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라는 직분이 outdated? (11)

어제 아는분과 내게 이런 얘기를 해 주셨다.
“네가 하는 얘기 다 잘 알겠고, 동의도 하지만, 그렇게 목회자들을 ‘디스’해서 되겠느냐?

당연히 나는 목회자들을 디스하는게 아니다.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목회자들도 많이 계시고, 특히 나와 ‘친한’ 목회자들도 많이 계시다.
나는 그저 지금 현재상태로의 ‘목회자’라는 직분이 다소 건강하지 않게 지탱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목회자들은 다 문제냐?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을 싹 갈아버리자는 거냐?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나는 지금 목회자로 섬기고 계신 분들이 비 목회자 그리스도인들보다 압도적으로 월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헌신’이다.

나는 현대 교회에서, 특히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가되는 헌신을 하는 신학적 바탕이 반드시 모두 건강하다고 보지 않는다. 소위 ‘주의 종’이 되기 위해 헌신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헌신은 그 내용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 비교적 순수하게 헌신했다가 그 헌신의 내용이 변질되거나 이상하게 발전되는 일들을 많이 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 원서를 넣을때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비목회자로 살면서, 목회자들이 이렇게 하는 정도의 헌신을 하는 평신도들은 사실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이나 훈련등은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력해서 줄 수 있지만,
헌신은 manipulate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목회자들이 여전히 존중받고 교회 안에서 그분들의 리더십을 인정해줄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그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을 갈구면서 딴지놓는 소위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평생 당신이 그렇게 갈구는 그 목회자처럼 당신을 온전히 헌신해본적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아,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많이 고민이다. ^^ 그래도 다음주엔 무조건 마무리 짓는다! ㅎㅎ)

“목회자”라는 직분이 outdated? (10)

이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으면서 뭔가 글의 모멘텀이 흐려진 것 같은 느낌이 좀 있다.
여태까지는 현재 상태로의 목회자라는 직분이 현대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써 왔다.

이제 내가 1~9편에 쓴 논지에 대한 가능한 반론을 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대안과 제언으로 이 시리즈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가 쓴 글에대해서 아마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잘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있지 않느냐.

맞다. 가령 팀 켈러 같은 목회자는 실제 맨하탄에서 사는 사람들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이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도 아주 통찰력있는 대답과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잘 하고 있는 뛰어난 목회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지금상태가 건강하고 좋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팀 켈러의 예를 들자면, 내가 보기에 팀 켈러는 그냥 그 사람이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팀 켈러를 벤치마킹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나 같은 사람이 축구를 배울때 박지성을 벤치마킹해서 배우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의 상황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어떤 best case scenario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어떤 worst case scenario들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현대사회에서 적실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혹은 완전히 잘못 방향을 잡아 가고 있는, 아니면 그냥 세상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그런 목회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런 예를 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나의 작은 새해 결심

오랜만에 회사 출근하는날! ^^
쉬는 동안 올해의 새해결심(New Year’s Resolution)을 어떻게 정해볼까 살짝 고민해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다가…

하나님과 나 둘만의 비밀을 쌓아가기

로 정했다.

무슨 말이냐고?

나는 내가 어떤 생각을 정리하게 되거나 새로운 깨달음이 있을땐,
그 생각이나 깨달음이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에게 그걸 열심히 나누어주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은 많이 develop되고 나름대로 깊어지기도 하고, 또 예전의 생각들이 수정되기도 하는데…
막상 그 생각을 제대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내게 일종의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지난 몇년간 계속 해 왔다.
그 외로움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번 썼던 것 같고.

그러나 이제는,
그 외로움으로부터 내가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무리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내 생각을 나눌 환경이나 기회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게 꼭 나누어져야한다고 생각하시지 않는 것일테고,
나름대로 내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는데도 그것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 혹은 내가 그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수는 없고,
아마도 이 블로그나 다른 경로를 통해서 그 생각이 조금씩 삐져나오게되기도 하겠지만…
내 어떤 생각의 development나 깨달음을 그저 하나님과 나만의 비밀로 가지고 있는 것도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나만의 비밀을 더 깊이 갖기 위해서는 아마도,
하나님과 나만의 대화가 더 깊어져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