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s Resolution (4)

예년과같이 생각도 좀 하고 반성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 작년 연말을 보내고…
그래서 이런 반성을 좀 해본다.

생각좀 하면서 살자.

그래서 이것이 내 새해 결심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우선, 생각을 할 여유를 좀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을 살짝 질질 끌면서 하는 때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꾸만 쫓겨서 일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바빠져서 생각할 여유를 많이 잃어버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첫번째 action item은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살자.
이건 멍하니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시간 보내는 것을 줄이는 것을 의미할것이고,
쫓겨서 살기보다는 조금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할 것 같다.
하다못해 운동도 좀 열심히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워서 전화보는 일 같은거 하지 말고…

New Year’s Resolution (3)

문제가 있다.
올해에는 작년과 같이 그렇게 분명한 결심이랄까 목표를 아직 세우지 못했다.

지난 연말에 참 오랜만에 잘 쉬었다.
마음껏 자고, 마음껏 쉬고, 대단히 게으르게 보냈다.
이런 휴식이 내게 그래도 조금 필요하긴 했던 거구나…

한동안 이렇게 쉬면 자연스럽게 생각도 좀 하게되고 그러다보면 작년을 돌아보고 금년 계획을 세우는 것이 되곤 하는데…
금년엔 그냥 완전히 다 shut down!

허어… 이것 참.
이거 당황스럽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아니 왜 이렇게 아무 생각을 못하겠는 거지?

생각해보니…
작년에는 그렇게 좀 생각할 여유가 없이 살았던 거다. -.-;
생각할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계속 뺑뺑 돌면서 생각을 하지 못했고,
생각의 흐름 자체를 잃어번채, 지쳐있는 채로 한해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새해에 이건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New Year’s Resolution (2)

작년에 내 새해 결심은 조금 더 열심히 살자… 뭐 그런거였다.
그렇게 결심했던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이미 얻게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나누며 살고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는 재작년 연말에 달란트 비유를 가만히 곱씹어보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많았다.

우선 내겐 시간이 있었다.
나는 비교적 여러 일로 바쁘게 살고 있는 편이긴 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시간을 내가 쪼개서 쓸 수 있는 유연성(flexibility)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낮에 일을 다 하지 못하면 밤에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덜 급한 것들은 테트리스를 하듯이 빈 공간을 잘 채워넣으며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내게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겐 여러 경로로 얻어진 지식이 있었다.
이건 내 전문분야의 지식도 있고, 내가 따로 공부해서 얻게된 다른 지식들도 있다.
기독교 관련 지식도 있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skill이랄까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그 지식들을 충분히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겐 제안적이지만 일종의 안정(stability)라는 것이 있었다.
이건 내 자신도 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불안정하면 나도 불안정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대단히 부유하다고 볼수는 없지만 그래도 쪼들리며 사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안정도 약간은 있다.
적어도 이 안정이 주어져있는 이 시간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서 더 힘을 내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온라인으로 성경공부와 기독교 관련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는 것이었다.
혹시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절하지 말고, 또 그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여러가지를 제공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이 52주 이니까, 적어도 그 절반인 26주정도는 한주에 90분정도씩 시간을 쓰도록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작년에 대충 따져보니까 90분짜리 세션으로 계산하면 거의 70세션정도를 했던 것 같다.
작년에는 목표를 추과달성(?)한 셈이다.

New Year’s Resolution (1)

새해 결심이라는걸 하는게 어떤땐 매우 의미있을 때도 있었고, 어떤땐 별 의미 없었을 때도 있었다.

새해 결심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대개 다음중 최소한 한가지를 포함한 경우였다.

(1) 나의 매우 고질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할때
가령 나 같은 people pleaser는 다른사람의 기대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그래서 무리를 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는 거의 4~5년 이상 매우… 올해에는 사람들의 기대를 맞추면서 사는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었고, 거의 매년 큰 진전없이 그해가 지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2)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때
예전에 컴퓨터 게임을 줄여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영 잘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내가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박사과정이 잘 풀리질 않았고 그래서 일종의 도피처로서 컴퓨터 게임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했어야하는 결심은 컴퓨터게임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내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자 가 되어야 했던 것이었다.

(3) 결심의 내용이 모호할때
기도를 열심히 하자… 운동을 잘 하자… 뭐 이런 종류의 결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거나 흐지부지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기도를 열심히 하자는 결심은 어떻게 결심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겠다는 내용이 빈약했다.
매일 몇시에 몇시간 기도를 하겠다 뭐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니까 그 결심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면서 지켜나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능력자

저 사람 누구야?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의 직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ex. 저 사람 무슨무슨학교 수학선생님이야) 그 사람이 누구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를 (ex. 저 사람 아무개 아빠잖아) 기술하곤 한다.

그런데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그 사람의 직장과 하는 일이다. (ex. 그 사람 애플에서 아이폰 배터리쪽 일하는 사람이야)

지난 주말, 페퍼톤스라는 그룹의 노래를 좀 많이 들었다.
페퍼톤스는 KAIST를 졸업한 두 사람이 하는 그룹이다.
이 사람들의 노래를 몇곡 들어보니 참 매력있었다.
youtube에서 노래를 찾아들었으니, 당연히 이 사람들이 여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많이 나오는데, KAIST 졸업했다는게 여전히 이 사람들에게 아주 특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 사람들은 아주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고, KAIST 졸업한건 그렇게 이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 삶을 살고 있다.
한때는 다들 그렇게 공부잘해서 그렇게 좋은학교 가고 그렇게 공부한걸텐데… 자신의 비전공분야에 몰입해서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는 것을 보면서… 아, 참 여러분야에 능력이 많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전혀 다른 직업을 선택해서 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 비전문분야에서 대단히 놀랄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요리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하고, 운동이나, 혹은 다른 손재주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냥 어릴때부터 늘 해오던거 말고는 별로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 다른 많은 것들에 나는 흥미를 잠깐씩 보였던것 같다.
함께 노래부르는것을 좋아했었고, 중창단같은 것도 했고,
연극을 엄청나게 열심히 하면서 그거 열심히 공부도 했던 적도 있었다. 연기도 했었고, 연출도 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들을 내가 누릴 기회를 점점 잃어갔고,
나는 예전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그런 분야들에 대해서도 전혀 뭐 별다른 지식도 관심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점점 재미없는 사람이 더 되어버린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요즘 거의 유일하게 내 전문분야 말고 열심히 하는건…
그냥 이것저것 공부하는거다.
성경공부 꽤 열심히 계속하고 있고,
신학책들 읽으며 그것도 공부하고,
youtube 등에서 다소 뜬금없는 과목들을 혼자서 독학하기도 한다. (유명 대학의 심리학과 과목이라던가, 내 전공과는 다른 전자회로에 관련된 과목같은 것들)

요즘은 인터넷에 워낙 여러종류의 능력자들이 많아서,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꽤 괜찮은 지식을 아주 정리가 잘 된 버전으로 아주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내가 능력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지는 못한데…
나는 이렇게 많은 능력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성탄의 의미를 잃어버린…

성탄에는 정말 생각해볼것이 많다.
성육신에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 정말 많고,
평화에 대한 것도 그렇고,
낮아짐에 대한 것도 그렇고,
upside-down kingdom에 대한 것도 그렇고,
세상 권력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그리고 있는 세상의 깨어짐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그리고 실천해볼 수 있는 것도 정말 많다.
묵상, 기도, 나눔, 봉사, 예배, 함께함 등등….

정말 답답한건,
교회들에서 이런 모든 것들이 말라버린채, 프로그램들만 풍성하게 남아버렸다는 거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보지도 않는 목회자의 설교를 성탄의 의미에 관심이 없는 신도들이 들으며, 성탄의 의미와는 관계없는 프로그램 속에서, 성탄의 의미와 관계없이 즐기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Cancel culture

Cancel culture라는 말이 있다.
Wikipedia의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Cancel culture (or call-out culture) is a modern form of ostracism in which someone is thrust out of social or professional circles – either online on social media, in the real world, or both. Those who are subject to this ostracism are said to be “canceled.”

말하자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대상이 나타났을때 주로 온라인에서 집단으로 달려들어 그 대상을 비난하고 모멸감을 주고 따돌리는 문화를 이야기한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유명인들에대해 이렇게 많이 한다.
주로 이것이 밀레니얼의 문화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경우엔 단순히 밀레니얼에만 한정되어있는것 같지는 않다.

글쎄, 나이가 들어 밀레니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받을만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cancel culture는 결국은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관용(tolerance)를 관계의 원칙으로 정해놓은 일종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에대해서는 조금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줄 아는데… 오늘의 글에서는 이 정도만 언급하고 다음에 언제 기회가 되면 조금 더 풀어내보겠다.)

가령, 유명한 유튜버가 자기의 영상에서 뭐 하나 잘못을 했다 하면…
정말 벌떼와 같이 달려들어서 그 유투브 채널을 폐허를 만들어버린다.
어떤 연예인이 한가지 말 실수를 하면….
그 연예인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매장을 시켜버린다.
어떤 정치인에게 무슨 흠결이 드러나면, 그 흠결의 맥락은 덮어버린채, 그 정치인과 가족을 완전히 처참한 지경으로 만들어버린다.

생각이 다른 관점에 대해 조금더 참아줄줄 알고,
타인의 약점에대해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어떤 사람의 실수나 잘못이나 약점에대해 좀 여유를 가지고 바라봐주는 시각이 참 그립다.

이런 Cancel culture는 옛 공산독재국가에서 했던 인민재판이나 중국 공산당이 했던 홍위병들의 모습과 너무 비슷한 모습이 많아 보인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기독교는 이런 것에대해 꽤 분명하게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다만, 현대의 기독교는 그런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집이다!

민우가 어제 집에 왔다.
이번학기는 유난히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workload도 많았고, 계속 online으로 하는데서오는 피로감도 컸다고…

며칠전 부터는 민우가 계속 빨리 집에 오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다. 정말 이번학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더 그렇게 집이 그리웠다보다.

공항에서 민우를 픽업했는데,
민우가 차에 막 타자마자 하는 말.

“아, 집이다!”

집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차에타고선 집이라고 하는거다.
민우는 아빠 얼굴을 보니까 비로소 집이라고 생각을 하는거구나.
SFO 공항에 막 내렸을때 집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고, 아빠의 얼굴을 보았을때 집이라고 생각이 되는 거구나.

민우에게 집이되어주는 아빠가 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그렇게 힘든 한학기를 지나고 아빠 얼굴을 보면서 ‘집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듯…
힘든 시간을 지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그렇게 보고면서 ‘집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른도 아프다


어른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른으로서의 일들에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버텨냈을 뿐이다.
어른들도 아프다.

몇년전에 봤던 응답하라 1988에서 내가 제일 감동깊게 보았던 장면중 하나이다.

나는 자그마치 50이 넘은 어른인데….
나는 정말 어른으로서의 일들에 바쁘긴 한걸까.

뚜렷한 주관과 똥냄새

나는 facebook 보는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
내가 부지런히 그 내용을 update할만큼 한가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나와 ‘친구’가 된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이 참 별로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또 내가 심심할때 이래저래 가입해놓은 group들로부터 나오는 글들도 어떤 것은 참 통찰이 있는 글이지만, 많은 경우 그것들을 읽는 것이 시간낭비를 넘어 해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될 경우가 많다.

facebook에 나오는 강한 자기 주장 중에서 어떤 것은, 심지어 그 생각이 나와 다르다 하더라도, 들어볼만한 주장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그냥 너무 싸구려 비난과 증오로만 점철되어 있어 마치 똥냄새를 맡는것 같이 느껴지는 주장들도 있다.

그렇게 똥과 같은 글을 써대는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찬들이다. 특히, 뚜렷한 주관과 아젠다와 주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젠다에 반대가되는 생각이나 주장이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똥을 뿌리는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여러가지에대해 꽤 강한 내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진 나의 주장들도 그런식으로 똥냄새를 피우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