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사람들과 일하기

회사에서 일 잘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런 사람들과 일하려면 정말 완전 속 터진다.
나는 100m 전력질주를 하면서 가려고 뛰는데 버벅거리면서 내 허리춤을 붙잡고 질질 끌려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아.. 속 터져…

그런데…
나는 유난히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연히 그런건 잘 해야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많이 답답해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나는 그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참 잘 하지 못한다.
그냥 내가 그 사람의 일을 다 해주는게 차라리 낫지…

왜 나는 그렇게 못되 처먹었을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일을 ‘열심히’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일을 할때 이루는 성과를 내 능력때문이 아니라 내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의’가 충만한 것이지…

I need Grace…

일반인이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

요즘 한국에서는 전 국민이 검찰개혁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번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때 그때 나오는 뉴스에 따라서, 온 국민이 기업 회계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외교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생명과학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비트코인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어디선가 이렇게 일반인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사회는, 언론을 비롯한 특정 사회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언론이 왜곡 보도를 하지 않고 정직하면, 혹은 국가 권력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면, 기업이 정직하면, 일반인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글이었다.

나는 한편 그런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언론, 국가기관 등등이 제 기능을 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인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일반대중이 집단 학습을 하게 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반대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는 이런 사회적 이슈에 일반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무관심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정말 이럴때 빠릿빠릿하다. 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가 가지는 매우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외부에서 내가 보는 한국은 그렇다.

내 동기들의 정치적 성향

나는 과학고등학교가 처음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 과학고등학교를 들어갔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때는 늘, ‘나때는 과학고 들어가기 쉬웠다’고 이야기한다. ^^
그리고 대전에서 그 당시는 ‘한국과학기술대학’이라고 불렸던, KAIST의 학부를 다녔다.
그러니 내가 처한 환경은 사람들이 정치에 많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87년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렇게 온 나라의 대학가가 독재타도를 외칠때에도, 우리는 비교적 잠잠했었다. 아주 소규모로 대전시내나 옆의 충남대에 가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학생수도 얼마 안되고, (그 당시 전교생이 1,000명 수준이었으니) 게다가 사방이 논밭으로 둘려 있었던 그 당시 상황에서, 그 아이들중 일부가 교문 앞에서 독재타도를 외친들, 경찰이 거들떠보기라도 했을까.

내 학창시절의 상황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동기들을 가만히 보면, 거의 압도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거나, 친민주당쪽 입장인 것 같아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진보나 민주당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보수쪽을 혐오하는 성격이 큰 것 같다.)
소위 nerd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리고 그 흔했던 시위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시대를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박종철 이한열을 죽인, 광주학살을 한 집단에 대해 평생 적대적인 사람들이 되었던 거다.

지금은 사람들이 평화시위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린 기억을 갖게된 시대이다.
그리고 과도한 권력을 남용하는 집단에 대해 집단적으로 그 의사를 표출하는 시대이다.
이렇게 되면, 이 흐름에 역행하고있는 어떤 정치 집단들은, 혹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이 세대에게 평생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남게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저 당장 누가 조금더 정치적 이익을 얻느냐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 수십년간 지형이 어떻게 형성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목사직 세습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직 세습을 놓고 이야기가 많다.
나도 당연히 그거 참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띄엄띄엄 뉴스를 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엄밀히 이야기해서,
대형교회가 담임목사직을 자식에게 세습하는게 정말 지금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일까?
그렇게 해서 그 교회가 담임 목사 세습하겠다는거 철회하면 한국교회가 정상적이 되는 건가?

나는 솔직히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핵심을 잘 못 짚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목회직 세습은, 한국교회가 가진 병의 증상이지, 한국교회의 병 자체는 아니다.
감기에 걸렸으면 감기를 치료해야지, 기침만을 막으려해서 되지 않는다.

그 대형교회와 똑 같은 병에 걸려 있으면서 이번 담임목회 세습 반대에 열을 올리는 어떤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담임목사 세습에 반대했으므로 자신은 ‘옳은 쪽’에 서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암담하다.

나는 담임목사직 세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목메어 있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근본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수술용 로보트

나는 내가 이런걸 만드는 일을 할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수술용 로보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완전 눌려 살고 있다. -.-;

구체적으로 내가 뛰어들어서 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confidential이서 말하기가 좀 그렇고…

다음의 비디오 몇개는 수술용 로보트에 대한 간단한 소개들이다.
여기 주로 나오는 da Vinci라는 로보트는 우리의 경쟁회사에서 나온 건데, 사실상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드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

흥미로운 무신론자들

지난 몇달동안 영국 Premier Radio에서 하는 Unbelievable이라는 라디오 방송의 podcast를 열심히 들었다.

이 방송은 기독교인과 그것에 반대하는 여러 입장들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무신론자도 있고, 불가지론자도 있고, 이슬람, 시크, 조로아스터, 뉴에이지등 아주 다양한 종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 토론을 한다.

계속 기독교 이외의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들었다.

  1. 나는 다른 종교에 대해 진짜 잘 모르는구나.
  2. 정말 좀 괜찮은 논리를 가지고 덤비는 무신론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구나.
  3. 과학주의는 기독교의 적수가 되기 어렵겠구나.
  4. 기독교가 정말 아파할만한 그러나 정말 들어볼만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듣기도 참 어렵구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Stanley Hauerwas가 이야기한 것이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주로 리차드 도킨스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오늘날의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에대해 흥미로운 비판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흥미로운 무신론자들이 잘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얼마나 볼품 없으면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들만 있겠는가

아우토반 택시

지난주는 독일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호텔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자그마치 Mercedes E class!
아우토반을 달리는데, 시속 180km까지 달렸다.
길도 좋고 차도 좋아서 그렇게 빠른지 잘 몰랐는데, 계기판을 보니 장난아니었다.

안타까움이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내가 부모인데, 능력이 없어서 자녀에게 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상황이라면 내 능력없음을 말로 다 할수 없이 한탄하며 안타까워할 것이다.

내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 그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물론 아니지만, 그리고 그것이 꼭 건강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에 대한 자책, 그리고 안타까움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대해 더 해줄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하고,
그런 감정은 사랑으로부터 비롯된다.
내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 안타깝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영적리더들이 진심으로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을 사랑하는지를 알아보는 판별식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사용하곤 한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비추어 적용해보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 귀한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밖에 설교하지 못했다면서 안타까워 눈물을 쏟는 설교자에게서는 사랑이 보인다.

갑질 (5)

그럼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내 일을 하느냐…
글쎄,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잘 못하는 것 같다. -.-;
이런 환경 속에서 나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분명하게 내가 할 일을 성실하고도 정직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잘 해내는게 그리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나름대로 해본 몇가지의 생각이 있다.

우선,
갑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vendor/supplier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갑질이 많아지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함께 일하는 vendor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여건이 주어진다면, 내가 하는 일에 관한한 실력이 뛰어나면서 성실한 partner를 찾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렇게하면 그 vendor를 믿고 그쪽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줄 수도 있고, 더 서로 존중하면서 일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런 과정에서 내게 유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일이 되게하는 것을 추구한다.
사실 세상에는, 하고 있는 일보다 자신의 self-promotion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일이 되는데 필요한 것은 서로 논리적으로 동의해서 일하기가 가능한 반면,
self-promotion을 위해서 data를 더 얻어내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요청을 마치 중요한것인양 포장을 하는 일도 해야하고.

세번째는,
그렇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비대칭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 정보를 안다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내 생각에 동의할 가능성이 많지만…
사정상 그 정보를 다 나누지 못할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쨌든,…. “나를 믿고 좀 같이 가자”고 요청을 해야할수도 있다.
그쪽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살짝 더 밀어붙여야하는 경우도 있다.
일시적으로 욕을 먹는 일을 감수하는 일이 때로는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는 회사/사람들에게 credit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그건 이 사람들이 한거야.. 내가 한게 아니야… 라고 이야기를 해야할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나를 낮추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높이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이게 손해인것 같아 보이는데,
그렇게 계속 일을 하면 결국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더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갑질 (4)

이런 환경 속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정말 ‘갑질’을 하게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는 Silicon Valley에서 꽤 오래 일한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러면서 정말 갑질을 무지막지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시아의 회사에,
20대의 젊은 엔지니어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가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회사의 높은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따지는 것도 보았다.
자기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회사 내에서 보여주려고 자기가 담당한 회사 사람들을 마구 쥐어짜서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data을 얻어낸 후에 그걸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안타깝게도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힘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권력’이 주어지는데…
그 권력을 그 권력의 범위만큼만 행사하는 사람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거의 99%의 사람들은 그 권력을 가지면 자신이 그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낫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 권력을 권력의 범위 이상으로 남용한다.

갑질은
Silicon Valley의 언어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