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묵상

다리를 다친 운동선수가 있었다.
뛰고 싶으나 뛰려고 하면 근육통이 심해 제대로 뛸 수 없었다.
겨우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몇년간의 고통스러운 재활훈련을 통해, 그 선수는 다시 뛸 수 있게 되었다.

그 선수는 자신의 그러한 경험을 ‘훈장’으로 삼아, 부상을 당한 다른 선수들에게 이야기한다.
힘내! 넌 해낼 수 있어! 날 봐. 부상을 이기고 이렇게 뛰고 있잖아.

그러나,
그 선수의 그러한 말은, 부상중에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더 어렵게만 할 뿐이다.

부상에서 회복된 그 선수는,
자신이 부상에서 회복되었다는 것만을 기억할 뿐,
부상을 당했을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

나는,
바로… 그 부상에서 회복된 운동선수 같을때가 참 많은 것 같다.

7 thoughts on “어제의 묵상”

  1. 나도 유사하게 느낄 때가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나라 높으신 분도 바로 이런 모습 땜에 엄청 욕먹는것 같다.

  2. 본인의 재활훈련이 회복의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머물수밖에 없는 수준이 아닐까요…

  3. 하나님 앞에서 “나”가 철저히 객체화되는 일은 “self”가 모든 생각과 행동, 옮고 그름의 기준이 되는 이 시대가운데 참 formidable challenge가 아닌가 싶습니다…..

    1. 옛날엔,
      이렇게 멋지게 얘기하는 문과계통 사람들만 보면 많이 주눅이 들었었습니다.
      이젠 그래도 공감도 하고, 동의도 하고, 마음도 통하고… 저도 많이 성화된거(?) 인건가요.. ^^

      말씀하신거 정말 공감/동의 합니다~

  4.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운 것은 내가 어려웠을 때를 자꾸 잊고 괜찮아진 현재의 상태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거 어려웠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지만 나는 지금 괜찮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과거 어려웠을 때의 상황과 느낌과 감정들을 자꾸 잊고 더구나 그런 처지에 있는 이들을 깊이 공감하고 긍휼히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 한때 나도 그랬고 너도 그 나이에 그 정도는 견뎌내야지 하는 피상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가끔 발견하고는 내가 도데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이럴때 정말로 나이먹는 것이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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