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note

집에서 일하다보니, 출퇴근에 버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남는다.^^
그래도 일하는 양은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았고 어떤땐 아침 8시부터 오후까지 밥먹을 시간도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훨씬 더 managable하다.

덕분에 한동안 잘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 – 그건 긴 버전의 QT note를 매일 쓰는 일이다.
이게 참 꿀맛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중반까지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QT note를 썼었다. 그런데 40대 중반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일이 바빠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게을러져서 QT note를 잘 쓰지 못했다.

그런데 이걸 두주전부터 다시 시작하고 나니 생각을 잘 정리하기에 아주 좋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냥 본문 묵상하고 하는 정도보다는 살짝 본문 공부수준으로 들어가게되는데, 내겐 이게 참 도움도 되고, 오히려 감동도 있다. (흔히 QT 강의하시는 분들은 QT는 성경공부 아니라고 강조를 많이 하시는데, 나는 QT시간에 본문을 조금 더 공부하는게 훨씬 더 도움이된다.)

특히 마가복음 13장 성전파괴 예언은 정말 어려운 본문인데, 이건 아예 작정하고 주석도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강의등도 찾아보니…아, 이걸 내가 이렇게 잘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서 민망할 정도였다.

앞으로 두어달 정도는 이렇게 work from home을 하게 될 것 같은데, 다시 QT note 쓰기를 부활시키겠다는 결심에 차 있다.

기독교의 발흥 (1)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듯이 최근 기독교의 발흥 (The Rise of Christianity)”를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읽는 번역서여서 살짝 초반에 좀 고생을 했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니 그래도 좀 읽을만하다.

아직은 초반 몇장밖에 읽지 못했지만, 이거 정말 완전히 내 취향의 책이다!
영어책의 부제는 “How the Obscure, Marginal Jesus Movement Became the Dominant Religious Force in the Western World in a Few Centuries”인데 아주 적절하다.

이 책은 3세기 정도까지 기독교가 어떻게 그렇게 융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사회학적 가설도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제시하고, 또 자신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도 이야기하기도 한다.

거의 매 챕터마다, 아… 내가 생각했던것과 정말 다르구나… 그런데 읽어보니 정말 그렇구나… 싶은 내용들이 많이 넘쳐난다.

보나마나 꾸준히 속도를 내서 읽기 어려울테니, 그리고 읽다가 중간중간 더 공부도 해야할 것 같고 해서, 이거 다 읽으려면 2~3주는 걸리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확~ 하고 깨닫게되거나 더 알게되거나 생각할 거리가 던져진 것들을 좀 여기에 종종 써보려 한다.

No April Fool’s Joke

우리회사에서는 매년 꽤 재미있는 만우절 장난을 쳐왔다.
대외적으로도 그렇지만 회사내의 website에서도.

이 블로그에서도 4월 1일에는 만우절 장난을 치곤 했었다.

금년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회사에서도 만우절 event를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만우절 장난을 칠 기분이 아니기도 하고.

재미있는 만우절 농담을하면서 서로 장난을 치는 것을 그리워함도, 이런 상황을 이겨내게하는 힘이되기도 하는 것 같다.

번역서 읽기

사실 다른 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어본지가 매우 오래 되었다.
최근에는 주로 영어로 된 책을 읽거나, 영어 오디오북을 사서 운전하면서 들었고, 한국 저자가 쓴 한국말로 된 책은 지난 1년동안 1~2권정도도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영어를 잘해서 그러는건 아니고, 영어책을 구하는게 훨씬 쉬워서 그렇다.
그리고 내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잘 다룬 한국책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지난 주말, 토요일 오후가 되었는데 어디 나가기도 어렵고, 비는 오고, 살짝 노곤하기도 하고.. 아내도 민우도 낮잠에 빠져있고…

작년 코스타에서 사놓고 읽지 않았던 한권을 뽑아 들어 읽기로 결심했다.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 (The Rise of Christianity)

그렇게 두꺼운 책은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닌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허걱… 이거 읽는게 장난이 아니다. 중간중간에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놓은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도 무지하게 힘들고, 문장도 탁탁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아, 이게 영어로는 어떻게 쓰인걸까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영어로 변역을 해가며 읽었다. 그러니 읽는 속도도 무지하게 느리고.

아, 난 영어도 잘 못하는데, 한국어도 잘 읽지 못하게 된 것같아 완전 씁쓸하다…-.-;

그래도 일단 집어 들은거, 그냥한번 노력을 더 해볼 생각이긴 하다.
특히 4장에 가면 역병, 개종, 네트워크 라는 제목인데…. 여기서 초대교인들이 epidemic을 어떻게 대했는지 하는 것을 살짝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과 기도

지난 주말에 본 말씀.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본문.

이건 대표적으로 성경공부 연습할때 잘 쓰는 본문이다. inclusio라고.

앞에,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게 나오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성전청결하신게 나오고,
그 다음에 무화과 나무가 말라있는게 나온다.

그러니 무화과-성전-무화과 이런 구조 속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향해 열매가 없음을 꾸짖으신건 그 당시 성전으로 대표되는 종교권력에 대한 꾸짖음이라고.

그건 뭐 다 아는 얘기인데…

베드로가 무화과나무가 말라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내용을 거기에 덧붙이신다.
음.. 왜? 부패한 종교권력에 대한 꾸짖음으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면… 여기에서 기도가 왜 나오는 거야?

뭐 잘 모르는 내가 생각하기엔,
예수님께서 부패한 종교권력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망가진 자세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point out하신게 아닐까.
그 앞에 성전청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의 역할을 강조하셨고.

부패한 종교권력의 대표적 표지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우아.. 이거 참 엄청 찔리는 말씀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

지금 여러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유난히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이다.

나도 안다. 이거 잘못얘기하면 완전 조롱거리될수도 있고, 또 이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는 주일예배드린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쓰일수도 있다는거.

그렇지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은 일종의 표지처럼 여겨졌다. 결국 궁극적 생명과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역사 속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역병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들로 기록된 것이 많이 있다.

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로 여겨지지 않을까?
왜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기독교인이 아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두려움을 대하고 있을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의 의연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어제 매일성경 말씀묵상 본문은 마가복음 10:17-31이었다.

부자관원과의 대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포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reward에 대한 말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 + 사람은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아마 캘빈주의적 보수주의자라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건데, 하나님께서 은혜로서 가능하게 하신다… 그렇게 이걸 이신칭의로 연결을 시킬 것이다.
매일성경의 해설도 그렇게 되어있는 듯 하고.

그런데, 이 본문의 구조를 보면,
– 부자관원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 낙타바늘귀이야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말씀
–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이 세상에서 포기하면 오는 세상에서 보상이 있다는 말씀
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오는 세상 (the age to come)의 삶의 본질이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은,
부자는 원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얻는다는 캘빈주의적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여기서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것은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종말론적 age to come에 속하게되는 것을 의미.
– 그런데 그런 구원을 받는데에는 자신의 소유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필수적임
– 부자는 그게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
– 사람의 노력으로는 안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부자도 포기하게 만드심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본문을 잘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전제조건인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되는 표지인지 하는 것.
내가 생각하기엔 전제조건이라기 보다는 표지인 것 같다.

나도 걸렸던걸까?

나도 2월 중순이었던것 같은데,
목이 좀 따끔따끔 아프고 살짝 몸살기운이 좀 있었다. 열은 없었고.
나는 천식이 있으니, 천식 때문에 기침을 할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 천식은 살짝 좀 증상이 심했다. 내가 경험했던 천식 중에서 제일 심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의사도 만나보았는데, 의사는 천식 약만 처방을 해 주었다.

내 아내도 지난주에 살짝 좀 골골했다.
목도 따갑다고 하고, 약간의 미열도 좀 있었고. 기침도 하고.
지금은 다행히 별로 문제 없이 잘 지내는 듯하다. 의사를 만나야할만큼 심하지는 않아서 그냥 기침약 먹고 잘 쉬었다.

민우도 집에오기전 마지막주에 살짝 열이나고 기침이 많이 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봄방학에 집에 와서는 목이 따갑다고 하고,
민우는 좀 열이 조금 더 있었다. 고열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냥 살짝 열이 있구나 느낄 정도. 100~101F가 정도?
그리고 민우는 최근에 보고되고있는대로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증상도 있었다.
민우는 그래서 의사도 만났는데,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 같은건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건 못했고 그냥 감기약 처방만 좀 받아서 집에 왔다.
민우도 지금은 기침이 조금 남은 것 말고는 괜찮다. 온라인으로 계속 수업도 듣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어떻게보면 우리 세사람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이미 걸렸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우리가 정말 걸렸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우리중 누구라도 정말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던 거라면,
미국 내에서는 정말 무지하게 많이 퍼져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은 뭘 테스트를 할 방법이 없으니 알 수가 없지.

어쨌든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세사람 모두 introvert여서, 그냥 조용히 각자 일하다가, 쉬다가, 책보고, youtube보고, 가끔 한번씩 서로에게 가서 짧은 대화좀 하고… 그렇게 그렇게 잘 지낸다.
매일 오후엔 함께 집 앞에 산책이라도 좀 나가보자고 결심을 하곤 하는데, 아직 한번도 실행은 하지 못했다.^^

우리가족도 혹시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던 걸까?

시급으로 받고 일하는 사람들

어제밤 우리교회의 한 친구가 data set을 하나 보여주었다. (link)

Homebase라는 회사에서 집계한, 시급으로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입 감소를 보여주는 데이타였다.
전체 리포트 링크

3월 22일기준으로 시급으로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입이 60%감소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San Francisco에서의 감소는 미국내에서 최고수준이다. 자그마치 71%

주변에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많이 들린다.
사회경제적 약자인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거다.

이거 참… 큰일이다.

어려운 사람들

주말을 지나면서 교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들.

Uber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
최근 두주동안 배달 서비스를 하겠다고 sign-up한 사람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주로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수입원이 끊기자 이걸 하겠다고 모여드는 것 같다고.
그런데 막상 음식 배달을 주문하는 것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늘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다 일을 충분히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당장 먹고사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 어떤 여자분이 작년에 남편이 병으로 떠나보내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분은 그 세아이와함께, 큰 집의 차고(garage)를 rent해서 살고 있다고. 정상적인 아파트를 rent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
평소에 2~3개의 음식점에서 음식 서빙을 하면서 돈을 벌어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최근 그 수입원이 다 끊겼다고 한다.
이분이 만두를 만들어서 판다고 해서, 우리교회 자매들이 그 만두를 사주기도 하고, 그 광고를 여기저기도 했다고.
이렇게 어려운 분들도 정말 꽤 있는 것 같다.

우리교회에서 한 형제가 한 말은,
지금 이 시점에서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아닌것 같다.
당분간 자신의 401K(은퇴연금) 넣는 것을 멈추고 그걸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내 마음을 아주 깊이 울린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