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6)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어떤 장관을 심하게 몰아붙였던 지난 두어달간의 광풍은,
결코 정상적인 정의를 향한 움직임으로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인다.

나는 class (계급)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주라는 이유로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인 공산혁명가들은, 아무리 그 의도가 선했다 하더라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학벌이 계급이 되어버리는 것을 막는 key 가운데 하나는,
현재 하층계급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먹고살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저 삶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풀어지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뜬금없이 학벌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한국의 뉴스를 들으며 하도 마음이 답답해서 이렇게라도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5)

내가 생각하기에,
학벌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급한 해결책은,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나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 보다는,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룰을 완전히 공정하게 하는 것은 결국 결코 완전하게 이룰 수 없다.
어디에선가는 늘 불합리하게 느끼는 어떤 그룹이 있기 마련이고,
어느 구석에서는 덜 공정한 상태로 지속되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하자고 해서 여러가지 인위적인 장치들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룰을 복잡하게 만들고,
룰이 복잡해지면 그 룰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구조가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알기론 한국의 대학입시가 지금 그렇다고…)

지금은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소득 격차가 너무크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밀어넣는 사회 구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살기 위해서 죽어라고 악이 받혀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사회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경정하게 된다.

한번쯤 실패한 사람들에게 숨통이 조금 트이면,
오히려 게임의 룰 자체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기의 의견을 악악대며 주장하는 것이 조금 잠잠해 질 테고,
그러면 오히려 조금 더 자연스룹게 게임의 룰을 간단하면서도 공정하게 만들 여유가 생기게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4)

내가 뜬금없이 학벌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번에 한국에서 ‘조국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공정하지 못한 것에 정말 많이 분노하는것을 다시한번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데 그것이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일까?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이것이 그냥 그야말로 ‘정의’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같은 나이의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어느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되었다. 많이 돈을 버는 사람은 아주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정말 적게 벌게 되었다. 똑같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수입의 차이가 두배이상 나기도 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아니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이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이 버는 돈이, 미래를 희망있게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돈을 모아도, 집을 마련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소박한 꿈을 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박한 꿈 조차도 꿀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버린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은 내가 미국에서 경험하는 것 보다는 그 경쟁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게임의 룰이 공정하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게임에서 뒤떨어진 사람들이 살만하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더 나은 직장에 가는 것이 그저 ‘nice to have’인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쟁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목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게임의 룰이 공정한가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3)

좀 난잡하게 글이 쓰여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하여간 내 포인트는,
적어도 미국에서 내가 경험하기로는 좋은 학교 나온 것이 아주 영양가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그 사람이 얼마나 실력이 있느냐, 일을 잘하느냐가 결국은 드러나서, 그 사람의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내가 실리콘 밸리에서 경험하고 있는 바,
학벌때문에 실력도 없는데 괜히 인정을 받는일은 정말 거의 없고, (적어도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고)…
좋지 못한 학교 나온 실력 있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꽤 공평하게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그럴까?
글쎄… 나는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국은 내가 이곳에서 경험하는 것 보다는 왜곡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나는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첫번째 글에서 언급한 대로 실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구조가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실력 없는 사람이 도태되는 구조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실력 없는 사람이 도태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2)

내가 학벌 때문에 답답하게 느끼는 유형은 다음의 몇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실력은 별로 없는데 자기 어느 학교 나왔다는 것 가지고 계속 떠드는 사람이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별로 많이 보지 못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보긴 하는데,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
커리어 초기에 그런 사람들이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은 그냥 도태되는 것 같다.

두번째,
실력은 진짜 좋은데 학벌이 별로 좋지 않아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역시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역시 그런 사람들을 별로 많이 보지 못한다.

세번째,
실력은 진짜 좋은데 출신 학교가 좋지 않아서 주눅이 들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게 제일 안타까운 경우인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학벌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닌가 싶다.
사실 주변에서 역시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접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그냥 실력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사람들은 내가 느끼는 것 보다 더 많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주변에서 보면,
출신학교는 그냥 2nd tier, 3rd tier 학교들인데도, 함께 일을 해보면 완전 시원시원하게 또릿또릿하게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전 직장에서 내가 참 좋아했던 엔지니어중 한 사람은, Associate degree만을 가지고 있다가 (2년제 대학), 나중에 동네 학교에서 4년제 학위를 딴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늘 즐거워했다.
주변에 완전 일류 학교 박사들도 있었지만, 이 사람만큼 시원시원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으냐하면….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 혹은 한국 사람들 속에서 경험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내겐 꽤 있으니까.

아, 물론 내가 경험한 범위에서는,
좋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거의 대다수는 정말 일을 잘 했다.

이런 내 제한된 관찰은, 미국의 silicon valley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라면 이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1)

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니,
그냥 내가 경험한 미국의 상황에서 좋은 학교 나온것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써보려고 한다.

아주 결론적으로 말하면,
좋은 학교 나온 사람이 일을 잘 할 확률이 확실히 더 있다.

그리 좋지 못한 학교 나온 사람 중에서도 놀랍도록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물론 있고,
좋은 학교 나온 사람중에서도 일을 완전 답답하게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졸업한 학교의 랭킹과 일을 잘하는 수준에는 분명히 꽤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한 사람 뽑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때,
그 한 사람을 뽑으면 해고하기가 어렵다면…
사람은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risk를 줄이기 위해서 졸업한 학교 랭킹을 보고 사람을 뽑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위 학벌주의가 문제라고 특히 한국에서 더 그렇다고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그때 늘 따라붙는 이야기가 학벌이 아니라 실력으로 뽑아야 한다는 식의 말이다.
나는 그러면 대개는 그냥 더 랭킹 높은 학교 졸업한 사람 뽑는 것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
랭킹 낮은 학교 나왔지만 일을 잘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사람에게 모험을 걸어볼 수 있으려면…
내 생각엔 해고가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해고가 쉬워지는 것을 원하는지? 글쎄…

무단결석

예전에, 나는 집착이 심한 모범생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널때도 대충 걸쳐서 대각선으로 건너는 것을 못견뎌했다.
숙제를 미룬다거나 심지어는 하지 않는 일은 상상하지 못했다.

대학때에도 나는 수업을 딱 두번 빼먹었다.
한번은 친구가 갑자기 수술을 할 일이 생겨서 그 친구랑 병원에 가느라,
다른 한번은 내가 자전거타다가 넘어져서 턱이 찢어서 병원에 가느라.

그런 내게 무단결석은 대단한 용기이자 일탈이다.

지난 이틀,
블로그를 무단 결석했다.
일탈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차차 더 설명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세상 돌아가는게 마땅치 않아 하나님께 많이 좀 따지고 싶었다.
블로그 안쓰는 대신 그 시간에 기도라도 조금 더 하고 마음이라도 조금 더 추스리겠다고 했으나…
그건 완전 뜻 대로 안되었다.

무단결석도 해본 놈이나 하는 것 같다.
내겐 아무런 유익도 효과도 없는 듯…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최근 몇년에 걸쳐서 한국의 소위 ‘보수 기독교’ 목사들과 교인들을 보면서,
나는 이분들과는 분명히 다른 종교를 믿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점점 굳혀가고 있다.

그렇게 내가 선을 긋게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예전에 내가 신앙의 선배로 생각하고 존경하던 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적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이땅에 주신 분이시다.
절대적 사랑의 절대적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늘 겸손의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그 삶을 배우고자하는 한국인 신앙인들은,
길선주, 손양원, 김교신, 장기려와 같은 분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신 분들이다.

지난 목요일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남은 뉴스를 보면서…
아, 이제는 정말 내 마음 속에서 한가닥 남아있었던 아쉬움의 끈 조차도 끊어버리고,
그분들과 나는 다른 종교를 믿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증오, 폭력, 거짓, 술수를 따르는 사람들과 나는 다른 종교를 믿는다.

Andrew Yang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주목하는 사람은 Andrew Yang이다.
이 사람이 후보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 참 흥미롭다.

인공지능등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은 계속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반면 Google, Amazon과 같은 회사는 사람들이 계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 더더욱 돈을 많이 벌게될 것이다.
그래서 Yang은 이런 high tech 회사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서, 미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소득’ (universal basic income)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미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한달에 1천불씩 주겠다는 주장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미국판 허경영이 아닌가 싶은 황당한 주장 같아 보이는데,
나는 이런 방향이 미래 사회를 맞이하면서 모든 사회가 지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하는 논리라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점점 더 많은 직업들이 없어질텐데,
그것을 대체할 다른 직업들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Google, Amazon, Facebook은 점점 부자가 되고, 다수의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극도의 빈익빈부익부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면 사실상 지금상태의 자본주의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중산층의 소비가 없어지는데 어떻게 자본주의가 가능하겠는가.

기본소득의 개념은 그래서 진보적인 일부의 사람들에의해 별써 수년전부터 이야기되어 왔는데,
미국에서는 major 정당의 후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우가 요즘은 Elizabeth Warren을 지지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번 Thanksgiving에 집에 오면 Andrew Yang에 대해 민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들어봐야 겠다.
(민우가 대학에서 어려운것들을 배우더니면 요즘 훌쩍 더 유식해졌다. ㅎㅎ)

답답한 사람들과 일하기

회사에서 일 잘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런 사람들과 일하려면 정말 완전 속 터진다.
나는 100m 전력질주를 하면서 가려고 뛰는데 버벅거리면서 내 허리춤을 붙잡고 질질 끌려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아.. 속 터져…

그런데…
나는 유난히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연히 그런건 잘 해야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많이 답답해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나는 그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참 잘 하지 못한다.
그냥 내가 그 사람의 일을 다 해주는게 차라리 낫지…

왜 나는 그렇게 못되 처먹었을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일을 ‘열심히’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일을 할때 이루는 성과를 내 능력때문이 아니라 내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의’가 충만한 것이지…

I need 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