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so much motivated…

회사에서 최근에 큰 일들이 좀 터지고 있다.
나는 보통 회사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내가 온힘을 다해서 그것들을 해결하고 그 공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스타일로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나의 수고로 인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수고하지 않은 우물의 물을 마시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크다.

그렇다고 내가 회사에서 아주 높은 사람이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
그냥 내가 하는 일들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길 바라는 것 뿐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에서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지금도 가끔 그렇게 연락하는 사람들중 많은 이들은,
내가 그렇게 했던 것을 기억해주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늘 일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그게 자꾸만 잘 되지를 않는다.

예전에 어떤 회사들에서는,
정말 내가 그렇게 열나게 일하는 유익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져야만 팀이 사는 환경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는… 아니, 내가 그렇게 안해도 이 사람들은 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든다고나 할까.

조금 더 솔직히 까서 말하면,
뭔가 좀 부족하고 위축된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건 힘이 나는데,
아주 똑똑하고 잘난 (어쩌면 나보다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을 위해서 아니 내가 뭐 그렇게 희생하면서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은,
그 존재와 행위가 주변에게 복이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정말 믿는다.
그런데 그 복이 된다는 것이 잘난 사람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것이되어버리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이다.

사실 그런 논리로 생각하면,
나는 ‘잘나가는’ 회사들에서 일할수 없게 된다.
잘나가는 회사일수록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예전에 Apple에 다닐때도 역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잘 생기질 않아서 힘이 들었었다. 잘난 사람들, 잘난 척 하는 사람들, 야망과 탐욕으로 사는 사람들에대한 애정이 정말 잘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애정을 주로 쏟는 대상은 ‘vendor'(하청업체) 사람들이었다.

글쎄,
내가 지금 이 회사에 얼마나 계속 다닐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좀 오래 다니려면, 이런 잘난 사람들도 사랑하는 법을 좀 배워야하는게 아닐까 싶다.

Let Your ‘Yes’ to be ‘Yes’

회사에서 일하면서 제일 많이 피곤한 것은,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반대로,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무엇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내 진의를 전달해야 할때도 있고,
때로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내 진의를 전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내 진의가 전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같이,
‘예’는 ‘예’가 되고, ‘아니오’는 ‘아니오’가 되는 그런 대화를 하면 참 좋은데… 그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참 어려을때가 많다.

그런데…
살면서 더 많이 피곤한 것은,
그렇게 ‘예’ 혹은 ‘아니오’를 이야기해야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의 Yes아닌 Yes를 Yes로 알아듣는 기술도 많이 들었고,
다른 사람의 No아닌 No를 No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바라는 것은,
내가 Yes를 Yes라고 말하고, No를 No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꾸준히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하는건 거의 ‘바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의 politics에서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예수님꼐서 하신 ‘무책임해 보이는’ 이 말씀을 계속 바보같이 붙들고 살고 싶다.

Podcast 하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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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y라는 사람과 Drew라는 두 사람의 대화라는 형태로 10개의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Cory는 기독교인이었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무신론자가 된 사람.
Drew는 목사였는데 신앙에 회의가 생겨서 목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다시 신앙을 찾은 사람.

소위 ‘기독교 변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소개되는 argument들이 다루어 지고 있는데,
사실 기독교인인 Drew의 argument는 내게 이미 다 익숙한 논리들이어서 그냥 그렇게 들었는데,
무신론자인 Cory의 argument는 내게 참 새롭고 흥미로웠다.
기독교인들의 변증의 논리에 대한 무신론자의 촘촘한 반격을 이렇게 잘 들어보는게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Drew보다 Cory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는 순간도 있었다.^^

기독교 신앙, 이성, 믿음, 의심 등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방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에서 무신론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까는 것도 아니고,
아주 좋은 대화가 나누어지는 것이 참 듣기 좋았다.

지난 며칠은 밤에 잠을 줄여가며 이걸 들었다. 그리고 결국 10개를 다 들었다. 정말 흥미로왔다.

공식을 외는 것과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르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던 시절, 나는 수학을 아주 잘하지 못했다. 뭐 어느정도 하긴 했었고, 좋아하기도 했는데, 정말 수학을 잘하는 애들에 비하면…

반면 그 수학을 활용해야하는 물리는 참 좋아하고 잘했다.
참 신기한게, 그냥 미분방적식을 풀라고 하면 그게 잘 안되는데, 물리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미분방정식을 풀어야하면 그게 잘 풀렸다.

나는 왜 그런지 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똑같은 수학인데 왜 그냥 풀면 안되고 물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풀면 잘 풀리지?

내가 나름대로 찾아낸 설명은 이것이었다.
내가 수학을 풀던 방식은 주로, 공식을 외고, 그 공식 중에서 맞는 것을 수학 문제에 적용해서 푸는 것이었다.
문제를 보고, 내가 아는 공식들을 이것 저것 끼워넣어 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반면,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풀었던 수학은…
문제를 보고, 그 문제를 푸는데 어떤 논리가 필요한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으로부터 필요한 원리나 공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적용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설명이 잘 되었나 모르겠네…

좀 쉽게 설명하면,
내가 수학문제를 풀때는, 여러가지 지식을 재료를 널어놓고, 음식을 만드는데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를 찾아가며 음식을 만들었다면,
내가 물리문제를 풀때는, 어떤 음식을 만들겠다고 할때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내고 그걸 모아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수학은 잘 못하고 물리는 잘했다.

나는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을 보면…
분명히 그 사람이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고, 얘기해보면 바른 얘기를 분명히 하는데…
막상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그 사람이 섬기는 방식을 보면 버벅거리면서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늘 모든 바른 신학적 지식을 다 갖추고 있는 것 같지 않아도,
그 사람과 얘기를 해보면 아… 참 맞다… 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그 사람이 섬기는 방식이 정말 건강하다는 생각이 확~ 들게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공식을 다 아는 것 같은데 버벅거리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는 공식을 다 몰라도 쓱쓱 풀어가면서 공식을 찾아내기도 하고 유도하기도 하며 쉽게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신앙은 지식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지혜의 영역이고,
신학은 그 사람의 신앙을 도와주긴 하지만, 신학이 그 사람의 신앙을 define 하지는 못한다.

fancy하지 않더라도 신실한 삶,
유창하지 않더라도 진실된 눈물이 담긴 설교와 가르침,
늘 잘나가지 않더라도 참된 섬김.
그런 것들을 더 갈망하게 된다.

목회 세습이 제일 큰 이슈?

명성교회 목회 세습에 대한 통합측 총회의 판단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여러 포스팅들을 본다.
나도 역시 대형교회에서 이루어진 목회세습을 대단히 기분나쁘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목회세습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열띤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드는 내 생각은 이것이다.

그래, 그게 잘못이라는 것도 알겠고, 그게 문제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런데 그래서 명성교회가 목회 세습 안하면 좋은 세상 오는거야?
지금 그게 그렇게 총력을 다해서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그거 막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하는 거야?

솔직히 말하면,
대형 교회의 목회세습은 망가짐의 결과이지 그것 자체가 망가짐의 핵심은 아니지 않은가.
그거 고치면 망가진게 고쳐지는게 아니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나도 목회세습 반대다.
그런데 정말 더 많이 열받고 아파하고 기도해야하는 더 핵심이 놓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다.

Underdog을 응원하는 재미

Boston Red Sox가 86년만에 World series를 우승했을때 나는 Boston에 있었다.
그야말로 온 도시가 잔치였다.
매년 Yankees에 막혀서 기를 펴지 못하다가, 2004년에는 마침내 우승을 한번 한것이다.

교수들도 8-9월이 되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꼭 Red Sox 이야기를 했고,
교회 설교에서도 Red Sox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Boston에서는 #1 Radio station이 Sports talk 채널이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온 도시가 열정적이었다.

그런 큰 이유가운데 하나는,
Red Sox가 underdog이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아주 저 예산 팀에 비하면 그래도 돈을 많이 쓰는 팀이긴 했지만,
그야말로 매년 돈을 팍팍 써가며 최고의 선수를 사 모으던 Yankees에 비하면 사실 늘 underdog인게 사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underdog을 응원하는게 좋았다.

그런데,
금년에 Red Sox가 무지하게 잘한다. mlb 전체에서 power ranking으로 계속 부동의 1위이다. 승률도 제일 좋고.
선수들이 진짜로 빵빵하다.
그도 그럴 것이 Red Sox가 mlb에서 payroll이 1위다! link

얼마전,
캐나다 사는 조카가 Red Sox와 자신이 응원하는 Blue Jays 경기를 보았는데 Red Sox가 이겼다고 슬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큰아빠는 좋겠다. 라고 했다고…

더 이상 underdog이 아닌 Red Sox를 응원하는건 사실 재미가 덜하다.
돈으로 승리를 사는게 뭐가 재미 있겠나.

그래서, 마음 속으로 나는 요즘 Blue Jays를 응원해보려 하고 있다. 우리 조카가 좋아하는 underdog 이니까. ㅋㅋ

외로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미숙함

1.
내가 이 블로그에서 내 ‘영적 외로움’에 대해 아주 여러번 썼다.
사실 내 영적 외로움을 아주 많은 각도에서의 외로움인데, 그 외로움을 다 이 블로그에서 썼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냥 많이 외롭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썼다.

이건 친구가 없다던가, 말 상대가 없다던가, 뭐 그런 종류의 외로움과는 매우 다른 종류이다.
나는 내게 말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고, (솔직히 어떤땐 너무 많고)
말 상대도 많다. (역시 어떤땐 너무 많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음에도 풀리지 않는 영적 외로움이 있다.

2.
그런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시도 가운데 하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서 나와 함께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건 생각해보면 아주 바보같은 짓이다.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는가.

3.
내가 가진 아주 고질적인 잘못된 습관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때가 정말 많다.)
이만큼 살면서 그토록 많이 그것 때문에 실수도 하고 좌절도 겪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좀 알아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 하자고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이라고 너무 쉽게 assume하기 때문이다.

4.
때로는 꽤 오랫동안 저 친구는 나와 생각이 같으려니… 하고 여겼다가 어떤 순간 그 친구가 나와 아주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에서 생각이 다름을 알았을때,
그 친구와 내가 생각이 같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늘 하는 그런 잘못된 버릇에서 비롯된 실수라는 것을 알았을때,
그래서 어떤 소중한 것을 그 친구와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가 있다.

5.
그런 순간에 나는 그 친구와 함께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그림을 접어야 하고,
그 친구와 함께 함께 싸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싸움에서 물러나야 하고,
그 친구와 함께 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경주에 기권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 영적 외로움을 피크를 찍는다.

6.
생각해보면 내 영적 외로움은 내 영적 미숙함의 열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 안다면…

최근에 알게된건데 한국의 리크루터중 어떤 분들은 내 블로그까지 들어오는 것 같다. -.-;
그렇게 들어오시는 분들이 정말 내 글을 어느정도 읽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이직을 고민하는지 하는 것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최근에 어떤 분이 내가 이직을 고민한글을 읽었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아, 대단하다…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은…

정말 내 블로그를 제대로 읽는다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가 하는 것도 어느정도 알 수 있을텐데,
그래서 내가 회사에 최대의 이익이 되도록 일하지 않을때도 많다는 것도 알 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을 뽑고 싶을까?

그냥 resume를 모아서 인터뷰까지 연결시키는 사람들이야, 그냥 profile 좋은 사람들 많이 모아오면 그걸로 좋겠지만…
정말 진지하게 나 라는 사람을 뽑을까 말까 고민하는 어떤 회사의 높은 사람이, 내 블로그 글들을 정말 읽는다면…
나 같은 사람을 뽑고 싶을까?

이렇게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말 내가 일하는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하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무엇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가, 무엇이 가장 가슴아픈가, 무엇에 가장 크게 기뻐하는가 등등.

그래서 정리되는 생각들.

1. 일반적인 통념으로 보았을때, 회사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그래서 어찌보면 그걸 안다면 뽑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돈이나 승진 등으로 control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사람은 결국 ‘가치’를 가지고 승부해야하는 건데, 솔직히 그건 윗 사람 입장에서 보아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일까?

3. 이 블로그를 닫거나 옮겨야 할까? ^^

비행기표를 사려고 하는데…

9월에 갈 출장일정을 또 짜고 있다.
대충 2주 정도 갈 것 같은데, 또 워낙 많은 회사들을 거쳐야하다보니 여러 회사들과 이야기하면서 일정을 맞추는게 늘 쉽지 않다.
게다가 출장 일정이 한국이나 일본의 휴일과 겹치지 않게 하려다보니 그것도 또 제약이 되고.

그런데,
회사에서 출장갈때 사용하는 여행사 website에서 다음과 같은 일정을 ‘추천’해준다. 이게 싸다고 -.-;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덴버로 갔다가, 다시 산호세로 오는… 허걱.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일정도 나온다.
샌프란스시코에서 일본에 가는데, 몬트리올에서 갈아타는 것. 후아… 진짜 완전 후덜덜 돌아가네.
(이걸 확~ 끊어서 몬트리올 공항에서 후다닥 내려서 동생네 찍고, 30분 얼굴보고 다시 공항 돌아오는건 어떨까 그런 생각도 살짝 해보았다. ㅋㅋ)

나는 보통 round-trip 비행기표를 끊지 않고, 여러 곳을 거쳐서 가는 multi-leg으로 비행기표를 끊는데,
이런 것들이 꽤 자주 나온다.

비행기표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KOSTA 후기, 2018 (21)

KOSTA를 오래 섬기면서 나를 붙들었던 가장 큰 가치는,
KOSTA를 섬기는 것이 내게 아무런 개인적인 유익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KOSTA에서 그렇게 섬기면서 몸에 밴 ‘정신’은 사실 내 전반적인 삶의 자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KOSTA를 다녀보면 여전히,
KOSTA를 섬긴것이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KOSTA 섬김의 핵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모습은 더 자주 보게 된다.
아니, 이게 뭐라고 여기서 뭐 한게 그렇게도 대단한 거라고…

어쩔수 없이 나는 어찌 하다보니 KOSTA에서 꽤 오랫동안 소위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 섬겨왔다. 솔직히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서 섬기는거야 뭐 하라면 할 수 있는데… 그게 일종의 ‘권력’이나 ‘명예’가 되어버리는 모습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런 것이었다.
KOSTA에서 무엇무엇을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한에는,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고)
KOSTA의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 더 nobody가 되어야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욕조의 작은 drain과 같이,
그 가장 핵심이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nobody가 되어야만,
운동의 건강함이 계속 지켜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영광을 다 받으셔야 하지만,
혹시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KOSTA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수를 받는 것도 강사들과 다른 섬기시는 분들이 많이 박수를 받고,
inner circle의 사람들은 기둥 뒤에 숨어서 그저 KOSTA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했다는 것이 유일한 reward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KOSTA를 좌지우지해온것처럼 떠벌리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소위 KOSTA 간사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nobody가 되는 그런 spirit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에 이렇게 길게 KOSTA 이야기를 쓰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야 뭐 들어와서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다수가 KOSTA ‘관계자’들이므로… 이렇게 편하게 써본다.

(아마 조만간 관련된 글을 쓰겠지만, 사실 최근에,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의외의 사람들이 이 블로그를 follow 해서 내 ‘동태’를 살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이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사실 쓰고 싶은 말들이 아직 더 많긴 하지만,
이걸로 벌써 한달 가까이 코스타 컨퍼런스 관련된 글만 쓰고 있어서…
일단 이 정도로 금년에는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나는 금년에 집회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번 내 결심과 헌신을 점검해본다.
나는 KOSTA에 헌신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헌신한 것이다.
그래서, KOSTA에 헌신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많이 기쁘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많이 눈물이 난다.
이번에 나는 어떤 사람들의 헌신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