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From Home Update

우리회사는 medical device, life science, healthcare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이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여러 종류의 medical device를 만드는 일이고.

COVID-19은 우리같은 회사에게는 매우 impact가 큰 일이다.
(뭐 다른 어떤 회사라고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실제로 그래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슨 프로젝트를 더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느냐 하는 것에도 많은 discussion이 이루어지고 있고, 아마도 많은 변화가 있을 곧 있게될 것 같다.
덕분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이 일도 해라, 저 일도 해라 요청을 많이 받고 있고, 절대로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다.

이번주초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반까지 쉬는시간 딱 30분빼고 빽빽하게 뭔가를 해야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확실히 더 줄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는 더 늘었는데, 내가 막상 실제로 일하는 시간을 더 줄었다.
그런의미에서 많이 더 효율적이 된 것 같다.
일단 출퇴근시간이 줄어드니 그게 꽤 크고, 회사에서 어설프게 동료들과 점심먹는다고 중간에 시간 보내고 하는 일이 없으니 그것도 더 효율적이 되었고.

물론 예전만큼 효율적이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우리가 실험실을 쓰는데 제약이 많기 때문에 실험실을 쓰는 일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business가 open되어있는 주로 다른 나라의 lab을 활용)
manufacturing을 하는 일도 문을 열지 않거나 제대로 operate하는 회사가 많지 않아서 그런 회사들을 찾는 일에 시간이 더 들기도 한다. 막상 operate하는 회사를 찾더라도 그런 회사들은 워낙 다른 요청이 많아서 우리회사일만 하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많고.

내 상황을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으나,
post-COVID의 세상에서는 어쩌면 어떤 부분은 조금더 효율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의 패턴 속에 그렇게 비효율성이 많았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들기도 하고…

하나님의 주도권

에스겔을 읽다가 문득 발견하고 깨달은 것.

구약의 선지서들을 읽으면 사실 읽다가 지루해지기도 하고, 너무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이거 말 안 들으면 혼낸다.

그야말로 규례들이 가득하고, 그저 딱딱한 종교와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규례를 주시는 장을 마련해주시는 분이 늘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를 보내서, 그렇게 살면 망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거룩함을 회복하라고 목놓아 이야기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내 뜻대로 따르면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는데 있어서 그분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돌아오라고 요청하시는 그 요청도,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징계까지도, 그분이 그 관계에서 회복이라는 목적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그 백성에게 길을 열어놓아주시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보면,
이거야말로 정말 은혜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뺐기지 않으시고, 그분이 먼저 움직이신다.

정말… 은혜다!

기독교의 발흥 (4)

맨 처음 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책에서는 한 챕터를 역병(epidemic)에 대한 것으로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역병에 대한 챕터는 역시 나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었다.

AD165년에 역병이 돌았고 이 역병은 15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제국 인구의 1/3내지 1/4정도가 사망하는 대단한 스케일이었다.
그 후 AD251에도 역시 비슷한 스케일의 역병이 한번 더 있었다고 한다.정말 무지막지하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의학이 발달된것도 아니었고, 나중에 더 언급하겠지만 그 당시 로마의 도시의 위생상태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크게 발흥할 수 있었던 이유로 몇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이런 역병은 그 당시 승승장구하던 로마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사상의 근본을 흔들어대는 사건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로마사람들의 세계관으로는 이 역병을 해석해낼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 역병으로 인해 아프고 목숨을 잃는 것 뿐 아니라, 이 역병은 사람들의 사고체계도 흔들어 놓았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역병 앞에서도 그것을 당당하게 해석해낼만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혹은 덜 두려워하고) 그것에 맞설 수 있었다.
기독교는 역병의 상황을 해석해낼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던져 아픈 사람들을 돌보았다.
기독교인들이 돌본 아픈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렇게 돌봄을 받는 기독교인들은 그 간호 때문에 사망률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기독교인들의 사망률이 낮다는 것은 이교도들이 보기에 주목할만한 겉으로 드러나는 분명한 차이였다.
기독교인들의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 수를 더 보존할 수 있었고, 그렇게 드러나는 결과로 이방인들에게 기독교가 드러나는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적어도 이 책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이 상황에서 선행을 많이 한 것에 사람들이 감흥이 되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식의 분석에는 그렇게 큰 힘을 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

내가 속해있는 현대 교회는, 정말 세상이 해석해내지 못하는 이 역병의 상황을 해석해낼 힘이 있는가?
내가 속해있는 현대 교회는, 역병 앞에서 드러나는 당당함이 실제적 열매로 맺힐 정도가 되고 있는가?

이 책에 따르면, 2세기의 교회는 흥하는게 당연했고,
21세기의 교회는 (적어도 내가 접하는 미국과 한국의 교회는) 망해도 싸다…

구하기 어려운 것들

COVID-19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다.
가령, hand sanitizer(손 세정제)나 disinfectant(살균제:Lysol같은)이 구하기 어렵다는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화장실 휴지가 구하기 어렵다는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이건 논리적으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이제 집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7주가까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필요한것들 중에서 사기 어려웠던 것들 몇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Webcam
    기존에 한 30불 하던 webcam이 지금 ebay같은 데에서는 100불 넘게 팔기기도 한다.
    amazon에는 다 팔렸고.
    처음에 나는 ebay에서 5불짜리 webcam을 주문해서 좀 썼는데, resolution이 너무 나빠서 logitech에서 약간 더 비싼건(30불짜리)를 주문했다.
    이거 도착하는데 자그마치 5주 걸렸다! 거기 customer service에 물어보면 일손이 딸려서 제때 handle하지 못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다 집에서 일을 하니까, 집에 webcam을 달아 놓아야 하는 거다.
  • Hair clipper
    머리가 너무 길어서 답답해서 좀 시원하게 깎아보겠다고 hair clipper를 찾았는데 이것도 역시 여기 저기 동이 났다! 특히 review가 좋은 놈들은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두주 전에 주변의 target에 남은게 있다는걸 확인하고 재빨리 가서 하나 사왔다.
    머리를 어색하게 자르고 나니, 아내와 민우가 나를 보면서 자꾸만 키득키득 웃는다. -.-;
  • docking station
    누가 이사가면서 버리고간 모니터 하나, 예전에 회사에서 버려진 (회사 물품이 아닌) 모니터 하나를 구해와서 dual monitor setup을 집에 해 놓았다.
    그런데 이 두개의 monitor를 매번 laptop에 별로도 연결하려니 이게 영 번잡스러운게 아니다. 책상도 지저분해지고.
    그래서 docking station을 사려고 알아봤는데 이것도 역시 구하는게 만만치 않다!
    나는 특별히 원하는 몇가지 기능이 있는데 이건 구하기도 어렵고 구할 수 있더라도 가격이 왕창 비싸다.
    결국 이번주에 회사에가서 내가 회사에서 쓰던 docking station을 가지고 왔다
  • Keyboard tray
    집에서 일을하니 같은 자리에 아침부터 자기전까지 앉아있을 때가 많다. 하루에 열몇시간을 같은 자세로… 아니, 내가 고시생도 아니고 무슨…
    집에 있는 책상에 앉는 내 자세가 나빠서일까. 몇주전부터는 손목이 살짝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상 아래에 붙여서 쓸 수 있는 keyboard tray를 주문했다.
    이건 구하는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out of stock인 것들이 많았다.
    자그마치 50불이라는 거금을 투자해서 하나 장만을 했다. 아마 음식물을 제외하고는 내가 지난 두세달간 산 것들 중 가장 비싼게 아닌가 싶다.

회사에서 여러가지 project planning을 하면서는 대충 6월 말까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집에서 해야하는 것을 가정해서 하고 있다.
나 같이 실험실에가서 일해야하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은 아마 그 이후에도 집에서 일하는 일이 당분간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회복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야기하는데서 보면, 하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 백성에대한 편애가 대단하신 것처럼 나온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요즘 내가 성경을 읽는 방식은 이렇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공의가 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 당시 역사속에서 말도 안되는 약자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그 존재자체가 정말 서러운거다. 어디에 하소연할데도 없고 계속 강대국에게 당하기만 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여기도 붙었다 저기도 붙었다고 해보고, 꿈틀 저항도 해보는데, 주변 강대국의 부침에 따라서 휙~ 쓸려버리는 고통을 계속 겪는 거다.

하나님의 심판과 통치는 폭력적인 강자에의해 패해를 입는 약자의 눈물을 씻어주시는 것이다.
약자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소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신거다.

기독교의 발흥 (3)

이 책에서 또 한가지 흥미로운것은 초기 기독교인의 다수가 유대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흔히 내가 배워온바에 따르면,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사도행전의 시대 (AD 1세기)를 거치면서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단절/분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실제로 초기 기독교 개종의 다수는 유대교에서 이루어졌고, 2세기가 지나서까지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사실 New Perspective 입장의 신학자들과 3rd wave historical Jesus 그룹에서 주장하는대로, 신약성경을, 특히 복음서를, 1세기 유대주의의 관점에서 읽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과도 맥이 닿아있다.

이 책에서는 God fearer도 초기 기독교 개종자에 꽤 큰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그룹도 역시 1세기 유대주의의 배경에서 이해해야만 제대로 파악하는것이 가능할 것이다.

참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하나님의 심판

계속해서 에스겔을 보면서 곱씹어본 것.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게 구약에 많이 나온다.
너 까불면 죽어. 그러니까 고분고분 말 잘 들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까부는사람 손들고 서있게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궁극적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

심판이 있다는 것은, 힘있고 악한 사람들에게는 나쁜 소식이겠으나,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들에게는 고대할만한 것이었겠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 까불면 죽어 라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버전으로 풀자면,
지금 그렇게 너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원칙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체제가 궁극적 잣대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 속에서 네 판단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절대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는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 판단자이시다.
억울함을 신원해주시는 선한 판단자이시다….

이쯤 되는게 아닐까.

때로는, 교회 내에서도, 기독교인들과 이야기할때도,
궁극적 판단 잣대를 자신으로 삼고 사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기가 참 어려울때가 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어서.

그런 ‘소위’ 기독교인들과의 대화는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참 지치게 하고, 많이 고대하게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스겔서같은 데에서는 그 속에서도 이야기하라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고 계시니…

상록수

내가 대학생일때에는, 상록수가 금지곡은 아니었으나, 사실상 데모가였다.
대학생들이 술마시면 함께 떼창으로 부르는 노래이기도 했다.
끝내 이기리라고 이야기했던 대상은 당연히 독재정권이었다.

그 후 97년 금융위기때 이 노래가 박세리가 등장한 공익광고에 쓰였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없지만… 미국에 있었을 때여서) 그때는 대통령이 김대중이었다.

그후 2002년 노무현 대선광고중 하나는 노무현이 기타를 치면서 상록수를 부르는 것이었다.

20016-17 촛불집회때에도 이 노래가 많이 불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노래에 참여한 가수들중 다수는 보수정권때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노래, 참 잘 만들었다. 이 정도면 정치적 입장이나 그런걸 떠나 다들 보면서 감동받을만하다.

내가 이 youtube clip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몇가지
– 한편 참 감동적이다! (약간의 국뽕과 함께)
– 아, 이제 한국의 수구보수는 정말 marginalize되었고, 한국의 liberal들이 진짜 제대로 헤게모니를 잡은 거구나…. 보수쪽에서 시대착오적으로 탄압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런 contents를 보면
– 영어로 번역되어서 나온 youtube clip은 내가 아는 다른나라 사람들에게도 한번 보여주고 어떻게 느끼는지 한번 물어봐야 겠다.

기독교의 발흥 (3)

이 책에서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여러가지 data를 바탕으로 confirm해주는 것도 있지만,
예전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 생각을 확~ 뒤집어놓는 논지도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초기 기독교의 계급기반이 ‘하층민’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기독교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급 수준의 사고력이 필요했을 수 있고,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라는 거다.
그것을 support하기 위해서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들을 예로 들어서 개종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을 분석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초기 기독교가 하층민을 배제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하층민을 주된 target으로 하는 종교였다면 이렇게 발흥할 수 없었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논리들을 펴고 있다.

이건 내겐 참 흥미로는 관점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초기 기독교인들이 하층민일 것이라는 상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기독교는 하층민에게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기독교의 핵심 가운데 하나를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층민에의해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는 거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대로, 기독교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아니었다.

이건 정말 내가 몇년동안 꾸준하게 다시 곱씹어야할만한 큰 숙제를 내게 던져 주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행동해왔던 큰 줄기 가운데 하나를 수정해야할만큼 클지도 모르겠다.

416

세월호는 생각할때마다 정말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과 찌릿~한 아픔이 몰려온다.
그러다가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하고,
결국 그러다가는 심한 쌍욕을 하면서 기도를 하게 된다.

하나님 이런 ㅆㅂㄴ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주십시오.
하나님 이 ㄱㅅㄲ들은 끝까지 그 인생이 불안하도록 해주십시오.
하나님 저런 놈들에게 절대로 평안을 허락하지 말아주십시오

에이…. ㅆㅂ…

나는 욕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평생 욕을 하는걸 본 사람은 아마 다 해서 5명도 안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오늘 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한 가장 심한 욕을 하면서 저주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래야만 내가 좀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