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ting my time

예~전~ 직장에 함께 일했던 사람중에 C 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그 직장에 있을때 늘 나를 경계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늘 자를 경계하고 견제했다. 이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야 뭐 그렇다고 해도, 이 사람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일이 잘 되지 않은 적이 많았다.
상당히 답답하고 열받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사람이 계속 내게 친한척을 하면서, coffee나 하자, catch up 하자,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좀 듣자며 내게 연락을 해온다.
사실 한 6개월쯤전에 그렇게 연락을 해와서 한번 만났는데, 이 사람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회사에 무슨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나를 찔러보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 이번에 만나자고 하는 것도 그런 것이겠지.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은 그렇게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회사에서 이 사람이 할만한 일이 딱 있는 것도 아닌데도, 계속 어쨌든 내게 친한척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C 말고도 몇명 있다. 주로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에게도 여전히 친절하게 대해주고, 진실되게 대하고 그래야 하는 걸까? 어떻게?
그냥 나를 이용하고자 내게 친한척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안그래도 바쁜데 이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혜롭게 시간을 쓰는 것일까?
이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시간을 버려지도록 그렇게 사용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들이 좀 있다.

Reality?

1.
요즘은 전화에 딸려나오는 카메라로 찍는 사진이 진짜 잘 나온다.
그도 그럴게, 이게 그냥 사진만 찍는게 아니고, 소위 ‘인공지능’이 사진을 보정해주기 때문이다.
너무 조명이 어두우면, software가 자동으로 조명을 조정한 사진을 찍어준다.
그래서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게 된다.

2.
그렇다면, 그렇게 찍은 사진은 ‘실재(Reality)’일까?
결국 카메라 software가 재구성한 사진이니… 현실에 근거한 실재의 재구성 정도로 생각될 수 있지 않을까?

3.
내 오른쪽 눈에는 소위 ‘floater’라는게 얼마전에 생겼다.
이게 일종의 노화현상의 일부라던데…
안구안쪽의 ‘gel’이 그 벽과 분리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마치 무슨 작은 날파리 한마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의사에게, 그래서 이건 얼마나 지나면 없어지느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안 없어진다고 했다.
대신 내 뇌에서 그걸 무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현실속에 있지 않은 가상의 날파리가 내 눈 안에 생겼고, 내 눈 안에 생긴 그 가상의 날파리는 점점 내 뇌가 그걸 무시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내가 의식을 많이 하고 노력을 해야 그 floater가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Reality)일까?
내 눈이라는 일종의 ‘센서’를 이용해서 내 뇌라는 ‘software’가 재구성하는 이미지는 과연 실재일까, 아니면 실재의 재구성일까?

4.
만일 실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tool 자체가 어쨌든 실재를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실재(Reality)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속에서 내가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5.
기독교적 관점은 실재와 본질을 분리하는 플라톤식 이원론이나 영지주의를 거부한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그것들은 기독교가 싸워야 했던 주된 적들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의 인식이 바로 실재라는 등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식과 실재를 등치시키면 초월이 들어갈 자리를 없애버린다.

6.
우리의 인식과 이성과 의식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이어야, 그래서 실재(Reality)라는 것에대한 일부의 애매함(ambiguity)를 남겨 두어야만, 앞에서 내가 이야기한대로 우리 감각 기능과 뇌의 기능간의 역할분담이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게 된다.

7.
실재와 본질을 분리하는 이원론은 허무하고,
실재와 본질을 동일시하는 물질주의는 internal coherency가 부족한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적 관점이 이 애매함을 자연스럽게 수용해내는데 매우 적합한 관점이 아닐까.
뭐 이런 류의 생각을 혼자서 해 보았다. ^^

8.
보나마나 이런 생각들…
철학자/종교철학자/신학자들이 이미 많이 생각한 것들일텐데…
그런것에 내가 깡 무식하니… 혼자 이런 생각을 해볼수 밖에…

좋은 설교란

좋은 설교는,

동의하기 때문에 듣기좋고 공감가는 설교가 아니라…
동의하기 때문에 듣기힘들고 마음이 불편한 설교가 아닐까 한다.

현대 교회의 비극은,
동의하기 때문에 듣기 좋은 설교를 따르는 대다수의 대중들과 그들의 입맛을 맞추는 설교자
동의해야하는 이슈에 대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설교에 불편해하는 대중
건강하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의 설교를 강요하는 설교자
이런 사람들만 넘쳐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 years

오늘로 우리 민우가 20살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컬한 것은,
아이가 어릴때 아이는 부모로부터 참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때 부모도 역시 부모로서 가장 철 없는 시절은 지난다.

나는 만 29살에 아빠가 되었다. (내 아내는 25살에)
29살의 나는 참 형편없었다.
그럼 지금엔 훨씬 나아졌느냐 하면 뭐 딱 그런건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29살의 나를 돌이켜보면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못했다.

민우는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으면서, 자유를 즐길줄 알고, 창의력이 넘치는 아이이다.
그런데 나는 민우가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고 자유를 즐기고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더 잘 크도록 잘 support를 해주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게, 나는 마음이 따뜻하지 않고, 자유를 즐길줄 모르고, 창의적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우에게 최적의 아빠가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민우는 내게 참 분에 넘치는 딸로 자라주었다.
민우의 따뜻한 마음은 내 차가운 마음에 난로와 같은 역할을 해 줄때가 많았다.

아빠의 사랑을 바라는 얼굴로 민우가 내게 폭 안길때면 사랑 없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작은 사랑의 샘물이 고인다.

이제는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민우는 아빠 엄마에게 와서 폭 안기길 좋아한다.
예전에는 그게 민우가 나로부터 사랑을 받기 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민우를 통해 사랑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확실히 다른 phase로 넘어왔다

이번 World Series는, 그래도 long time Red Sox fan으로서 비교적 많이 경기를 보았다. 밤에 컴퓨터를 켜놓고 일을 하더라도 옆에 Red Sox 경기를 켜놓고 일을 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경기 중간에 광고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번 광고들을 보면서 확~ 다가온것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광고를 엄청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Google은 post-season 전체동안 Google assistant와 youtube TV 광고를 엄청 했다. Facebook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최로로 그들이 만든 hardware 광고를 엄청 해댔다. (흥미로운것은 facebook의 영상통화용 hardware에 Amazon의 Alexa가 올라가 있다. 그래서 Amazon도 함께 광고 ㅋㅋ)
Apple이야 원래 TV광고를 했으니까 뭐 특별한건 아니고.

생각해보면 Google이나 Facebook이나 Amazon이 이런 big event에 TV 광고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음… 그런데 사실은 내가 TV를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것일수도 있겠다. ㅎㅎ)

예전에는 Google이나 Facebook 같은 회사들은 그냥 워낙 dominant했으므로 별로 광고가 필요없기도 했고, technology로 보더라도 그냥 안정적으로 계속 가겠다 싶은 분위기 였으므로 또 광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런데 이제는 Apple, Amazon, Facebook, Google 같은 회사들이 결국 다 같은 pool에 뛰어들어서 경쟁하는 구도 비슷하게 되어버렸고, 이제는 TV 광고가 필요하게 된것이 아니겠나 싶다.

언젠가는 이런 인터넷기반 회사들도 지금의 자동차 회사나 전자부품 회사등과 같이 lean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긴 하겠지만,
이번 World series 광고를 보면서 느끼는건, 그런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전화가 너무 비싸졌다

처음 iPhone이 나왔을때, contact 없이 사려면 가격이 $500~600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1천불 정도가 되었다.
아, 물론 그때는 spec도 현저하게 낮았고, 그건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고 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령, 비교를 위해서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어코드-캠리를 사는 가격이 10년전에는 내 기억으로 대충 2만불 이쪽저쪽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2만5천불 이쪽저쪽이 되게 되었다.

그동안 자동차는 연비도 왕창 좋아졌고, 각종 편의장치도 늘어났고, 힘도 좋아졌고, 더 안전해졌고, 소움도 줄어들었고 더 커지기까지 했다.

과연 이렇게까지 전화가 비싸져야 하는 걸까?

두주전에 민우 전화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급하게 싼 전화를 하나 사줬다.
Motorola G6 였는데, 200불이 조금 넘는 가격에 샀다. ($199 + tax)

사주면서 민우에게는 일단 급한대로 임시로 쓰다가 영 전화가 좋지 않으면 black friday sale때 조금 더 좋은 걸로 사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민우는 며칠 써보더니, 이거면 새 전화가 전혀 필요없겠다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쓰는데는 충분히 좋고 만족스럽다고.
민우는 그래도 전화로 꽤 많은 일을 하는 아이인데도, 200불짜리 전화면 충분히 좋다는 거다. (아, 민우는 물론 전화로 graphic-heavy한 게임 같은걸 하지는 않는다.)

안드로이드 전화는 그래도 이렇게 좀 싼 option이 있는데,
아이폰쪽은 그런 option이 아예 없다.
비싼걸 사던지 아니면 중고를 사야하는 거다.

나는 1천불짜리 전화가 norm이 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silicon valley의 greed와 소비자들의 허영심이 도를 넘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나도, Google pixel 2 xl을 쓰고 있으니 (그 당시 가격 850불)… 뭐 떳떳한(?) 입장은 아닌거다. 물론 내 돈 주고 산 전화가 아니긴 하지만… (회사 전화)

Red Sox!

1.
미국에 처음와서 살게된 곳이 대개 이민자에게는 미국 내의 제2의 고향이 된다고 한다.
나는 보스턴에 처음 살게되었는데, 보스턴은 정말 유난스러운 곳이었다.

처음 열역학(thermodyanmics) 수업을 들어갔는데, 연세가 70쯤 되시는 교수님이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에 칠판 한쪽 구석에 “Magic Number 11” 라고 적으셨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어도 잘 못해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겨우 할까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그 교수님이 매번 수업하실때마다 magic number를 update하시는걸 이해하는건 내 영역 밖이었다. 결국 두세주 지나고나서야 그 magic number가 Red Sox가 playoff에 진출하기위해 승리해야하는 게임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보스턴에서는 Red Sox가 종교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Red Sox 가 86년동안 지속되어온 The Curse of Bambino를 깨고 World Series 우승을 하는 것을 보면서 보스턴을 떠났다.
정말 온 도시가 난리였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모르는 사람끼리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2.
금년에는 Red Sox 가 정말 잘했다. Red Sox 역사상 최고의 승수를 거두며 정규시즌을 마쳤고, play-off에서도 정말 잘했다. 상대팀을 모두 압도한다는 느낌으로 이겨버렸다.
그리고 어제 World Series 우승을 했다.

3.
내가 그런데 이전에도 쓰긴 했는데, 금년 Red Sox가 내겐 살짝 덜 재미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냥 워낙 비싸고 잘하는 선수들을 왕창사와서 잘하게 된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뭐 따져보면 아주 그런것만은 아니라고 할수도 있지만… ^^)
그래서 금년에는 좀 underdog이 이겼으면 하는 생각을 시즌 중간에 좀 하기도 했다.

4.
그런데, 막상 어제 Red Sox 게임은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았고, Red Sox가 이기는 순간에는 정말 기뻤다! ㅎㅎ
underdog이고 뭐고… 그냥 Red Sox가 이긴게 좋았다.
돈 많이 써서 이기더라도, 그냥 내 ‘고향(?)’팀이 잘하는게 좋았다.

5.
어떤 특정 관계는 논리를 뛰어넘는 관심과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고향, 친구, 가족 등등은 논리적이지 않은 관심과 애착을 갖는다.

6.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 그렇다고 믿는다.
논리적이기보다는 그냥 사랑하시는 거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은, Red Sox와 같이 크게 성공하고 승리하는 순간에도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좌절과 불안의 상태에 있을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쏟어부어진다.
만일 불안과 좌절 너머서 계신 그 하나님을 볼수만 있다면 그게 보인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많이 불안해하고 좌절한다.

7.
그렇다고 불안해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책망할 것인가? 아니… 당연히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불안해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더 손 붙들어주시길 원하신다.
너무 계속 찌질하게 찌그러져 있으면 가끔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행해 호통을 치시기도 하지만, 정말 사랑의 호통이시다.

8.
하나님의 사랑은 논리적이지 않다.
승리의 순간에도, 좌절의 순간에도, 불안의 터널을 지날때에도,
그 하나님의 그치지 않는 사랑은 부어진다.

눈을떠서 그것을 볼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수만 있다면…

타협과 신앙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타협하는 것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것이 평생의 고뇌가 될 것이다.
그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의 본성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협을 정당화하는 것은 신앙의 변질이 아니라 불신앙이다.

옛 습관을 따라 아직 남아 있는 타협을 많이 가슴아파하는 일은 여전히 계속 되겠지만,
나는 그냥 여기까지만 할래 라고 하는 것은 신앙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신앙이 없는 것이다.

결혼을 한 신랑이 계속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지만 몸과 마음이 여전히 다른 여자들에게 끌려… 라고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역겨운가!

유진 피터슨

나는 facebook을 열심히 들어가서 보지 않는다.
내 전화에는 facebook app 자체가 아예 없고, 아주 가끔 한번씩 컴퓨터를 이용해서 들어가보는 정도.

유진 피터슨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다른 경로를 통해서 듣고 나서,
facebook에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유진 피터슨에 대한 애도나 추도가 잠잠하다.
좀 속상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로, 어쩌면 더 속상했던 것은,
유진 피터슨에 대해서 그렇게 추도나 애도를 할만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유진 피터슨에 대해 한마디씩 쓴 글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유진 피터슨이 생전에 이야기했던 사상/신앙 등을 제대로 살아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인데…

적어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유진 피터슨의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유진 피터슨이 그 사람을 안다면 엥? 네가 왜 나를 추도해? 라고 이야기할만한데…

나는 유진 피터슨의 ‘광팬’은 아니었다. ^^ 아마도 그분의 사상을 내가 다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혹은 그분의 컬러와 내 컬러사이에 뭔가 팍~ 맞아떨어지는 chemistry가 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진 피터슨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마음이 휑~하니 아쉬웠고,
그분의 죽음에 한 숫가락 얹으려는 사람들을 보며 더 많이 속상했다.

민우에게 필요한 교회? 민우에게 맞는 교회? (3)

참 고마운것은,
그래도 이번에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니까…
민우가 text로… 조금 더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서 잘 공부해볼 수 있는 책들을 추천해달란다. ^^
애고 기특한 놈.

사람들에게 책 추천하는 일을… 아마 여태껏 수백번도 넘게 했겠지만,
이번엔 정말 마음을 많이 담아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민우에게 책들을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민우가 교회를 찾으면서 이런 교회 아느냐, 이런 목사님 아느냐고 내게 많이 물어보았다.
당연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여러 지식과 network을 동원해서 민우가 좋은 교회와 신앙 공동체를 찾을 수 있도록 지금도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

민우보고 공부잘 하느냐, 시험 잘 보느냐는 얘기를 한번도 안물어 보지만,
교회 잘 가느냐, 성경공부 그룹은 잘 찾았느냐는 얘기는 매번 물어본다. ^^
감사한건 민우가 그걸 잔소리로 듣지 않고, 자신도 계속 노력해서 찾아봐야한다고 여긴다는 거다.
참… 참 감사하다.
그렇지만 벌써 민우가 거기 간지 두달이나 되었는데… 내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지기도 한다.

정말 민우가 좋은 신앙공동체를 찾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