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3)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은 또한 무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한된 경험때문에 많은 것이 새롭고, 그것은 늘 새로운 자극이 되는 것이겠다.

그렇지만 경험도 많아지고, 지식도 쌓이고나면 이미 반복해서 경험한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으니 웬만한 것으로는 예전과 같은 자극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일 것.

그러니, 아마도….
창세기 21장에 사라가 이삭을 낳은 후 한 이야기는
사라가 혼자서 말하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나 같은 늙은이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지”

100살이 다 되어서 아이를 낳는 말도 안되는 일쯤 되어야, 사라 같은 할머니도 웃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아직 민우는 자지러지도록 웃는 웃음을 더 많이 갖게되길 바란다. 아직은 미숙하고, 아직은 젊으니까.

그러나,
내겐 이제 웬만한 것으로는 그런 웃음이 다시 다가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100세에 아이를 낳는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니고서는.

기적이 없다고 믿지는 않지만,
기적이 일상이 되어 늘 그런 웃음을 다시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웃음이 아닌,
나이에 더 어울리는 즐거움 (joy)를 더 깊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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