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에 반대하는 기독교 (3)

그렇게 어떤 형태로든 모든 권력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성향과,
권력은 결국 대단한 중독성과 흡입력이 있어서 권력에 취한 사람들이 멈출수 없이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는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을 아주 잘 드러내는 것이 Lord of the Rings (반지의 제왕)이다.
나는 책으로는 읽지 않고 영화로만 봤는데,
도대체 거기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왜 그렇게 그 반지만 보면 다들 그렇게 눈이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그건 현실 정치/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뭔가 한번 권력을 잡고자하는 강한 욕망들, 그리고 그것에 중독되듯 빨려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말하자면 권력은, 그리고 그 권력을 탐하는 인간은,
정상적으로는 그 권력을 탐닉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 권력을 탐하여 그것을 차지한 집단이나 사람은,
그것을 깨어버리는 다른 세력이 나와야만 비로소 권력을 놓게된다는 것.

나는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민주주의가 그나마 참 잘 짜여진 제도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권력을 잃고 ‘적대적 세력’에게 그 권력을 넘겨주는 일들을 반복하게 짜여져 있으니 말이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기독교 (2)

80년대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내게 한국의 ‘보수’는 깨질 것 같지 않은 강력한 권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젊은 패기와 혈기로 나는 늘 그 ‘보수’에 대한 강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살았고 그것은 젊은 패기와 혈기를 잃어버린 후에도 계속 되었다.

그런데,
결국 세상의 모든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어제의 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때,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은 자크 엘룰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적어도 정치-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그것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같은 결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권력은 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정치적 보수는 일반적으로 그 경제적 권력을 ‘보수’하려는 세력과 함께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투표를 하면서 어떤 특정 정치세력에게는 단 한번도 표를 준 적이 없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 정치세력이 어디인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후반 기독교인이 된 내게 그런 정치적 선택은 늘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사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던것 같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기독교 (1)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심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온 세상의 왕이 되고자하는 다른 왕들을 거부하고 배격하는 것은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그 어떤 형태의 권력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권력, 사회적 권력, 문화적 권력, 경제적 권력 등등.

그런의미에서 기독교는 아주 많은 경우 다수가 아닌 소수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강한 목소리보다는 약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기존의 기득권에 대항해서 떠오르는 새로운 권력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많은 경우 옳은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나 약한 목소리나 새로운 권력이 늘 옳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온 세상을 지배하려고하는 권력을 제어하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독교가 어떤 특정 정치집단이나 사상에 결합해 있는 모습은 매우 건강하지 못하고 배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정사와 권세와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그저 영적인 표헌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주 하는 설교가 독일까…

최근 어떤 분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왜 지역교회 목회자들중 깊은 통찰을 갖는 설교자를 찾아보기 어려울까.

몇가지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그분들이 매주 설교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매주 하는 설교라는게…
깊은 연구와 고민이 담겨있는 설교가 아니고,
그냥 한줄로 정리할 수 있는 깊이 없는 내용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내용과 자신의 경험 몇가지를 섞어서 가능한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cycle를 매주 반복하면서 하고 있으니…
설교에 대단한 깊이도 없고,
오히려 매주 그런 설교를 하는 것이 그나마 있었던 통찰마저도 얕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것에 비추어 보아…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의 주일 설교는 그래도 좀 다르다.
그래도 어쨌든 나름대로 설교를 준비하는 team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여 준비한 티가 팍팍난다.

아마 설교준비하는게 훨씬 더 어렵겠지만,
이렇게 하면 매주 설교하는게 설교자에게 독이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ncounter with God

나는 아침 말씀묵상 본문을 미국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Encounter with God”을 따라서 한다.
한동안 한국 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을 따라서 했었는데, 작년부터 바꾸었다. 아내와 민우 세명이 같은 본문으로 함께 하기 위해서.

보통 하는 말씀묵상을 할때 소위 그 ‘교재’에 있는 해설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Encounter with God에 나오는 글들을 꽤 자주 읽는다.
참 좋다.

사실 한국의 어떤 QT 교재는 그 해설을 읽으면…
그 교재는 신앙을 엉뚱한 방향으로 망치게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웬만하면 그 교재는 쓰지 말라고 권하곤 한다.
꼭 교회에서 같이 해야 한다면, 교재는 보지 말고 본문만으로 묵상하라고 하고.

그런데 Encounter with God에 나오는 해설은 믿음을 배워가는 사람들, 말씀 묵상의 초보자에게 추천해볼만 하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5)

여전히 내가 고민하는건, 이런 흐름이 지속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모르니, 이걸 어떻게 지속해야하는가 하는 것 역시 잘 모르겠다.

그냥 매우 이기적인 입장에서,
이건…
내가 도대체 KOSTA와 후배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것과도 연관되는 이야기다.

나는 그럴 자격과 능력이 되지도 않지만, KOSTA에서 드러내는 일을 하지는 않고싶다.
그것이 내가 이 KOSTA와 후배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저 이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실질적으로 뒤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

금년 KOSTA 집회를 비롯해서 지난 몇년동안,
나는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A-team vs. C-team의 framework에서 꽤 자유롭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왔던,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이 절망했던 A-team vs C-team의 framework으로 부터 조금 더 자유로와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유’라는 주제로 conference를 마친 내게 이건 약간 다른 차원의 자유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4)

그런데…
지난 한 2~3년, 내 생각의 여러 부분이 바뀌었다.

일단, 원래 생각했던 것 같이,
A-team, B-team, C-team으로 이 조직을 생각하는 것이 매우 제한된 내 생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 KOSTA 간사들중, 예전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스타플레이어들이 못했던 일들을 지금 간사들이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우선, 매우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간사팀에 들어오고 있다.
순수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배울줄 알고, 예수님 안에서의 성숙을 진심으로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오는 사람들이 매우 놀랍게도,
지난 몇십년간 계속 만들어진 KOSTA 간사들의 ‘문화’와 ‘정신’을 매우 단기간에 습득한다는 거다.
이게 말로 열심히 교육하고 설명해서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마치 오래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 spirit을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뭐 몇가지 생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냥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팀웍과 시너지가 참 예쁘다.
예쁘다라는 표현 말고 조금 더 근사한 표현을 찾아보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참 보기에 좋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걸까, 나는 아직 완벽한 설명이 없다.
(이럴때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하는 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3)

글쎄…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안에서 일종의 ‘엘리트’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겐 큰 부담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특히 허물 많은 사람에게 어떤 운동이 의지하게 되는 일은 그 운동을 건강하지 않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늘 그래서 나는 KOSTA를 가면서도,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invisible’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매년 해 왔다.

그럼에도 지난 몇년동안,
내 의지와 상관 없이 KOSTA 안에서 자꾸만 visible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걸 끊어 버리는 건… 내가 KOSTA를 끊는 수 밖에는 없겠다…

그래서 간사 리더십에게도 어떻게는 나는 KOSTA 그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이 가치있다고 믿고 있고, 나 나름대로는 여전히 여기 오는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기여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KOSTA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2)

가령 한 20년전 KOSTA를 생각해보면 그랬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그러나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 그 일들을 해냈다.
옆에서 보기에 초인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한 두 사람이 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그런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움직여지는 KOSTA가 가능 했던 이유는,
한국 기독교의 저변이 넓었고, 그 안에서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그중 일부가 KOSTA에도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그런 초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의 그룹이 KOSTA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그 수가 적어서, 그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어떤 모멘텀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해보이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를 지내며 나는 꽤 많이 절망했었다.

뭔가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뛰어난 리더들을 보내주시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지속가능할 일일까.
이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1)

내가 다니는 회사는 비교적 크기가 작다. 전체 직원수가 2,000명 남짓 되는 정도이니, 큰 회사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니 우리 회사에서 가령 아시아에 있는 위탁생산업체 (OEM)에게 부탁을 해서 어떤 물건을 만들려고 하면, 우리 회사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더 크고 돈 많은 회사들이 아시아의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니.

그러다보면 그 위탁생산업체에서 제일 일 잘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 (A-team)은 큰 회사의 프로젝트를 하는데 배당이 되고,
우리같은 회사의 프로젝트에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 (B-team 혹은 C-team)이 배당이 된다.

그래서 우리같은 회사는 뭘 만들어내는게 훨씬 더 어렵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이 정말 일을 잘 못하는 거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교회 안에서, 혹은 교회 밖에서 다른 기독교인들과 여러가지 일들을 해 보았다.
그럴때마다 자주 느끼게 되는건,
기독교인 세팅으로 들어오면, 너무 자주 B-team 혹은 C-team과 함께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속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work ethic같은 것이 무시되기도 하고,
정상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의사결정이나 실행이 잘 안되는 경우도 참 많이 있다.

가끔, 기독교 모임이나 교회 안에서 일을 하는데 정말 빠릿빠릿하게 일이 잘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럴때는 대개, 그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이나 그 모임의 중요 구성원들이 ‘스타 플레이어’들이었다.
세속 사회 속에서 엄청난 내공을 쌓은 분들이 기독교 세팅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하다보니 그럼 엄청난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은 늘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일도,
인간적인 탁월함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