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친구의 갑작스러운 연락

이번주, 내 학교 후배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뭐 후배라고는 하지만 나이 차이도 한살밖에 나지 않고, 사실 그냥 친구다.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보지도 못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삶과 신앙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참 좋은 친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내 블로그를 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와 계속 소통하면서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나도 그 친구는 그래도 꽤 자주 생각도 하고,
그 친구를 좋은 신앙인의 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열심히 예수님 믿으면서 살고 있는 그 친구 덕분에,
나도… 그래, 그렇게 성실하고 신실하게 믿으며 싸우며 사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좀 더 그렇게 살아야지…
뭔가 흐트러진 내 자세를 다시 가다듬었다.

현재 내가 겪는 AI

  1. 나는 coding을 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이제 AI는 없어서는 안될 도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정말 대단히 많은 coding이 AI에 의해서 되고 있고, 그 범위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나는 그쪽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이게 어떻게 발전해갈지, 어디까지 그 범위가 넓어질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국은 coding이라는 기술적 혹은 기계적인 일을 하는 것 보다는 그 coding이 만들어내는 그림 자체를 그려내는 사람들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일단 학교를 막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는 소위 주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필요가 현저하게 줄어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던 컴퓨터 사이언스쪽 전공 졸업자들이 직장을 찾는게 어려움을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2. 내가 하는 일들은 우리가 개발하는 어떤 물건이 제대로 개발되도록 다른 회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여러가지를 조정하고 실행해나가는 일들이다.
    하는 일들이 루틴하게 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쪽에는 그런 AI에 의한 충격이 그렇게 직접적이고도 빠르게 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현재 까지는.
    그렇지만 회사에서도 여러가지 AI tool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많이 권하고 있다.
    Google에서 만드는 tool들은 그곳에 data를 올려서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고 있고, 제한적이지만 나도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그런 tool들을 쓰기 시작하고 있다.
  3. 이번주에 있었던 Google I/O는 참 흥미로웠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Google이 이제는 main search에 AI를 더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AI는 컴퓨팅 파워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search가 이루어지는 그 google의 main search에 Gemini를 incorporate해서 쓰기 시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많이 발전시켰다는 것 뿐 아니라, 그 기술을 상업적으로 큰 스케일로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어서,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search와 광고는 Google이 돈을 버는 주된 수입원인데, 그것에 AI를 넣어서도 여전히 그 돈을 벌 사업방향등이 어느정도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perplexity같은 곳에서 google은 절대로 search에 AI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건 결국 제살 깎아먹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Google은 그걸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도 이 큰 회사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이야기다.
  4. 나는 결국 Google의 여러가지 AI tool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아직은 초보수준이지만 그래도 도움을 얻는 일들이 꽤 있다. 내 일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5.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 바, AI는 매우 급격하게 현실과 현재가 되어가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세가지 팁

민우와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했던 이야기.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많은 20대들에게 삶의 의미가 너무 좁게, 작게 형성되어있다.
많은 경우 삶의 의미가 자아실현과 자기발견등에 매물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너무 극소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공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야말로 ‘평범함’이라는 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 속에서 자아실현이라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세가지 정도가 도움이 된다고 본다.

첫째,
내 삶의 의미가 내게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큰 스토리의 일부이다.
그 스토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의미가 있다.

둘째,
초월성(trancendence)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설명하고 정복하고 다스리지 않는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에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능동적인 삶과 피동적인 삶의 균형을 잘 찾는 것이다.
내가 control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혜롭게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저 피동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기독교가 지금 이 의미없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소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20-30대의 영적 우울증

내가 20-30대 청년들에게 많이 하는 말.

  1. 내가 보기에 현재 20-30대 그리스도인중 다수는 일종의 영적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세상 삶을 살때는 열심히 빠릿빠릿 살다가도, 신앙의 영역에만 오면 무기력하게 행동하는 것을 자주 보곤 한다.
  2. 이런 현상은 그냥 일부의 20-30대에서 보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매우 다수, 어쩌면 대다수의 20-30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것 같다.
  3. 그렇게 된 이유로 나는 두가지를 든다.
    첫째, 이들에게 신앙이 지나치게 개인적이다.
    신앙이 자기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 삶을 객관적으로, 혹은 초월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신앙의 모든 기준과 중심에 ‘나’가 있고, 결국 모든 신앙이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신앙이 결국 내 안에서 함몰되어 버리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이들에게 신앙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다.
    결국 신앙의 경험이라는 것이 찬양을 부르며 눈물 찔끔 난다거나,
    내가 힘들때 누가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경험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거나 지성적인 신앙의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니 감성의 영역에서 계속 흔들리면서 자신을 이겨내는 일이 드물게 나타난다.
  4. 나는…
    조금더 건강하고 균형잡힌 신앙은 이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활력과 삶의 의미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Anxiety, Depression, Mental health

다음주부터 교회에서 불안장애, 우울증등과 같은 정신건강에 대한 내용으로 설교 시리즈를 한다고 한다.
매우 기대가 크다.

내가 알기로 지금 20-30대에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등은 거의 팬데믹 수준이다.
민우와 이야기를 해보아도, 자신을 포함해서 자신의 친구들중 불안,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로 현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바로 심각하게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한것,
또 그 내용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연구하고 전문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contents를 만드는 노력을 한것,
또 그 내용을 전체 교회 식구들과 나누고 이야기하기로 한것.

교회의 이런 노력들에 박수를 보낸다.

에스더

에스더를 예전에 읽을 때는,
에스더의 멋진 신앙의 결단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 뭐 그런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에스더를 읽으면서는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일단 에스더의 배경이 완전 시궁창이다. 쓰레기 같은 왕이 있고, 그 왕의 성적 노리개 비슷하게 불려가게 되는 에스더가 있고, 그 와중에 더러운 정치적 권모술수가 있는데 이게 그냥 정권을 잡고 못잡고 하는게 아니고 상대방을 죽여버리는 아주 잔인한 형태.

거기서 에스더는 어쩌면 상황을 주도할 수 없는 약자이고.

다만 거기서,
왕후께서 이처럼 왕후의 자리에 오르신 것이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를 누가 압니까? 라는 모르드개의 말처럼…
상황이 그렇게 풀렸고,
그저 에스더는 그 상황 속에서 reactive하게 반응 했던 것.

물론 에스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그렇게 하는 결심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에스더는 자신의 control 밖에 있는 훨씬 더 큰 상황의 전개 속에서,
그저 반응해가며…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간 것.

내가 요즘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고 힘들까…
나름대로 하나님께 충성되게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뭔가 상황을 control 하려고 하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당연히 상황이, 세상이, 심지어는 내 자신도 내가 control 할 수 없으니…
마음이 무겁고 힘든 것이지.

그저 벌어지는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내 작은 영역에서만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에스더의 모습이 그런 의미에서 내게 등불이 되어준다.

정말 부럽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입장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가톨릭 신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개신교인이라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은 가톨릭쪽이 참 부럽다.
거기서는 겸손하고, 검소하고, 사려깊고, 지혜롭고, 약자에 대한 사랑이 있는…
가난한 나라에서 오래 사역한 선교사 출신의 사제가 그 전체 교회의 리더가 되었다.

게다가 이분이 영어가 모국어이시니, 나도 이분이 예전에 했던 설교(강론)도 인터넷에서 들어볼 수 있었고,
이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가톨릭을 대표하는 리더는 그런 사람이다.

개신교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는게 정말 어렵다. 정말…어렵다.
가톨릭이 참 부럽다.

성경읽기와 기도

늘 그러면 참 좋겠는데, 당연히 늘 그렇진 않다.
그냥 성경을 읽다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생명력같은 것이 느껴질때가 있다.

대부분,
기도는 내게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깊은 영적 침체에 있을때 기도는 하려고 하면 잘 안되고, 집중하는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들곤 하는데,
성경은 그냥 시간을 들여서 읽다보면 바짝 마른 밭에 작은 물줄기 하나가 졸졸졸 들어오는 것 같이 느껴질때가 있다.

말하자면,
성경말씀은 내게 힘이되는 양식/음식/보양식 같은 느낌이고,
기도는 그런 생명력이 분출되면서 나를 더 생기있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흔히 성경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고,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는데,
성경 말씀이 그렇게 내게 작동하는 것 같긴 하지만, 기도가 내게 영혼의 호흡과 같이 작동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 기도가 좀 잘 못되어 있는 걸까?

복음주의자?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온 몸이 거부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뭐랄까… 내 온 몸의 모든 장기가 고함을 치면서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에 새로 로마 가톨릭 교황이 되신 분이 2012년에 한 인터뷰를 들어보았다.
이분….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내가 따르고 좋아하고 여전히 믿고 있는 그 ‘복음주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내용과 tone이 참 지혜롭다.

더 이상 잘 연락하지 않는 오래된 친구

예전에는 아주 가깝고 친했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을 해도 그 친구로부터 대답이 없다.
조금 어둡고 힘든 시간을 지나가며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 친구가 연락이 없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에게 더 이상 그렇게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그 친구와의 좋은 추억도 있고, 그 친구와 절연을 했다거나 그런건 아닌데….
그냥 그 친구와 관계가 서먹서먹한거다.

그 친구는 하나님이다.

사실 요즘 내게 하나님이 그렇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은 것도 아닌데,
그 하나님과 좀 서먹서먹하다.

그래서 잘 연락하지 않는 오래된 친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느껴진것이 내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매우 자주, 특히 감정의 기복이 지금보다 더 심했던 20-30대에는,
하나님과 소원한 사이를 유지한채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자주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빈도가 많이 줄긴 했지만,
지금 나는 하나님과 좀 그렇다.

예전에 그렇게 하나님과 서먹서먹해졌을때,
그렇게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그분이 내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다시 깨닫곤 했는데…
그냥 요즘은 하나님과 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