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5:12-17)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1서 4:10)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 – 그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제물이 되게 하신 것.
만일…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난받고 희생당하지 않으셨다면,
나 같이 눈이 어둡고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36년전.
나는 성경을 읽으며 그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이 세상을, 그리고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사랑에 압도되어 울고 또 울었다.
그 사랑이 그렇게 내게 다가온 것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이었던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성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정말 어떤 순간 그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게 보였다.
다 이해할수는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깨달아졌다.
나는,
내가 나중에 우리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날까지,
계속 그 사랑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게 될것 같다.
그리고 그 깨달아지지 않는 그 사랑에 더 매료되어가길 바란다.
그 침울한 십자가는,
하나님의 궁극적 사랑의 징표다.
오늘 Good Friday.
이해되지 않는 그 사랑이 다시 내게 조금 더 보여지는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