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실력이 없다면,
그 사람의 주장 자체가 옳기 않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옳고 그름은 때로 매우 애매한 경계를 가진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질 때에는 매우 자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심하게 왜곡된 기준을 가지기 쉽다.

그런데,
실력은 그것보다 훨씬 더 공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누가 실력이 있느냐 하는 것은 더 판단이 명확한 경우가 많다.

어제 회사에서,
자기가 옳은데 실력이 딸려서 억울하다는 사람의 푸념을 한참 들어주었다.
(나도 그 친구가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집에와서 그 친구의 푸념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I’m available for you

회사일을 하는데 저녁에 conference call을 무지하게 많이 한다.
아시아쪽의 사람들과 일을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데,
매일 conference call을 해야하는 주도 있고, 적어도 한주에 3번 정도는 저녁에 하는 conference call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급하게 무슨 일이 터지면,
그것 때문에 급하게 밤에 이메일 하고, 전화한다.

그 와중에 가끔 유럽쪽과 conference call을 해야하는 일이 겹치면,
그날은 완전 대박나는 거다.
요즘은,
아침 7시면 central europe이 오후 4시이므로, central europe에서 전화하기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오후 6시면 한국과 일본은 오전 10시, 중국과 대만이 오전 9시이므로 뭐 대충 그때쯤 하기 좋다.

내가 organize하는 conference call이 대부분이니까,
그러면 전후로 agenda 정리하고, 필요하면 action item 정리해서 나누고, meeting summary도 적어두고…
그럼 정말 하루가 아주 길~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죽도록 힘들게 일하느냐 하면 그런건 아니다.
나름대로 내 일정을 꽤 flexible하게 조정할 수 있고,
내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일하고 있기 보다는, 내가 해야하는 일을 내가 정해서 하기 때문에 driven되기보다는 drive하는 입장이긴 하다.

내 주의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나와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도,
내가 너무 일에만 파묻혀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많이 바쁘지 않고, 나름대로 work-life-balance도 좋은 편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과 마음을 낼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많이 광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I’m available for you!

진취적 피동성 vs. 퇴행적 피동성

기독교는 한편 대단히 진취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피동성 속에서만 그 핵심을 맛볼수 있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project를 시작하셨고, 완성하실 것이고, 내가 그 큰 흐름에 포함된다는 것은 나를 대단히 진취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initiative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initiative에 의해 이루어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성이 참된 진리로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피동성을 추구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나를 던져서 가슴 뛰도록 헌신하는 진취성도 있어야 하지만,
나의 뜻을 꺾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게 들어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그것에 순종하는 피동성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피동성을 ‘진취적 피동성’이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주저앉아버리는 결정을 해버린다.
대부분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내포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저 자신을 보고하고자 주저앉아서 피동적이 되어버린다.

이런 것은 ‘퇴행적 피동성’ 이다.

나는 매우 자주,
퇴행적 피동성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진취적 피동성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독이 된다.
퇴행적 피동성을 가진 사람이 진취적 피동성을 갖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던지는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과정을 능동성을 거쳐야 비로서 진취적 피동성으로 나갈 수 있다.

인간, 하나님의 형상

주말에 민우가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여기 클릭)
이 테스트에 따르면 민우는 Boston과 San Jose의 액센트를 가지고 있단다!

뭐랄까, 살짝 기분이 좋았다.
왜 좋았을까?아, 민우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아빠 엄마와 함께 살아왔던 trace가 말투에 남아있는 거구나…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하다가, 가끔 아버지에게 내가 머리가 빠져가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바짝 대고 보여드릴 때가 있다.
이버지는 그러면 살짝 좋아하신다. ㅎㅎ
(우리 아버지는 좀 많이 심한 대머리이시다.)
50먹은 아들이 당신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다는게 살짝 기쁘신듯 하다.

이런건 도대체 무슨 마음인걸까?
내가 많이 사랑하는 존재가, 나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뿌듯함.

나는 두세달에 하번 정도는, 여러 형태의 ‘무신론자’들과 토론을 하는 일들이 생긴다.
다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많이 똑똑한 사람들이다. ㅎㅎ
그러면 소위 ‘기독교 변증’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하게 되는데….
예전에 어떤 친구와는 주말마다 4~5시간 이상 몇주간 토른을 한적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늘 나오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슈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쪽 이슈를 꼭 한번 끼워 넣는다.)

민우가 Boston과 San Jose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하지만, 일단 가슴에 다가오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결국 그것이 가슴에 다가올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변증의 딱딱함 속에 그런 것을 꼭 끼워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민우가 Boston과 San Jose 액센트가 있다는건… 그냥 가슴으로 괜히 좋다. ^^


빨리 달리고 싶은 아이

빨리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정말 빨리 잘 달린다.
달릴때 이 아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난다.
빨리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다.

이 아이는 그러나 빨리 달릴 수 없다.
가지고 있는 짐들이 너무 많다.
같이 데리고 가야하는 느릿느릿한 친구들도 있다.
게다가 빨리 달리지 못하니 자꾸만 다리도 느려지는 듯 하다.

어쩌다 가끔 한번씩 한 10여미터 빨리 달릴 기회가 주어지면,
이 아이는 즐겁게 달린다.
그 잠깐 얼굴을 부딛히는 바람을 즐기며 신나게 달린다.

아이는 참 잘 달리는 아이다.
그러나 그렇게 달릴 수 없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그저 빨리 달리는 것은 내 일이 아니려니 하고서…

힘내라 친구야.
소망을 잃지 말아라 친구야.

1987, 2019

나는 1987년에 대학생이었다.
나는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녔으니 뭐 그렇게 대단하진 않았는데,
내가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때나,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닐때 서울에 올라올때면,
심한 최류탄 냄새를 경험할때가 많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1987년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독재정권이 일반 시민의 힘에 무너지고,
역사의 흐름이 크게 바뀐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해였다.

어리버리한 공돌이인 나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도 부족하나마 그때 불의에 많이 분노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시위를 한다거나 그런거 자체가 없어서 나는 그 흔한 시위한번 해본적이 없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불의와 싸우는 역사를 경험한 것은 참으로 큰 blessing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보는 눈이 생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모습에 너무 많이 화가 난다.

그렇지만,
생각이 있는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이것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눈이 생기도록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80년대에는 대학 진학률이 20%정도나 되었나…
그때는 대학생이라는 사실 자체가 사회의 엘리트임을 의미했다.
게다가 소위 ‘명문대’라면 더더군다나 더.
그런데 그런 엘리트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저버리고 공공의 정의를 선택했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했던 거짓말,
광주에 폭도들이 나타났다고 했던 거짓말 등은,
그때의 젊은이들이 결국 더더욱 옳음에 목마르게 만들었다.

지금의 상황이 1987년의 상황만큼 절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입만열면 빨갱이 어쩌고 하는 거짓말을 하는 정치 집단,
사실을 왜곡해서 거짓말을 돌리는 정치집단의 행태를 보면서…
이 사람들 때문에 ‘옳음’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이 잘하면 생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1980년대의 기독청년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도를 해야하나 화염병을 들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토론했었다.
그리고 그런 토론은 그 사람들이 이해해왔던 복음이 세상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없음을 깨닫게 했고, 복음과 세상에 대해 더 균형잡히고 건강한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택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 속에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기독교는 참으로 답답하다.
그리고 참 쪽팔린다.

주일학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4~9살 사이의 아이들이다.

우아… 진짜 무지하게 말 안 듣는다. -.-;
세상이 이렇게 애들이 말을 잘 안들을 수 있나 싶게 말을 안듣는다.

그런데 참 귀엽다.
아주 사랑스럽다.

그런데 애들도 내가 자기들을 예뻐하는줄 아는 것 같다.
교회에 오면 쪼로록 달려와서 내게 안기는 애들도 있고,
내게 쫑알쫑알 자기 한주동안의 이야기를 계속 해주는 애들고 있고,
막 수줍어하다가 내가 앉아 있으면 그 옆에 조용히 와서 앉는 애들도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 부모들이 거기에서 보인다. 참 신기하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우리 민우에게서도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보일까?
그렇게 민우에게서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긍정적인 모습일까?

이순신 장군 탄신일

이순신 장군 탄신일은 4월 28일이다.
아니 그런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국민학교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생일이 4월 28일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문제는,
생일이 4월 28일이었던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친구가 자기 생일이 이순신 장군 생일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기억은 나는데,
그렇게 이야기할때 표정이 어땠다는 것도 기억이 나는데,
막상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친구랑 친했던 것 같은데…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친구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뭐 내 생일날 집에 불러서 함께 짜장면 시켜먹는 생일파티(?) 할때, 그 친구도 왔었겠지.

혹시라도 그 친구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처럼 그 친구도 내 생일은 기억하지만 내 얼굴은 까맣게 잊고 있으면 좋겠다. ^^
그렇게 조금 덜 미안하도록.

한번이라도 헌신해본 사람들

소위 ‘토착왜구당’이 국회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키고 있는데, 참 기가 막히다.
잘만하면 이게 그 사람들이 완전히 찌그러지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 잘되길 바란다

그런데 이 토착왜구당 사람들 하는게 정말 참 어설프다.
나름대로 장엄한 표정을 짓는데… 뭐랄까 안쓰럽다고나할까, 좀 웃기기도 하고

왜 그렇게 느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나는 이 사람들이 가치에 헌신하지 않고 이익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마치 가치에 따라 하는 것 같이 고함은 치는데, 그게 진정성도 없어보이고, 좀 어설프기도 하고 그런거지.

그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를 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반대편 사람들은, 그 가치를 위해서 감옥도 가고, 고문도 받고,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게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도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젊음을 던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 토착왜구당은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에 가깝다.
(아, 그렇다고 진보세력이 이익집단이 전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더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그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정말 없어 보이는 거지.

어떤 가치가 옳고 그름을 약간 접어두고라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비치는 독기는,
참 우스꽝스럽다.

정말 이번에 한번 더 청소가 되길 바란다.

I miss her

우리가 키우던 개는 이 아이가 8살이 되었을때 shelter에서 데리고 왔다. 그리고 4년 조금 넘게 우리가 키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이디가 세상을 떠난지 1년 반 정도가 벌써 지났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 한번씩 하이디 생각이 난다.
위의 사진은, 우리 집 거실 한 구석에 민우와 아내가 함께 마련해 놓은 ‘하이디 메모리얼’이다. ^^
하이디의 foot print, 하이디의 사진, 하이디 닮은 강아지 인형까지.

작년부턴가, 민우가 새로운 강아지를 또 한마리 입양하자고 주장을 해왔고, 나도 그 주장에 살짝 동조를 하고 있는 중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새로운 강아지를 입양해오면, 하이디 생각이 나지 않게 될까?
아마 안 그럴것 같다.

하다못해 애완동물도 그런데,
마음을 나누던 사람을 멀리 떠나보낸다거나, 다른 이유로 헤어지게 되면,
그 사람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쉽게 채우는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전학을 3번이나 했고,
그 후에도 국민학교 친구 대부분과 다른 중학교에 갔고,
중학교 친구중 아무도 같은 고등학교를 가질 않았었다.

나는 내가 고등학교때 썼던 일기에,
사람을 그리워하는게 힘들어서 사람을 사귀고 만나는게 힘들다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이에 내겐 그게 마음의 부담으로 남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든 지금,
내겐 그런 감성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이디 사진을 문득 보며 하이디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그런게 좀 남아있긴 한 모양이다.

하이디가 분득 보고싶어질때가 있다.
오늘 점심은 맛있는걸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