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 Contact Lens

지난 금요일 우리 회사의 공식 블로그에 glucose sensing smart contact lens 개발을 멈추기로(shelf) 했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 발표를 읽는 사람들의 몇가지 반응이 있는 것 같다.

1. 하나는 아… 안타깝다… 이다.
실제로 아주 genuine하게 이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거다.

2. 두번째는 그거 잘됐다… 이다.
이건 뭔가 Verily가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 사람들인 듯. ^^ 실제로 이쪽 어느 뉴스 미디어는 유난히 우리 회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가짜뉴스’를 많이 배포해서 우리 회사 리더십이 좀 골치를 썩기도 했다.

3. 세번째는 그럴줄 알았어… 이다.
사실 눈물 속의 혈당량과 피 속의 혈당량의 상관관계가 어떨 것인가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희박했다. 우리는 이 device를 만들어서 그 상관관계를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기도 했는데 그개 잘 안된거지.

나도 이 프로젝트에서 한 부분을 담당했다. 내 책상 서랍과 책상 위에도 이런 저런 종류의 샘플들이 무지하게 많이 쌓여있다.^^

그런데 혹시나 이쪽을 좀 아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더 드리자면…
Verily에서는 이 혈당 측정용 smart contact lens를 포함해서 최소한 3종류의 smart contact lens를 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걸 비밀로 지켜왔는데 우리 회사 블로그에 떴으니 나도 써도 되는거지.)
실제로 비슷한 technoogy를 사용해서 이것들을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 혈당측정용 smart contact lens를 그만둔다고 해서 Verily가 smart contact lens 자체를 그만두는건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꽤 바쁘게 다른 contact lens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같아선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으니… 뭐 이정도만 설명을 해야 할 듯.

하여간 걱정(?)할건 아니고, 우리 회사 내부에서는 뭐 당연히 그런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솔직히 궁금한건 왜 이 시점에 그걸 announce했는지 하는것이긴 하다.)

집으로

1.
민우가 감기에 걸려서 아프다.
열도 좀 있고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그냥 많이 잤다고 한다.
불쌍한놈…

안그래도 많이 안타까웠는데 민우가 우리에게 text를 하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썼다.
아… 거기서 완전 마음이 무너졌다.
우리 아가가 아파서 집생각이 나는구나.

오늘밤에 집에 온다. 오면 많이 안아줘야겠다.
(우리 민우는 스무살이 된 아직도 아빠와 엄마에게 안기는걸 참 좋아한다.)

2.
그런데,
살면서 우리도 많이 아프다. 때로는 그게 우리의 잘못 때문일때도 있고,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서일수도 있고, 우리 잘못 하나도 없이 억울하게 아플때도 있다.

그럴때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killer 기도는…
“하나님 아파요. 하나님 품이 그리워요. 안아주세요.” 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면 정말 그렇게 꼭 안아주시는 것 같다. 그게 어떤땐 당장 그렇게 하신다고 느껴질때도 있지만 어떤땐 나중에야 하나님께서 안아주셨다는걸 알게되기도 한다.

살면서 지치거나 낙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아플때,
하나님의 품으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해보자.
빨리 낫게 해달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안아달라고 이야기해보자.

3.
우리 민우가 오늘 밤에 집에 온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을 텐데, 오면 많이 재우고, 많이 안아줘야겠다.
민우가 좋아하는 갈비도 사 먹이고, 버블티도 함께 먹고.
오늘 밤 민우가 SFO에 도착하기까지 오늘 하루는 몹시 길 것 같다.

바쁜 한주가 지나고 있다

이번주는 좀 더 많이 정신이 없었다.

아침7시 뭐 이렇게 일찍 첫 미팅을 하는 날이면, 그 밤에는 미팅을 잡지 않는게 그래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보지만,
그런게 마구 망가지는 주였다.
그래도 나는 좀 낫지.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은 1am-8am 미팅이 있었다. (영국과의 conference call) 그리고 나서 아침 10시부터 다시 미팅들이 잡혀 있으니… 완전 팀 전체에게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주였다.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어오는 일과,
엄청나게 돈을 많이 쓰는 일 두가지로 모두 바빴다.

사람들과 엄청 이야기 많이 하고,
사방에 전화하고, conference call 하고, 새로운 사람들 무지하게 만나고,
크고 중요한 meeting들 organize도 하고,
특허도 쓰고,
새로운 특허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도 하고,
그러면서 그냥 또 일상은 일상대로…

이번주에 벌어지는 중요한 일들 때문에 나는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더 정리해야 하기도 했다.
오늘 미팅 몇개 넘기고 나면 주말인데…

I need a break.
이번 주말에는 혼자서 밀린 공부들을 좀 하면서 relax 할 여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바울을 생각하며

N T Wright이 바울 전기를 썼다.
참, N T Wright은 정말 엄청나다. 이 사람은 내가 읽는 속도보다 이 사람이 책을 쓰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어떤 소문에 의하면, N T Wright은 양쪽에 타이핑을 하는 두 비서를 앉혀두고서 양쪽의 사람들에게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해주면 두 사람이 타이핑을 하고 그렇게 한번에 두권의 책을 쓴다고… (설마 그럴리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나온걸 보면서 잠깐 바울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바울은 가만보면 정말 완전 goal-oriented person이다. 완전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고, 완전 열정 넘친다. 강한 신념도 있고, 고집도 세다. 그래서 충성심도 엄청나다. 아마 바울은 군대에가서 기합을 주면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받았을 것 같다.

내가 바울과 같은 성품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건 사실 좀 자신이 없다. 워낙 바울은 넘사벽의 넘치는 에너지가 있어서…
그런데 적어도, 나는 바울과 같은 성품을 매우 동경하고 추구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바울의 논조가 정말 마음에 든다.
가령 로마서 8장같은 건 정말 읽으면서 가슴이 뛴다. 바울이 심장박동이 정말 들리는 것 같다.
고린도전서 15장 같은 것도 숨이차도록 몰아쳐 한번에 읽으면 마치 내 가슴이 터질것 같이 느껴진다.
에베소서 1장의 기도같은 것도 그렇고, 빌립보서 2장도 그렇고…

그런데,
바울과 같은 성품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혹은 바울과 같은 성품을 그렇게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본문들을 그렇게 읽을까?
오히려 그런 본문들은 살짝 부담스럽고, 대신 요한일서 4장 후반부같은 것이나, 아니면 시편23편같은 것이 훨씬 더 마음에 다가오지 않을까.

바울은 어쨌든 신약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무지하게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는데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읽는 사람의 성품이 그 바울의 성품과 잘 match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는것 자체가 더 힘들지는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정말 중요하지만, 성경이해를 위해 바울에 몰빵하는 것에는 그런 위험성도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바울을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은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정부분 치우치거나 왜곡되어있지는 않을까?

기복신앙과 고난

지난 주말에 교회 소그룹에서 기복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나는 그룹에서 함께 기복신앙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가 뭔가 계속 찜찜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정말 꼭 되어야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은 것 같은 생각.

그래서 기복신앙에 대해 며칠 더 생각하면서, 기복신앙이 설명해낼 수 없는 가장 헛점은 어둠의 시기 / 고난 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어둠의 시기를 지나면서 마음이 망가진다. 그렇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고난이 그 사람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기복신앙은 이걸 설명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어둠의 시기를 지날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한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걸까,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렇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고난의 시기를 지날때 하나님에게 이야기한다.
(Instead of talking about God, he/she talks to God)
기복신앙은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어둠의 시기를 지나며 얻고자하는 최상의 것이 그 문제의 해결이다. 그렇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고난/어둠의 시기를 지나며 얻게되는 것이 하나님 그분이다.
욥이 고난의 끝에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이것을 잘 나타내어준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기복신앙에서는 이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의 시기에, 중심에 자신을 가져다놓고 그로부터 생각을 펼쳐나간다.
그렇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고난의 시기에, 자신을 객관화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절대화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기복신앙은 자기중심성의 산물이지만,
진정한 신앙은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신자를 해방시킨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지난 주말,
내가 좋아하는 형과 짧게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
잘 지내냐, 뭐 그런 안부도 없이 그냥 틱~ 요건만 간단히 ^^

그 형이 내게 무슨 부탁(?)을 하는 것이었는데,
뭐 그래도 괜찮겠느냐는둥, 해주면 고맙겠다는둥 그런 말 없었다.

오승아,
이거 네가 좀 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 형이 부탁한대로 했다.

그 형이 그렇게 내게 이야기한건,
그냥 아주 당연히… 그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한 사람에게 당당하게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할수 있는거다.
명령조가 되어도 좋고, 그 사람 사정 다 봐가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나도 그 형이 그토록 사랑하는 그 하나님을 눈물 핑 돌도록 사랑하고,
그 형도 내가 마음 다해 섬기는 그 하나님을 고집스럽게 섬기고 있으니까.

그런 형이 있어서 참 좋다.
그런데 그런 형이 너무 멀리 있어서 아쉽다.

순교와 일상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이다.
특히 신약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이미 박해와 순교가 시작되고 있었고, 신약성경에는 그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나는 신앙의 일상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 신앙의 일상성이라는 모토가 내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으로 신앙의 일상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신앙의 일상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앙을 상수로, 일상을 변수로 놓고 방정식을 푸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변수로, 일상을 상수로 놓고 방정식을 풀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히 일상을 긍정하고, 이미 형성된 일상에 신앙을 녹여보려는 시도를 한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런 신앙과 순교의 신앙은 과연 병립가능한 것인가?

당연히 모든 사람이 순교자가 될 필요는 없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의 연장이 순교라는 논리적 전개가 불가능하다면,
나의 일상은, 그리고 나의 신앙은 변질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도 트럼프가 나올까?

미국에서 트럼프는 잘나간다.
나는 정말 그 사람 참 보기 싫어하는데… 뭐 그래도 잘 나가는걸 어떻게해.
트럼프는 사실상 중간선거도 이겼고, 이대로라면 대통령도 연임할 것 같다.

막말도 하고, 자기편만 끌어당겨 갈라치기 하고…
그래서 그런 비슷한 정치인으로 한국에서 홍준표를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트럼프가 뜨게된것은 사람들의 ‘분노’였다.
자기들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어가는것에 대한 분노,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것을 자극적, 분리주의적, 극우적 언어로 풀어낸 사람이 트럼프이고,
그것은 논리적, 이성적, 좌파적 언어로 풀어낸 사람이 샌더스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
한국의 양당정치체제가 공고해서 그것을 깨어버리는 버려야한다는 대중의 분노가 그렇게 쌓여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분노는 the established, 즉 기존 체제에 대한 분노이지만,
한국의 분노는 일종의 기득권에 대한 분노인데, 지금의 집권세력은 기득권세력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것을 1년 반이 넘게 계속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한국도 미국도 사람들이 정말…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태도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비이성적 선택을 했고, 한국은 그보다는 조금 더 이성적 선택을 했다.
(아니면 그런 비이성적 선택의 option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나는, 만일 지금 한국의 집권세력이, ‘기득권’에 대한 대중/민중의 분노를 제대로 읽고 그것에 맞추어 행동하지 않는다면,
결극 지금 집권세력도 ‘the established’로 여겨져 트럼프같은 사람에게 힘도 못쓰는 지금의 민주당같이 되어버릴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이대로는 못살겠다. 이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노가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다루어내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한국에서도 트럼프같은 사람이 나오는 비극이 생길수도 있다고 본다.

권위, 폭력, 복종, 자유

1.
현대철학은 (적어도 그냥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수준에서의 현대 철학은) 모든 권위를 폭력적이라고 보는 듯 하다.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강제(coercion)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런류의 생각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2.
그런데…
우선 이 논리는 스스로 모순을 가진다.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무엇이든 강제할수 없다는 명제는 무슨 근거로 강제하는가?
거부해야한다는 그 권위 자체를 이미 화자가 전제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냥 shallow한 수준의 소위 ‘깨인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내적 통일성을 갖지 못한것 같아 보인다.

3.
정말 물어야 하는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권위가 올바른 권위인가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올바른 권위에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형태가 될것인가 하는 고민이 따라와야 할테고.

4.
나는 현대 기독교에서 이런 권위를 잃어버린것 같이 느껴진다.
권위라고 하면 그냥 종교적 딱딱함만이 연상이 되고,
정말 그것에 복종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권위가 그냥 사라져버린것 같다.

5.
나는 그렇게된 아주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를,
‘Lordship’의 부재로 본다.
결국 절대적으로 합당한 권위를 드리고 그것에 순종해야하는 대상에게 제대로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외의 모든 권위와 복종 관계가 다 mess-up 되어버린 것이다.

6.
그리고 그런 권위에 대한 이해와 순종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준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급’을 선호하는 이유

최근에 몇군데 인터넷에서 읽은 글들과 혼자 생각을 짬뽕해서…

한국 사람들은 ‘고급’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좋고 나쁘고 하는 가치판단을 떠나서)

한국은 도로사정에 비해서 차의 크기가 큰 편이고,
도로사정이 좋은 미국에서 ‘중산층’이 타는 차는 소나타급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이제 그게 그랜저가 되었다지.

또 한국에서는 ‘명품’을 유난히 많이 추구하는 것 같고,
각종 광고들을 보더라도 ‘luxury’를 많이 강조하는 것 같다.
옷, 집, 자동차, 음식점 등등..

그런데,
그게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속물’이어서 그럴까?

나는 그런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훨씬 더 정이 많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문화들에 비해 가치(이익과 대비되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유난히 ‘고급’ 혹은 ‘luxury’가 뜨는 걸까?

내 생각엔,
한국이 너무 많이 획일화 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주 어릴때부터 한가지 기준으로 평가받고,
한가지 기준으로 줄을 세워지고,
똑같이 생긴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 살고,
똑같은 형태의 lifestyle을 가지고,
똑같은 형태로 자녀교육을 시킨다.

그래서 거기서 뭔가 ‘특별함’을 추구하기위해서는 ‘고급’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게되는 것이 아닐까.

반면,
모두가 한가지 기준으로 줄을 서도 되지 않는 문화라면,
누구는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누구는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누구는 흑백의 옷을 입는 문화라면…
그러면 자신만의 개성이 존중되기 때문에 굳이 ‘고급’이 아니고도 특별할 수 있는 거지.

나는 고급을 추구하고, 성공을 추구하고, 출세를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문화가 기독교의 최대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기독교에서만이라도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함을 좀 더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어떨까?
신학적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고, 좌파와 우파가 함께 하고, 펑크머리와 포마드머리가 함께 하고, 찢어진 청바지와 나비넥타이 정장이 함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