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5)

내가 주변에서본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완전 똑똑하다. 자기 전문분야가 아니어도 한 30분만 듣고서도 그 개념과 내용을 파악해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것에대해 꽤 전문적인 조언이나 가이드라인을 주기도 한다.

진짜 열심히 일한다. 티를 내기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 있어 주말은 최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다. 하루에 15시간 일하는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체력이 장난아니다. 하루에 6시간도 못자면서 지내도 끄덕없다. 해외출장을 가서 새벽비행기로 다른 나라에 도착하더라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일하러 달려간다. 그리곤 저녁에 비지니스 디너까지도 다 하고나서 잠자리에 든다. 그 다음날 새벽 5시면 호텔 주변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다음날에도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는다. 그래서 필요하면 어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로 그 사람을 설득하기도 하고, 어떤땐 공감을 표시할줄도 안다. 이런 능력은 결국 주변의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얻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협상을 능수능란하게 잘 하는 것이다.

멘탈 갑이다. 원만해서는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어렵다. 아주 심한 비판도 이 사람들은 잘 받아들인다. 그게 말이되는 것이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말도안된다 싶으면 그냥 싹 무시할줄도 안다. 기분이 나빠서 일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일은 웬만해선 없다.

끊임없이 돌진한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나 싶게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계속 더 높은 goal을 세워서 그것을 향해 돌진한다. 주변에서 높은 goal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더 높은 goal을 세워서 돌진한다. 지칠줄모르는 중단없는 전진이다.

대개는 이중 하나라도 빠지면 정말 그게 그 사람의 큰 약점이 된다.
그래서 결국은 그 사람이 더 성공하는것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정말 성공하는 사람들은 때로 거의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수학도 잘하고, 언어도 잘하고, 예술도 알고, 역사도 알고, 철학도 알고, 스포츠도 잘 알고, 운동도 잘 하고, 예술에 소질도 있고, 언변도 뛰어나고, 심지어는 잘생기기까지…

대개 이런 모든 면들을 얼마나 골고루 빠짐없이 잘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 그룹 내에서 얼마나 성공하느냐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성공 (4)

이상 이야기한것은,
그 사람이 어떤 성공한 그룹에 포함되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설명이었다.
이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그야말로 학생때 얼마나 공부잘했느냐 하는 것으로 쉽게 표현할 수 있다.

학생때 공부잘하는 것이 그 사람이 성공의 정도를 직접적으로 완전히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성공 정도와 (그것이 대단히 정의하기 어렵긴 해도) 그 사람이 학업성적은 꽤 강한 상관관계가 일반적으로 있다.

그런데, 그 그룹 내에서 얼마나 성공하느냐를 가름하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나는 그걸 학생땐 정말 몰랐다.-.-;)
가령 같은 엔지니어들 중에서도 훨씬 더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냥 그럭저럭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실패하고 낙오하는 사람들도 있고.

내 경험이 대단히 일반화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것은 자신이 없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보면, 그 그룹 내에서 성공하는 것에는 많이 조건들이 따른다.

지능, 감정조절능력, 부지런함, 자신감, 만만하지 않음, 체력, 끊임없은 도전정신, 공감능력….

성공 (3)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변수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하는 것이다. 그 열심히 하는 것은 그냥 ‘노력’이라고 정의하기보다는 더 복잡한 변수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집중력은 꽤 여러가지의 요인들에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판단력, 체력, 절제력 등등.

나는 타고난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range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력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 천재를 보지 못했거나, 자신이 천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열심히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 떨어지는 것은 많이 보았다. 정말 많이 보았다.

얼마나 타고난 재능이 있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이 어디까지 성공할수 있느냐를 결정한다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디 이하로 떨어지지 않느냐를 결정하는게 아닌가 싶다.

성공 (2)

보통 어떤 그룹에 속했느냐로 성공을 정의하기도 한다.
가령, 일반적으로 수퍼마켓에서 계산을 하는 점원들보다는,
뇌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들을 더 성공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외과의사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더 잘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덜 잘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외과의사’라는 그룹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이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성공을 이야기할때에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야한다고 본다.

우선, 소위 ‘성공했다’고 이야기할만한 직업군에 포함되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 직업군 내에서 어떻게 더 성취해냐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성공한 직업군에 속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가는 성공을 define하는 것은 대개 그 사람이 얼마나 머리가 좋고, 자기 control을 잘 하고, 집중하느냐 하는 것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이야기하면, 학교다닐때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느냐 하는 것과 연관이 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느냐 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엔 우선 타고난 재능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머리가 나쁘면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천재만큼 수학 문제를 잘 풀수 없다.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무리 연습해도 음악천재의 연주를 따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공 (1)

내가 여러서도 많이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대충 이런거다.

아무개아무개는 예전에 나보다 공부도 못했는데 지금은 훨씬 더 성공해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쟤는 공부도 못하는데 인맥 잘 쌓아서 성공했다.

그렇지만 성공은 그렇게 공부잘 하는 한가지만으로 쉽게 정의될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세상이 절대적으로 공정이 확보된 경쟁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세상은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것처럼 그렇게 완전히 공정이 사라져버린 세상인것만은 아니라고 또한 생각한다.

사회에따라서 공정의 정도가 조금씩 다르겠고, 또 같은 사회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서 공정함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가령, 전반적으로보아 미국은 한국보다는 더 공정한 사회인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내가 일하고 있는 ‘tech company’들은 그래도 비교적 공정한편인 것 같다. (아, 나도 내가 당한 불공정함 때문에 열받는때가 참 많이 있다. 그것 때문에 회사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성공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가령 연봉 20만불은 받는 불행한 변호사가 연봉 5만불을 받는 행복한 유치원 선생님보다 더 성공했다고 이야기할수만은 없을 것이다.

성공을 정의하는 것도,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를 분석하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의 공정함에대한 것도 모두 다 variation이 크다.
그래서 성공에대해 어떤 형태로든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음의 몇번의 글을 통해서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성공에대한 생각들을 좀 적어보려고 한다.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

성경의 주인공이 하나님이라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의 주인공을 ‘나’로 읽는다.
혹은 ‘나’를 투영시킬 수 있는 성경의 인물들로 읽는다.

성경의 주인공을 하나님으로 읽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생각/행동/결정하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
성경에서 그리고 있는 사람의 생각/행동/결정들은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에대한 반응이다.
성경에서 사람에대해 찾아내는것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찾으려하면 근본없이 지어진 집과 같이 되어버린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읽을때마다 기계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때로 무리가되겠지만, 성경 전체의 이야기, 혹은 성경 속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기본적으로는 그 주인공이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이 아니다.
모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모세가 아니다.
다윗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아니다.
엘리야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엘리야가 아니다.
다니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이 아니다.
바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바울이 아니다.

이걸 제대로 읽지 못하면, 성경을 읽고나서 감사와 경외가 없는 결심만이 남게된다.
아… 너무나 척박한 성경읽기다!

설명부족

나는 설명을 잘 하지 못한다.
이전 직장에서 내 manager가 내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너는 너 혼자 무슨 생각을 많이 해서 그걸 후다닥 설명해주는걸 많이 한다.
그런데 너는 그때 그걸 바로 잘 알아듣지 못하면 많이 답답해한다.
그리고 네가 설명해 주었는데 나중에 그걸 잊어버리고나서 다시 이야기해달라고하면 화를 낸다.

나는 그 manager가 해준 말이 참 고마웠다.
나는 정말 그렇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생각해서 해준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걸 참 많이 답답해한다.
그래서 몇번 얘기하다가 이해하지 못하는것 같으면 그냥 설명 자체를 포기해버리곤한다.
또한, 내가 분명히 몇달전에 설명을 해 주었는데 또 다시 똑같은걸 물어보면 막 화가난다.

회사에서도 내가 뭘 좀 얘기했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아예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설명해주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내 생각을 이해해야만하는 사람인데 이해를 못하는 경우엔 엄청 힘들어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머리속의 개념이나 생각을 글이라 말로 풀어내었을때 그걸 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는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사람들이 내가해주는 설명을 잟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설명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나이가 50대가 되어서야 그걸 새롭게 깨닫게되다니….
깨달음과 생각이 참 부족하다.

이 블로그에 쓰여진 글도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참 민망하기도 하다…

Self-Quarantine

회사에서 지난 지난주, 지난 두주이내에 중국에 갔다온 사람은 가능하면 집에서 일하라고 권고가 내려왔다.

시차때문인가…
지난주에는 안그래도 약간 좀 몸이 피곤한 감도 있고 해서,
지난주에는 대부분의 시간 자체격리를 하고 집에서 일을 했다.

이번두에도 어쩌면 월화 이틀정도는 그렇게 할까 생각중이다.

그나저나 중국은 정말 난리다.
이제 중국내에서 감염자가 2만명 가까이 되는 모양이다.

이곳 Bay area에도 감염자가 나왔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번주에는 San Francisco에서 가보고 싶은 학회가 있었는데, 그건 못갈 것 같다.
다음주 Anaheim에서 있는 trade show에는 꼭 가야할텐데…어쩌면좋을지 고민중이다.

중국에 있는 아는 사람들이 걱정이다.
그리고 중국과 가까이 있는 한국도… 걱정이다.

중국 출장 (5)

요즘 중국에서 벌어지고있는 일이 뒤숭숭한데…
이 마당에 중국 출장 다녀온일들을 주루룩 쓰려니 좀 그렇긴 하다.
중국 하면 무조건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여서.

그래도 이 난리는 어쨌든 끝날터이고, 중국 다녀온 건 그래도 뭔가 기록으로 남겨야 겠기에…

이번에 중국에가서 인상적이면서도 불편했던 것은,
중국에선 미국에서 보통 사용하는 크레딧 카드를 잘 받지 않는다.
큰 호텔에서는 보통 되는 것 같은데, 꽤 근사하게생긴 식당같은데 가더라도 크레딧 카드를 받지 않는다. 택시에서도 크레딧카드가 안된다.

대신 중국에서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같은 앱으로 웬만한 걸 다 지불할 수 있다.
심지어는 식당에갔을때, 식당 테이블에 있는 QR code를 스캔하면 전화로 메뉴를 보고 거기서 주문을 할 수도 있고 다 먹고나면 그 자리에서 전화로 바로 지불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 같은 외국인은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셋업할 수 없다는데 있다. -.-;
중국의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게 없으니…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제는 미국 은행계좌로도 위챗페이를 연결시키는게 가능하다고 써 놓은 것도 있어서…
혹시 다음에 중국 갈 일이 생기면 그때는 한번 해봐야 겠다.
(hopefully not very soon…. 이 사태 다 끝나고 나서 출장 가야지…)

중국 출장 (4)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말하자면 중국에서도 소위 ‘좋은 학교’ 나오고, 월급 많이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칭화대, 북경대 출신들, 미국회사에 다니다 온 사람, 일본 회사에 다니나 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영어를 잘했다. 그냥 미국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영어를 잘 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중에서도 ‘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내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학생일때에는, 중국 시골에서 온 유학온 친구들중에 그런 친구들이 가끔 있었다. 우리 실험실에 칭화대나온 무지하게 똑똑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도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많이 났었다. 처음엔 허억~ 하고 좀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깨끗해지는 속도보나는 내가 그 친구와 가까워지는 속도가 더 빨랐었다. ^^
그 친구도 졸업할때쯤 되어서는 그래도 3~4일에 한번쯤은 머리를 감는 정도가 되긴 했지만, 나는 그 친구와 1년쯤 지나서는 그래도 좀 친해졌으니… ㅎㅎ

실리콘 밸리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한동안 못 만나다가 중국에서 다시 만나니 처음엔 살짝 허억~ 했다.
그 사람들은 그저 그게 너무 익숙한 냄새여서 인식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독일에 가면 뭔가 ‘독일의 냄새’라는게 좀 있다. 그게… Sauerkaurt하고 동물성 기름 섞인 냄새 비슷한 냄새다. 그게 어떤땐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느껴질때도 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나기도 한다. 음식점에서는 당연히 그렇고.

일본에가도 뭔가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이건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일본은 사실 그 냄새가 강하진 않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냄새다.
일본 지하철이나 회사 사무실, 호텔방등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그런데 내가 인천공항에 내려서는 한국의 냄새라고 느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 냄새가 익숙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지금도 내게선 그 한국의 냄새가 날까?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느낄수도 있는 그 냄새가… 지금 내게서도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