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0)

늘 내 후배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길의 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은 몇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첫번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 나라의 방식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회의가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이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격려나 위로 혹은 insight를 줄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떤 소망을 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걸까 하는 것에 대해 정말 깊은 회의가 생겼다.

두번째로,

내 삶의 모습이 내 후배들에게 해석 가능한 방식으로 transferrable할지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내 삶의 context가 다른이들과는 다르기 떼문에… 특별히 ‘후배’들의 context는 내 context와는 작게는 십년 크게는 몇십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소위 ‘옛날’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삶의 모델이라는 것이 어차피 context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신앙의 선배의 모습을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더 확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예를 들어서, 

625전쟁 직후 가난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도 있고, 존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선배들의 삶의 터전(context)가 지금 내 삶의 터전(context)와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분들의 삶의 방식을 내 삶의 방식으로 가져오는데에는 많은 해석과 번역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더 큰 문제는,

내가 워낙 독특해서… 내 case를 일반화하기 많이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 경험 등을 일반화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세번째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삶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땅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야할 모범이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꾸짖고 격려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람을 모델로 두는 것에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벌써 10여년전의 일이지만.. 내가 신앙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김인수 교수님께서, 보스턴에 오셨을때,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그분께 많은 질문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ride를 드리면서… 이런건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런 문제는 어떻게 보시냐… 등등.

그런데 그중 아주 인상깊은 그분의 말씀은… 

‘나는 간증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 속에서 워낙 힘든 경험을 뚫고 살아온 스토리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자칫 사람들이 나만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사에 있으면서,

이렇게 하면서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이제 A사에서,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 나를 던져넣어… 내 스스로 모델이 되려하지 말고 동지가 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shallow한 사람이 무슨 role model 어쩌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9)

내가 20대 초반에,
나는 내 ‘선배’들에게 거의 분노 했었다.
그것은,
내가 보고 따를만한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가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도 3기이고, 대학교도 2기 이므로,
선배가 적었던 것은 당연했지만…
내가 따를 모범이 되는 선배가 없다는 불만은, 단순히 그저 내 고등학교, 대학 선배중에 롤모델이 없다는 불평 이상의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책을 통해서나, 글을 통해서, 혹은 강의/설교/강연을 통해서… 하다못해 소문을 통해서라도…
아, 정말 이 사람이라면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다소 낡은(?) 신학체계 속에 머물러 계신다거나,
이원론 적인 삶은 사신다거나,
지나치게 교조주의적이거나,
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가고 계신 분들이었다.
때로, 어떤 선배님을 찾았다 싶어 그분의 생각을 깊이 따라가다보면,
아… 여기까지가 이분의 한계 이구나 싶어 실망하곤 했었다.
그런 분들로부터 파편적으로 어떤 부분을 배우긴 했었지만,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분들로부터 배웠던 그 파편적인 것들이 참 감사하다!) 내가 따라야할 모범으로 생각하기엔 늘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20여년 전에 굳게 결심했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내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걸었던 길을 통해서 후배들이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런데, 

최근 1-2년 새에,

내 그런 자세에 깊은 회의가 생겼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8)

피동적이 되는 예를 좀 더 들어보자.

내 딸의 생일날,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일찍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예전 직장이라면, 일찌감치.. 4시부터는 대충 일을 정리해가면서 큰 일 만들지 않고, 5시 땡 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만일 해야하는 일이 더 있다면 그 다음날 더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된다.

직장에서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갑자기 아시아로 출장을 가게 되어서,

딸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중요한 presentation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내가 control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을 정말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불안해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수동적/피동적일 수 밖에 없었던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 속에서, 대학원 시절에, 유학 시절에…

그렇기 때문에 정말 기도 많이 하고 많이 엎드렸던 것 같다.

여름에 K 집회 참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해 달라고 몇주씩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냥 척~ 하고 결정해 버리는 삶에 내가 너무 많이 spoil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면에서, 

참 많이 훈련이 될 것 같다.

참 하나님 앞에서 많이 엎드리는 것이 회복되면 좋겠다.

(덧붙여서)

어떤 독자가 내게 물어왔다.

이런 결정할때 이런거 다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거냐고.

처음 글에서 썼지만, 내가 A사로 옮긴 것은 이런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내가 능동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된 것이다.

다만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거…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하는 것에 촉각을 세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또 다른 피동성이라고나 할까. ^^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7)

며칠전 내 아내는 내게,

내가 이런류의 증상들(어제 쓴 것들)을 더 심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K 총무간사를 하면서 부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마치 세상을 내 어깨에 진 것인냥 행동할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무너지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

정말 버텨야 한다.

지금 이렇게 일이 쏟아지더라도 이걸 이를 악물고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뭐 이런 류의 생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게다가 직장에서도 거의 아무도 내개 이걸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고,

오히려 내가 agenda를 내서 함께 하는 일을 주도해가는 형태였다.

한마디로,

내 삶에… 수동적인(passive) 측면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피동성, 수동성을 경험할때 내가 vulnerable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점점 내 삶에서 없어지게 되었고,

어느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적극적, 능동적, 진취적 인본주의자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새 직장에서 이제 첫 한달여를 지내면서,

참 많은 것을 새롭게 경험한다.

그중 한가지는,

누가 내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듣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을… 참 오랜만에 하는 일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다시 좀 vulnerable해지면 좋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사는 모습을 많이 회복하게 되었으면 한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6)

한 일년 정도 라고 보아야 할까.

최근 나는 나 자신과 내 신앙과 내 성품, 그리고 삶을 돌이켜보며 마음이 힘들었었다.

내가 관찰한, 내가 불편한 내 모습을 좀 정리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 화가 한번 나면 잘 풀지 못한다.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거나 납득이 되면 화가 풀어지는데, 내 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그 화가 풀리지 않는다.

– 다른이들에게, 그리고 특히 나 자신에게 매우 가혹하다. 기준을 높게 세우고, 그 기준에 모자르면 심하게 비난한다. 매우 자주 judgmental하다.

– 내 의도가 오해받는 것을 참지 못한다. 끝내 그것을 풀지 않으면 속이 쓰리고, 잠이 안오고… 

– 내가 하고 있는 계획을 방해 받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하루 시작해서 잠들때까지 거의 모든 것을 계획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 내가 메꾸기 어려울만큼 긴 시간동안 내게 잡담을 늘어놓는 사람, 말이 논리정연하지 못한 사람 등등을 참 잘 참아내지 못한다.

– 온 몸에, 온 마음에… 늘 바짝 힘이 들어가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늘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가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을 잘 안한다. 그게… 사람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힘들다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외에도 이런 것과 연관된 많은 증상들이 내게 있음을 최근 많이 보게 되었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게 해 주셨다고 이야기 하는게 더 좋겠다.)

이런 증상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내가 ‘은혜’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5)

P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꾸었던 꿈이 참 많았었다.

그 내용은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라는 시리즈의 글로 정리했던 적도 있었다.

http://woodykos.tistory.com/251

http://woodykos.tistory.com/252

http://woodykos.tistory.com/254

http://woodykos.tistory.com/255

http://woodykos.tistory.com/256

http://woodykos.tistory.com/260

http://woodykos.tistory.com/257

나는,

21세기 초반, 하나님 나라 백성이, bay area에서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경험하며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 일을 해나가면서 몇가지 문제점에 부딛혔다.

우선,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내기에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함께 하고 있는 lab director C가 이 점을 많이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C도 이걸 다 감당해내기에 충분한 리더쉽과 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참 좋은 꿈이 있는데…

이걸 통해서 정말 제대로 일해보고 싶은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한번 풀어 보고 싶은데…

그렇게 해낼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자각은 참 내게 아픈 것이었다.

A 사에서의 경험은,

아마 이런 측면에서, 내가 실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A 사에서 retire 할 정도까지 일하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여기서의 일을 통해 내가 실력을 더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4)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이론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론적으로 이해한 하나님 나라는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 이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영적 도약을 이루었던 시기들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깊어졌던 시기였다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경험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때로는 그 영적 도약이 깊은 좌절이나 절망 속에 이루어지기도 했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일이나 상황을 접하면서 이루어지기도 했고,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힘들지만 순종했던 경험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보통 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눌때,

그것은 자주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위에 언급한 어떤 특정한 영적도약에 근거하고 있고.

그런데,

최근 1년여동안,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대한 message를 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일종의 답답함 같은 것을 느꼈었다.

그것은, 

내가 갖추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안주하며 하나님 나라를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을 멈추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하고 있는 것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회사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문제를 내어놓고 엎드리기 보다는,

내 ‘재주’로 돌파구를 만들어내온 내 꼼수가 내 삶 속에서 이끼처럼 끼어있다는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P 사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내가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라고 그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여전히 내가 갖추어놓은 environment에 안주하는 fall-back plan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었다.

그런 와중에,

P사의 어려운 상황, A사의 offer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3)

나를 아는 사람들이면 뭐 다 알지만,

꽤 유난스럽게,

성경공부 하는거 좋아하고, 사람들과 성경 이야기하는거 좋아하고, 멀리가서라도 하나님 나라 이야기하는거 좋아하고…

뭐 난 좀 그런 편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할때면, 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내 돈과 시간 들여서 가는 것이 아깝지 않다.

나름대로 혼자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강의등을 듣거나 신학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중에는 내가 생각해도 어려운 책들도 있다. ^^

그렇게… 

대충 20년 좀 넘게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내가 무슨 빼어난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신학적 지식이 풍성해서 혹은 신학적 통찰이 뛰어나서 뭔가 어려운 현상이나 상황을 신학적으로 잘 풀어내는 사람도 아니고,

혹은 대단한 설교가여서 사람들에게 열정적인 설교를 해대는 사람도 아니고…

그럼, 정말 내가 해야하는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결국, 삶에서 복음을 가지고 살아내는 일이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물론 성경공부, 말씀 나눔, 필요하면 강의나 설교 등등을 하기도 해야겠지만… (아마 평생 하면서 살겠지만… ^^)

나는 결국은, 신학자, 목회자, 설교가는 아닌 것을.

하나님 나라 백성이, 엔지니어로서 지금 이곳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내 온 존재로 살아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우선적 identity가 아닐까.

이건 알고 있는 원칙들을 삶에 적용하며 사는 삶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적용해보지 않고는 알아 볼 수 없는 원칙들을 발견하는 작업도 포함한다.

대충,

지난 1년정도,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 살았다.

내 이런 생각은, 내가 이번에 A 사를 가기로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관련된 내용은 다음 글에서 더 나누겠다.)

청소년…

나는,

중고등학교때, 신앙 생활을 상당히 날라리로 했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있지도 않았고, 우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은 그저 내게 문화로 자리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아주 생각의 폭도 좁았고, 그저 공부가 다인 것으로 여기며 그 시절을 보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을 보면, 

아… 쟤들이 정말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 참 중요할텐데….

뭐 그런 류의 생각을 하긴 하지만, 막상 그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건지, 누가 그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건지 등등에 대해 거의 개념도 없다.

이제 우리 딸아이가 소위 ‘중고등학생 청소년’이 되고나니,

이 아이를 생각하며 하는 기도가 좀 더 구체적이 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경쟁적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참 마음이 아리다.

복음이 눌린 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라면,

이 아이들이 복음 때문에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일텐데!

복음이 주는 소망 때문이 이 아이들이 삶의 소망과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여,

그 시절부터 주님 사랑하는 사람들로 커나가는 것이… 결국 30년 후의 우리의 모습에 희망을 주는 것일텐데!

이제, 오늘부터 Maryland에서 youth KOSTA가 열린다.

참석하는 귀한 아이들에게,

그들을 섬기는 모든 분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길 기도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느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복음이 주는 자유과 감격을 맘껏 누리고 깨닫는 시간이 되면 참 좋겠다!

복음이 이들에게 잃어버린 노래를, 잃어버린 춤을 다시 가져다주는 시간이 되면 정말 좋겠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2)

이 결정을 했던 것은,

뭐 대단한 신앙적 결심 그런 것에 앞서… 

그저 매우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말하자면 많은 선택이 앞에 놓여 있는데 인도하심을 구하며 결정한 그런 case라고 이야기하기.. 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뒤에서 좀 더 다루어보려고 한다.)

예전 회사는, start-up company 였다.

많은 start-up company가 그렇듯이, 사실 나는 비교적 낮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대신 약간의 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만일 이 회사가 잘 되면, 이 근처에서 집 한채 살 수 있을 정도의 뭐 그런 수준의 지분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걸로 대박내고 retire할 수준은 아니었다. ^^ 그럴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보니, 무슨 통장 잔고 이런게 두둑하게 있는 수준이 될 수 없었고, 

수입의 일정 부분을 헌금, 기부 등에 사용하고,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saving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액수를 떼고 나면, 매달 겨우 break-even 하는 수준이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햄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다녔고, 회사에서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는 것 등은 정말… 일년에 한두번 정도 할까말까 였다. 

내 수입 수준으로 3-bedroom apartment에서 사는 것은 사치인걸까.

camry가 아니라 civic을 더 타고 다녔어야 하는 걸까. 뭐 그런 식의 고민 수도 없이 많이 했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제적 상황 속에서,

회사의 장래가 불투명해지자 나와 우리 가족에게 던져지는 부담감은 상당히 컸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긴 했지만,

사실 그런 과정에서 일종의 불면증 같은 것도 경험했을 만큼 나도 마음이 힘들때도 있었다.

(지난달까지만해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달에 그게 사라진걸 보면… 불안감, 책임감 때문에 불면증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그런 추측을 해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A 사에서 연락을 먼저 해 왔고, 매우 reluctantly 인터뷰를 했다.

A 사에서 받은 offer는 꽤 attractive 했다.

일한 하는 일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연봉을 더 많이 준다고 했다. -.-;

정말 돈으로 사람을 사오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현실적으로,

나는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주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다른 이유들을 쓰기 전에,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쓰는 것이 정직하고도 clear할 것 같아서 이렇게 먼저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