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7)

나는 이런 적용을 세대에 따라서 다르게 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한국에서 한국의 80년대부터 2010년대정도 까지,
미국도 2010년대정도까지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가 훨씬 더 의미있는 담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함께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구했다. 그리고 그 발전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런 사회 속에서 그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건강하면서도 꼭 필요한 기여를 하나님 나라 담론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이나 미국 사회속에서는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나 미국 사회에서 발전이 멈추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발전이 대중의 기대와 바람과 동떨어져서 소수 엘리트에 의미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대중은 발전의 주체와 원동력이 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 보인다.
가령 최근의 AI의 발전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그 속에서 일반 대중은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그래서 결국 거대담론을 생각하기 보다는 개인의 생존에 집중하게 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20대에서 아주 잘 볼 수 있다.

거대 담론은 정말 이들에게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것이 진리인가 하는 질문 역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것이 내게 의미가 있는가, 내가 살아날 수 있는가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있다.

그렇게 반응하는 세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반응하도록 몰리는 세상을 살고 있는 그 세대를 바라보면 그 세대가 훨씬 잘 이해가 된다.
나 같은 세대보다 훨씬 더 힘들게 그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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