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면 2000년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있었으니 그때를 기준으로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2002년 월드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큰 이벤트였고, 그 월드컵에서 유명해진 축구선수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명인들이다.
2002년의 사건은 지금도 누구나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태어났을때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아직 되지 않았을때였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만나서 결혼을 하셨고 나와 내 동생들을 낳으신거다.

내가 태어났을때에도 여전히 한국사회는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때였던 거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시간은 참 빨리 지난다.
10년이나 20년쯤은 그렇게 훌쩍 지난다.

시간이 그렇게 흐른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복된소식이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금년초에 혼자서 나를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다.
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든 소그룹을 만들어서라도 부지런히 성경공부도 하고 강의도 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 그 결심이었다.

그래서, 일년 52주 중에 적어도 절반인 26주는 한주에 하나씩 누가 대상이 되었던지 간에 강의를 하겠다는 것이 내 결심이었다.

금년들어서 38주째를 지나고 있는데…

금년에 이래저래 녹음/녹화한 강의 녹음/영상이 총 27개가 되었다.
그중 4개는 같은 내용을 두번 한것이므로 unique count로는 22개가 되는 셈이다.

요즘 회사일도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고,
여러가지로 만만치는 않지만 이렇게 하니 내가 좀 숨통이 트인다.

정말…. 당장 내가 좀 살것 같다.

중국과 일하는게 점점 어려워진다

미중 무역갈등때문에 중국회사와 일하는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에서 다 된 part를 수입하려고 하는데, 중국 세관에서 며칠동안이나 잡아두고 놓아주질 않는다.
여러번 재촉을 해도 소용이 없다. 보통 3~4일이면 받아야할 물건이 두주 가까이 되어야 들어오게된다.

또, 중국의 다른 회사에서는 현재 미중무역갈등 때문에 흔히 우리가 PO(purchase order, 구매오더)를 주는 방식으로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돈을 미리 내라는 거다!
이건 사실 회사간에 business를 하는데 거의 없는 일인데, 자신들도 물건을 보내놓고 돈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거다.
결국 그 회사와는 일을 못하게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좀 기술적으로 민감한 것을 중국회사와 나누어야 할때, 사람들이 조심하는 경향이 있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회사에 흘러들어간 민감한 정보들이 그냥 새어나가버리는 일들이 꽤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조심하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실제로 함께 일하는 business partner는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있는 것을 전면적으로 피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예전같이 비행기타고 훅~ 날라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불가능해져버려서,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런 추세가 조금 더 지속된다면, 아마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이 가능하면 중국을 피하려는 일들이 더 나타나게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Sinned Sinner vs. Sinning Sinner

이건 꽤 오래전에 어디에선가 들었던가 읽었던 말인데,
누가 얘기했는지, 출처가 어디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찾지도 못하겠다. ㅠ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죄인들에게는 관대하신데 (가령 간음하다 잡힌 여인)
어떤 죄인들에게는 매우 엄하시다. (가령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그걸 예수님께서 sinned sinner와 sinning sinner를 구별하신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다.

sinned sinner는 여건상, 사회구조에의해 몰려서 죄인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거나 죄인이 된 사람이다.
죄의 구조속에서의 피해자인 셈이다. 말하자면 피동적 죄인이라고 할까.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관대하셨다.

sinning sinner는 자신이 그 죄의 구조를 만들거나 강화시키는 사람들이다. 자발적 선택으로 죄의 구조ㅡ를 강화시키는 사람들. 바리새인, 종교 지도자들, 권력자들…
이들은 이들이 만드는 죄의 구조를 통해서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사람들이다. 자발적 죄인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지금 이 세상에선,
sinning sinner들이 sinned sinner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네가 죄인이라고 악악거리는 것을 너무 많이 본다.

시편 137편

1우리가 바빌론의 강변곳곳에 앉아서,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2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3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저희들 흥을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저희들을 위해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4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5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내 오른손아,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6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내가 너 예루살렘을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더 기뻐하지 않는다면,내 혀야,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

7주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 날에,에돔 사람이 하던 말,“헐어 버려라, 헐어 버려라.그 기초가 드러나도록 헐어 버려라”하던 그 말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8멸망할 바빌론 도성아,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복이 있을 것이다.
9네 어린 아이들을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복이 있을 것이다.

시편 137편은 바빌론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의 노래다.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고 있는데, 잡아온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고.
결국은 바빌론에 대한 다소 잔인한 저주로 시를 끝내고 있다.

나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의 어려움을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3절과 같이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아파하는데,
종교권력에 취한 어떤 이들은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보라고 하는 거다.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이럴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한다고,
예배를 통해 위로를 받으라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종교권력자을 향행 누군가가 7~9절의 저주를 쏟아붇는다 하더라도, 놀랍지 않다.

세상은 그렇게 교회를 욕하고 저주하고 조롱하고 있다.

자정 불가능한 개신교

배덕만 교수님이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기사가 떴다. (여기 링크)

결국은 제목처럼, 지금 개신교는 자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참 깊게 동의한다.

이렇게 말하면 괜히 재수없게 이야기하는 것 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교회는 10년정도 내에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닌지 10년 정도 되었다.

얼마전 나와 성경공부를 했던, 지금은 한국에 가 있는 한 형제가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2008년엔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청년부에 내가 와서 “한국교회가 곧 망할것이다”라고 이야기했었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보니 그 말이 정말 맞았다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어디 나 뿐이겠는가.
그냥 조금만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그 안에서 미련을 가지고 버텨보는 시도를 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겠지.

그럼 나는 지금 정말 옳은 편에 서 있는 걸까?
망했고, 망해가고 있고, 그래서 더 절박해야하는데 그걸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무슨 얘기를 해주면 되는 걸까?

심심함

어린이 교육 전문가들이 많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을 심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심해야 그 아이들이 그 속에서 상상력이 발전하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때, 우리들은 정말 심심할때가 많았다^^
TV는 저녁 6시인가 되어야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그나마 하루에 1시간정도…
학교 4~5교시 끝나고 집에오면 빠르면 점심때, 늦으면 오후 2시나 되는데… 그때로부터 해질녁까지는 아이들과 놀지 않으면 신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 물론 모범생이라면 와서 먼저 복습하고 숙제하라고 들었지만, 그렇게 하는 애들이 실제론 얼마나 되겠는가.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는, 내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심심하다’는 말이라고 이야기하신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나는 심심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때문에 집에 처박혀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 나는 그래도 감사하게도 일을 하고 있고, 그것도 꽤 많은 일을 바쁘게 하고 있어서 그 일만으로도 내 하루가 가득 차곤 하지만,그럼에도 삶의 단조로움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이렇게 심심한데서, 내가 뭔가 더 창조적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심심한데서 창조적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서 걱정이 많은데,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Coronavirus도 인간이 팽창적으로 동물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동물들이 인간과 더 많이 접촉하게 되고, 그로인해 종(species)간에 바이러스 전이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이 많으니, 정말 지구에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어떻게 감당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로 극단적인 날씨가 속출하고 있고, 지금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사방에서 일어난 산불을 몇주째 진압하지 못하고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낮에도 하늘이 그냥 오렌지색이었다. ㅠㅠ

결국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제한하고, 그 안에서 살면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배워야할텐데,
그렇게 하기엔 그냥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Jordan Peterson에 대하여

예전에 이 블로그에 Jordan Peterson에 대해 아주 짧게 언급을 한적이 있었는데, 한 독자께서 Jordan Peterson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comment를 달아주셨다.
그때는 Jordan Peterson에 대해 거의 아는바가 없었고, 지금도 뭐 제대로 안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적어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 내가 Jordan Peterson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느냐? 글쎄 대략 50~60% 정도
  • Jordan Peterson을 다른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혹은 youtube 강의등을 들어보라고) 추천하겠는가? – absolutely!
  • Jordan Peterson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영향을 주었는가? – absolutely!
  • Christian은 Jordan Peterson과 사상적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it depends
  • 누가 Jordan Peterson을 읽어야 하는가? – 정치적 중도 좌파, 사회적 엘리트
  • Jordan Peterson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fair하게 인용하고 있는가? – 학문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의 글들이나 youtube clip등을 보면 그런것 같지는 않다.
  • Jordan Peterson을 딱 한사람에게 추천한다면 누구? – 아마도 우리딸, 민우
  • Jordan Peterson의 사상에서 제일 동의하는 것은 – Put yourself together
  • Jordan Peterson의 사상에서 제일 동의하지 않는 것은 – Put yourself together

어제까지 long weekend를 보내면서 Jordan Peterson이 토론토 대학에서 한 강의 를 탐닉해서 들어보았다. Maps of Meaning. – 이건 이 사람이 책으로도 냈다.
Jordan Peterson 입문서로는 아마 12 Rule for Life라는 책이 더 적절할 듯. (이건 책으로 읽어보았다.)

기도 (10)

대화는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와 서로 생각과 마음을 교환하는 행위일 것이다.

만일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그 대화를 통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물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할만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시지 않나.

그러니 그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알게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어떤 때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이 될수도 있겠고,
미래에대해 용기를 주시는 것일 수도 있겠고,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함께 공감하는 것이 될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뜻을 이루어주시는 것 보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변화되는 빈도가 훨씬 더 잦은 것이 매우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결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 요청은 잘 들어주시지 않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숙제는 남는다.
나는 간구의 기도를 정말 거의 잘 하지 못한다.
어차피 기도해도 뭐 얼마나 들어주시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내 욕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면 그거 뭐 얼마나 가치있는 기도일까 싶어서이다.

때로는 그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할때도 그렇게 드러난다.
어떤 사람의 특정한 상황을 놓고 기도할때 그 기도가 너무나도 자주 그렇게 간절하지 못하다.

가끔… 아주 가끔…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할때 유난히 마음을 쏟아 기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다가도 그 사람을 위해 전혀 다른 기도를 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는 기도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정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향한 그분의 마음을 나와 나누어 주셔서 기도하게 되는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어쨌든 이래저래 나는 기도가 참 서툴다.
꽤 기도를 잘 해보려는 마음도 많고, 기도를 열심히 해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기도가 참 서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