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10)

나는 앞에서,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앞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가 시대나 상황이나 세대에 따라서 다르게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시대에는 어떤 것이 다른 것 보다 더 relavant하다는 것이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앞으로 임한 하나님나라는 두개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다만 그 강조를 상황에 맞추어서 해야만 결국 대중이 (내 관심으로는 젊은 이들이) 그 두가지를 균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곳에까지 다다들 수 있게 된다고 본다.

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반적인 강조 역시 그렇다고 본다.
거대담론을 어렵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거대담론을 교조적으로 들이대면서 이걸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식의 접근은 건강하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고 본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20대부터 여태까지 내 삶을 이끌어온 중요한 narrative이다.
그러나 그것을 교조적으로 강조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화상대가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이 당장 그 사람에게 의미가 없을때에는 다른 강조점을 통해서 온전한 holistic한 복음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소위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식의 교조적인 접근을 보기도 한다.
하나님 나라 담론이 아니면 아니라는 거다.
나는 그런 방식은 결국은 ‘꼰대’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 그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모두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

KOSTA에서도 그런 딱딱한 교조주의가 보일때도 있다. 다행히고 KOSTA를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지만 KOSTA 강사나 그 외 다른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접근을 보기도 한다.

나는 KOSTA를 섬기는 사람들이 꼰대가 되지 않고 겸손하면 좋겠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KOSTA를 섬기는 사람들은 참 겸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