…
과연 여호와로 인해 감사한 것이 무엇인가를 좀 잠잠히 한두시간만이라도 마음에 담아보고자 한다.
혹시 허락된다면 조용하게 혼자서 낙엽을 밟으며 그 감사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다음 월요일까지 블로그를 쉽니다. 모두들 Happy Thanksg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