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또 다시 바쁜 가을학기

이번학기에는 아무래도 성경공부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머뭇머뭇하다가…
그래도 물어봐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꾸역꾸역 두 그룹을 하게 되었다.

새로 본문연구를 하면서 할만한 여유는 없을 것 같아 몇년전에 나름대로 좀 연구를 해보았던 빌립보서 본문으로 한 그룹,
그리고 책도 읽었을 뿐 아니라 내용으로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해본적도 있던 ‘조직신학 입문’ 한 그룹.
이렇게 두 그룹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했던 본문이니 쉽게 할 수 있으려니 했던 빌립보서를 다시 보니, 그 본문도 만만치 않고,
이미 강의를 이전에 한적이 있는 내용이지 쉽게 할 수 있으려니 했던 조직신학 입문도 역시 만만치 않다.

좀 덜 부담되게 해보려고 했었는데,
괜히 더 많이 부담되게 되었다.

그냥 내 간절한 바람은,
매우 자주 그랬던 것 같이,
이렇게 말씀과 씨름하면서 내 영혼이 조금 더 살아나게 되길.

믿음이 있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옆에서보면 아무리 봐도 아닌데,
자기는 믿음이 있다고 바득 바득 우기는 사람이 있다.
종교활동도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리더를 하기도 한다.

또,
옆에서보면 참 아름답고 멋진데,
늘 자신의 믿음이 많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도 대개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리더를 하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만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아니면 매우 큰 행운을 얻게되는 등의 일을 만나면,
이런 사람들의 믿음이 실제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제대로 드러난다.

작년에 갈라디아서를 공부하면서 나름 살짝 충격을 받았었다.
만일 내가 공부한 대로라면, 내가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매우 위험할만큼 믿음의 가장자리에 밀려나와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정말 정직하게 자꾸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나는 정말 신자인가.

기도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할때 늘 대는 단골 핑게들이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이 바빴다.
다른 일로 마음이 빼앗겨 있었다…

지난 2~3주, 기도를 별로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자신을 성찰해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때

예전에 블로그에서,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그렇게 문득 강아지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내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과 기도를 써야할 곳들이 명확하게 있고,
그런 속에서 일은 줄어들지 않은데다,
내가 혼자서 엉뚱하게 벌린 성경공부등까지 겹쳐서 꽤 정신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작정하고,
이번학기에 공부하는 빌립보서 본문연구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빌립보서에서 만나는 바울은 정말 대단하다.
정말 복음에 사로잡혀 산다는건 저런거겠다 싶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바울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

내가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산다는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건 아닌것 같다

K Pop!

주말에 집 근처의 Target에 갔다.
그런데 거기 진열되어있는 ‘음반’의 절반 이상이 K-pop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같은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이름을 잘 알지도 못하는 K-pop 그룹/싱어를 포함해서 많은 앨범들이 있었고, 그중 많은 것들은 다 팔려서 텅 비어 있었다.

산호세에 우리 팀이 사용하는 PCB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옆에는 K-pop 관련된 물건들과 앨범을 파는 가게가 있는걸 발견했다.
거기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도 전혀 아닌데요.

Google의 로비나 근처의 식당, 쇼핑몰등에서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K-pop이 나오는 것을 듣는 것은 전혀 신기하지 않다.

그런데…
막상 나는 K pop을 잘 모른다. ㅠㅠ

참내… 이런 세상이 오다니…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깊게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야 할까?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할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여야 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그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깊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위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후자인것 같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든 뭐라도 더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다

Contra Mundum

  1. Contra Mundum이라는 라틴어는, 세상에 대항하여라는 뜻이다.
    대학생때 처음 Francis Schaeffer 책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접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렇게 세상에 대항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2. 대학생이던 시절로부터 30년 이상 지난 지금,
    Contra Mundum이라는 모토는 여전히 내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세상에 저항하며, 세상에 대항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3. 그런데 이 Contra Mundum이라는 말은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라는 분이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이 Contra Mundum이라는 말을 했던 상황은,
    그 당시 예수님이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을 했던 아리우스(Arius)의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이라는 삼위일체적 주장을 했던 아타나시우스가 부딛혔던 것이었다.
    그 당시 아리우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수였고, 아타나시우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소수였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에 대항하여’를 위치며 그 소수의견을 계속 지켜냈던 사람이다.
  4. 대학생때 내가 읽었던 Francis Schaeffer나, 4세기의 아타나이수스나 모두 Contra Mundum이라는 표현을 할때는 세상의 다수의견, 세상의 대세에 저항해서 기독교의 교리를 지켜내는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5. 20년, 30년 전의 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그때의 내게 ‘진리를 수호하는 전사’로서 Contra Mundum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했다.
    그러니 내가 처음 Contra Mundum이라는 구절을 접했을때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세상에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6. 지금 나는, 그렇게 진리가 수호되지도 않고, 그렇게 진리를 수호하려는 시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진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세가 Contra Mundum을 이야기하는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월터 브루그만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소비주의, 물질만능주의, 자기 중심주의 등등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것이 지금 기독교인들이 해야하는 훨씬 더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7. 20대에 생각했던 Contra Mundum과, 50대에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Contra Mundum은 꽤 다른것 같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동안 Contra Mundum이라는 모토는 계속 내 삶을 지탱해내고 있어왔고,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동안 내가 저항하며사는 그 자세로의 Contra Mundum의 내용이 많이 바뀌어 있는 것 같다.
  8.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세상에 대항해서 살아가려 하고 있다.

신난 강아지 같이…

이제는 개를 키운지도 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개는 하루 두세번 산책을 하는데도, 할때마다 신이난다.
마치 난생 처음 디즈니랜드에 가는 어린아이와 같이 좋아하곤 한다.

최근,
좀 먼 거리 비행기를 탔다.

나는 많이 다닐때는 일년에 100,000 마일을 탈 만큼 많이 비행기를 탔던 사람이다.
그러니 먼 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은 거의 지겨울만큼 많이 했었다.
그러니 비행기를 타면 어떻게 하는지 내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고,
뭘 어떻게 해야하나 허둥지둥하거나 잘 모르는 일들은 거의 없다.

나는 이번에도 단번에 내 자리를 찾아서,
늘 하던 루틴대로 척척 짐을 올리고, 충전 케이블을 꺼내고, 이어폰을 준비하고… 등등 모든 일들을 다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두명의 중년 여성이 나란히 앉았는데, 이 두분은 비행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자기 자리도 찾지 못해서 내가 내 옆자리라는 것을 알려줬고, 기타 여러가지를 앉은 후에도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승무원이 음료수를 줄때도, 어떤 것이 있는지를 몰라 전혀 엉뚱한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것들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아마 친구인것 같아 보였는데,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LA로 놀러가는 중이라고 한다. (전혀 이 두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의도가 없었지만 이 두분이 워낙 큰 소리로 신이나서 대화하는 바람에,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억지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행기에서 한가지 한가지에 다 신기해했다.
그리고 내내 신이나서 이야기를 했다.

반면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서, 이 별 의미 없는 시간을 때워보려고 그냥 내 전화에 담겨있는 podcast를 들으며 반쯤 졸면서 그렇게 가고 있었다.

그 두 사람에게 그 비행은 신나는 것이었고, 마치 강아지가 산책을 갈때와 같이 즐거운 것이었다.
내게 그 비행은 그저 의미 없는 것이었고,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야하는 것이었다.

….

나는…
내게 주어진 삶과 시간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짧은 시간속에서, 그것을 충분히 appreciate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방정교, 신비주의,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다 쓰려면 너무 길지만…
최근 몇달동안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초월적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던중 동방정교 혹은 동방교회라고 불리는 기독교 종파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갖게 되었다.
동방정교는 서방교회와는 꽤 다른 모습의 기독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동방정교의 주장에 따르면 그 사람들은 초대교회의 원래 모습과 전통을 잘 보존 유지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래서 초대교회 신앙의 원형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동방정교는 서방교회보다 훨씬 더 신비에 대한 강조가 많은 것 같다.
예수님에 대한 이해도 분석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신비적인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실제 그분들의 예배등의 형식에도 그 신비를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고,
실제로 ‘exorcism’이 꽤 더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적어도 동방교회의 어떤 분들에게는)
그런데 그게 막 과격하고 전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말 ‘신비로운’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다.

그러면서 요즘 많이 생각해본다.
그 동방교회의 신앙전통에 내게 조금 더 익숙하다면…
지금 내가하고 있는 생각과 기도는 어떻게 다를까.
나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고 생각하게 될까.

뭐 나름대로의 생각이 조금 있긴 한데…
그거 그냥 여기 막 썼다간 살짝 이단같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그 생각에 자신이 없어,
그냥 지금은 계속 생각을 하고 있다는 수준에서 disclose만 해본다.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살면서 주와 더 가까워지는 것이 가능한걸까,
가능하다면 어느정도 가능한걸까.

만일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사람들끼리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주님과 가깝다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나는…
날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일까.

(1)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받기 원합니다

(2)붕헌할 물건 나 없어도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내 죄를 주께 다 고하니
주님의 보혈로 날 씻으사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3)간약한 마귀 날 꾀어도
주예수 앞으로 더 가까이 
이 세상 속한 그 허영심
또 추한 생각을 다 버리니
정결한 맘 내게 늘 주소서

(4)이 세상 내가 살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없는 볼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