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 The Way to Live – Thy Kingdom Come (KOSTA 2008 주제문)

이 시대에 바른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The Way to Live – Thy Kingdom Come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개역개정판)

세대는 세계화, 포스트 모더니즘, 뉴에이지 등의 영향 아래서 절대적인 기준점을 잃어버린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극단적으로 상대화시킨 세상은 개인의 욕망을 무한대로 추구할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지만, 우리는 오히려 불안과 욕망의 노예로 우리 자신들을 전락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물신주의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집결시켜 마치 바벨탑을 쌓았던 시대처럼 모든 사람들을 영향 아래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이제 돈과 물질은 삶의 안정을 약속하는 신앙이 되어버렸다. 돈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여져서 자체가 선한 것이 되어버렸으며,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은 쉽게 정당화되었다. 조국의 현실도, 디아스포라의 삶의 현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육은 안정된 직장을 갖으려는 방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피교육자의 인격도, 인간, 사회, 자연, 역사에 대한 책임도, 서로 함께 살아가는 삶도, 그에 따른 삶의 의미도, 또한 영원한 것에 대한 가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돈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로운 삶을 쟁취하고 지키는 것이 (The Way to Live)’ 되어버렸다. 성공과 생존을 위한 모든 노력이 정당화되고 칭송되었고, 현실을 극복해내는 이상과 물질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숭고한 가치,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조롱거리가 되어 버리고 있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고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참된 길을 가지 못하는 세대가 지금 세대가 아닐까?

이러한 세속화와는 반대로, 이원론(dualism)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기독교를 생명력을 잃어버린 종교로 변질시켜 버리는 일들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종교활동을 제외한 세상 속에서의 모든 활동을 속된 으로 규정하며 세상과 분리된 종교활동을 고상한 것으로 여기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사명을 망각하며 사는 모습은 우리 안에 발견되는 다른 극단의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을 따라 이러한 이원론적인 삶을 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현실의 도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러한 삶의 자세를 이용하기도 한다. 경건함과 거룩함을 내세우며 종교생활에 매달리지만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에 실패하고 그저 격리와 회피의 삶을 사는 비복음적 삶의 자세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로부터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대는 목말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대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면 갈수록 진정한 갈망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세계적인 추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영혼 내부의 외침이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현실은 목말라 하는 세대가 자신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그들이 살아가야 길을 제시하기를 기대했던 기독교로부터 받은 배신감 표현이다. 목마른 세대의 갈증을 채워주기에 대부분 기독교인은 너무나 무기력해 보인다. 이원론적 사고에 빠져 현실을 등지고 예배당 안에서 자신들만의 천국을 구축하느라 바쁜 나머지 예배당 밖에서의 능력을 상실했거나, 세상의 모습을 본받아 신앙을 정서적인 영역에만 제한시킨 성공과 정복의 이념으로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세속화와 이원론, 가지 극단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으로서의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같다. 세상보다 효과적으로 세상의 길을 추구하는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기독교에 돌을 던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땅에서 치열하게 살면서도 땅의 가치를 초월해서 영원을 갈망하며 살고, 한편 초월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면서도 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있을까? 비복음적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찾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해답을 누구에게서 찾을 있을까?

이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고 살아내고자 땅에 오셨다.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서 드러나는 삶이었다. 안에서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통합이 있었고 그의 삶에는 세상과 앞으로 세상의 통합이 있었다. 오직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 삶이었다. ‘하나님 나라 (Kingdom of God)’ 생명 없이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새로움 패러다임이었다. 세속화나 세상과의 분리가 아닌, 초월적 가치와 치열한 삶을 통합시키는 가치였다. 예수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그런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다.

우리는 KOSTA 2008 통하여 바르게 삶을 살아갈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했음을 선언하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이 아니고는 추구할 기초가 우리에게 없음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성령의 일하심으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성령의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함을 보게 되기를 원한다. 또한, 소망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땅에 살면서도 영원을 추구하고, 초월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땅의 삶에 충실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가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그리고 세상이 목말라 하는 임을 깨닫기 원한다. 세상과 대적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는 눈이 열리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자 세상을 거슬러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들로 말미암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하나님 나라 확장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그 길’을 보게 하시고, ‘그 길’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허락하시며, ‘그 길’을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당신은 얼마나 nerd 입니까?

인터넷에서 Nerd 정도를 알아보는 테스트가 있어서 해 보았다.
http://www.nerdtests.com/ft_nq.php

Overall, you scored as follows:

4% scored higher (more nerdy),
1% scored the same, and
95% scored lower (less nerdy).

What does this mean? Your nerdiness is:

All hail the monstrous nerd. You are by far the SUPREME NERD GOD!!!

나는… percentile ranking으로… 95% 가 나왔다.
전체 사람들중 나보다 더 nerd인 삶은 4%라는 얘기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보다 더 nerd인 사람이 4%는 된다는 얘기니…

마가복음 1:14-45, The Kingdom is Nowwhere? Now Here!

KCF
@ Stanford
마가복음 성경공부, 2008

 

The Kingdom is Nowhere? Now Here!

(마가복음
1:14-45)

 

 

유치원생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원리에 대하여 설명한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시작을 어떻게 하겠는가? 15분을 함께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기도 힘든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전혀 경험해보지도 못한, 경험해 볼수도 없는 물리학적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사탕을 주며 달래보기도 하고, 다른 유비(analogy) 들어 시도도 하겠지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번도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신다. “봉숭아 학당 선생님이 예수님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심
/
제자들을
부르심
(14-20
)

 

1.
요한이 잡히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분이 전하신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15) 메시지를 당신의 말로 다시한번 정리해 보라.

 

 

2.
요한복음 1장을 비롯한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서 나온 내용들을 참고해 보면,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갖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을 것으로 예측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은 매우 즉각적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여지고 있는 제자도(discipleship) 내용들을 다음에 비추어서 정리해보라.

  • 헌신의 대상과 내용



  • 결심의 주체



  • 치루어야하는 댓가



  • 따르는 보상



 

3.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당신이 본문에서 특별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내어
쫓으심
(21-28
)

 

4.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관찰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22, 27)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가?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면,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경우와는 어떻게 비교할 있는가?

 

5.
더러운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24)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면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경우와는 어떻게 비교할 있는가?

 

 

 

병자들을
고치심
(29-34
),
나병환자를
고치심
(40-45
)

 

귀신을 내어쫓는 일이나 병자를 고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이곳에 임했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이미 구약에서 그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것을 성취하고, 당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사람들이 여기고 있었던 것들을 예수님의 권세(authority) 정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었다.

 

6.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32, 33, 37,
45
)

 

 

7.
나병(leprosy) 특별히 당시에 불치병이었고, 하나님의 저주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로 인식되어온 질병이었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었고, 종교적으로도 멸시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들을 관찰해보라. 예수님께서 보이신 태도와 행동들에서 예수님의 어떤 의도들을 찾아볼 있는가?

 

 

8.
비슷한 관점에서, 마가는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를 고치는 기사를 넣으면서, 당시 천대받던 계층이었던 여성에 대한 존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새로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기존의 파라다임을 뛰어넘는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속에서, 기존의 세상 속에서의 가치관에 의하여 사람들을 구분짓고 판단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어떤 다른 기준들이 당신의 속에 세워져야 하는가? (교우관계, 가족관계, 직장/학교에서, 정치적 입장, 배우자 선택 등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라)

 

 

9.
예수님께서는 반복해서 자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신다고 생각하는가? (25, 34, 44)

 

 

10.
예수님께서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신 내용을 나병환자는 나가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치유된 나병환자의 이러한 불순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45)

 

 

 

기도하시는
예수님
(35-39
)

 

11.
오늘의 본문에서 즉시(immediately)라는 단어는 8번이나 등장한다. 그만큼 빠른 템포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늦게까지 사람들이 앞에 모일 정도로 예수님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35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동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2.
35
절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내리신 결정을 살펴보라. (38) 상황에 근거한 외면적 필요(felt need)들을 채우는 것들과 원칙에 근거한 실제적 필요(real need) 채우는 것에 대한 균형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찾으시는가?  당신의 QT 생활에 관하여 어떤 통찰을 얻을 있는가?

 

 

지금 당신의 속에서, 상황에 얽매여 벌어지는 상황만을 처리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할 있는가?

 

 

 

정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내용을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정도를 가만히 생각해보라. 어쩌면 당신은 당신 삶의 문제 하나를 해결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나왔을 수도 있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서, 혹은 심심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펼쳐보이신 하나님나라 복음의 내용과 범위는 모든 내용들을 초라한 것으로 만들 정도로 광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2000 전에, 근동 지방에서 오늘 본문의 사역들을 행하고 계셨을때,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군중들의 모습속에서 예수님은 바로 당신의 모습을 보고 계셨다.

 

13.
다음의 항목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을 정리해보라.

  •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의 내용



  • 사람들의 반응, 예수님 사역의 열매



  • 예수님의 자세, 예수님의 마음



 

14.
당신은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마가복음 1:1-13, 프롤로그: 복음의 시작

KCF
@ Stanford
마가복음 성경공부, 2008

 

프롤로그:
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1-13)

 

1501, 당시 성종이 다스리고 있던 조선은 명나라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만다. 백의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 민족은 순식간에 나라를 잃은 백성이 되었고, 거대한 제국 명나라의 일부로 편입되고 만다. 이후 중국 대륙에는 왕조가 바뀌어 청나라, 중화민국, 그후 공산 중국이 들어섰으나 조선 민족은 독립할 기회를 찾지 못하였고 때로는 속국으로, 때로는 식민자치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선 민족가운데에서 일부 선각자들은, “하늘 계시를 받아 백성들을 위로하거나 길을 인도하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1704 최말락 이라는 마지막 선각자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조선 민족에게 근근히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언젠가 다시 찾아와 조선왕국을 재건하고 조선의 세종대왕때의 명성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다.

이제 2008, 최말락 선각자가 마지막으로 조선 민족에게 나타난지 300여년이 지났고, 조선 민족의 일부는 중국화 되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민족의 소망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보인다. 기다리던 과연 어떻게 도래할 있을 것인가.

 

1.
위와 같은 상황에 당신이 처해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지식을 모두 접어두고 생각해 보면, 민족의 소망이 복음 소식은 어떤 형태로 시작되어 전개될 으로 생각되는가?

 

 

 

2.
마가는 복음의 시작이라는 마가복음의 프롤로그 (prologue) 시작하면서 구약의 선지자의 글을 인용한다. (2-3) 구약 선지자의 예언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언은 어떻게 본문에서 이루어 지는가? (4)

 

 

 

세례요한의 등장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복음의 시작이 그저 우연인 것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세례요한의 탄생이 그저 갑작스럽고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라. ‘기독교인들은 우연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기암시를 한다 이야기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은 보통 어떻게 반응하는가?

 

 

 

3.
4-8
절에 나타난 세례요한에 대하여 본문이 기술하고 있는 것을 자세히 정리해 보라. (세례요한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사역의 장소, 사역의 대상, 사역의 내용, 그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에 대한 설명, 사역의 자세 )

 

 

 

특별히 요한의 이러한 사역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히브리서 4:15-16, 5:8)

 

 

 

5.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나타났던 현상들을 정리해보라. (10-11) 이것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들을 드러내고 있는가?

 

 

 

6.
12
절에는, (즉시, immediately) 이라는 부사를 사용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시점이 10-11절에 나오는 세례, 성령이 임하심, 하나님의 인정의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시험을 받으시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바로 직전에 있었던 사건들은 어떤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당신에게도, 믿음의 시험이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힘을 더하여 주신 일이 있는가? 나누어보라.

 

 

 

7.
300
년동안 계속된 영적인 침묵/암흑기가 끝나고 드디어 새로운 왕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 중요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영원히 인류의 운명을 바꾸게될 왕이 도래라는 웅장한 스케일의 사건을, 마가는 어떠한 어조(tone)으로 기술하고 있는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라.

 

¨     
주요 등장인물 (예수님과 세례요한) 사회적/경제적 계층

 

 

¨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두가지 중요한 일들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자세

 

 

¨     
당시 사건들이 미쳤을 사회적, 정치적 영향



 

¨     
이전 하나님의 약속들과의 연관성, 사건의 역사성

 

 

 

8.
한반도에서 동명성왕에 이어 유리왕이 고구려의 왕이 되었을 ,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하고 있을 , 그리고 근동의 작은 로마 자치식민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을 , 하나님께서는 바로 당신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 당신에게 있어서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의 인생의 목표, 학업, 진로, 인간관계, 가족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9.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복음의 시작의 특징은 무엇인가? 질문에서 나누어진 내용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KOSTA/USA-2007 연차 수양회를 기대하며

KOSTA를 섬기다 보면, “KOSTA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KOSTA를 만난지 12년째가 되는 필자로서도 어떤 의미에서 매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KOSTA란 무엇일까, 무엇이 KOSTA를 KOSTA 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위해 딱딱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넘기며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여러가지 내용을 정리해보았을때 사람들이 흔히 KOSTA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선입관과
매우 다른 KOSTA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KOSTA는 집회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집회가 아닌 운동으로서의 KOSTA

많은 사람들이 KOSTA를 여름에
인디애나폴리스와 시카고에서 여는 집회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KOSTA가 원래 추구하고 있는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KOSTA는 집회를 포함한다. 그러나 KOSTA는 집회라기 보다는 KOSTA의 핵심가치(core value)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만드는 운동(movement)이다. KOSTA가 집회가 아닌 운동으로 규정(describe)하는 것은 KOSTA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신다고 우리가 믿는 소망의 내용때문이다. 만일 KOSTA가 많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일회적인
집회를 통해 소부흥(mini-revival)을 경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KOSTA는 집회로 규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KOSTA가 꿈꾸는 것은 KOSTA에 참여한 청년-학생들이, (1) KOSTA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에 동의하게
되어 (2) 그 핵심 가치를 가지고 각자의 삶에 살 뿐 아니라 (3) 그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4) 그러한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5)
그들이 몸을 담고 속해 살고 있는 피조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선포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하는데 여름에모여서
함께 하는 집회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KOSTA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집회가 아닌 KOSTA, 2007년에는

집회를 앞두고 왜 갑자기 집회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금년 주제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금년
KOSTA/USA의 주제는 “이 세대롤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이다. ‘변화(transformation)’가 금년의
키워드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성령의 일하심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을 조차도 대량생산하고 싶어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풍조가 덕(virtue)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 집회를 통해서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완전한(complete)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면 참 감사한 일이겠으나,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변화해 가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집회를 통해서, 코스탄들이 진정한 변화가 얼마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가
하는 것을 깊이 인식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진정한 변화가 어떤 이들에게는 시작되는, 어떤 이들에게는 한단계 큰
도약을 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새롭게 갱신(renew)되는 일들이 있기를 기도한다.

건강한 혼란과 무질서를 기대하자

집회를 전후하여 이번 인디애나폴리스와
시카고의 집회에 참석하는 코스탄들에게는, 결단의 기도 이전에, 뜨거운 찬양 이전에, 감격이 있는 말씀 이전에 올해의 주제를
붙들고 고민하는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고민의 시작은 바로 혼란과 시작되어야 한다. 혼란은 무질서이다. 혼란은
불확실성이다. 혼란은 미확정이다. 혼란의 상태에서는 아무런것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혼란은 좌절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에게, 우리의 마음과 심령에 그런 혼란이 필요하다. 이런 혼란의 상태는 이 세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우리들 자신의 몸부림이
되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한 첫 삽이 되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변화의 열매를 맺기 위한 씨앗이 되어야
한다. 유진 피터슨의 말처럼, 창세기 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니)의 혼란이 있어야 1:3 이후의 창조의 열매가 있는 것이다.
혼란으로 시작하여 열매와 결단으로 연결되는 집회가 되었으면 한다. 혼란으로 시작하여 새로운 마음과 창조와 질서로 끝맺음을 하는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넘어서는 집회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내용들이
그대로 이루어 진다 하더라도 그저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들이 순서대로 진행되어 우리가 예상한 것들만이 일어나는 집회라면 그것은
진정 우리가 바라는 집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의 예측과 생각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것을 너머서 더 크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에대한 기대감을 우리가 포기한다면 이 집회의
주인공에 하나님이 아닌 우리 자신을 놓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진정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를 갈망하고,
그러한 변화에의 길에 들어서서, 다른 이들과 전 피조세계를 그 변화로 이끌어내는 KOSTA/USA-2007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이,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어나길 기도한다.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여성의 고백

당시 70대 였던 그 여성은 평생동안 강한 동성애적 성향으로 인해 고민해 왔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바꾸려고 온갖 시도를 해 보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가 칠스트롬 감독에게 쓴 편지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는 어른이 된 이후 평생 제가 손을 잡을 수 있고… 포옹할 수 있는 특별한 누군가를 갈망해 왔습니다. 동성애 반대자들의 기대
사항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기대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자애로운 어깨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오랫동안 주님의 품에 안겨 그 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것을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이 때때로 떠오르곤 합니다. 한 평생은 사랑만큼이나 우리가 간절히 갈망하는 어떤 것을 기다리기엔 참으로 기나긴
세월입니다.

나는 이 여성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녀는 내가 존경하는 성인들의 반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가 오랜 세월 참고 견뎌야 했던 동성애에 대한 지각없는 비평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믿음에 기초한 그녀의
인내심과 주님의 포옹에 대한 갈망을 묵상할 때면 나는 내 자신의 여정에 필요한 힘을 얻게 된다. 내가 천국에 가게되면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 그녀을 통하여 동성애를 바라보는 내 태도가 더욱 부드럽고 신중해졌기 때문이다.

이상,
리차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 에서 따옵니다.
7장 시민교양과 성 p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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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이의 생각

때로,
아니 너무나도 자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잔인한 정죄와 저주를 비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혹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퍼부어 놓고는…
자신의 믿음 좋음을 자랑합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 Not to Be Conformed But to Be Transformed (KOSTA 2007 주제문)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Not to be conformed but to be
transformed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는 2007, 우리 민족은 100 전과는 비슷하면 서도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분단된 조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무자비한 세력 다툼과 세계화의 거센 바람에 둘러싸여 있고이로 인해 조국과 민족의 생존과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늘날 우리 민족은 평양 대부흥 무렵의 어두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적인 시각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우리가 두려워해야 것은 시대 우리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비복음적 가치관임을 깨달을 있다.  자본주의적 물질주의는 이미 세계를 제패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해 버린 하다.
세속화와 이분법(dualism)적인 사고, 그리고 상대주의적 가치관의 도도한 물결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까지도 삼키려 들고 있다.
통계 숫자상의 그리스도인은 많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는 많지 않다.  능력과 비전은 많이 이야기되지만, 경건의 진정한 능력, 욕망으로 오염되지 않은 참된 비전은 찾아 보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위엄과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고, 존경의 대상이 아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이상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민족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물질적 풍요는 시대 청년들의 영적 벌거벗음을 가리고 진리를 향한 간절함을 앗아가 버렸다.
세계화와 무한 경쟁의 도전 앞에 시대의 청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포기한 , 앞의 생존을 위한 두려움의 노예, 또는 끝없는 탐욕의 노예로 팔려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위협은 주변 국가들과의 정치적, 경제적 긴장이 아니다.
조국의 정치 경제적 불안정이나 분단 상황 속에서의 위협도 아니다이러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두렵게 하지만, 우리가 싸워야할 주된 전투는 아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우리의 마음을 두어 싸워야할 전투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그릇된 가치관과의 싸움이다.
진리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진리를 알지만 진리대로 살기보다는 세상의 가치관에 힘없이 끌려가도록 만드는,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우리 민족과 한인 디아스포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왜곡된 가치관에 의해 지배받고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이다.

어둠의 세력과 싸울 사람들은 누구인가?
누가 진리로 시대의 흐름에 도전하며 시대의 헛된 모습들을 폭로하고 진리를 삶으로 드러내보일 것인가복음이 예배당 안에만이 아니라 세상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줄 사람들은 누구인가?
무너지지 않을 듯이 견고해보이는 세상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것을 무너뜨릴 사람들을 어디에서 찾을 있을까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능력이 되고, 유일한 소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줄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비복음적 시대정신에 정복당한 세대에서 다시 진정한 희망을 외칠 있는 유일한 사람들, 그들은 바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진리를 경험한 사람들이요,
진리로 인해 변화된(transformed) 사람들이며, 진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속과 경건의 이중적인 삶을 사는 종교인이 아닌 성령과 진리로 인해 온전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다절대진리에 든든히 서서 세상을 거스를 있는 능력의 그리스도인들이다.
세상이 감당할 없는 사람들이다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셔서 세대를 꾸짖고 심판하며 당신의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다.
이들이 있는 곳에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견고해 보이는 어둠의 세력이 무너지는 기적이 임할 것이다.

우리는 KOSTA 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한다.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와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엎드리기를 소망한다.
100년이 넘는 한국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령께서는,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분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은혜를 받도록 일하셨다.
이제는 우리 민족과 한인 디아스포라를 예수의 참된 제자로 변화시켜서 시대, 세계를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간구한다.
그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 민족 아니라 세계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품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진리에 의해 온전히 변화된 우리 한민족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세상을 복음으로 바꾸어 나가는 영광스러운 역사가 KOSTA 2007에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Recommendation Letter

Bob Smith, my assistant programmer, can always be found
hard at work in his cubicle. Bob works independently, without
wasting company time talking to colleagues. Bob never
thinks twice about assisting fellow employees, and he always
finishes given assignments on time. Often Bob takes extended
measures to complete his work, sometimes skipping coffee
breaks. Bob is a dedicated individual who has absolutely no
vanity in spite of his high accomplishments and profound
knowledge in his field. I firmly believe that Bob can be
classed as a high-caliber employee, the type which cannot be
dispensed with. Consequently, I duly recommend that Bob be
promoted to executive management, and a proposal will be
sent away as soon as possible. Sincerely, –Project Leader
————————————————————–
The following Memo was soon sent following “The Letter”

That stupid dolt was reading over my shoulder when I wrote the
report sent to you earlier today. Kindly read every second line
(i.e.. 1, 3, 5, 7, 9, ..) for my true assessment of him.
Regards, Derek Crabb Project 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