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3)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은 또한 무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한된 경험때문에 많은 것이 새롭고, 그것은 늘 새로운 자극이 되는 것이겠다.

그렇지만 경험도 많아지고, 지식도 쌓이고나면 이미 반복해서 경험한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으니 웬만한 것으로는 예전과 같은 자극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일 것.

그러니, 아마도….
창세기 21장에 사라가 이삭을 낳은 후 한 이야기는
사라가 혼자서 말하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나 같은 늙은이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지”

100살이 다 되어서 아이를 낳는 말도 안되는 일쯤 되어야, 사라 같은 할머니도 웃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아직 민우는 자지러지도록 웃는 웃음을 더 많이 갖게되길 바란다. 아직은 미숙하고, 아직은 젊으니까.

그러나,
내겐 이제 웬만한 것으로는 그런 웃음이 다시 다가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100세에 아이를 낳는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니고서는.

기적이 없다고 믿지는 않지만,
기적이 일상이 되어 늘 그런 웃음을 다시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웃음이 아닌,
나이에 더 어울리는 즐거움 (joy)를 더 깊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웃음 (2)

예전에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은 코메디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고.

대충 어머니가 지금 내 나이 쯤일때 하셨던 말씀이었던 것 같다.

나도 역시 그렇다.
웬만한걸 봐도 그렇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우스운 TV 프로그램등을 보고 소리내어 웃었던 것이 언제였던가를 생각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자극에 둔감해지게 되어 그렇게 된 것 같다.

경험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니, 그리고 노년이 되면 노화로 인해 도파민의 분비가 20대에 비해 절반까지도 떨어진다고 하니 그런 영향이 많이 있겠지.

개인적으로 그렇게 코메디 프로그램을 재미있어 하지 않는 것이 많이 아쉽지는 않다.
나는 아마 그런 것과는 다른 쪽에서 자극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작은 웃음거리에도 반응을 했던 일종의 자극에 대한 민감성을 잃어버린 것이,
일반적으로 내가 sense of wonder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지… 고민이 되기는 한다.

웃음 (1)

지난주,
동네에서 노는 어떤 어린아이 (아마도 두살정도나 되었을까)의 웃음소리를 한참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소리였다.

흔히 머리속에서 그려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풀밭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아이가 까르르르 웃는 소리를 계속해서 유도하고 있었다.
그 똑같은 행동에 그 아이는 그 웃음의 강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스무번이고 서른번이고 똑같이 재미있어하면서 웃고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이가 거의 숨이 넘어갈듯한 소리를 내면서 엄청 웃으며 주저앉았다.
엄마는 그제서야 별것 아닌 그 행동을 멈추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우리 아이의 저런 웃음을 언제 보았던가.
예전에 우리 민우도 저렇게 밝게 웃고 까르륵 까르륵 장난도 많이 쳤는데,
이제는 내 앞에서는 그저 미소를 짓는 정도로만 웃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으로 한 기도는,
우리 아이가 꼭 내 앞이 아니어도 좋으니 여전히 저런 웃음을 삶속에 가지고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A Good Commencement Address

Conan O’Brian이 금년 Harvard 졸업식에서 commencement speech를 했다.
내가 들어본 commencement speech 중 가장 좋은 몇개중 하나였다.

아주 좋았던 포인트 몇가지.

  1. 어떤 것에 대한 비판이 직설적이지 않았다. 코메디언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가령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에도 웃음을 섞어서 아주 멋지게 해냈다. 직접적인 비난이 아니라 풍자와 웃음이었다.
  2.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풀어놓는데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았다.
    이 사람도 역시 Harvard 출신이고,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게다가 기존의 코메디언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것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했다.
  3.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
    Harvard 졸업생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했다. 이것은 결국 이 speech의 결론이기도 했다.

    So maybe my wish for you is not that Harvard becomes the last thing people know about you,
    but instead that Harvard becomes the least important thing people know about you.

    Because your real education starts now, with friends you’ve made and friends you’ve yet to meet, with stunning successes and miserable defeats, and with a humble acceptance that your greatness comes from the mess around you, not despite it.

    이 연설은 가령 Steve Jobs가 Stanford에서 했던 commencement speech와 비교했을때, 비교할수 없을 만큼 격조있다.

그건 어쩌면…
실패를 성공으로 극복한 사람과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여 성공의 일부로 만들어낸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My manager has been laid-off

내 manager G가 어제 날짜로 갑자기 layoff 되었다.
Layoff를 두번 경험해본 나로서는 G가 어떻게 이걸 handle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수요일 잠깐 G를 본 이후 인사도 못한채 그냥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회사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런걸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농담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고, 함께 열받기도 하는 과정을 그래도 지난 6개월 정도 보내면서 나름 정도 들었는데….
그냥 회사의 모든 system으로부터 G가 block되어 버렸고 G의 자취가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G는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이었다. 60대 초중반 정도. 손자손녀도 있는 할아버지이고.
Armenia 출신인데 그래서인지 유난히 지중해쪽 음식을 많이 좋아했다.
나이에 비해서는 매우 건강해서 먼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가끔씩 자기 돈으로 팀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존재가 그냥 그렇게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G에게 text message를 보냈다.

조만간 그래도 회사 몇사람들을 모아서 G와 점심을 한번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J 형

지난주에는 J형과 연락이 닿았다.
J형은 석사를 마치고 선교사가되어 지금까지 선교사로 살고 있다.
그 형이 보내주는 선교편지를 그래도 계속 받아보면서 아주 적은 액수이지만 조금씩 헌금하고 있기도 하다.

J형은 내게 처음 성경공부 인도를 해보라고 권했던 형이다.
나는 그 형에게 말도 안되는 말 하지도 말라고 얘기했었다.
(J 형에게 이야기했더니 형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ㅎㅎ)

그 형이 보내오는 선교편지를 읽으보면,
내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신학적 입장에서 선교를 하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아마도 그 형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깊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가능성도 많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형의 삶이 옳다.
그 형이 그래도 자신의 삶을 헌신해서 더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결심은,
정말 옳다.

J 형은 아직 내가 20대 초반의 학생인냥 내게 너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고..
나를 다시 봃 수 있길 바란다면서 이야기했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은 그 형같은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 형의 기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인듯 하다.

J 형의 어떤 생각에 내가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J 형의 그 삶이 옳은 것이다.

노래 (4)

아마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였던 것 같다.
나는 무조건 학교에서 기숙사 방이나 내가 살던 아파트 방으로 돌아오면,
그 당시 가지고 있던 아이와 카세트/CD 오디오세트를 켜고 잘때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보냈다.

나는 정말 노래를 좋아했다.
늘 노래를 끼고 살았고, 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살았다.

좋은 시절에도, 어려운 시절에도, 노래를 계속 불러댔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더라도 나는 내가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를 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가사를 다 알고 있었다.
늘 듣고 부르던 노래들이니까.

운전을 하다가 차 안에있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노래를 듣고, 그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운전을 할때가 많았다. 뭐 나 혼자 운전을 할때면 과하게 소리를 크게 내며 노래를 불렀다. 창문 다 닫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니 뭐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었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에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신앙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모두 노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노래를 어떻게 다시 찾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쉽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많이 그립다.

노래 (3)

두란노 경배와찬양이 시작된 것이 87년일거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는 송정미, 최덕신, 최인혁, 손영진, 박종호 등등의 많은 가수들이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었다.

그렇게 막 교회 내에서 찬송가 이외에 다른 노래들이 들어오면서 청년부에서 참 열심히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서도 캠퍼스 선교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벤치등에 삼삼오오 앉아서 점심 시간에 기타를 치며 몇몇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뭐 전도를 하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했던 것도 아니었고, 무슨 계획과 조직을 미리 해서 한 행동들도 아니었다. 그냥 점심 먹고 잠깐 시간 나니까 몇몇이 기숙사에서 기타 가지고 나와서 날 좋을때 그냥 그렇게 노래를 한 것이었다.

교회 청년부에서 MT같은 걸 가더라도 밤이면 기타 하나를 들고 함께 둘러 앉아서 여러 노래를 불렀다.
누가 찬양 인도를 한것도 아니었다.
누가 기타 치다가 손이 아프면 옆에 아무나 그 기타를 잡고 이어서 쳤다.
그냥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에 대한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런데 요즘 20대도 그렇게 하나?

요즘 대학/청년부가 거의 교회마다 없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저 한 열댓명 모이는 모임에도 앰프와 믹서와 마이크가 준비된다.
그리고 악보를 프로젝터로 벽에 쏘면서 그렇게 노래를 한다.
찬양 인도자와 찬양팀이 그 노래를 인도한다.

물론 그 속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노래들을 찾아 그 노래들이 그들의 삶의 곡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거창한 장치 없이도, 그저 친구들끼리 마음에 맞으면 함께 부르는 믿음의 노래….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

노래 (2)

나도 그랬지만 나와 가까웠던 친구들도 모두 참 노래를 좋아했다.
기숙사 방 두개 건너 하나씩은 기타가 있었고,
그냥 그 방에 가서 아무나 그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애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다.

80년대 후반 그 당시 유행했던 여러가지 노래들이었다.
나름 엄청 인상 써가며, 혹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소리를 질러가며, 심지어는 괜히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며, 그렇게 노래를 함께 불렀다.

친구중 누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면 그 친구와 함께 실연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대학때 연극을 했는데, 연극 공연 즈음엔 늘 연극과 관련된 노래들을 불렀다.
밤에는 괜히 밤 하늘을 보면서 애들과 함께 밤에 부를만한 노래들을 불렀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지만, 술에 취하면 애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렀던 노래들은 지금도 거의 대부분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한 30년 넘게 부르지 않은 노래들도,
지금 다시 그 노래를 떠올리면 그럭 저럭 가사를 기억해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대중가요는 그렇게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BTS나 블랙핑크나 Billie Eilish나 Taylor Swift의 노래를 무슨 수로 따라 부르나….
조금 따라 부르기 쉬워야 할 것 같은 악동 뮤지션이나 아이유의 노래도 완전 난이도가 장난 아니거나 따라부르는 용도의 노래는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

노래 (1)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 대학가에는 노래가 가득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새로 생긴 작은 지방 학교였기 때문에 대단한 흐름이랄까 그런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큰 국립대나 내가 서울에 가서 보는 학교들 앞에서는 늘 대학생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중 어떤 것은 지금은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중 어떤 것은 국가 기념일 행사에서 대통령이 부르기도 한다.

1987년 6월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그 큰 흐름에 내게 기여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작은 지방대의 학생이었지만,
거기서도 학생들이 과모임등으로 술을 마시면 꼭 다 함께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아침 이슬, 흔들리지 않게, 그날이 오면 같은 노래들은 딱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기타를 치며 함께 부르기도 했다.

그건 정말 시대의 노래였다.

그 노래들은 그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제도권의 노래가 되었고,
그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도 제도권에 들어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노래들은 한편 한국을 바꾸어낸 노래들이었다.

아직 스무살이 되지도 않았던 그때 처음 배웠던 그 노래들은 그 당시 사회 문제에 깊게 관심을 갖지 못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여태껏 의미있는 노래로 남아있고,
그 노래를 들으며 지금도 가슴이 뛰거나 눈물이 핑 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