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요한

지난달인가,
동네 목사님 한분과 식사를 했는데,
그분이 나보고 바울같은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하셨다.

음…
나는 아니라고 막 그랬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바울같은 사람이 아닌 근거 몇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은 엄청 천재였다.
    나는 아니다. 아마 평균보다는 살짝 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당연히 천재는 아니다.
  2. 바울은 완벽주의자였다.
    나는 아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catch하지 않는 detail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완전 빈틈이 많고 그 빈틈이 많은 속에서 살아간다.
  3. 바울은 자신에대한 확신이 늘 강했다.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이나 믿음에대한 회의가 늘 내게 가득하다.
  4. 바울은 결단력이 강했다.
    나는 꽤 우유부단한 편이다. 가끔 급하게 생각과 결심을 해야할때는 정말 이를 악물고 내 본성을 거스러서 하는 편이다.
  5. 바울은 그칠줄 모르는 엔진같은 사람이었다.
    낮에는 텐트를 만드는 생업을 하고, 밤에는 열을 팍팍 내면서 설교를 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은 땅 끝 까지 가겠다면서 방방.
    나는 꽤 게으르다. 내가 가끔 부지런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그건 내게 닥쳐오는 일을 가능하면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빨리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때문에 폭풍처럼 일을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혹은 일이 밀어닥쳐서 내가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두려워서 그렇게 후다닥 내게 떨어지는 일을 처리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바울은 에니어그램 1번이나 8번 이 아닌가 싶고, 나는 3번이나 6번에 가깝다.
이렇게 나는 바울 스타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요한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의외로 나는 꽤 관계적이다.
특히 하나님을 생각할때 그렇다.
내게 있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분이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불도우저같이 감당하기 보다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때문에 그 안에 머물러 충성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내가 훈련과 교육을 받아온 길이,
나의 관계적인 면들을 잘 develop하도록 나를 이끌어주지 못했던 것 같고,
그래서 나는 functionally 그저 열심히 일하는 사람같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한 30년쯤 전에, 나를 잘 관찰하던 한 형이 내게 그렇게 이야기해준적이 있었다.
너는 요한과 같은 사람인것 같다고.

그때 나는 엥? 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 형이 나를 잘 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John Mark Comer

최근 Christianity Today에 “내 학생들이 John Mark Comer를 많이 읽는다. 이젠 나도 왜 그런지 알겠다” (My Students are reading John Mark Comer, and Now I Know Why)라는 글이 실렸다.

그리고 최근에 교회 설교에서 한 목사님이 John Mark Comer의 글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나는 John Mark Comer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지난 두주 정도 동안 이분의 글들, 이분의 강의나 설교 등을 폭풍 흡입(?) 했다.

John Ortberg에 대해서 나는 늘,
어려운 Dallas Willard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John Mark Comer는 젋은 사람들 (young generation)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Dallas Willard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분의 어떤 글이나, 이분의 어떤 설교등은 깊게 마음에 울리는 공명을 만들어내었다.
부지런히 폭풍 써치를 해보니 이분이 80년생인 것 같다.
이제 44세인건데, 음…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렇게 깊을 수 있는건가 싶을만큼 놀랍다.

실제로 The Ruthless Elimination of Hurry 라는 책을 보면, John Mark Comer는 John Ortberg를 ‘멘토’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Dallas Willard – John Ortberg – John Mark Comer로 이어지는 라인이… 아… 참 멋지고… 참 부럽다.

당분간 약간의 덕질을 할 대상을 찾은 듯…
다만, 내게 조금만 좀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흥미로운 강의 시리즈 하나 추천

요즘 한주에 하나정도씩 들으면서 나름대로 내가 많이 무식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있는 강의 시리즈 하나.

그리고 이 비디오가 올라온 채널은 유대교쪽 채널인데, 개신교인인 나도 도움을 많이 얻기도 하고 공감을 많이 하게 되기도 하는 내용이 참 많다. https://www.youtube.com/@KEDEMChannel/videos

찾아보니 이분 (Israel Finkelstein)은 꽤 유명한 분인 듯.
요즘 계속 구약 통독을 하고 있는데 이 영상들 덕분에 후다닥 넘어가지 못하는 부작용이 좀 있긴 했다.

어제 한 뜬금없는 공부

나는 소위 ‘health technology’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의료쪽에대해서는 정말 거의 아는게 없었다.
그냥 내가 아는건… 미국은 의료비가 너무 비싸다는것 정도.

그런데 나름 그래도 이쪽 회사에 몇년 다니다보니 귀동냥으로 듣는 것들이 있어서,
미국의 healthcare쪽의 문제를 아주 쬐~끔은 이해해 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 회사 안과 밖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진심으로… ‘아, 이 회사가 좀 잘되면 이런건 좋겠다’고 생각하는게 있다면,
innovation을 통해서 전반적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고, 의료비를 낮추는 것이다.
낭비되고있는 치료, 약 처방, 의료보험등을 innovation을 통해서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그걸 다 설명하려면 너무 길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루의 짧은 글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인데….

한국에 요즘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가지고 한참 시끄럽다.
나는 내 아버지께서도 의사셨고, 내 동생도 의사이기 때문에 내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직접 이해당사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저 ‘밥그릇 싸움’이 되고 있는 것 같고,
일반 대중도 결국 밥그릇 싸움으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계속 한편에서는, 어쨌든 더 큰 문제는 의료체계가 비효율적인 것이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는 뭐 한국 의료체계 그런거 잘 모르니…

그런데,
어제 흥미있는 youtube 영상을 하나 봤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대로라면, 아.. 이런 식의 이야기가 조금 더 나와야 하는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의대정원 늘리는 것이나 수가 조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더 큰 문제를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Burden of Spiritual Leadership

세상의 어떤 자녀도, 자신의 부모가 형편없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길 바란다.
그렇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다.
그런데…
아주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자신이 부모로서 정말 좋은 부모가 되기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제한된 능력 안에서, 정말 대부분의 부모는 최선을 다 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의 목사가 훌륭하지 않는 사람이길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목사가 훌륭하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물론 모든 목사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다.
그런데 거기에 더 큰 문제는…
모든 목사가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건 여기까지려니…. 대충 자기 나름대로 선을 그어놓고 나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고 만다.

이건 목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spiritual leadership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burden이다.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게 spiritual leadership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므로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
아…나는 대충 이 정도만 예수님 믿으면 된다면서 쉽게 타협해버리면 안된다.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은, 정말, 진심으로, 그 리더가 훌륭한, 아니 최소한 최선을 다하는 리더이길 바란다.

Stages in the Journey of Faith

Janet Hagberg와 Robert Guelich 의 The Critical Journey: Stages in the Journey of Faith 라는 책에 따르면,
신앙 성숙은 다음의 단계를 따른다.

  1. Recognition of God
  2. Life of Discipleship
  3. Productive Life
  4. Journey Inward
  5. Journey Outward
  6. Life of Love

모든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stage 3이상으로 자라나지 못한다고.

보통 ‘일요일 중심 교회’들은 Stage 3까지 다다르게 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지만,
Stage 4 이상으로 자라나게 하는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그래서 Stage 4 이상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일요일 중심 교회’로부터 ‘졸업’해야한다고.

음…
이거 완전 잘 들어맞는듯.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매우 잘 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알고 이해하는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정말 맞는 말인 듯.

United 타도 되나??? Boeing 타도 되나???

어제는 United의 Boeing 777에서 이륙하는동안 타이어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SFO에서 토쿄 가는 비행기.
음… 나도 그거 많이 탔는데…


그리고 그저께는 United 의 Boeing 737에서 한쪽 엔진에서 불이나서 비상착륙을 했다.


물론 또 극적으로는, 지난달에 Boeing 737 Max9에서 비행중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일도 있었다.


나도 앞으로 몇달간 비행기 탈 일들이 줄줄이 있는데,
뭔가 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타게될 듯…

그럼에도,
여전히 비행기 여행은 자동차 여행이나 다른 방법의 이동 수단보다 더 안전하긴 하다. ^^

친구?

어제,
지금 우리 회사에 다니다가 layoff를 당해서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하면서 나름대로 호흡도 잘 맞았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 하는데다,
함께 힘든 프로젝트과정을 넘겨가면서 나름 동지애랄까 그런 것도 있었다.

약간은 뜬금없이,
내게 무슨 기술적인 (technical) 질문을 하기 위해서 연락을 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껀수로 전화를 해서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주에는,
그나마 friendship을 잘 쌓아가고 있던 한 친구가 또 회사를 옮긴다고 한다.
그 친구와 어제 차 한잔을 하면서 함께 일해서 좋았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가서 정말 잘 되라고 빌어 주었다.

내가 이곳에서 살면서,
직장에서 만나서 어떤 형태로든 friendship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연말이면 괜히 한번씩 연락도 하고, 서로 이메일도 하고, 정말 가끔은 한번씩 만나기도 하는 그런 친구들.

어떤 기준과 이유로,
어떤 사람들과는 그렇게 ‘친구’가 되는데,
어떤 사람들과는 그저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 정리되고 마는 걸까.

잘 모르겠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내가 ‘친구’일까?
최소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을까?

비싼 주유소

어제 차에 기름을 넣다가 문득 하게 된 생각.

나는 꽤 짠돌이다. ㅠㅠ
비싼 옷 안 입고, 비싼 차 안 타고, 비싼 음식 안먹고….

이게 한편 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차에 기름을 넣을 때가 되어서,
늘 가던 주유소에 가려는데, 그 주유소에 줄이 길었다.
우리집 근처에서 제일 싼 곳이어서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거의 망설임 없이 주변에 조금 더 비싼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넣었다.
1 gallon에 한 20센트쯤 더 비싼 곳이었고, 한 12 gallon 정도 넣었으니 2.4불 정도 더 비싸게 기름을 넣은 셈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2불 40센트 절약하는게 뭐 얼마나 대단하냐 싶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쌩으로 더 비싼 돈 쓰는건 완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렇게 더 비싼 곳에가서 기름을 넣은 것.

어쩌면 내가 더 싼 곳에서 기름을 넣어야만 생활이 되던 시절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적어도 살짝 더 비싼 곳에서 기름을 넣어도 되는 수준으로는 살고 있는거구나 싶었다.

대단한 낭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살짝… 이건 아닌데… 싶었다.

잘 아끼고 아껴서 우리 민우 고기라도 한번 더 사주면 좋은 건데 말이다.

Hot Topic

지난주 토요일 성경공부.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어려움… 아니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면, 교회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많이들 했다.

토요일 성경공부 그룹은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뉴욕/뉴저지 지역, 플로리다, 델라웨어,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upstate NY 등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인데…
그냥 교회 다니는게 힘들다는 거다. ㅠㅠ

어느때 부터인가,
예수님 믿는게 힘든게 아니고, 교회 다니는게 힘들다는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
오히려 예수님 더 잘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걸 힘들어하는걸 정말 많이 만난다.

뭐가 신학적으로 옳고 어쩌고를 떠나서…
예수님을 믿는것보다 교회다니는 것이 더 어렵고 고통스럽다면….
이건 분명 잘못된거다.
이건 분명 아닌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