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3)

내가 A 사에서 하는 일은,

A사가 실제로 만들어서 2년쯤 뒤에 수백만명의 선 세계 customer가 사용하게되는 product의 한 부분을 책임지는 일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확 얘기할수도 없고… 쩝. 하여간…)

그렇다보니, product cycle에 따라서 일이 바빠지면 정말 정신 없이 바빠지기도 하고,

아시아에 있는 어떤 공장에서 며칠씩 밤샘을 하게될수도 있다.

일년에 100,000 마일 비행기 타는 것은 아주 가볍게 넘긴다고들 한다. -.-;

이런 일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내 일정을 flexible하게 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A 사로 옮길 것을 고민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이런 lifestyle과 관련해서 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가운데 하나는, K 운동 이었다.

내 30대는 정말 K에 헌신해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섬겼다.

96년에 처음 참석한 이후로, 98년 지도교수가 안보내줘서 못한거 한번 빼놓고는 정말 열심히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그런데,

A 사에서 이 일을 하다보면, K 에서 이렇게 섬기는 것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음… 이걸 어쩌나.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2)

해적선 선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민우맘’의 댓글에, 바로 답을 쓰려다가…

그래도 여기 이렇게 좀더 잘 풀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A사가 business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벌써 내가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에는, 그걸 ‘죄’라고 여길 일은 아니지만… 그냥 원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도록 요구받는 것도 있다.

그런데,

왜 A사에 들어가서 일하느냐고?

음… 솔직히 말하면,

A사에서만 내게 월급을 주고 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

예전에,

내가 기독교 정복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때엔,

그러니까 나가서 해적선을 거부하고 그것을 바꾸어 개혁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관점에 대해서는 몇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로, 해적선을 개혁해 낼만한 힘이나 실력이 내게 없다.

사실 이게 내가 P사에 있으면서 난관에 부딛혀가며 느낀 것이다.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좋은 뜻을 펼치는데 실패했다고 느끼고 있다.

정말… 내가 실력이 출중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system을 개혁할 힘이 과연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나 회의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실력을 기르기위해, market place의 language를 배우고, 그 business 방식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

둘째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해적선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제가 해적선이라고 한다면… 그럼 그 대안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음…

사실 나는 그 대안으로 P사와 같은 것을 시도해 보았는데, 내안에서 충분히 소화되고 정리되지 않은, 설익은 논리와 생각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냥 좋은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 셈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래도 상황이 좀 더 낫지. 

그저 악덕기업에서 일하는 것 이외에는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그 해적선을 거부해라, 해적선을 뒤집어 엎어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배부른 사람들의 무책임한 언사가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세째로,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인데,

해적선이라는 system을 바꾸는 일을 하는 주체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system을 바꾸는 일은 사람에게 주어진 일이 아닌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선지자적 비관론’같은 입장을 가지고 꾸준히 끊임없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네째로, 지금 이 시점에서, 

여러가지 정황등을 살펴 보았을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system을 바꾸는 일 보다는,

그 system을 배우고 그 system 안에서 배우도록 인도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강하다.

market place의 language를 배우기에는…

A사가 참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참 겁도 많이 나지만.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1)

P사를 떠나기 몇주전,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본문이 아침 말씀 묵상 본문이었다.

영광스러운 성전을 봉헌하는 본문…

참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그 성전을 짓기까지 준비하는 과정의 본문으…

아… 정말 지루했다!

재료는 뭘쓰고, 길이는 어떻게 하고, 배치는 어떻고… 무슨 재료는 어디에서 수입해오고…

아니, 왜 이리 과정이 길어?

그런데,

그 본문을 가만히 곱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생각해보니, 여기 성전을 짓는 이 작업은 engineering work이구나.

civil engineering 이라고 할 수 있을까.

허, 참… 

그 시대나 요즘이나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아주 tedious한 노가다가 많군 그래.

그런데,

좀 더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의 정말 많은 일들이 그렇다.

무엇의 열매를 보는 일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그 과정은 매우 tedious하고 길다.

그 과정 속에서 master architect의 plan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긴~ 여정 속에서 성실하고 신실함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반성해본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금방 사람들이 변하는 것도 보고 가시적으로 내가 섬기는 그룹이 커가는 성과도 보니까 좋은데… 막상 내 직업에서 벌어지는 engineering work은 하나님나라와 관련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보여지지 않네. 에이, 당장 성과가 좀 더 보이는 일을 더 하자. 성과도 안보니까 재미도 없다…

말씀사역이 정말 진짜 ‘하나님의 일’ 인것 같잖다. 뽀대도 나고. 기도제목 내기도 좋고.

tedious한 일 속에서,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과정을,

이 모든 plan의 기획자를 신뢰하고 가는 것을 더 많이 배워보고 싶다.

그게 marketplace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0)

늘 내 후배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길의 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은 몇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첫번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 나라의 방식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회의가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이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격려나 위로 혹은 insight를 줄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떤 소망을 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걸까 하는 것에 대해 정말 깊은 회의가 생겼다.

두번째로,

내 삶의 모습이 내 후배들에게 해석 가능한 방식으로 transferrable할지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내 삶의 context가 다른이들과는 다르기 떼문에… 특별히 ‘후배’들의 context는 내 context와는 작게는 십년 크게는 몇십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소위 ‘옛날’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삶의 모델이라는 것이 어차피 context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신앙의 선배의 모습을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더 확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예를 들어서, 

625전쟁 직후 가난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도 있고, 존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선배들의 삶의 터전(context)가 지금 내 삶의 터전(context)와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분들의 삶의 방식을 내 삶의 방식으로 가져오는데에는 많은 해석과 번역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더 큰 문제는,

내가 워낙 독특해서… 내 case를 일반화하기 많이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 경험 등을 일반화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세번째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삶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땅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야할 모범이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꾸짖고 격려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람을 모델로 두는 것에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벌써 10여년전의 일이지만.. 내가 신앙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김인수 교수님께서, 보스턴에 오셨을때,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그분께 많은 질문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ride를 드리면서… 이런건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런 문제는 어떻게 보시냐… 등등.

그런데 그중 아주 인상깊은 그분의 말씀은… 

‘나는 간증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 속에서 워낙 힘든 경험을 뚫고 살아온 스토리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자칫 사람들이 나만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사에 있으면서,

이렇게 하면서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이제 A사에서,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 나를 던져넣어… 내 스스로 모델이 되려하지 말고 동지가 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shallow한 사람이 무슨 role model 어쩌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9)

내가 20대 초반에,
나는 내 ‘선배’들에게 거의 분노 했었다.
그것은,
내가 보고 따를만한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가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도 3기이고, 대학교도 2기 이므로,
선배가 적었던 것은 당연했지만…
내가 따를 모범이 되는 선배가 없다는 불만은, 단순히 그저 내 고등학교, 대학 선배중에 롤모델이 없다는 불평 이상의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책을 통해서나, 글을 통해서, 혹은 강의/설교/강연을 통해서… 하다못해 소문을 통해서라도…
아, 정말 이 사람이라면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다소 낡은(?) 신학체계 속에 머물러 계신다거나,
이원론 적인 삶은 사신다거나,
지나치게 교조주의적이거나,
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가고 계신 분들이었다.
때로, 어떤 선배님을 찾았다 싶어 그분의 생각을 깊이 따라가다보면,
아… 여기까지가 이분의 한계 이구나 싶어 실망하곤 했었다.
그런 분들로부터 파편적으로 어떤 부분을 배우긴 했었지만,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분들로부터 배웠던 그 파편적인 것들이 참 감사하다!) 내가 따라야할 모범으로 생각하기엔 늘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20여년 전에 굳게 결심했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내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걸었던 길을 통해서 후배들이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런데, 

최근 1-2년 새에,

내 그런 자세에 깊은 회의가 생겼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8)

피동적이 되는 예를 좀 더 들어보자.

내 딸의 생일날,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일찍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예전 직장이라면, 일찌감치.. 4시부터는 대충 일을 정리해가면서 큰 일 만들지 않고, 5시 땡 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만일 해야하는 일이 더 있다면 그 다음날 더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된다.

직장에서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갑자기 아시아로 출장을 가게 되어서,

딸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중요한 presentation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내가 control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을 정말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불안해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수동적/피동적일 수 밖에 없었던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 속에서, 대학원 시절에, 유학 시절에…

그렇기 때문에 정말 기도 많이 하고 많이 엎드렸던 것 같다.

여름에 K 집회 참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해 달라고 몇주씩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냥 척~ 하고 결정해 버리는 삶에 내가 너무 많이 spoil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면에서, 

참 많이 훈련이 될 것 같다.

참 하나님 앞에서 많이 엎드리는 것이 회복되면 좋겠다.

(덧붙여서)

어떤 독자가 내게 물어왔다.

이런 결정할때 이런거 다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거냐고.

처음 글에서 썼지만, 내가 A사로 옮긴 것은 이런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내가 능동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된 것이다.

다만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거…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하는 것에 촉각을 세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또 다른 피동성이라고나 할까. ^^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7)

며칠전 내 아내는 내게,

내가 이런류의 증상들(어제 쓴 것들)을 더 심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K 총무간사를 하면서 부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마치 세상을 내 어깨에 진 것인냥 행동할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무너지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

정말 버텨야 한다.

지금 이렇게 일이 쏟아지더라도 이걸 이를 악물고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뭐 이런 류의 생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게다가 직장에서도 거의 아무도 내개 이걸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고,

오히려 내가 agenda를 내서 함께 하는 일을 주도해가는 형태였다.

한마디로,

내 삶에… 수동적인(passive) 측면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피동성, 수동성을 경험할때 내가 vulnerable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점점 내 삶에서 없어지게 되었고,

어느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적극적, 능동적, 진취적 인본주의자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새 직장에서 이제 첫 한달여를 지내면서,

참 많은 것을 새롭게 경험한다.

그중 한가지는,

누가 내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듣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을… 참 오랜만에 하는 일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다시 좀 vulnerable해지면 좋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사는 모습을 많이 회복하게 되었으면 한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6)

한 일년 정도 라고 보아야 할까.

최근 나는 나 자신과 내 신앙과 내 성품, 그리고 삶을 돌이켜보며 마음이 힘들었었다.

내가 관찰한, 내가 불편한 내 모습을 좀 정리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 화가 한번 나면 잘 풀지 못한다.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거나 납득이 되면 화가 풀어지는데, 내 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그 화가 풀리지 않는다.

– 다른이들에게, 그리고 특히 나 자신에게 매우 가혹하다. 기준을 높게 세우고, 그 기준에 모자르면 심하게 비난한다. 매우 자주 judgmental하다.

– 내 의도가 오해받는 것을 참지 못한다. 끝내 그것을 풀지 않으면 속이 쓰리고, 잠이 안오고… 

– 내가 하고 있는 계획을 방해 받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하루 시작해서 잠들때까지 거의 모든 것을 계획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 내가 메꾸기 어려울만큼 긴 시간동안 내게 잡담을 늘어놓는 사람, 말이 논리정연하지 못한 사람 등등을 참 잘 참아내지 못한다.

– 온 몸에, 온 마음에… 늘 바짝 힘이 들어가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늘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가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을 잘 안한다. 그게… 사람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힘들다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외에도 이런 것과 연관된 많은 증상들이 내게 있음을 최근 많이 보게 되었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게 해 주셨다고 이야기 하는게 더 좋겠다.)

이런 증상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내가 ‘은혜’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5)

P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꾸었던 꿈이 참 많았었다.

그 내용은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라는 시리즈의 글로 정리했던 적도 있었다.

http://woodykos.tistory.com/251

http://woodykos.tistory.com/252

http://woodykos.tistory.com/254

http://woodykos.tistory.com/255

http://woodykos.tistory.com/256

http://woodykos.tistory.com/260

http://woodykos.tistory.com/257

나는,

21세기 초반, 하나님 나라 백성이, bay area에서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경험하며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 일을 해나가면서 몇가지 문제점에 부딛혔다.

우선,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내기에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함께 하고 있는 lab director C가 이 점을 많이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C도 이걸 다 감당해내기에 충분한 리더쉽과 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참 좋은 꿈이 있는데…

이걸 통해서 정말 제대로 일해보고 싶은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한번 풀어 보고 싶은데…

그렇게 해낼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자각은 참 내게 아픈 것이었다.

A 사에서의 경험은,

아마 이런 측면에서, 내가 실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A 사에서 retire 할 정도까지 일하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여기서의 일을 통해 내가 실력을 더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4)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이론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론적으로 이해한 하나님 나라는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 이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영적 도약을 이루었던 시기들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깊어졌던 시기였다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경험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때로는 그 영적 도약이 깊은 좌절이나 절망 속에 이루어지기도 했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일이나 상황을 접하면서 이루어지기도 했고,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힘들지만 순종했던 경험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보통 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눌때,

그것은 자주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위에 언급한 어떤 특정한 영적도약에 근거하고 있고.

그런데,

최근 1년여동안,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대한 message를 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일종의 답답함 같은 것을 느꼈었다.

그것은, 

내가 갖추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안주하며 하나님 나라를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을 멈추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하고 있는 것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회사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문제를 내어놓고 엎드리기 보다는,

내 ‘재주’로 돌파구를 만들어내온 내 꼼수가 내 삶 속에서 이끼처럼 끼어있다는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P 사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내가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라고 그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여전히 내가 갖추어놓은 environment에 안주하는 fall-back plan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었다.

그런 와중에,

P사의 어려운 상황, A사의 offer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