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정상적인 지혜

회사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미팅을 All-hands meeting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두주에 한번 정도 All-hands meeting을 한다. 그때그때 회사의 중요한 내용을 직원들에게 update해주고,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갖는다.

어제는 회사 level에서 딱이 update할것이 없었는지..
유명한 사람을 불러다가 우리 회사에있는 또 다른 유명한 사람과 대담을 하나 했다.
우리 회사에 와서 의료쪽 일을 한지도 벌써 5년가까이 되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이쪽이 영 익숙하지 않다. ㅠㅠ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그것도 몰랐고…

coronavirus와 관련되어 medical industry가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는데 내가 듣기엔 뭐 아주 대단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몇가지 아하…하고 좀 신선하게 생각하게된 것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냥 무난하고 아주 정상적인 지혜를 나누어준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정상적인 논리와 지혜로 상황을 파악하여 이해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뭐 다른 여러 세팅에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채 그냥 그때 그때 든 생각을 대단한 것인냥 이야기하는 리더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좀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정상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것 자체를 당연히 여길 수 없는 blessing인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blessing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일단 엉뚱하고 바보같은 논리나 이야기로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겠지

24시간이 모자라

선미라는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노래를 들어보지는 못했었다. 어제 그래서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youtube에서 들어보니, 꽤 야한 노래더구만.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24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그런 이야기 + 꽤 성적인 이야기가 섞여 있는 건데…

사실 나도 늘 그렇다. 하루가 24시간 보다 더 길면 참 좋겠다 싶을때가 많다.
그게 내가 엄청 바빠서 그런것 같지는 않고, 사실 시간을 잘 사용하면 충분히 다 하고도 남을만한 일들이니…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많은 시간을 쓰지 못하고, 내가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어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그저 너무 하고 있는 일이 많아 24시간이 모자르게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어떤 가치나 대상에 대한 사랑이 커서 24시간이 모자르게 살기도 한다.

그리고, 가치나 대상에 대한 사랑이 커서 시간이 모자른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에 자신의 사랑을 주며 시간을 쪼개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위해서 시간을 쪼개쓰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24시간이 모자르게 사는 사람들중에서도, 아주 일부만 건강한 모자람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늘 그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딱 자신을 하기는 어렵다.

Priority

삶의 우선순위는 그 사람의 가치를 잘 드러낸다.
아무리 가족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을 하더라도, 실제로 우선순위가 늘 일에 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말은 헛된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사실 삶속에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그리 중요한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면 그 말은 그냥 헛된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 취미활동, 기호식품, 여행 등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도 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long term plan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적 성숙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영적 성숙에 그만큼 관심이 없는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타협함없는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희귀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환대와 우정

환대(hospitality)와 우정(friendship)
어제밤 늦게까지 교회 소그룹에서는 환대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환대가 우정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bay area의 문제는 환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boundary를 너무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 privary를 accountability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등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깊은 영적우정(spiritual friendship)을 가지게된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환대(hospitality)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환대가 무시될수는 없겠지만, 환대와 우정을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낮은 기준이라고나 할까.

소그룹에서의 반론도 있었다.
그 반론에서는 우정을 위해서 환대가 그럼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boudary를 침범해들어갈수 있는 허가는 결국 hospitality가 오래 쌓인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깊은 영적우정 중에는 hospitality의 과정을 별로 많이 지나가지 않았던 경우들이 분명히 있다.

게다가 hospitality = niceness 라고 여겨질수있고 (물론 hospitality가 niceness가 아니라고 설명할수 있겠지만..)
나는 bay area와 특히 우리교회에서 niceness / 친절함 / 예의바름은 우정의 아주 커다란 적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깊은 이야를 나누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사실 이런 이야기는 목사님과 교회 리더십과 더 해야하는 이야기일 지도….
그러나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게될것 같지는 않다. ^^

회사 Office에 나가기

우리 회사는 healthcare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다. 각종 medical device (의료기기)들을 만들기도 하고, 관련된 sotware system을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최근에는 insurance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COVID-19 때문에 최근에는 여러가지 타격을 꽤 많이 받고 있다. 우리에게 payment를 해야하는 회사들이 제때 payment를 하지 못해서 받는 타격들도 꽤 있다.
우리도 layoff도 있었고, 하던 project가 cancel되는 일들도 꽤 많다.
반면 COVID-19 이전에는 거들떠도보지 않던 것에 뛰어들어서 그 일에 엄청 열심히 매달려서 하게되기도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요즘 회사에서 꽤 여러개의 product를 커버하게 되어서 일이 좀 난잡하게 많다.
그러다보니 회사 office에 일주일에 한번정도씩은 가야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나는 lab에서 직접 일을 하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에 혹시 회사에 가더라도 몇시간만 잠깐 있다가 오곤 한다

회사에는 대충 전체 인원의 20% 정도를 동시에 office에 올 수 있는 최대 인원으로 정한 것 같다.
우리 회사에 있는 변호사들이나 다른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전혀 회사에 오지 않으나, 나 같은 엔지니어들은 그래도 꽤 심심치않게 회사에 나오곤 한다.

회사에서는 나처럼 회사 office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자신의 건강상태를 report 하도록 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COVID-19 검사를 받게하고 있다. 우리 회사 내에 검사할 수 있는 system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검사를 거의 언제나 바로 받을 수 있고, 몇시간되지 않아서 결과가 나온다. 나도 대충 한주에 한번씩은 검사를 받고있다.

회사에서 주는 밥도, 예전같이 부페식이 아니라, 일종의 ‘도시락’같은걸 미리 싸서 집어가게 한다.
회사 내에서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고, 6 feet 거리두기도 지켜야한다.

예전에 회사에서 주던 각종 과일등의 간식은 모두 없어졌고, 봉지안에 들어있는 chip같은 것들만 제공된다. 자기가 만들어 먹을 수 있던 espresso machine도 다 없어졌고, 자판기같은 데서 나오는 커피만 마실 수 있다.

office의 그런 모습이 전혀 이상하거나 낮설지 않다.
그냥 당연히 그런거려니…. 그냥 그렇게 생각된다. 이게 그냥 요즘은 당연한 정상상태인거다.

박사공부를 다시 하라면?

박사를 하면서 새롭게 더 배우는 것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지 않다. ㅠㅠ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배우는 것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연구를 하나 해보는 것이 박사과정의 핵심이므로.
반면, 전공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석사를 마치면 그 분야에 어느정도의 훈련은 받게되는 효과가 있어 어느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학부에서 배우는것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것과는 꽤 수준이 다른 것을 배우게된다. (그냥 내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공부를 함으로써 뭔가를 더 얻게되는 효용성으로보면 내 생각엔,
학사>> 석사 > 박사
이런 정도가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한 것을 가지고 현실에서 사용하는 정도로 보면… 이게 또 좀 다른 것 같다.

워낙 직업에따라 차이가 크고, 또 전공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순화 시켜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그냥 내가 일하는 분야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보자면,

학사 공부를 한것의 현실에서의 실용적 가치를 10쯤으로 잡는다면,
석사 공부를 한것의 현실에서의 실용적 가치는 12~13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박사공부를 한것의 실용적 가치는 정말 별로 없는 것 같다.

엄밀하게 말해서 박사는 그 사람이 다른 연구자를 길러낼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계속 석박사과정을 길러내는 대학의 교수가 되는데에는 박사공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런데 교수말고는 다른 직업에서 정말 박사가 꼭 필요한가… 별로 그런것 같지 않다.

그런의미에서 적어도 내가 있는 동네에서보면 사람들이 쓸데없이 공부를 많이한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우리 회사에서는 박사학위 2개있는 사람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

다만,
박사학위를 한 사람이 갖는 한가지 qualification은 끈기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최소한 3~4년, 보통은 5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기간동안 꾸준히 뭔가를 붙들고 있었던 경험.
그런 의미에서 역시 박사는 리더를 만들어내는 교육이라기 보다는 좋은 중간관리자, 혹은 좋은 follower를 만들어내는 교육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일, 내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박사공부를 했을까?
음…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아마도 또 하겠다고 할 것 같기는 하다.
그 이유는, 내 resume에 박사했다고 쓸수 있다는 것 말고는 대가 별로 내세울 다른 장점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뭐 그렇다.

블로그 글쓰기

10년 넘게 거의 빠짐없이 하루 글 하나 쓰기를 해왔는데 최근 두어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사일도 나름대로 뭐 늘 그렇듯 밀려있기도 한데다,
최근에는 주중에 온라인으로 하는 소그룹 성경공부나 다른 강의들이 많아졌습니다.

월요일 저녁은 adhoc으로 회사 conference call들이 좀 있고,
화요일 저녁에는 제가 인도하는 소그룹 하나와 회사 conference call이 저녁에 있고,
수요일 저녁에는 제가 인도하는 소그룹 성경공부가 있고,
목요일 저녁에는 교회 온라인 기도모임과 회사 conference call이 있고,
금요일, 토요일은 쉬고,
주일 저녁에 다시 제가 인도하는 소그룹 모임 하나가 있고, 바로 이어서 교회 소그룹 모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어쩌다 교회 다른 모임, 회사의 다른 급한 conference call들이 잡히는 일이 많아 저녁시간이 일주일 내내 빡빡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저녁에 그렇게 성경공부나 소그룹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한 준비가 꽤 많이 필요합니다.

블로그 글쓰는게 하루 5분~10분 정도 시간을 쓰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 5분만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여러 생각들을 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최근에는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야할 시간에 강의와 소그룹 성경공부 준비를 해야해서 글쓰기가 잘 되지를 않습니다.

별볼일 없는 블로그여서 독자들에게 뭔가 대단한 글을 나눈다는 생각보다는,
내 자신이 계속해서 성실하게 생각과 고민을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블로그를 해 왔는데,
최근엔 그 성실함을 compromise 해야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성경말씀을 나누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당분간 매일 글쓰기는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빠, 하나님 (4)

나는 민우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 참 노력을 나름대로 많이 했다.
그 노력이 다 긍정적인 효과만이 있었던것 같지는 않다.
내 동기와 노력의 정도와 무관하게 민우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준 일들도 참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일반적으로 평가해보았을때 몇점이나 받을 수 있는 아빠일까.
전체 평균보다 더 좋은 아빠일까.
이런걸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긴다는게 좀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 굳이 뭐 몇점짜리라고 이야기하는게 무의미한 일이겠다.

그렇지만 아주 나쁜 아빠였다고 등급이 매겨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내가 머리 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내가 좋지 못한 아빠였던 여러가지 측면들이 꽤 많다.

내가 아주 좋은 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아빠들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꽤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 꽤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

그런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아빠라고 자리매김하신 것은,
꽤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 위험을 감수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라오면서 자신의 아빠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인간 아빠를 하나님의 모습에 투영시키는 것은 그렇게까지 좋은 투영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빠로 자리매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 이에대해 딱딱한 신학적 이야기를 해볼수 있겠지만…
그냥 그게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아니, 민우가 가지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결국 나로인해 평생 제한되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아빠, 하나님 (3)

민우는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더라도, 떠벌리면서 자랑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떤건 꽤 자랑할만해보이는 것도 그냥 입을 딱 다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랑거리를 아빠 엄마에게는 사소한것도 꼭 자랑을 많이 하곤 한다.
학교에서 시험 잘 본일, 새로 옷을 샀는데 마음에 들면 사진도 찍어 보내고, 교수에게 칭찬을 받은 일, 아니면 다른 친구들에게 선행을 베푼 일까지도. 최근엔 자기가 끓인 찌게나 국, 혹은 빵, 주먹밥 등 여러가지 다른 먹을것들 사진도 많이 보낸다.

요즘은 한주에 paper를 7개 써야하는 꽤 살인적인 work load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매주 하는 영상통화도 요즘은 그렇게 잘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더라도 꼭 오는 메시지가 두개 있다.
하나는 돈 보내달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렇게 자랑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민우가 자랑하는것을 다 받아 축하해주고 잘했다고 칭찬해준다.
그럼 민우는 그걸 기쁨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도 가끔은, 그렇게 하나님에게 가서 하나님… 나 이거 이렇게 했는데 이런건 좀 칭창해주시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좀 여쭈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나는 하나님과 그렇게까지 친밀하지는 않은 듯 하다.
내 자랑거리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쪼로록 달려가서 그걸 떠벌리는 건 하게되질 않는다.

아빠, 하나님 (2)

민우가 3,4살때 그림을 그리면 쪼로록 달려와서 나나 아내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곤 했다.
나는 그게 하도 귀여워서 그럴때마다 민우가 숨막히다고 할만큼 꼭 껴안아주곤 했다.

그러면 민우는 캑캑 소리를 내면서 숨이 막힌다고 그러다가…
내가 좋아주면 또 강아지가 달려가듯 다다닥 자기 도화지로 달려가서 크레용으로 엉터리 그림들을 그려서 쪼로록 달려오곤 했다.

그럼 나는 또 숨이막힌다고 할만큼 꼭 민우를 꽉 껴안아주는걸 반복했다.

민우는 놀라울만큼 그걸 여러번 반복했다.
아무리 엉터리로 그림을 그려도 아빠에게만 가지고오면 아빠가 잘했다고 야단법석을 부리면서 자기를 꼭 안아주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누구든지 어린이와같이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우리의 인생의 그림을 가지고 쪼로록 달려갈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분은 내 재능없음을 탓하지 않으시고 내가 그 그림을 그분께 들고 쪼로록 달려가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인정, 세상에서의 성취, 자아실현등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자신의 그림은 옆집 아저씨에게 쪼로록 가지고가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