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가 이 시리즈의 첫글에서 썼던 선교사 형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 형은 내가 이야기했던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지나치게 선진국 친화적 담론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별로 적실성이 없다고.
그 형의 그 관점에서 다시 내가 썼던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 역시 지나치게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정직하게 그 형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나는 그 형의 말이 맞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반발했지만 이제는 그 형의 이야기를 훨씬 더 수긍하고 공감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도 어느정도 살만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령, 전쟁통에 극도의 가난에 극심한 혼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저 이 끔찍한 현실이 어떻게든 기적적으로 끝나거나 이 현실로부터 떠나서 새로운 어떤 곳 (내세, 앞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으로 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극심한 고통이나 혼란 속에서도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이 땅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담론은 폐기되거나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상황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대중에게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그저 너무 현실과 동떨오진 자신과 상관 없는 이야기이고 오히려 앞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가 훨씬 더 의미있게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왜 그렇게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우리 선배들에게 의미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 더 이해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