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는 오래 못한다

금년 집회에서는 이래저래 많이 눈에 띄는 일을 맡았다.

우선 저녁기도는,
올해 간사팀에서 각 강사님들과 contents를 조정하고, daily flow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아무래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저녁기도를 맡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사실 정말 정말 웬만하면 전체집회 기도인도같은건 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해왔었는데 금년에는 그렇게라도 도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LGS는 원래 나는 인도자로 뛰지 않으려고 했는데,
등록인원이 예상보다 갑자기 늘어나고, 게다가 하시기로 하신 분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못오시게 되면서, 어쩔수 없이 하게 되었다. 게다가 막판에 정말 LGS 인도자가 부족해서 내가 그냥 폭탄을 뒤집어 쓰자는 생각으로 내 그룹에 60명 넘게 배정을 하고 맡아버렸다.

이번에 follow-up에서도,
등록자가 작년보다 많이 늘었는데 follow-up offer되는 세션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를 악 물고 세 그룹을 하겠다고 자원을 했고, 지금 세 그룹을 합하면 40명 정도가 함께 나와 follow-up 세션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보니,
KOSTA에 참석한 사람들중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이 팔려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냥 금년 KOTSA 프로그램 여기저기에서 너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는 내가 KOSTA를 오래 섬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앞에서 드러나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도록 해야,
오래 KOSTA를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한,
KOSTA에서는 execution과 presentation은 계속 분리하려고 노력해왔다.
간사들을 철저히 익명성을 유지하고, 강사님들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시도록 계속 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금년같이 이렇게 되면 나는 execution과 presentation에 둘 다 너무 적극적으로 involve하게 되어버리고, 이건 balance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KOSTA에서 제일 잘 활용되는 것이라면,
나는 강사가 아니라 간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어느 한쪽에 더 뛰어나거나 그걸 더 좋아해서가 아니고…
강사는 그래도 노력해서 훌륭한 분들을 더 구할 수 있는데, 간사는 그게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KOSTA 관계된 모임 등에서는 ‘강사’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고 그걸 잘 지켜왔었다.
그런데 지난 몇년 그게 많이 무너졌고, 나는 그게 몹시 불편하다.

이렇게 해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생각.

R 목사님

지난 몇년동안, KOSTA에서 R 목사님과 대화를 조금씩 나누어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 대화를 나누면 나룰수록 정말 괜찮은 분이다!

무엇보다 아주 인상적인 것은,
이분은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에대한 이해가 매우 깊다.

이번에도 KOSTA에 참석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시고는,
그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을 빼곡히 적어서 말씀해주셨다.

단순히 그냥 여러가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것과는 달리, R 목사님은 그것에 따른 깊은 insight도 있으신것 같다.

내가 알기로 R 목사님이 나와 그렇게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50대의 목사님이 그렇게 자신이 섬기는 20-30-40대의 사람들의 생각과 흐름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오래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이제는 그 사람들에 대한 통찰도 가지고 계시니,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했는냐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들었느냐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그 청중을 잘 이해하려는 노력과 자세는 역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참 그분에게서 많이 배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나는 신앙과 신학에 대해 매우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보통사람들에 비해서는 약간 더 고민과 생각을 해본 정도쯤 되지 않을까.

나는…
기독교의 핵심중의 핵심은 그렇게 많은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젊은시절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이원론의 문제.
꽤 오랫동안 나는 이원론에 대한 싸움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기독교적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이원론이 기독교를 심각하게 오염시켰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원론이 정말 제일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과 속을 분리하는 이원론보다 더 큰 문제는 성(聖)자체가 실종되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이원론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자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경을 보니,
뭐 아주 퉁쳐서 이야기하면,
구약은 대단히 일원론적이고, 신약은 꽤 이원론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원론의 극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고, 세상의 본질은 무엇이고,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등등이라는 것이었다.
일원론, 이원론 등등은 그냥 그것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도구들을 그때그때 사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거 분명히 엄청 비판하실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분들과 좀 대화해보면 좋겠다.)

어떤 운동이 dogmatic해지면,
그 운동인 핵심이 아닌 것들을 핵심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사람과 상황의 변화가 생겼는데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채,
그저 완전히 agenda-drive 모멘텀만을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

내가 지나친 agenda-driven 을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십자가 복음 vs. 하나님 나라 복음

이게 KOSTA에서도 이슈가 되기도 했었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도 그 긴장은 남아있는 것 같다.
이 긴장이 첨예하게 되었을때는 벌써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일이다.

전반적으로는,
십자가 복음파에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에는 복음이 없다는 입장이었고,
하나님 나라 복음파에서는 둘 다 의미있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이 십자가 복음을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이고, 그 시대에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더 relavant하다는 입장이었다.

10년이 지나서 그 긴장을 다시 복기해보건대…
나는 그 긴장이 조금 더 건강한 토론과 대화로 이어졌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결국 그 후에 십자가 복음파와 하나님 나라 복음파는 서로 그냥 cancel해버렸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돌이켜보건대,
엄밀하게 말해서, 그 당시 우리에게 accessible 했던 신학적 자료들로는, 이 두가지를 통합해낼만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러니 서로 평행선을 그리며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두 그룹이 각각 그 주장을 했던 근거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십자가 복음파에서는 그게 ‘진리’이고 ‘복음’이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복음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매우 agenda-drive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하나님나라 복음파에서는, 물론 그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meta-narrative라는 이해가 있긴 했지만, 그 당시 그 시대의 청년에게는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더 relavant하다는 주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people-drive이라고 이야기할수도 있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나는
하나님나라 복음파 역시, 이제는 사람들을 잃어버린채, dogmatic하게 이야기하는 입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와 함께 역시 중요한 것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때 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듣는가 하는 것이다.

10여년전 하나님나라 복음파가 십자가복음파를 향해서 했던 비판, 사람들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비판, 그것이 이제는 어떤 하나님 나라 복음파에게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되기도 한다.

(살짝 강조하자면, 당연하지만 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역시 십자가 복음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고민

결국 그래서 내가 하는 고민은 이거다.
내가 KOSTA에 도움이 되느냐.
내가 이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한 20년전쯤 나는, 완전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를 불살라가며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한 10년전쯤 나는, 아마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하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혼란스럽다.
내가 KOSTA를 사랑하지 않거나, 청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특히 우리 간사팀에 대해서는 그냥 혼자 생각하면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지곤 한다.
그런데,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이렇게 더 해야할까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 간사팀에 들어왔을때, 나보다 10살 정도 위이신 황간사님이 내겐 엄청 큰 형님이셨다.
그분이 워낙 좀 카리스마가 있으시기도 하지만.

그런데,
지금 간사팀에 들어오고 있는 형제 자매들은 나와는 20년도 넘게 나이 차이가 난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나이 많은 아저씨일까…

이번에 내가 맡아서 했던 일들에 대해서,
좋았다. 감사하다 그런 이야기를 일부 듣기도 했다.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어쩌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 나 때문에 막혔던 것은 아니었을까.

Agenda driven vs. People driven (4)

KOSTA에서 만나는 ‘어른들’중에는 엄청 열을 내시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KOSTA에서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가령, 상담을 하시는 분은, KOSTA가 상담을 강화해야한다고 하고,
선교를 하시는 분은, KOSTA가 선교를 더 강조해야한다고 하고,
지역교회 목사님은, KOSTA가 교회론을 다루어야한다고 한다.

매년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분들을 만났다.

(그런데…나는 뭐 실무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도 않고, 내게 말씀하셔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얼굴 좀 익숙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하시고 싶으셨겠지)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다… Agenda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agenda를 KOSAT에서 다루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agenda중 어떤 것은,
지역교회 목회자들에게 나누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청소년에게 나누어야 하는 것일 때도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하는 것을 때도 있고,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하는 것일 경우도 있다.

그래서,
KOSTA/USA는 미국에 있는 청년들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설명드리려고 하면,
대개 그분들은…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고 계시다, 이렇게 가면 KOSTA 망한다… 등등의 말씀을 엄청 열정적으로 해주신다.

그래서 대부분 그런분들과 대화를 나눌때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분들의 말씀을 잘 듣기만 한다. 그리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고 대화를 마무리하게 된다.
사실 대화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KOSTA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KOSTA만의 agenda를 가지고, 청년 학생들의 context를 무시한채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라고 이야기하는 꼰대 운동이 되지 않기를 정말 바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일종의 절묘한 균형이랄까 그런것들을 지켜가며 잘 해왔다고 본다.

Agenda driven vs. People driven (3)

KOSTA가 agenda driven이 되려는 성향에 기울어졌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 agenda는 대부분 건강한 agenda이기도 했지만, 가끔 건강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KOSTA를 접해왔던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KOSTA는 여전히 계속해서 대단히 people driven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금년 KOSTA 운동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1. 역시 people driven 정신의 core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간사팀이다. 이 사람들이 결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고, 또 개인적으로 만나면 오히려 뭐 그냥 그저그런 사람들일수도 있는데, 이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대단히 people drive이다.
    나는 이건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본다.
    간사팀에 위기가 없었던것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닌데,
    somehow 이 사람들은 겸손하고 낮아지는 섬김을 통해서 그 정신을 지켜내고 있다.
  2. 두번째 그런 모습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KOSTA cafe라고 생각한다.
    이건 KOSTA conference 전체로 보면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더운 여름날 우리 형제 자매들이 시원한 양질의 냉커피 한잔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다.
    그런데 이걸 섬기는 분들이 진짜다.
    우리 KOSTA spirit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ㄱㄷㅇ 간사님을 비롯해서, 정말 진심으로 이 청년들에게 시원한 커피 한잔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분들은 고생을 하신다.
    이런 섬김이 KOSTA conference의 흐름을 만들어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섬김은 KOSTA의 정신을 지켜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여전히 사람들을 돌보는 강사들이다.
    이런 follow up을 하는 강사님들에게서 더 자주 보이곤 한다.
    연락이 안되는 한두사람을 위해서 안타까워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어떻게든 더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려고 하는 마음들이 참 감동적이다.
    LGS를 인도하는 분들이나 기타 사람들을 접하는 일들을 많이 하는 강사님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참 자주 보곤 한다.
    이분들은 내가 무엇을 주었느냐에 관심을 쓰기 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받았는가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그런 분들이 지금 우리에겐 어떤 ‘일정한 그룹’을 형성해 있다. 이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어떻게 만들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청년들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이 여기 모여있는 것이다. 눈물 쑥 빠지게 감사한 일이다.

Agenda driven vs. People driven (2)

나는 개인적으로,
금년 KOSTA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라고 주어졌을때 별로 반갑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already-but-not-yet같은 구조,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구조,
이런식으로 도식화되는 하나님 나라이야기는 지금 청년 세대가 관심있어하는 내용도 아니고,
그렇게 설명해서 이해가 잘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스토리’라는 것을 막 밀었다.
어떻게든 각각 개인의 삶과의 연결점을 주제 차원에서 만들어주지 않으면 이게 그냥 ageda를 던져주는 일로 끝나게 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제 집회를 마치고 나서 반성해 보건대…
잘 되었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간사팀에서 제공해드린 conference flow를 가지고 강사님들이 잘 해주시긴 했는데…
결국 그냥 지나치게 agenda-driven conference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부담이 계속 있다.
강사님들이 문제가 있었다거나, 간사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각각 이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아주 훌륭하게 잘 해주셨다. 그런데 모두 함께 모이니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아마 제일 큰 문제라면, 괜히 중간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이야기를 스토리로 풀어보자고 주장했던 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당연히 KOSTA 같은 운동에있어,
어떤 pivotal moment에 agenda 세팅을 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금년에는 주제가 그런 역할을 어느정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agenda driven 이 계속되면,
청년들에게…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가르쳐줄께…
이런 식의 꼰대 conference가 된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이 있다.

조금 더 bottom-up으로, 청년들의 마음과 목소리와 고민이 담기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가령,
나이 많이 드신, 이번에 다른 ‘단체(?)’에서 오신 어떤 분들은 이번 KOSTA가 진짜 좋았다고 하셨다고 한다. 신선한 충격이었다고도 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추구하는, 그분들이 젊은시절부터 추구해왔던 agenda의 목소리가 KOSTA에서 담겼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정말 청년들은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들었을까?
이 사람들이 맞닥들이는 삶에서의 무게는 다른 것들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금년에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은 한국교회의 폭력성을 걱정하는 분들이 agenda로 제시하는 것들이고, 그것은 지금 청년들이 들어야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른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KOSTA가 더 큰 그림 그리지 않고 그저 청년들의 felt need 만을 충족시켜주자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던져주는 agenda-driven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것 (심지어는 그들이 그 필요를 당장 느끼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어떤 것 (심지어는 그들이 당장 그 목마름을 모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을 주는, people-driven approach가 더 필요하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이다.

이번 KOSTA가 꼰대 conference가 되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섬기는 강사님들과 간사팀의 자세와 정신, 독특하게 만들어내었던 분위기등은,
참석한 청년들이 정말 자신들을 위한 conference라고 느끼게 했던 것 같다.

Agenda driven vs. People driven (1)

깊은 insight도 있고, 대화하면 많은 것을 배우게되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데 그중 어떤 분들은 그 많은 지식과 열정이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agenda’에 쏟어부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마 예전에 한국의 일부 ‘운동권’이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분들이 꿈꾸었던 이상은 참 아름다웠고, 그것은 결국 인간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상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분들은 사람에 주목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아젠다에 사로잡혀 결국 사람을 상하고 해치는 것을 너무 쉽게 하는 일들이 있었다.
반면 대비가 되는 경우는 노회찬 의원 이다. 이분은 돌아가실때까지 결국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기독교에도 그렇게 agenda-driven 인 분들이 계시다.
한국교회의 개혁, 전세계 복음화, 교회의 부흥… 무엇이 되었건 간에.
이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된 근원은 대개 매우 건강하다.
그런데 그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분들에게서 사람을 향한 사랑이 메말라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서, 삶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해온 agenda를 계속해서 push하는 것이다.

나는 KOSTA가 aganda driven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100% people driven이 되면 지나치게 상황화에 신경을 쓰면서 지켜야할 핵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비판을 일부 감수하면서라도 많이 사람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청년-학생들을 향한 사랑이 KOSTA 를 시작하게 했고, 여태껏 지탱해 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

크게 별난 재주 없지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러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살아가는 거다.

금년에는 follow-up 프로그램을 하는데, follow-up에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작년에 비해서 줄었다. 작년에 비해서 참석자는 더 늘었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냥 시간 더 쓰기.

이번에는 follow-up 그룹을 세 그룹 하고 있다.
세 그룹에 총 40명 조금 더 된다. 그러니 이번 참석한 분들의 거의 10% 정도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Oh my….

지난주 벌써 첫번째 주가 끝났다.
나와 하는 zoom meeting 등으로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 참 안쓰럽기도 하다.
아니… 세상에 얼마나 평소에 공급을 못받았으면…

돌이켜보면 나의 20-30대에, 나는 참 여러 선배들로부터 풍성한 공급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 의사와 관계 없이 그냥 내게 주신, 특권이었다.

그러니…
그 특권 받았으니,
나를 조금 갈아 넣더라도 시간 더 써서,
그 빚 갚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follow-up, 이제 4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