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13 새해 바람 (6)

주님을 늘 사랑하면서 살고 싶고,
주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추구하지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 비하면 늘 일관되지 못했다.

소위 up & down이 늘 있었다.

흥미롭게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내가 주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과의 상관성은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주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이나 훈련,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발전되는 영역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이 식은 기간에도 내가 매우 효율적인 사역자로 일했던 시기가 많이 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었고.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시기에 보이는 독특한 특징은, 내가 주님을 더 깊이 닮아가는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그런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을 잘 풀어 설명할만큼 내 생각이 정리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랬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역자로 살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점점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치환해왔다는 것을 최근 많이 발견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더 효율적인 사역자가 되기는 했지만,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내게서 더 이상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새해에는,

내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여 주님을 닮는 과정이 회복되면 좋겠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주님을 닮은 것을 더 많이 바라며…

나의 2013 새해 바람 (5)

지난해 말,
내가 내 가족을 빼고는 가장 아끼는 몇 사람들과 이메일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쓴 적이 있었다.

지금 제 모습을 보면, 마치 레드불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영향을 받으면 잠시 힘을 반짝 내는데는 도움을 주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돌이켜보면, 한때는 저도 부족하지만, ‘녹용 보약’과 같은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효능이 좀 딸리는 보약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마음에 소중한 생명을 담고 살게되는 것을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모습은, 몸을 망가뜨려가며 잠시 힘을 내게하는 레드불과 같은 모습입니다. 자극적인 맛과 효능의 레드불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으실 것을 기다리는 참을성을 갖지 못하고,

조바심을 가지고 내가 끝장을 보고자 했던 내 자세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새해엔,

내 안에 있는 독성을 빼내고,

덜 자극적이더라도 깊이 있고 영속하는 효능이 있는 녹용 보약과 같은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싶다.

나의 2013 새해 바람 (4)

나와는 좀 신앙의 컬러가 다른, 그렇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P형이 있다.

이 형은, 말하자면….. 좀 퇴마사 같은 스타일이다. ^^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악한 영을 대적하는 기도를 하다 자기도 하고….

말을 할때도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하기 보다는, 불교의 선문답 비슷한 스타일로 이야기한다.

아이로니칼하게도,

개인적으로 나는, 나와 스타일이 매우 다른 이 형으로부터 참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내 신앙의 컬러가 아직 확실히 확립되지조차 않았던 20대.

P형이 언젠가 내게 와서 뜬금없이, 너는 요한복음 스타일의 신앙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물었더니,

내 신앙을 붙들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둥은,

나는 거대담론, 헌신, 변증, 논리 등등의 딱딱한 개념 보다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라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뭐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 신앙의 컬러가 확립되어 드러나면서 나는 P형의 그 이야기가 참 옳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위기의 순간에,

복음의 거대담론의 vision이나, 내 헌신의 충성과 같은 것에 의지해서 돌진해 가기 보다는,

주님과 더 가까워지면서 그분의 숨결을 느끼며 그분과 동행하는 것을 통해 힘을 얻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최근 10-15년 동안 대외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거대담론, 헌신, 변증, 논리 등과 같은 딱딱한 개념이었다.

나 역시 그런 개념들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었지만,

그런 시간을 지내면서 내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무엇(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너무 오래 놓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님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물론 이것도 계속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주님을 사랑하며 사는 삶을 많이 회복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2013 새해 바람 (3)

지난 여름 정도 였을까.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긴 하는데, 하나님과 함께 누리며 살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더 큰 문제라고 내가 생각한 것은,

그런 내 상태가 그렇게 많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하나님이 아주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기간은, 꽤 자주 있었다.

그렇지만 그럴때 마다 나는 참 많이 괴로워했었다.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여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하나님을 위해 몸바쳐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내가 하는 일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을 통해 기뻐하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하는 나와 함께 하실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하는 회사일이나, 말씀사역, K 운동 관련한 일들… 무엇이건 다 그랬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감각하게 지났는데 (세상에, 어떻게 이걸 무감각하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

P사에서 A사로 transition하는 기간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이것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새해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싶다.

그렇게 내 삶을 바꾸어나가고 싶다.

나의 2013 새해 바람 (2)

뭔가… transition 중일까?

긴~ struggle을 지나고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나는 M 학교의 66동 1층 한 강의실에서 QT를 하곤 하였다.

2003년, 대략 몇달의 기간에 걸친 말씀 묵상 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하고 있던 내 모습을 많이 보게 하셨다.

꽤 많은 생각과 방대한 reflection이 있었지만,

그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것이었다.

“You are on the wrong track!’

뭔가 내가 잘못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엥? 내가 잘..못… 가고 있다고?

나름대로 긴 박사과정도 마무리하고 이제 끝이 보이고 있는 상황이고,

이렇게 주님도 열심히 믿고 있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헌신하며 살고 있는데?

나는 그야말로, 내 삶을 다 던져 이렇게 전투적이고 치열하게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내가 잘못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M. 이라는 학교가 제공해주는 성공과 성취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것은 내 삶의 근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그때, 성공주의적 환상에 이끌려 사는 삶의 모습을 많이 비판하는 사람이었다.

소위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이야기하는 싸구려 신앙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는… 매우 교묘하고도 비뚤어지고도 subtle한 모습으로 혼합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교묘하고 subtle해서, 나는 스스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 서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러가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고, 말씀묵상, 고민, 씨름, 토론 등등도 하면서 나는 일종의 ‘transition’을 겪게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소위 ‘개혁주의적’ 세계관을 따르던 내 입장을 수정하게 되었고,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전투적 근본주의자의 모습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시작하였고,

내 agenda를 버리고 하나님의 agenda를 따르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3년 1월의 나를 바라보건데,

그런것과 비슷한 일종의 transition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transition을 통해,

어그러진 내 모습이 더 환히 드러나고, 그 과정을 통해 좀 더 내 대빵 목수님을 많이 닮는 열매가 맺히어지길 기대해본다.

나의 2013 새해 바람 (1)

1.

내가 어릴때,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네 새해 결심이 뭐니’ 라고 묻는 것이 정말 싫었다. ^^

왜냐하면, 나는 새해 결심이 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무슨 big deal이라고… 뭐 그런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다.

2.

내 유학 시절,

참 일이 잘 안풀려서 힘들어 하던중에, 나는 일종의 게임중독 증상을 보였었다.

몇년 동안은 계속 해서, ‘게임을 줄이자’,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새해 결심이었다.

물론 그 새해 결심을 ‘몇년간’ 해야 했다. 한번의 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몇년에 걸친 그 결심은 결국 내가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3.

‘결심’이라는 말이 사실 좀 마음에 걸린다.

이 시리즈의 글에서 좀 언급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요즘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하고 passive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결심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는대로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큰데… 이 ‘결심’이라는 단어가 그런의미에서 영 불편한 것이다.

어차피 내 의지적 ‘결단’의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니까 ‘결심’ 이라는 표현을 써 볼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바람’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4.

1월 한달중, 많으면 3주간, 적어도 2주간은 ‘해외’에 있게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출장중에 블로깅을 좀 쉬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너무 많이 글쓰기를 멈추게 될 것 같아,

가능하면 출장중에도 시간이 나는대로 글쓰기를 계속해보려고한다.

자, 이제 새해다!

성탄이 슬프다

몇년전부터,

성탄의 시즌을 지날때마다, 정말 슬픈 마음이 많이 든다.

consumerism의 폭격에 허덕이는 많이 사람들을 보며,

‘Merry’ Christmas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텅빈 마음을 보며,

여전히 이땅에 해결되지 않은 많은 갈등을 보며, 

낙오된 사람들이 ‘loser’로서 다시 일어날 기회가 막혀버린 세상을 보며,

추운 겨울 번쩍거리는 성탄 장식 옆에 웅크리고 있는 marginalized people을 보며,

정말 성탄이 슬프다.

소위 크리스마스 플래시몹 (flash mob)을 볼때마다,

그것이 기쁘고 아름답기 보다는 서글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감각적 상술로 장식된 consumerism의 정글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로빈슨 크루소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구세주의 탄생의 기쁜 소식에,

더 이상 관심도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 소망 이외엔 다른 궁극적 소망이 없는데…

12월 24일 아침,

이곳 San Francisco Bay area는 밝고 환한데,

내게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도,

나를 바라보는 세상에도,

성탄이 슬픈것 만큼이나,

성탄의 소망이 더 분명하고 밝게 빛났으면 한다.

O come O come Emmanuel

And ransom captive Israel

That mourns in lonely exile here

Until the Son of God appear

Rejoice! Rejoice! Emmanuel

Shall come to thee, O Israel.

올해의 마지막 포스팅

지난 한해,

이제 이거 그만 써야겠다… 생각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통찰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글을 맛갈나게 쓰는 글쟁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작은 웃음을 주는 contents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하자고 이걸 매일 쓰고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이렇게 쓰는게 쓰지 않는것 보다…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유익이 있는 것 같아 계속 더 하기로 했습니다.

내년,

이제 한해동안 100,000 마일씩 비행기타고 날아다니며,

얼마나 글을 올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하는데까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다음주부터는 저도 ‘방학’에 들어갑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새해들어 다시 글을 쓰기로 하겠습니다.

쉬는동안 생각도 가다듬고 묵상도 기도도 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려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요즘 제 생각과 마음을 이끄시는 형태가 좀 심상치 않습니다. ^^

이 별볼일 없는 삼류 블로그에 그래도 가끔씩 와주셔서 읽어주시고, 생각을 나누어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소망의 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평강이,

이 성탄의 계절에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목수의 졸개 올립니다.

나를 비정치화하기?

어제는, 11월 1일 이후 처음으로 아침 운동과 말씀묵상을 다 빼먹었다. -.-;

도저히 그럴 기운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03년 ALCS에서 Boston Red Sox가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 홈런을 맞고 Yankees에게 졌을때도 그렇게 멘붕이 왔던 것 같다. ^^

혹시 그저 정치를 운동경기 보듯 그렇게 격렬하게 응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나님에게 걸어야할 소망을 정치에 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동안 내가 나 스스로를 비정치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스려오던 차였는데,

요 며칠 그 balance를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다시 비정치적(혹은, 덜 정치적이라고 해야할까)이 되기 전에 다음의 한꼭지 글만 남겨야 겠다.

이번 선거에서 또 다시 (극우-비상식-수구) 팀이 (우파-상식-보수) 팀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한국의 민주당을 좌파라고 하시는 분들은 정말 공부를 좀 하셔야 한다. 쩝… 그 얘기를 정말 좌파가 들으면 몹시 기분나빠할거다.)

합리적인 건강한 보수는, 비합리적인 수구세력에 역부족이었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합리성을 누릴 만한 여건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래도 천천히 역사는 건강한 방향으로 이동해가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렇지.

1992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가 분열했음에도 비상식-수구파가 승리 (정주영이 나왔었지 그때…)

1997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가 분열했고 (이인제; thank you), 그나마 독재잔당(JP)과 연합을 해서야 겨우 상식-보수파가 이겼음.

2002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의 일부 (정몽준)와 손을 잡고 겨우 겨우 승리 (하루 전에 깨지긴했지만서두)

2007년 대선 : 이때는… 뭐 온 나라가 살짝 맛이 갔었음. -.-;

2012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와 손잡지 않고서도 48% 득표에 성공. (또 다른 상식-보수파인 안철수와 손을 잡고)

자, 이런 추세라면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생각 같아선 극우-비상식-수구-친일-독재 이쪽 세력을 화악~ 밀어버리고 역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친다.

당장 우리의 부모, 친구, 선배 등등이 다치고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주 천천히 가는 것이 긴 친일-전쟁-독재의 상처에 힘든 우리 백성이 또 다른 상처 없이 진보해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독재자의 딸이 한번 더 정권을 잡아야만…

그 독재자에 대한 막연한 비현실적 환상이 결국 깨지고 move-on 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

제발 이럴때… 교회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데…

사실 그게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