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룹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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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룹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sample을 가지고 서 있다.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flexible substrate에 만든 TFT array이다.
전체가 하나의 긴~ 플라스틱 필름 위에 전자회로가 만들어져 있는 형태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이 사람들로 부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사실 별로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 열정,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팀워크, 리더쉽, 논리적 사고, 유머, 다양한 문화 등등.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 늘 마음에 있다.

정보와 묵상

(1)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과,
(2)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지 못한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문제일까.

내 생각엔 전자, 즉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을 하는 경우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깊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내리는 편향된 결론에 엄청난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소위 ‘신앙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내 모습을 스스로 이에 비추어 보며… 부끄러워진다.

우리 그룹이 한 일이 미디어를 탔다

우리 그룹에서 한 일을 우리 lab manager가 유럽에 가서 발표를 했는데,
그게 semiconductor international에 떴다.
우리 manager가 이번엔 가서 keynote speach를 했다.

http://www.semiconductor.net/article/CA6548955.html?nid=3572

사실 이번에 이 발표에…
무언가 좀 더 좋은 결과를 발표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이제 5월 말에 또 우리쪽에서는 가장 큰 학회가 있는데…
거기에도 일단 우리 그룹에서 invited talk을 하나 하게 되어 있는데…
그때까지는 정말 무언가 하나 만들어 내야 할텐데…

이번 연말까지 우리가 invited talk을 하도록 요청받은 것만…
벌써 3-4개는 되는데…
어깨가 무겁다….

민우에게 나는 늘 한가한 사람

가끔은 민우가 내게 online chatting을 걸어올때가 있다.
그러면서 내게 하는 말은…
자기가 엄청 바쁜데 특별히 아빠를 생각해서 chatting을 잠깐 할 시간이 났다는 거다.
그리고… chatting 중간에 잠깐 다른 것이 할 일이 생각나면 이내 자신의 상태를 ‘busy’로 바꾸어 놓는다. 자기가 바쁘다는 거다…. 그리고 아빠는 한가하고. ^^
다른 일로 엄청 바쁠때에도 민우가 온라인 채팅을 걸어오면 나는 그것을 대부분 받아준다.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그 답변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민우에게 늘 한가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섬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한가한 사람이고 싶다.
그것은 내가 바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내게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사명이기 때문이다.

민우와 같이 어리고 철이 없을땐…
늘 자신이 제일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철이든 (hopefully) 내 입장에서는, 민우가 바쁘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귀엽다.
그리고 내가 바쁜 것을 숨기고 민우를 위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내가 더 철이들고 성숙해지면,
내가 바쁘다고 엄살을 피우는 일도 줄어들고..
바빠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될까.
내가 바빠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기 때문에 말이다.

바쁘다는 엄살의 글을 막 써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한마디 더…

이메일 트래픽

요즘 여러가지 급박한 일들이 많이 겹쳐서 좀 정신없이 지낸다.
회사애선 곧 있을 학회에서 발표할 자료와 flexible display demo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정신없이 실험을 하고 있고,
몇몇분들과 길게는 한시간 짧게는 30분 가량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의견을 듣고 상의하고 해야할 일들이 계속 있었고… 아직도, 일주일 내에 heavy한 전화통화나 논의들을 해야할 것들이 5건 정도 더 남아있다. 어제 하루동안에도 그렇게 전화통화를 한 시간이 총 2시간이 넘었다.
그리고, 어제는 드디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이메일의 트래픽이 100개에 달했다. 아마도 기록이 아닐까 싶다. ^^ (그냥 읽을 필요도 없는 이메일 말고… 내가 읽고 생각하고 respond 해야하는 이메일 +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이메일을 더한 것이다.) KOSTA 관련 이메일이 그중 70% 이고… 회사 이메일이 15%… 그리고 이 지역에서 섬기는 것 관련된 이메일, 가족, 아는 사람 이메일들이 나머지이다. 그중 어떤 이메일은 그 이메일 하나를 쓰기 위해서 30분 가까이 고민하고 다시 생각하고 해야하는 것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해야할 일들을 다 못하고… 이렇게 버벅대고 있지만.

때로는… 이런 짐을 좀 나누어 질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내가 물론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말 faithful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회사 일이든, KOSTA 일이든… 뭐든 간에)
혹, 함께 짐을 나누어지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내게 일이되어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지면 더더욱 그 짐을 나누는 것이 힘들게 된다. 해야할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하도록 돕고 잘 되었는지 같이 점검하고… (사실 리더로서 해야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리더쉽도 참 부족한 사람인 듯 하다)
그러다보면 지치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뛰는데… 저 사람은 내가 이런것을 알면서도 왜 도움의 손길 한번 내밀지 않는 걸까.

그런데,
내가 최근 배우고 있는 것은,
치열하게 사는 lifestyle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순발력, 체력, 열정, 기획력, 분석력… 등등이 모두 필요한 듯 하다)
따라서 그렇게 살지 않는/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들 나름대로의 role이 있는 것이고… 나와는 다른 영역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런 사람들로부터 많은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을 알고… 처음 10-15년 동안은…
예수님을 위해,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사는 법을 배워왔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 7-8년 동안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struggle 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진보가 때론 너무 더디게 느껴진다.

소명…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전임 사역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느낌이 강하다.

어제도 기도하면서 그러한 생각 때문에 너무 흥분이 되었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마 이번 여름즈음에 회사를 정리하고…. 전임사역자로 나서기 위해 신학교를 가는 쪽으로 생각을 해봐야 할 듯 하다
부지런히 신학교 원서를 보내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다만,
이런 생각은… 오늘이 4월 1일 임을 감안해서… 올린 생각이다.

고지론, 코스타의 주홍글씨인가 (권오진)

이제 다음달이면 2008년 코스타 여름수양회의 등록이 시작된다.  매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코스타를 홍보하다 보면, 고지론을 주장하는 코스타에는 참가하기 싫다는 반응을 접하곤 한다. 
년에는 코스타에 강사로 참여했던 어떤 분이 자신의 교회 홈페이지에 코스타 후기를 쓰면서 고지론의 근원지인 코스타에서 그에 반하는
메세지를 전한 것에 대한 감회를 마치 적지에 아군 깃발을 꽂고 온 것처럼 감격스럽게 적어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든다.

 

(1) “, 이 사람 참 공부 안하는구나.  코스타에서 고지론을 이야기했던 것 (그리고 그 폐해를 주장하기까지 했던 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그 이후의 흐름을 전혀 접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예 “코스타=고지론”의 개념도 어디선가 대충 흘려들은 정도가 아닐까”

(2) “이제 고지론은 커녕 그에 대한 비판도 더 이상 회자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질기게 따라다니는 꼬리표구나.  정말 고지론은 코스타의 주홍글씨인 걸까

고지론은 잘못된 성경 해석인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유학생들은 선진학문을 배워서 조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대와 의무를 지고 있었다.  고지론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당시 유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이론 (a theory)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수많은 비판이 제기된 것처럼, 고지론은 그것의 implementation 차원에서 우리들의 죄성과 결합하여 커다란 취약점과 폐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러한 비판이 홍수를 이룬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이제는 아무도 심지어는 고지론을 최초로 주장했던 그 목사님도 더 이상 고지론을 중심으로 신학을 전개해 나가지 않는다.

 

고지론은 성경 해석의 법칙(law)이 아니라 말 그대로 론(theory)이다.  이러한 적용범위와 한계,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한다면, 고지론은 그 현실적인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이론이다.  또한, 고지론이 주장되던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더이상 우리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그 위험성을 모른 채 무비판적으로 고지론을 수용하지 않게 되었으니만큼, 이제는 이 고지론에 대해 무작정 비판만 하는 일은 그 의의도, 효과도 불분명하다.

 

 

고지론, 코스타의 주홍글씨인가?

솔직히, 두 귀를 막고 시대의 흐름과 교계의 움직임에 관심 없이 그저 코스타를 고지론이라는 제목으로 덧입혀 비판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실체가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그저 비판 자체에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자신의 순수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사실 역사 속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탈냉전시대가 열리고 공산주의가 세계적이로 실패한 운동임이 증명되고 몰락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반공주의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으로 굳게 믿는 사람들처럼

 

나는 코스타가 이러한 대중들에게 설명/해명을 제공하는 일에 노력하되, 코스타=고지론이라는 낙인을 주홍글씨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지론은 이미 성경적/신학적/경험적으로 충분한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코스타는 이 고지론의 위험성과 폐해를 누구 못지 않게 많이 강조하며 지적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코스타는 눈을 들어 조금 더 미래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The Show Must Go On; 코스타, 그래도 계속 이슈를 던져라.

고지론은, 적어도 그 시대에는, 일정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시대를 앞서가는 화두를 던졌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코스타가 1990년대 초반에 고지론이 주장되는 통로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이 시대에 화두를 던지지 못해온 것이다.

 

고지론은 코스타의 중심세력인 청년/학생들로부터 발의된 움직임이 아니라, 코스타 여름수양회에 강사로 오셨던 어느 목사님에 의해서 주장된 이론이다.  그 당시에 코스타는 강사 중심, 집회 중심의 여름 수양회였으나, 2000년대 이후로 코스타는 강사에 의존하는 수양회가 아닌, 청년/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과 생각들이 운동(movement)으로 나타나는 색깔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코스타는 그 책임과 소명을 더 절감해야 한다.  인터넷 문화의 발달과 함께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 Anti-) OO주의식의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라, 진정 앞날을 내다보고 시대를 앞서가는 이슈를 던지고 선점하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코스타에게 요구되고 있다. 

 

만약 코스타가 현대 복음주의의 잘못된 흐름 한 가지를 지적하는 데에 집착한다면,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지론을 주장하며 positioning을 하고 있는 무리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또한 만약 시대를 읽기를 거부하며 예수 잘 믿어라라는 원론적인 목소리만 높인다면, 그 또한 복음주의 학생운동으로서의 역할의 큰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코스타는 2009년의 주제를 정하게 된다.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100년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주제가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안된다면, 1990년대의 고지론처럼, 비록 그 생명은 짧고 단점은 많더라도 적어도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화두라도 나오기를 기도한다.

 

코스타여, 고지론이라도 좋으니 이슈를 던져라!

당신께 가까이

당신께 가까이 – 하덕규

 
당신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안에 촛불 하나씩 켜져요
이제 더 이상 어둠을 노래 할수가 없어요
얼마나 쓴 뿌리들이 내안에 있는지
당신은 아셔도 그냥 조용히 웃으시며
내 안에 촛불 하나둘 켜지요

당신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처음 보는 것들을 보아요
모든 것들이 새로운 갓 태어난 어린나비처럼
새롭게 열리는 푸른하늘과
눈부시게 빛나는 저 태양 이제 더 이상
슬픔이 날 어찌하지 못해요

그동안 내속을 흘러 나의 노래가 되었던
하얀 눈물의 강과
내가 숲에서 잊고 살았던 푸른껍데기의
슬프고도 슬픈 무늬와
내가 그토록 숨기려 했던 내안에 이름모를
아픔의 모습들조차
당신 앞에선 아무것도 가릴수 없는
벌거숭이가 되네요

때때로 철없는 뒷모습 당신께 보이며
추억이 손짓하는 옛 숲을 향해 달려보고 싶지만
그러나 이제껏 당신처럼 날 사랑하신 이가
아무도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도..
날 위해 죽으신 당신을
나는 이제 이렇게 부르죠
나 . 의 . 주 . 님

오늘…
이 노래의 가사가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Multi-tasking

나는 늘 멀티 태스킹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어느 한 순간을 놓고 봤을때, 내가 어떤 한가지 일만을 하고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한편에서 실험을 돌리면서 생각을 하고 있다.
실험장비가 돌아가는 약 9분 정도 동안 이 글을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마친 이후, 그 다음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항상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대략 10분-15분 가량의 단위로 시간을 쪼갠다)
어떤 일을 하면서 그 다음 일에 대한 계획도 끊임없이 머리속에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point를 매우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나는 몹시 힘들어 하는 것 같다.
2분만에 이야기할 것을 30분씩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보면…  혹은 이미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나는 이미 그 이야기의 줄거리를 다 머리속에 담은 이후에 한참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그 다른 생각을 하는 자유조차 대화중에 주어지지 않는다거나 (그 사람이 계속 내 반응을 요구한다든가…) 하면 참 많이 힘들어 하는 듯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직장 동료 한 사람이 와서 3분이나 이야기를 하고 갔다.
내가 다 아는 얘기를 새로운 이야기처럼 하고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 9분만에 마치고 실헝장비로 가야 그 다음 실험을 하고…
그래야 오늘 12시에 예정된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형제와의 점심 식사 이전에 계획된 실험들을 다 마칠 수 있는데…)

어떤 사람과 목적없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잘 하지 못한다.
시간을 10분 간격으로 쪼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루종일 하면서 지내도,
자기전 내 outlook에는 그날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8개씩 뜨곤 한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때로… 그저 시간을 낭비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저 무엇인가를 아뢰는 것을 하지 않는 상태로… 30분이고 1시간이고 그냥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말씀도 읽다가… 눈을 감고 하나님 생각을 하고… 심지어는 그러다 깜빡 졸기도 하고…

그런 시간이 내 삶에 고갈되면,
나는 이내 쫓기는 마음이 되고 불안해하는 듯 하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렇듯,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과 공감하고… 함께 시간을 죽이는 일도 중요한데…

내가 내 생명을 다해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내가 섬겨야 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낭비할 계획을 미리 좀 짜놓는 것이 필요한 듯 하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시간낭비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