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2)

“faith” 라고 해서 영어성경 신약에서 search를 해보면 당연히 많은 본문이 쭈루룩~ 나온다.
그중 살짝 다른 의미로 쓰였다거나 하는 것들을 좀 걸러내면…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믿음(faith)는 πίστις(pistis, 피스티스)라는 헬라어 단어가 쓰였다.
그래서, 이 피스티스 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쓰인 것들을 쭈루룩~ 검색해보면 대부분 ‘믿음’이라고 번역하기에 적절한 곳에 사용되어있다.
말하자면 피스티스 = 믿음 이렇게 확인이 되는 셈이다.

자, 나는 Greek 단어인 πίστις(pistis) 가 믿음으로 번역되고 있다는 것은 이해를 했다.
그런데…
분명히 그 믿음이라는 개념은 헬라문화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히브리문화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개념은 그렇다.)

자…
그러면 과연 구약에서 이 ‘믿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한번 보자.

faith라는 단어를 NASB에서 찾아보면 사실 구약에서는 많이 나오질 않는다.

신명기 32:51
욥기 39:12
시편 146:6
하박국 2:4

딱 네개가 뜨는데,
그나마 신명기에 나오는 것은 믿음을 저버렸다는 문맥에서 faith가 사용되는데 히브리 단어로는 מָעַל (ma’al, 마앨)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것은 믿음을 저버리다, 신실하지 못하다는 동사로 부정적인의미로 사용되는 하나의 단어이다.
그러니까, 일단 이 논의에서는 제껴두고…

나머지 단어들을 보면
욥기 39:12 에는 אָמַן (‘aman, 아맨) 이라는 동사 단어가 쓰였고,
시편 146:6 에는 אֱמֶת (’emeth, 에메쓰) 이라는 명사 단어가 쓰였고,
신약에도 인용되고 있는 하박국 2:4을 보면 אֱמוּנָה (’emuwnah, 에무나) 라는 명사 단어가 쓰였다.

그.런.데.
대충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아맨, 에메쓰, 에무나는 어근이 같다.
실제로 Lexicon에서 찾아보면 같은 어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것은,
아맨, 아메쓰, 에무나 라는 세개의 히브리어 단어를 가지고 구약에서 찾으면… 히야…
완전 쭈루룩~ 많이 나온다!

이중 아맨은 동사로, 어떤 것은 believe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44번), faithful 이라고 번역된 것인 22번 이나 된다.
그 외에도 trust, steadfast, sure 등등으로 번역을 했다.

에메쓰는 truth라고 번역한 것이 92번, true 라고 번역한 것이 18번, truly가 7번으로 대충 모두 truth, true 의 의미로 쓰였다.

에무나는 faithfulness로 번역한 것이 18번, truth가 13번 faithfully가 5번으로 이것도 역시 truth, faithfulness, steadfastness 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믿음 (1)

도대체 믿음이라는건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사람/인격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등이 하는 말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 대상에 의탁하는 것이 될수도 있겠다.

영어로는
believe in (existence)
believe
trust

등으로 번역할수도 있겠고.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것?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에게 나를 의탁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것일까?
혹시 이 가운데 어느 한 개념이 다른 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나는 신학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헬라어, 히브리어 당연히 이런거 잘 모르고,
아마 지금 내가 여기에서 몇번에 걸쳐서 써보려고 하는 내용들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다 자세히 파헤쳐저서 설명된게 어딘가 있겠지만… ^^

그냥 나 혼자서 해본 생각들 몇개를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학교 랭킹?

내가 학교/학벌 이야기를 하는건 늘 좀 조심스럽다.
내가 내 실력이나 능력에 비해 다소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

그래도 그냥 좀 이야기를 해 보자면… ^^

MIT는 각종 학교 순위 차트에서 engineer school로는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몇개의 핵심 전공들 – 전자, 기계, 재료, 화공 등등에서 MIT가 1등을 하지 않았던 적이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MIT가 정말 그렇게 계속 1위라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20~30년전 MIT를 생각해보면 그럴만 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재료과쪽을 보면 완전 그렇다.)
정말 전설에 해당하는 교수들이 있었고, 그 교수들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전해온다.
그냥 그 이름을 듣기만해도 히야~ 라고 탄성이 나올만한 사람들이 있었고, 누구누구가 그 제자래…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계보를 그려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실 지금은 그런 전설이 나오기 어려운 시대이다.
학교에서 하는 연구의 style이 많이 달라졌고. (요 전글들에서 언급했던 것 같이…)

대단히 깊은 학문적 깊이가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하는 연구들이 특출나게 ‘sexy’하지도 않고,
교수들이 그렇게 엄청나게 더 나은 것도 아니고…
MIT에서 뭔가 큰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Stanford에서는 Yahoo, Google 등이 나오지 않았나.

그래서 가만히 순위를 매겨놓은 것을 보면,
역시 key는 ‘돈’인것 같다.
MIT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서 아주 넘사벽으로 연구비가 많다.
여기저기서 엄청 그렇게 돈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아, 그리고 뭐 들어가는 학생들의 평균 점수 뭐 그런것도 물론 많이 높고.

그러니까,
어떤 output이 나왔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떤 input이 들어갔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긴가?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해보더라도,
MIT 출신이 엄청 더 뛰어나다거나 그렇지도 않다. (사실 MIT 출신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 ranking에 불만이 많다.
또 그 ranking을 길게보아 너무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뭐 어떤 학교 나왔다고 유난히 떠벌리는거 그것도 그래서 많이 꼴불견이다. ^^

자, 그래서 지금부터 몇가지 내 변명.

1.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졸업한 학교들에 대해서 유난스럽게 더 자랑스러워하거나 많이 부끄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그 학교에서의 경험들은 내게 참 소중하다. 가끔 내가 학교마크 들어간 옷을 입을 때가 있는데… 그건 그렇게 이해해 주시길. ^^

2.
나는 내 이메일을 계속해서 졸업한 학교의 alum 주소를 쓰고 있다.
이렇게 하는건, 무슨 학교 나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주소는 평생 바뀌지 않는 주소이기 때문이다. 이메일 주소가 바뀔때 바뀌었다고 다시 사람들에게 연락할 필요가 없는거다. 이건 정말 순전히 그런 필요를 위해서 하는 거다.

3.
그럼에도 가끔 나는 어떤 학교 나왔다는걸 아주 대놓고 많이 이야기하는 때가 있긴 하다. 대개 그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회사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어떤 negotiation을 한다거나)
저쪽도 같은 학교를 나와서 서로 뭔가 bond를 만들고 싶다거나…
아니면,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내 생각의 흐름을 더 잘 이해시키고 싶어서 내 솔직한 background를 이야기해야할때이다.

아주 뜬금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어느학교 나왔다고 자랑질하는건 내가 보기에도 영 꼴불견이다. ^^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학교 ranking 순서로 일 잘하는거 전혀 아니다.

학회 (6)

이건, 학교에 있지 않은 완전 외부인이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아마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시각이 있을 수도 있을텐데
(공대쪽 이야기)

나는 주목할만한 innovation이 학계(academia)에서 일어나지 않은지는 꽤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하는 연구들이 꽤 괜찮은 innovation으로 연결되기도 하였고,
또 좀 폭넓게 ‘학계’라고 부를 수 있는 기업 연구소들 (IBM TJ Watson이나 AT&T Bell lab, HP labs 등등)이 있어서 그쪽에서 꽤 괜찮은 것들이 나왔었다.

이르게 보면 80년대, 좀 늦게 보더라도 90년대에는 그러나 innovation의 핵심축은 기업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innovation이라는게 주로 internet과 관련된 것이 되어버린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어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90년대에는,
기업에서 빨리빨리 전진하느라 미쳐 챙기지 못한 조금 더 ‘academic’한 연구들이 학계에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90년대를 지나면서는 그렇게 academic하게 해야하는 분야들이 정말 많이 없어져서 희소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계에서는 ‘cool’한 것을 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보면 cool해 보이는 것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한 5~10년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학교에서 하는 cool한 것들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현실성이 부족한 아이디어를 기업에서 받아서 하기에는 기업의 전진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러니 점점 학계와 기업의 간극이 벌어져버린다.

이게…
뭐 이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그렇게 ‘cool’한 것을 주로 배우면서 아주 원칙적인 기본기를 많이 다지지 못한 교육이 대학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innovation은 기업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그것에 맞는 사람들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도, 정말 쓸만한 사람을 뽑고 싶으면 해당 분야에서 석,박사를 한 사람을 뽑는것보다 해당 분야의 industry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더 보게 된다.
학교에서 그거 했다고 뭘 알겠어?..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반적으로, 적어도 내가 보고있는 학교쪽의 trend가 좀 바뀌어져야한다고 (감히) 생각한다.

첫째, 기업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cool한 것을 하려는 시도를 조금만 줄이고,
정말 fundamental하고 academic한 것들을 더 많이 다루어주면 좋겠다.

둘째, 정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되면 좋겠다. grant를 잘 따내는 사람이나 cool한 paper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길러지면 좋겠다.

셋째, ‘연구’에 앞서서 ‘교육’이 조금 더 강조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지금의 innovation의 무게중심은 기업쪽에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기초에 해당하는 연구는 많이 하지 않고, cool해 보이는 연구만 많이 하기 때문에… 기업이 해야하는/할수있는/하고 있는일들을, 기업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학계 내에서는 서로 박수도 쳐주고 환호도 질러주지만, 막상 현실속에서 그걸 가지고와보면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괜히 이상한 겉멋만 든 사람들이 학교에서 길러져 나오는 것 같아 보일때가 있다. 정말 engineer로서 일을 해야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skill set을 갖추고 나오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잘 적응한 박사과정 학생은 또 다시 현실성 부족한 cool한 grant를 잘 쓰는 사람으로 길러져 또 다시 교수가 되고.

오랜만에 학회에 갔다가 괜히 bias 많이 된 오지랖을…
잘 알지도 못한채 지적질을 했다기 보다는, 회사에 다니면서 학교쪽에 바라는 것을 쓴 것으로 읽어주시길.

학회 (5)

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잘 할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적성에 맞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교수가 되지 않고 회사에 오게 되었다.

이렇게 학회에 갈때마다 나는 ‘내가 교수 안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

이번에 학회에 가서 하루 저녁에는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을 먹었다.
그 친구는 오래 학교쪽과 학교 연구소 등에 있다가 최근에 보스턴에 있는 회사에 들어간 친구이다.
그 친구가 그러기를…
회사에 오니까 제일 편한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잘났소~ 라고 이야기를 덜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가 ‘시장’이라고 하는 비교적 공정한 곳에서 평가를 받기 때문에.
반면 학교에서는
‘우리’가 아니고 ‘내’가 잘났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야하고,
그것을 평가받는 field도 그렇게 넓지 않아서 때로는 그 평가 기준 자체가 공정하지 못해보일때가 있다고.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이 assessment에 동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도 그 친구와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학계에 있었더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들을 만드는데 참여해왔다.
진짜 cool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많이 했었고.
이게… 내가 그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가 없고,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그것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학회 (4)

나는 보스턴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보스턴에 더 있으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한 아주 열심히 여기저기 apply를 했고,
사실 내가 가기엔 너무 보수나 직책이 낮은 일들에 apply를 하기도 했었다.
아내가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했었기 때문에 함께 움직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보스턴 지역에서 job을 잡지 못하고 silicone valley로 오게 되었다.)

그때 내가 정말 완전 열을 내면서 꼭 하고 싶었던 분야의 일들이 있었다.
소위 ‘nano technology'(나도 기술)이라고 하는 것들인데…
뭐 워낙 그 분야가 넓고 다양하긴 하지만…

하버드의 어떤 교수 그룹에서 post-doc을 하고 싶어서, 그 교수에게 이메일을 한 50통쯤은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교수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고, 나는 결국 내가 그렇게 더 해보고 싶었던 그쪽 분야로 내 전공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와야 했다.

이번에 학회에서 그 교수가 하는 talk을 들었다.
참 재미있는 건, 그때 내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그쪽 분야의 일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 관한 발표였다.

하버드의 잘나가는 교수이므로 아이디어도 참신했고,
학교에서 하는 연구치고는 꽤 scale도 크긴 했는데…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연구였다. (학교에서 하는 것이니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겠지만.)

나는,
보스턴에서 열심히 이메일을 보내고 job apply를 했던 보스턴의 한 겨울을 기억한다. 참 그때는 추웠었다.
이제 나는 그때 내가 그렇게 그 밑에 가보고 싶었던 교수의 발표를 들으며 혼자 씨익~ 웃어볼수 있는 상황에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는 좌절했지만 지금은 더 잘 풀렸구나… 그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대로 늘 길이 열리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름대로 내가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것들을 그래도 선용하셔서 꽤 괜찮은 plan B 혹은 plan C로 인도해 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회 (3)

예전에 나는 박사과정때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공정(process)’과 관련된 일을 했었다.
그때 당시에도 벌써 여러 회사들에서는 sub-micron이라고 해서 1 micron보다 작은 크기의 패턴들을 아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 한계에 부딪힌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잘 알려진 비밀이었다.

우리 지도교수는 우리 분야에서는 그래도 꽤 잘 알려지고 유명한 몇 사람 중 하나였는데,
벌써 그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연구는 industry에서 못하는 연구가 아니라 안하는 연구들을 했었다.
가령 벌써 industry에서는 수십 nanometer의 패턴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왜 그게 그렇게 만들어지는 일을 모를때.. ‘인텔이 그걸 그렇게 잘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설명을 하는 정도의 연구였다고 할까.
그나마 그 연구도 거의 끝물이어서, 사실 내가 우리 분야에서 그런 쪽의 academic paper를 낸 거의 막차를 탄 몇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내가 박사과정 학생일때 학회에서 발표를 하면, 다른 학교의 대학원생, 일부 교수, 포스트닥 같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말도 걸어오고 했었다. 그런데 가령, 인텔에서 왔다고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은 뒤에서 쭉~ 듣고 있다가, 씨익~ 웃고는 그냥 방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볼때가 많았다.
마치 짜아식… 그걸 이제 너도 알았구나… 라고 이야기라도 하듯이.

이번에 갔던 학회는 주로 academia에서 참석하는 학회였다. 특히 내가 주로 있었던 session은 거의 100% 학교에서 발표하는 논문들만 나왔다.
그중에는 내가 학교에 있을때부터 아주 유~명~한 교수도 있었다.

적어도 내가 속해있는 분야에서는,
학교와 industry사이의 간극이 너무 멀다.

industry의 innovation은 너무 앞서가고,
학교는 industry가 하지 않는 일들중 어떤 일들을 하는데…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는 주로,
조용히 듣다가…
씨익~ 웃고는 방에서 나오곤 했다. ^^

그리고 가끔 똑똑해 보이는 대학원생들에게는 내 명함을 주면서, 좋은 논문들 더 나오면 내게 보내라…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천식, 경험, 논리

내겐 천식이 있다.
천식이라는건 어떤 자극에 의해서 기도가 좁아지는 증상이다.
예~전에 했던 test에 의하면 내겐 집먼지 진드기에의해 유발되는 천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게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쩝.)

내가 한국에 있을 땐, 일년에 3~4개월은 꽤 심한 기침을 하면서 살았다.
이게 천식인지 모를땐 그냥 기침약을 독한걸 먹으며 견뎠고, 별로 효과가 없었다.
대개 초겨울 찬바람이 불때부터 봄까지는 기침을 했다.
보스턴에서 대학원을 다닐때도 계속 천식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고나서는 천식때문에 고생을 한 기억이 사실 별로 없다.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면 그것 때문에 기침을 좀 긴 기간동안 하기되긴 하지만 예전처럼 심하지 않고, 좀 열심히 관리하면 몇주만에 큰 고생하지 않고 달랠 수 있었다.
아, 최근에 우리동네 가까운 곳에서 산불이 나서 공기가 좋지 않았을때는 살짝 천식기운이 돌긴 했다.

이게 그런데,
출장을 다니면서 한 2~3일 정도 공기가 좋지 않은 곳에 가거나, 추운 곳에 가면 천식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번주 추운 곳에 출장을 왔더니만, 4일째부터는 살짝 기침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블로그에 out of context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쓰냐고 의아해하기도 할텐데…

나는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경험’과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논리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때로 논리적이기보다는 체험적이고 직관적인것에 기반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천식이라는 것을 평생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내 생각과 논리에 영향을 미친 것이 많이 있겠지.

학회 (2)

지금 내가 와 있는 이 학회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학회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정.말. 한국 사람들이 많다!

우선, 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제는 아주 잘 알려진 대학의 교수로 있는 사람들이 꽤 있고, 무엇보다 여러 학교들에서 대학원생으로 있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다.
지금 내가 참석하고 있는 session들은 한국에 관련된 industry가 없는 분야인데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적어도 내가 한참 학회에 열심히 참석하던때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의 미국 진출이 훨씬 다양하고 활발해진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두번째로, 한국에서 온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다!
여러 대학의 교수들도 많고, 대학원생들이 완전 떼로 몰려다닌다!!
내가 한국에 있을때는 미국에 학회로 오는게 그리 쉽지 않았는데 (심지어는 교수들도)
이제는 대학원생들이 완전 떼로 몰려다닐만큼 많다.
그리고 예전에는 한국에서 하는 발표들이 그저 양으로 밀어부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제는 꽤 양질의 paper를 발표하는 것도 심심치않게 본다.
한국 대학의 젊은 교수들이 invited talk을 하는 일들도 드물지 않고.

내가 관련있는 분야는 미국이 아니면 주로 유럽(스위스, 독일을 중심으로 일부 스웨덴, 이태리, 프랑스)이 강세이다. 그런데 내가 받는 느낌은 한국 대학들에서 하는 발표들이 유럽 대학들에서 하는 발표들보다 양도 많고 질도 떨어지지 않는다.

Very impressive!

안녕, 하이디… 고마웠어.

어제 결국 하이디가 떠났다.
아내와 민우는 그래도 슬프지만 그래도 잘 handle 한 것 같다.

민우가, 우리 가족이 가지고 있는 하이디 사진들을 모두 모아보자고 google photo에다가 다 함께 모아 보았다.

내가 찍은 사진은 대부분 하이디가 아내나 민우와 함께 하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하이디는 정말 민우와 아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 물론 나에게도.)
참 감사했다.

잘가, 하이디…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