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으로 다시 생긴 병 (5)

박사과정 마지막 즈음부터, 그 이후 직장을 잡고 나서,
나는 정말 꽤 열심히 살았다.

늘 승승장구했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늘 성실하게 살았다.
나름대로 integrity를 지키면서 살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다.

그러면서 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나 소방관같은 정말 이 사회에서 없으면 안되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훨신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데,
내가 정말 그런분들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내게 반복해서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유치원 선생님의 어떤 작은 사랑의 행동 하나는 아이들의 삶 전체에 평생 영향을 줄수도 있을 거다.
정말 말도 다 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impact가 있는 중요한 일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종의 ‘죄책감’이랄까… 그런 것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성실함’과 ‘integrity’를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key로 삼고 살고 있다.
그것이 예수 이름으로 생긴 병을 manage하는 내 방법이었고 꽤 잘 작동해왔던 것 같다.

예수 이름으로 다시 생긴 병 (4)

내 첫번째 열병은 대충 박사과정을 마무리할때쯤 조금 사그러져갔던 것 같다.
어쨌든 막판에 논문을 쓰면서 그것 자체에 몰입하기도 했었고,
나름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 나름대로의 일종의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으로 검증하고 그것으로 일종의 현상의 규칙을 발견해서 정리하는 일이 꽤 재미있었다. – 컴퓨터 게임 스테이지 클리어 하는 기분.

그러면서 나는 어쨌든 더 열심히 몰입 하는 일종의 리듬을 어느정도 찾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이런 일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에 따르면 내가 지금 이 땅에서 일상으로 하는 일들이 의미가 있고,
‘somehow’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것.
그러니 내가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한 일이다.

어떤 성취와 성공을 추구하기 보다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integrity를 가진다는 차원에서,
성실함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당장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자.


이렇게 정리한 내 생각이 궁극적으로 내 첫번째 열병 -예수 이름으로 생긴 병 의 증상을 치료하는데 결국은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내게있어 내 삶을 지탱해가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예수 이름으로 다시 생긴 병 (3)

나의 이 ‘병’은 심지어는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할때도 계속되었다.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다. 그건 그냥 하면 되는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하고싶지는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내 삶의 훨씬 더 큰 가치가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충분히 가치있지 않은 것에 내 모든 것을 던져 노력한다는것이 불편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나는 이 병 증세를 대충 한 10년쯤 앓았던 것 같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물론 내가 나름대로 접하고 공부했던 기독교가 그렇게 이분법적인/이원론적인 기독교는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고 있었고, 기독교 세계관 열심히 공부했었고,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이 읽었고, 심지어는 내가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그렇게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나를 계속 붙들어매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박사도 마치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겠지만,
그건 한편으론 그냥 일종의 내 ‘개인기’였고, (내가 잘하는건 그저 공부였으니…ㅠㅠ)
또 다른 한편으론 운도 좋았다.

예수 이름으로 다시 생긴 병 (2)

그러던 와중에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우아, 세상이 달라졌다.
예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소망이라는 것이 생겼고,
예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알게된 복음이 너무 대단하고 감격적이어서, 정말 몇달을 매일 울었다.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정말 아주 짧은 시간에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드디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내 목표와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복음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그때 내 느낌은… 마치 ‘나’라는 지극히 제한된 존재 안에, 우주의 신비가 침투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가 다 담을 수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면서 내가 거의 터질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나니…
내 일상의 웬만한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컴퓨터 게임의 스테이지를 깨는 것 같이 하고 있었던 (그러나 몹시 열심히 하고 있었던) 공부도 뭐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니, 내가 온 우주의 진리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까짓것이 도대체 내게 무슨 의미냐…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나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때 참 힘이 들었다.
공부라는게 늘 잘 해오던 일이니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할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예전처럼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일종의 무기력감이랄까 그런것이 나를 짓눌렀다.

이것이 내게있어 ‘예수 이름으로 생긴 병’이었다.

예수 이름으로 다시 생긴 병 (1)

예전에 eKOSTA에 아마도 김연종 교수님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수 이름으로 생긴 병'(?) 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그 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것이나 직장인으로서 일하는 것에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을 그분은 예수 이름으로 생긴 병이라고 불렀던 것같다. (그 원래 글은 내가 더 이상 찾을수 없게 되어버린 듯 하다)

나는 20대 초반~후반에 그 병을 아주 심하게 앓았다.

나는 나름 어릴때부터 꽤 삶에 자신이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꿈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다보니 그냥 공부가 생각보다 별로인거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공부 자체는 재미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중간고사/기말고사가 즐거웠다. 뭔가 내게 도전을 해오는 적을 해치우는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해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연구’라는 것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대학때 보니 소위 연구라는 걸 하는게 너무 다 그냥 소소해 보였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고, 어떤 연구는 정말 너무 별것 아닌 것을 별것인 것으로 포장해서 세상에 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과연 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뭔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별것 아닌 것을 별것인냥 포장하는 연구자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뭐 그런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저 공부하는 내내 (심지어는 박사를 마칠때 까지)
그 공부를 통해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보다,
그저 게임의 스테이지를 깨는 것 같은 기분으로 공부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공부를 꽤 잘하긴 했지만,
그리고 공부를 꽤 잘했으니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를 가지고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웃음 (3)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은 또한 무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한된 경험때문에 많은 것이 새롭고, 그것은 늘 새로운 자극이 되는 것이겠다.

그렇지만 경험도 많아지고, 지식도 쌓이고나면 이미 반복해서 경험한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으니 웬만한 것으로는 예전과 같은 자극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일 것.

그러니, 아마도….
창세기 21장에 사라가 이삭을 낳은 후 한 이야기는
사라가 혼자서 말하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나 같은 늙은이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지”

100살이 다 되어서 아이를 낳는 말도 안되는 일쯤 되어야, 사라 같은 할머니도 웃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아직 민우는 자지러지도록 웃는 웃음을 더 많이 갖게되길 바란다. 아직은 미숙하고, 아직은 젊으니까.

그러나,
내겐 이제 웬만한 것으로는 그런 웃음이 다시 다가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100세에 아이를 낳는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니고서는.

기적이 없다고 믿지는 않지만,
기적이 일상이 되어 늘 그런 웃음을 다시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웃음이 아닌,
나이에 더 어울리는 즐거움 (joy)를 더 깊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웃음 (2)

예전에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은 코메디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고.

대충 어머니가 지금 내 나이 쯤일때 하셨던 말씀이었던 것 같다.

나도 역시 그렇다.
웬만한걸 봐도 그렇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우스운 TV 프로그램등을 보고 소리내어 웃었던 것이 언제였던가를 생각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자극에 둔감해지게 되어 그렇게 된 것 같다.

경험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니, 그리고 노년이 되면 노화로 인해 도파민의 분비가 20대에 비해 절반까지도 떨어진다고 하니 그런 영향이 많이 있겠지.

개인적으로 그렇게 코메디 프로그램을 재미있어 하지 않는 것이 많이 아쉽지는 않다.
나는 아마 그런 것과는 다른 쪽에서 자극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작은 웃음거리에도 반응을 했던 일종의 자극에 대한 민감성을 잃어버린 것이,
일반적으로 내가 sense of wonder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지… 고민이 되기는 한다.

웃음 (1)

지난주,
동네에서 노는 어떤 어린아이 (아마도 두살정도나 되었을까)의 웃음소리를 한참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소리였다.

흔히 머리속에서 그려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풀밭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아이가 까르르르 웃는 소리를 계속해서 유도하고 있었다.
그 똑같은 행동에 그 아이는 그 웃음의 강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스무번이고 서른번이고 똑같이 재미있어하면서 웃고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이가 거의 숨이 넘어갈듯한 소리를 내면서 엄청 웃으며 주저앉았다.
엄마는 그제서야 별것 아닌 그 행동을 멈추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우리 아이의 저런 웃음을 언제 보았던가.
예전에 우리 민우도 저렇게 밝게 웃고 까르륵 까르륵 장난도 많이 쳤는데,
이제는 내 앞에서는 그저 미소를 짓는 정도로만 웃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으로 한 기도는,
우리 아이가 꼭 내 앞이 아니어도 좋으니 여전히 저런 웃음을 삶속에 가지고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A Good Commencement Address

Conan O’Brian이 금년 Harvard 졸업식에서 commencement speech를 했다.
내가 들어본 commencement speech 중 가장 좋은 몇개중 하나였다.

아주 좋았던 포인트 몇가지.

  1. 어떤 것에 대한 비판이 직설적이지 않았다. 코메디언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가령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에도 웃음을 섞어서 아주 멋지게 해냈다. 직접적인 비난이 아니라 풍자와 웃음이었다.
  2.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풀어놓는데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았다.
    이 사람도 역시 Harvard 출신이고,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게다가 기존의 코메디언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것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했다.
  3.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
    Harvard 졸업생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했다. 이것은 결국 이 speech의 결론이기도 했다.

    So maybe my wish for you is not that Harvard becomes the last thing people know about you,
    but instead that Harvard becomes the least important thing people know about you.

    Because your real education starts now, with friends you’ve made and friends you’ve yet to meet, with stunning successes and miserable defeats, and with a humble acceptance that your greatness comes from the mess around you, not despite it.

    이 연설은 가령 Steve Jobs가 Stanford에서 했던 commencement speech와 비교했을때, 비교할수 없을 만큼 격조있다.

그건 어쩌면…
실패를 성공으로 극복한 사람과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여 성공의 일부로 만들어낸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My manager has been laid-off

내 manager G가 어제 날짜로 갑자기 layoff 되었다.
Layoff를 두번 경험해본 나로서는 G가 어떻게 이걸 handle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수요일 잠깐 G를 본 이후 인사도 못한채 그냥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회사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런걸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농담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고, 함께 열받기도 하는 과정을 그래도 지난 6개월 정도 보내면서 나름 정도 들었는데….
그냥 회사의 모든 system으로부터 G가 block되어 버렸고 G의 자취가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G는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이었다. 60대 초중반 정도. 손자손녀도 있는 할아버지이고.
Armenia 출신인데 그래서인지 유난히 지중해쪽 음식을 많이 좋아했다.
나이에 비해서는 매우 건강해서 먼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가끔씩 자기 돈으로 팀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존재가 그냥 그렇게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G에게 text message를 보냈다.

조만간 그래도 회사 몇사람들을 모아서 G와 점심을 한번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