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3)

두란노 경배와찬양이 시작된 것이 87년일거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는 송정미, 최덕신, 최인혁, 손영진, 박종호 등등의 많은 가수들이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었다.

그렇게 막 교회 내에서 찬송가 이외에 다른 노래들이 들어오면서 청년부에서 참 열심히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서도 캠퍼스 선교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벤치등에 삼삼오오 앉아서 점심 시간에 기타를 치며 몇몇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뭐 전도를 하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했던 것도 아니었고, 무슨 계획과 조직을 미리 해서 한 행동들도 아니었다. 그냥 점심 먹고 잠깐 시간 나니까 몇몇이 기숙사에서 기타 가지고 나와서 날 좋을때 그냥 그렇게 노래를 한 것이었다.

교회 청년부에서 MT같은 걸 가더라도 밤이면 기타 하나를 들고 함께 둘러 앉아서 여러 노래를 불렀다.
누가 찬양 인도를 한것도 아니었다.
누가 기타 치다가 손이 아프면 옆에 아무나 그 기타를 잡고 이어서 쳤다.
그냥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에 대한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런데 요즘 20대도 그렇게 하나?

요즘 대학/청년부가 거의 교회마다 없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저 한 열댓명 모이는 모임에도 앰프와 믹서와 마이크가 준비된다.
그리고 악보를 프로젝터로 벽에 쏘면서 그렇게 노래를 한다.
찬양 인도자와 찬양팀이 그 노래를 인도한다.

물론 그 속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노래들을 찾아 그 노래들이 그들의 삶의 곡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거창한 장치 없이도, 그저 친구들끼리 마음에 맞으면 함께 부르는 믿음의 노래….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

노래 (2)

나도 그랬지만 나와 가까웠던 친구들도 모두 참 노래를 좋아했다.
기숙사 방 두개 건너 하나씩은 기타가 있었고,
그냥 그 방에 가서 아무나 그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애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다.

80년대 후반 그 당시 유행했던 여러가지 노래들이었다.
나름 엄청 인상 써가며, 혹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소리를 질러가며, 심지어는 괜히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며, 그렇게 노래를 함께 불렀다.

친구중 누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면 그 친구와 함께 실연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대학때 연극을 했는데, 연극 공연 즈음엔 늘 연극과 관련된 노래들을 불렀다.
밤에는 괜히 밤 하늘을 보면서 애들과 함께 밤에 부를만한 노래들을 불렀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지만, 술에 취하면 애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렀던 노래들은 지금도 거의 대부분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한 30년 넘게 부르지 않은 노래들도,
지금 다시 그 노래를 떠올리면 그럭 저럭 가사를 기억해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대중가요는 그렇게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BTS나 블랙핑크나 Billie Eilish나 Taylor Swift의 노래를 무슨 수로 따라 부르나….
조금 따라 부르기 쉬워야 할 것 같은 악동 뮤지션이나 아이유의 노래도 완전 난이도가 장난 아니거나 따라부르는 용도의 노래는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

노래 (1)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 대학가에는 노래가 가득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새로 생긴 작은 지방 학교였기 때문에 대단한 흐름이랄까 그런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큰 국립대나 내가 서울에 가서 보는 학교들 앞에서는 늘 대학생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중 어떤 것은 지금은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중 어떤 것은 국가 기념일 행사에서 대통령이 부르기도 한다.

1987년 6월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그 큰 흐름에 내게 기여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작은 지방대의 학생이었지만,
거기서도 학생들이 과모임등으로 술을 마시면 꼭 다 함께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아침 이슬, 흔들리지 않게, 그날이 오면 같은 노래들은 딱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기타를 치며 함께 부르기도 했다.

그건 정말 시대의 노래였다.

그 노래들은 그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제도권의 노래가 되었고,
그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도 제도권에 들어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노래들은 한편 한국을 바꾸어낸 노래들이었다.

아직 스무살이 되지도 않았던 그때 처음 배웠던 그 노래들은 그 당시 사회 문제에 깊게 관심을 갖지 못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여태껏 의미있는 노래로 남아있고,
그 노래를 들으며 지금도 가슴이 뛰거나 눈물이 핑 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래가 있는가.

새 전화

전화를 새로 하나 샀다.

2년전에 중고전화를 사서 쓰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게 버벅거리기도 하고 지난번에 출장갔을때 중간에 살짝 맛이가서 잘 작동은 하지 않던 경험도 있어서….
지난주에 전화를 새로 하나 사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데,
막상 새 전화를 사려고 하니 너무 비싼거다.
사실 나는 한동안 회사에서 주는 전화를 사용해왔고,
그 이후에는 중고전화를 사서 써 와서 비교적 전화에 쓰는 돈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전화를 그냥 사려고 하니 여러가지 할인, 쿠폰 등등 다 써도 600불 아래로 사는게 쉽지 않았다.

엄청 망설이다가 지난 주 내가 사용하고 있는 Google Fi와 연동시키고, 쓰던 전화를 trade-in하는 것까지 해서 350불 정도에 전화를 살 수 있는 기회가 떠서, 큰 맘 먹고 질러 버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뭐 그렇게 극적으로 좋아진것 같지 않다.
그냥 살짝 좀 더 빨라졌고, 배터리가 살짝 조금 더 오래가고 하는 정도.

한편, 스마트폰이 요즘 다 너무 비싸서 중고가 아닌 새 전화를 정기적으로 바꾸면서 쓰는게 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 스마트폰이 다 너무 좋아서, 웬만하면 꽤 오래 그냥 무리없이 쓸 수 있게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젠 하지 말아야할 짓거리

태국과 내가 사는 San Francisco bay area 사이에는 한번에 가는 비행기가 없다.
대개는 일본, 한국, 태만, 홍콩등에서 한번 갈아타고 가게 된다.
편도에 짧으면 18시간, 길면 24시간 이상 걸린다.

그래도 나는 양반이지.
우리 회사의 많은 사람들은 피츠버그에서 방콕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다.
다들 두번 갈아타고 오는데, 최소 20시간, 길면 30시간까지 걸리는 것 같다.

이번에 태국에서 오면서는 홍콩에 6시간 layover가 있었다.
저녁 7시에 도착해서 새벽 1시에 다음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는데,
6시간 공항에 있으면 뭐하냐… 그냥 홍콩 시내로 한번 나가보자… 해서
그냥 막 나왔다.

엄청 날씨는 덥고,
늦은 시간이어서 문닫은 곳도 많았고…
사실 괜히 시간쓰고 나갔다 오면서 온통 땀으로 홀딱 젖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대개 내 세대의 사람들은 홍콩의 영화들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나는 그 유명한 홍콩 영화중 본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홍콩에 따로 뭐 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냥 괜히 시간만 버리고 많지는 않지만 약간 돈도 버리고 돌아왔다.

이젠 괜히 그런거 하지 말아야할 나이가 된 듯 하다.

체중조절

내가 체중이 늘어난 몇번의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한동안 엄청 출장을 많이 다닐때였다.

하루에 12시간, 심하면 15시간 가까이 일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시차도 엉망이고, 배고프지 않은데도 식사를 하고,
게다가 호텔과 식당에서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다보니 출장을 다녀오면 체중이 조금씩 불어나곤 했었다.

요즘 뻔질나게 출장을 다니면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 엄청 노력을 하는데,
최근 태국을 다녀오면서는 그게 무너졌다. ㅠㅠ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기도 해서,
아침 7시에 호텔에서 나가서 저녁 8시쯤 돌아오고나면 엄청 피곤하기도 해서 대개는 호텔에서 식사를 했는데, 대개는 필요한것보다 많이 먹게 되기도 하고… 또 현지 시간으로 밤 11시~12시 쯤에 늘 미국과의 conference call이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면서 뭘 먹게 되기도 해서, 음식 조절을 잘 못했다.

나는 내 외모를 잘 가꾸어야한다는 의지와 의도가 사실 거의 없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건강을 돌보아야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높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참 쉽지는 않아 보인다.

D가 폭발해 버렸다.

태국의 회사의 program manager는 D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 일 참 잘하고 친절하고, 영어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이 너무 과도하게 그 사람에게 몰렸고,
그쪽 회사에서는 D를 support하는 일이 부족하다 보니…
D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너무 커져 버렸다.

실제로 현장에서 D를 만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D의 무게를 줄여주려고 노력했으나,
그게 나만 노력한다고 되는건 아니었다.

지난주,
결국 D가 우리의 conference call을 하는도중 무너져 내려 버렸다.
새로 더 meeting을 잡자고 우리쪽에서 누가 이야기를 했는데,
이미 너무 meeting이 많고,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더 이상 뭘 하는건 무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었다.

아…

D가 폭발해버리니 D에게 이것 저것을 요청하던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졌고,
그 후에 우리 회사 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안그래도 우리 회사 project가 힘들다고 그쪽 회사 사람들이 그만두는 일이 몇번 있었는데,
D마저 그만두면 정말 큰일이다…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어떻게든 D와의 미팅을 줄이고 D가 하는 일을 줄여주자는 말이 우리쪽에서 나오게 되었다.

지난 몇주,
우리 쪽에서도 하루에 5시간 남짓 자면서 계속 일했던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도 좀 제정신으로 살아남길 조마조마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D가 참 안쓰럽다.
어떻게든 D를 더 도우려고 노력해 왔는데,
내가 했던 노력들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참 안타깝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D가 그렇게 폭발해 버린 것이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된 것 같다.

아시아 공장에 가서 불편한 것

요즘 뻔질나게 태국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젠 시차를 그냥 쉽게 적응하고 버티기 쉽지 않아서,
요즘은 멜라토닌등 약간 약의 도움을 얻어서 도착해서 한주, 돌아와서 한주 정도씩은 보내고 있다.

아시아에 있는 공장에 갈때마다 몹시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우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일하는 환경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환경에 비교해보면, 참 쉽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회사 물건을 만드는 production line은 2 shift로 운영되는데,
한 shift가 사실상 10시간이다. 중간에 식사시간 휴식 30분.

물론, 나도 역시 하루에 10시간은 훨씬 넘게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일하는 환경이 훨씬 좋지 않다.

또, 그쪽 엔지니어 중에서는, 태국에서 그래도 제일 좋다는 대학교에서 박사까지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리고 일해보면 아주 빠릿빠릿하게 일 잘 하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결정은 그렇게 많지 않고, 우리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일을 하는 수준이다.

그저 그 사람들은,
조금 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더 나쁜 환경에서, 더 낮은 수준의 일을, 더 적은 수입을 받아가며 하고 있는 것.

대개 미국에서 간 우리는 좋은 conference room같은데 배정을 해주고,
그 사람들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와서 전화를 보는 것 정도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종의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더 힘든 것은,
미국에서 간 어떤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 사람들을 막 대하는 거다.
우아…. 옆에서 정말 완전 열이 받는데….
내가 거기서 폭발한다고 뭐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아시아 나라에 출장을 가는 것은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참 힘들다.

자의적 성경묵상도 좋다

성경 본문을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가치체계로 가지고 와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역사 속에서 그렇게 자의적 성경묵상을 했던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최근(?)에 다시 조금 살펴보게된 디트리히 본회퍼도 그렇다고 보인다.

이분은 내가 보기에는 매우 신정통주의적 접근으로 신앙과 세상을 해석했던 분 이다.
성경 text를 분석하고 그것으로 ‘귀납법적’으로 신앙을 도출해내기 보다는,
신정통주의적 사상으로 먼저 신앙의 틀을 잡고, 성경을 그것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분의 모든 생각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필요는 당연이 없지만,
그분의 삶과 사상은 적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모범과 이정표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이 본회퍼의 성경묵상을 비판할 수 있을까? – 말도 안된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사상으로 성경과 신앙을 해석해내고, 그 불완전한 여러 생각들의 흐름을 하나님께서 역사속에서 움직이시면서 큰 그림을 만들어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파괴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건강한 신앙 전통 속에 있다면,
자의적 성경해석, 연역적 접근도 충분히 괜찮다.
어느 누구도 그런 해석과 접근으로부터 100%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12)

도대체 거대 담론은 어떻게 개인적인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게 나 같은 386세대에게는 더 쉬웠다.
그냥 깃발을 들고 노래를 함께 부르면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20-30대에게는 그렇게 되는 것 같지 않다.

나는 이것을 담아내는 중요한 고리가 ‘삶’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나 같은 비전문가가 2차원 도면에 그려져있는 설계도를 보고 3차원의 집을 미리 상상해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모델하우스 같은 것이 참 도움이 된다.
잘은 모르지만, 평생 건축을 해온 사람들은 아마도 2차원 도면을 쓱~ 보면 3차원이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서 그려질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전문가들이 내게 너는 왜 이것을 이해못하느냐고 다르치는건 어떤 의미에서 공평하지 못하다.

하나님 나라의 담론을 치우치지 않게 (이미와 아직의 균형, 거대담론과 개인의 균형을 모두 가지고) 이해하고 그것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그 복잡한 거대담론을 visualize.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인격과 삶의 여정이 거대담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모델하우스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말이다.

듣고 배우거나 읽고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의 20-30대에게는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

하나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서 14:17)
이 성경말씀이 딱 그거다.

하나님 나라는 제사 음식에 바쳐진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는 하는 것 같은 논쟁거리가 아니라 (예전 우리나라 예송논쟁 비슷한 ㅠㅠ)
실제로 복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것이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