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보며 절망하기

요즘 사도행전이 말씀 묵상 본문이다.
교회에서 좀 열심히 말씀 묵상을 격려하기 위해서 매일성경의 순서로 다 함께 성경을 보자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고,
목사님은 아주 부지런히 말씀 묵상한 내용을 이메일로 나누어주고 계시기도 하다.

그 분위기를 더 좀 잘 만들어보기 위해서…
나도 목사님의 말씀 묵상에 답글형식으로 언제 한번 내 묵상을 나누어보겠다고 살짝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아침에 사도행전 말씀을 읽으며 나는 깊이 깊이 절망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 백성의 모임의 특성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사도행전에 드러나 있는 것과….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 사이에 너무 간극이 커서 그렇다.

매일 사도행전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공터에가서 고함이라도 한번 치고 싶다.

그래서 아직은 교회 분위기 잘 만들기 위해서 묵상 나누기를 못하고 있다.
내 묵상은 매일 매일 애가인데…. 이건… 나누어도 그냥 공허한 독백이 되어버리기만 하고, 분위기 싸~ 하게 만들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어그러짐과 헌신

살고 있는 conext가 어그러져 있으면 있을 수록,
그것에 맞서는 헌신이 강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살고 있는 context가 어렵다고,
그래서 살고 있는 것이 힘드니까,
헌신을 타협하면 결국은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하는 것을 잃게 된다.

나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거의 무자비하게 쓰러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나를 포함해서)
요즘의 삶은 10년전, 20년전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것도 정말 인정한다.
특히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정말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또 내가 살고 있는 실리콘 밸리에서의 삶이 터프하기 때문에 아주 그저 아주 최소한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 조차도 벅차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어그러짐이 심해서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거기서 헌신을 타협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결국 지켜야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진리의 불빛이 어두워지는 시대를 지날때마다…
그 고통의 터널 속에서 생명의 젖줄기를 지켜내게 하였던 것은,
그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더 강력한 헌신이었다.

그 강력한 헌신은 독이 올라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radical한 비폭력성,
자신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
비합리적 사랑같은 것을 동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한 헌신의 key는,
외부의 적에대해 적개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혹은 우리 안의 죄에 대해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다루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헌신의 모습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을 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어떤 꿈을 포기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경제적 희생이 될수도 있다.

만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유난히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그 속에서 움츠리지 말고, 더 강력한 헌신으로 그 상황을 돌파해 나가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일들이 있어야한다.

하다못해 남들보다 잠을 덜 자거나,
옷을 덜 잘 입거나,
친구를 덜 사귀거나…
그냥 다른 상황이라면 당연히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선호나 기호를 포기하는 것이거나…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헌신의 핵심은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말로만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하면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몇년째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비판을 헌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그러진 열정과 헌신을 혼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을 폭력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만하면 됐지 라고 너무 쉽게 바운더리를 그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좀 흔들리지 않는 꾸준한 헌신으로 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말 정말 너무나도 다른…

어제 하루종일 미팅을 해서 많이 피곤하긴 했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내가 지금 회사에와서 이렇게 extensive한 전략 미팅을 한건 처음이었는데…
예전에 내가 있었던 회사와 참 많이 비교가 되었다.

예전에 Apple은 상당히 hierarchy가 중요한 조직이었다.
대개 이런 미팅을 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그중 제일 높은 사람이 중요한 방향을 이야기하고, 그 밑에 있는 사람은 그 중요한 방향을 이루기 위한 실행방안을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결국 제일 높은 사람이 그걸 다 듣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 meeting의 outcome이었다.

가령,
iPad의 screen의 어떤 특성을 결정하기위한 미팅이 있었는데…
내가 해야했던 일은, 여러가지 기술을 사용해서 몇가지 다른 재료와 공정을 사용한 다음 세대 iPad screen의 sample들과 그것을 설명하는 presentation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 들고 meeting 장소에 가서 높은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고, technical presentation을 하고나면, 그 높은 사람이 “이걸로 하자” 면서 하나를 찍어주었다. 그러면 결국 그게 그 다음해에 나올 제품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높은 사람에게 그렇게 보고를 하는것 까지가 내 일이었다.
내 일의 outcome 은 그러니까 보고였다.

어제 미팅은, 주로 내가 지난 1년동안 개발해왔던 어떤 특정한 technology를 우리 팀에서 어떻게 본격적으로 adopt해서 앞으로 진행할 것인가 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준비했던 자료가 꽤 중요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쪽 방향의 technology를 우리가 adopt해서 진행하려면 어떤 일들이 더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자신의 전문분야의 관점에서 제안하는 자리였다.

우리쪽 높은 사람이 물론 와서 계속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토론도 했는데…
이 높은 사람이 무슨 이야기 하나를 하면, 사람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서 그 이야기에대한 반론과 딴지를 거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이 높은 사람이 어떤 point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잘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답답해하기도 하였다.
그 높은 사람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이 모임의 중요한 activity가 아니고, 그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끼리 토론을 하면서 방향을 조율하여 정하는 것이 중요한 activity였다. 거기서 높은 사람의 역할은 질문을 하고 딴지를 걸기도 하면서 토론을 중재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나중엔 이 높은 사람 vs. 전문가 두 사람 사이에 아주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양쪽이 서로 지지않으려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높은 사람과 의견이 같았는데… 괜히 그렇게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았었다.)

여기서 내 outcome은 보고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맡은 일이 되게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 presentation은 그 discussion을 하기위한 자료였다.

둘중 어떤 하나가 더 우월하냐? 딱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Apple은 그 ‘높은 사람’이 똑똑하고 올바른 결정을 한다는 가정하에..
정말 효율이 엄청나게 높은 조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거기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똑똑했다.)
짧은 시간내에 많은 결정을 제대로 해냈고, 그걸가지고 최대의 효율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execution에 최적화된 조직이었다.

반면에… 내가 경험하는 Google/Alphabet은 효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 때로는 쓸떼없는 discussion도 있고, 교통정리가 잘 되지않아 혼란스러울때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은 괜히 나서서 여기 저기 사람들 찾아다니며 정리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한 분야를 맡은 사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정말 구멍이 뻥~ 하고 나기도 한다.
대신 미친듯이 creative한 idea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팀에서 정말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 그 사람의 잘나고 똑똑한게 진짜로 확~ 드러나고, 그 덕을 많이 본다.
creativity에 최적화된 조직이 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어떤 조직에 더 맞는 사람일까?
솔직히 내가 아주 creative한 사람인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execution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 같이 어중간한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그럭저럭 열심히 하면서 거기에 적응해서 살게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오늘은 그 workshop 둘째 날이다.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중요한 meetings

오늘부터 이틀동안 San Francisco에서 꽤 중요한 회사 meeting / workshop이 있다.

지금 하는 한 project의 key stake-holder들이 모여서 미팅을 하는데,
아마도 그 project의 방향을 잡는 중요한 point가 될 것 같다.

나는 이틀동안의 미팅을 위해서 100장이 넘는 slide를 준비했다. 지난주엔 이거 만드느라 완전 정신 없었다…. 쩝.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조금씩 시간을 내어서 자신의 perspective에서 project의 방향과 필요에 대해서 제안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된다.

San Francisco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하는 바람에…
내겐 아침 6시에 집에서 나가서 밤 아주 늦게 집에 들어오는 일정이 될 것 같다.

한편 중요한 미팅이니까 열심히 해야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에만 마음을 다 빼앗기지 않기를…

출장을 계획하면서…

2/8-9, Anaheim, CA
3/1-2, Seattle, WA
3/7-15, Japan & Korea
3/19-24, Zurich, Swiss
4/8-15, London, UK
7/1-8, Chicago, IL
7/13-17, Korea
8/1-2, Minneapolis, MN
8/21-30, Japan & Korea
9/22-24, Roanoke, VA
10/13-20, Korea
11/6-7, Dallas, TX
11/16-17, Atlanta, GA
11/26-12/1, Boston, MA

기록을 찾아보니, 작년에는 이렇게 ‘여행’을 했었다.
이중 한번은 코스타, 한번은 동부지역 어느 수련회, 그리고 두번은 개인적인 여행이었으니, 출장은 10번 간것이네.

집을 떠나서 보낸 시간이 총 59일이고. 일년의 16% 정도를 밖에서 보낸 셈이다.
이렇게 따져보니 뭐 아주 심한 것은 아니고, 출장 많이 다닌다고 허풍떨 정도는 아니구나 싶다.

마침 어제 2월에 가는 올해 첫 출장 일정을 짜다가,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에 바로 이어질 해외출장을 생각하다가…
문득 도대체 내가 얼마나 빨빨거리고 다니나 하는게 궁금해서 한번 계산해 봤다.

출장 많이 다닌다고 엄살부리지 말아야겠다는 겸손한 반성을 해 보았다. ^^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 도움을 주도록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 도움이 되신다는 고백은 시편에 아주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고백이 쓰인 상황들을 보면 대개는 이렇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내 인생은 망가졌습니다.
앞길은 깜깜합니다.
원수들은 번성합니다.
악인이 승리합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참내….
뭐 이따위 노래가 다 있담.

하나님께서 도움이 되신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인에게 더 특별한 도움을 주신다는 의미보다는…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모두에게 은혜와 도움을 베풀어주신다는 의미에서 더 맞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라고해서 특별히 더 돌보시는 것은 사실 출애굽과 정복전쟁 이후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약에서도 그렇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찌질한 백성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백성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주시기 보다는,
그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저 사람들의 도움이 되어라 라고 하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되고나면…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눈이 열려저셔 보이게 되는 것이다.

무사고 00 일

나는 어려서부터 잔병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때 감기를 앓지 않고 지났던 겨울이 없었던 것 같고, 한번 감기에 걸리면 질리도록 기침을 했었다.
(나중엔 그게 천식이라는걸 알게 되었지만.)

국민학교에 다닐때 늘 개근하는게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지만,
나는 개근상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정말 개근을 하게된건… 내가 기숙사생활을 하면서야 가능해졌다. -.-;

그래도 나는 체력은 좋았다. 잠을 안자고 공부하는 것도 잘 했고, 하루 3~4시간 자고 지내는 것도 꽤 잘 했다.
다만 그렇게하면 천식이 심해지고 그런 부작용이 따라오긴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별히 내가 몸이 약하기 때문에 몸 조심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더 감기에 많이 걸렸었나…

훨씬 나이가 들어서야 나는 비로소 건강을 돌보기 시작했고,
나 같은 천식환자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는 것도 점차 깨달으면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내 ‘주치의’인 동생이 호흡기 내과 의사여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정말 나름대로는 아주 열심히, 그리고 나름대로 꼼꼼히 관리를 한 탓에…
감기 한번 심하게 걸리지 않고 거의 몇년을 지냈다.
그래서 천식으로 고생하는 일도 거의 없이 보냈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 좀 잠깐 관리에 삐끗~ 해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정확하게 내가 어디서 삐끗했는지도 완전 기억한다.)
그리곤 완전 몸져 누웠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그렇게 앓으면서 완전 푹~ 쉬었다.
약먹고 하루에 12시간 자는 신공을 발휘했다.
몇년만에 꿈이라는 것도 꾸는 잠을 잤다!

공사장에 가면 보통,
무사고 00 일 과 같은 표지가 있다.
사고 없이 하루가 지나면 00일에서 하루씩 더해진다.

자…
이제 지금 이 기침만 잡히고 나면,

무천식 0일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엔 1000일쯤 해보는 것이 목표!

사랑

Actually, I would prefer to pray that you punish them rather than kill them, since I would like to watch them suffer. Also, I fear losing my enemies, since my hates are more precious to me than my loves. If I lost my hates, my enemies, how would I know who I am?

솔직히, 저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을 죽여버리기보다는 벌주시는 것을 위해 더 기도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원수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습니다. 제게는 증오가 사랑보다 더 소중합니다.
만일 제가 증오를, 원수를 잃어버린다면, 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Stanley Hauwerwas “Prayers Plainly Spoken”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Hauerwas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Yet you have bent us toward reconciliation, that we may be able to pass one another Christ’s peace. It is a terrible thing to ask of us. I am sure I cannot do it, but you are a wily God able to accomplish miracles. May we be struck alive with the miracle of your grace, even to being reconciled with ourselves.

당신은 우리가 화목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제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꾀가 많으신, 그래서 기적도 행하실수 있는 하나님 아닙니까.
우리가 살아있는채로 당신 은혜의 기적의 벼락을 맞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서로 화목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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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복음을 가지고 전투적으로 사는 것이 참 소중하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그 전투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새해엔,
더 많이 사랑 받고,
사랑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try 해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교리공부

최근 교회에서 조직신학 시리즈 강의를 해오고 있다.
총 6번에 걸쳐서 하는 것인데, 2번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4번은 내가 하고 있다.

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쯤 되니까, 아주 쉽게 하고 있고…
어려운 철학 개념같은건 하나도 다루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이제 다섯번의 강의가 끝났고, 한번 더 남았는데 그건 우리 목사님이 하신다고 했다.

지난 주일의 강의가 그래서 내가 했던 이번 시리즈 마지막 강의인데…
그래서 조직신학을 공부하는 것에대해 ‘잔소리’를 좀 넣어서 이야기했다.

내가 어릴때에는 교회에서 교리공부를 꽤 했었다.
세례를 줄때는 교리공부를 그래도 했었고, 나는 그걸 다소 지루하게 생각할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교리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기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교리공부들이 교회에서 많이 없어졌다는 느낌이다.
대신 사람들의 필요에 맞춘 공부를 하거나, 성경본문을 가지고 하는 공부들을 주로 한다.
나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춘 공부나 성경본문을 하는 공부를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교리공부역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본문 성경공부를 하면 그래도 기초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그 본문을 해석해내고 토론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본문 성경공부를 하면 ‘지나치게 참신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와 감당하기 어려울때도 있다.

점점 교리공부가 교회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