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후기, 2018 (12)

예전에 내가 실무를 할때,
전체집회 광고를 아주 열심히 design 해서 했었다.
그때 daily theme을 광고중에 잘 넣어서 전달하려고 노력도 하고, 전체 conference 흐름에 맞추어서 광고의 내용을 fine tuning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그렇게 전체집회 광고에 열심을 냈던 이유는….
너무나도 자주, 전체집회 강사들의 message들이 잘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제와 잘 align되지 않은 message를 강사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떻게든 그 message의 집회의 흐름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실무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전체집회 광고를 아주 열심히 design해서 그 bridge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전체 conference의 흐름을 좀 잡으려는 시도였다고 할수도 있겠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데 저녁집회 기도인도는 그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conference flow에 개입을 하게된다.
강사의 message를 어떻게 summary해서 기도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강조점이 조금씩 shift 될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험할수도 있겠다.

그런의미에서 기도인도는 참 부담이 컸다.
참 감사한 것은, 내가 기도인도를 했던 작년과 금년에는 참 좋은 강사들이 오셔서, 뭔가 많이 노력을 해서 기도시간에 flow을 잡으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도 되었다.
그저 그분들이 하신 message의 punch line들을 잘 정리해서 기도로 연결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또 저녁 설교를 하신 화종부 목사님에 대해서는, 내가 꽤 familiar 한 편이었고, 그분의 생각과 신학적 입장과 message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기도시간중에 그분이 설교중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늘상 쓰시던 어투같은 것 까지도 의도적으로 포함시켜서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가능하면 설교와 기도가 organic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그냥 강사님들이 설교 마치고 기도인도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최소한 작년과 금년의 경우 저녁 시간에는.

다만, 금년에 내가 살짝 의도적으로 기도시간에 강조점을 끼워넣은 부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마지막날 기도를 할때, 은혜의 공공성에 대한 강조를 살짝 좀 끼워넣었다. 집회 중간에 그 강조가 살짝 약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늘 risky하다.
잘못하면 강사님들의 좋은 message의 flow를 해칠수 있다. 도를 넘지 않는 차원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잘 해야한다.
그런건 쉽지는 않았다.

KOSTA 후기, 2018 (11)

이번에 나는 크게는 두가지 일을 맡았다.
하나는 화,수,목 저녁 저녁집회 기도 인도였고,
또 하나는 화,수,목 아침 중그룹 성경공부 인도였다.

작년에는 남는 시간에는 상담실에 가서 필요한대로 상담을 했었는데,
금년에는 상담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대신 조모임에 부지런히 불려다녔다. 금년에는 총 6개의 조 모임에 참석했다.

앞으로 며칠은 내가 이것들을 섬기면서 했던 생각들을 주로 쓰게 될 것 같다. ^^

우선,
작년에 이어서 금년에도 저녁 집회 기도인도를 하게되었다는 것은 내게는 큰 마음의 부담이었다.
작년 집회를 끝내고, 금년에는 절대로 저녁 집회 기도 인도를 하지 않겠다고 간사들에게 이야기했었다. 심지어는 봄이될때까지 집회 참석을 하겠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저녁집회 기도인도와 같이 드러나는 일에, 나 같은 간사 출신이 하는 것이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오래동안 무명의 간사로서 섬기는 것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냐 하는 것을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었다.
그런데 저녁집회 기도인도는 너무 확~ 드러나는 일이었다. 적어도 KOSTA 세팅에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많았다.
아마도 아직도 나는 KOSTA 잔치를 여는 입장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그런 입장에 설 수 없는 건데 내가 괜히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저녁 집회 기도인도를 또 하지 않겠다고 작년에 이야기했던 것은,
저녁집회의 format을 내가 제안한 한가지 format으로 fix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충분히 다양한 여러가지 format과 그에 맞는 사람들이 섬기도록 장이 마련될 수 있는데, 같은 사람이 2년이나 연속해서 똑같은 role을 맡으면 그게 바꾸기 힘든 template이 되어버려서 간사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제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금년에 결국 내가 맡게된 것은, 아주 last minute까지 기도 인도를 어떻게 할지, 누가 인도할지를 정하지 못해서 간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어서… 더 이상 부담을 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
5월쯤 되면 우리 간사들이 정말 거의 맛이 갈 정도로 바빠지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 5월까지 그게 정해지지 않아서 마음이 힘들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말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저녁집회 기도 인도를 마친, 간사들에게 하고 싶은 내 일성은,
“내년엔 진짜로 저녁집회 기도 인도 안합니다.” 이다. ^^

KOSTA 후기, 2018 (10)

나는 사실 거의 매년, 이번에 과연 KOSTA 집회에 참석하는게 우리 간사들에게 도움이 될까 말까를 많이 고민한다.
금년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고민을 많이 했고, 사실 참석을 결정한것은 4월이 다 되어서였다.
그 전까지는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번엔 진짜 안 간다고 마구 얘기를 하고 다녔었다.
나는 늘 내 존재가 간사들에게 어떤 부담이나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한편으로는 수고하고 고생하는 간사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내가 가서 무슨 말실수라도 해서 간사들에게 부담을 주지나 않을까 싶어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실무를 할때도 그랬고, 실무를 떠나서 주변에서 떠돌면서 여러가지를 도우면서도 그랬고, 금년에도 그랬다.
나는 늘 ‘어르신들’을 대하는게 stressful했고, 힘들었다.
내가 보기엔 저분은 KOSTA에 좀 안오시는게 본인과 여러 사람을 위해 좋을 것 같은데, 와서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또, 도대체 내가 여기 왔는데 할일도 없고… 이게 뭐냐며 할일을 좀 만들어 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분들도 계셨다.
아니, 간사들은 우리 KOSTA 참석자들을 위해서 모든 신경과 관심이 다 가 있고, 그 사람들을 어떻게하면 더 잘 섬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거기와서 오래된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한참 해놓는 분들이 참 힘들었었다.
내가 보기에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를 세워놓고 30분씩 하시는 어르신들을 대하면서… 이렇게 해서라도 저 분들의 몽니가 좀 풀리고, 대신 저 분들이 우리 간사들에게는 뭐라고 안하실 수 있다면 내가 당연히 이렇게 하지… 하면서 벌받는 일들을 하기도 했었다.

누구든, 어떤 일을 할때, “이 일에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혹은 주변에서 “저 사람이 이 일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의 존재는 양날의 검이 된다.

가령,
우리 간사들이 내가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이야기했을때, “그 생각은 잘못되었다” 라던가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일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심지어는 내 생각이 아주 옳다고 생각된다고 하더라도, 내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년 전에 나는 그 규칙을 깨고 간사들에게 강하게 뭔가를 이야기해야하는 상황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말았다.

우리 간사들로부터 언제든지,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라던가, “당신의 생각은 더 이상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현실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마 나는 내년에도 내가 KOSTA 집회에 또 참석할까 말까를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금년에 우리 큰 형님 황 간사님은, 오셔서 일주일 내내 애만 보셨다. 진짜로 literally 애만 보셨다.
강사 휴게실에서 한번 얼굴 뵙기도 힘들었고, 식사시간에 뵙기도 어려웠다.
영아부/유아부에서 우는 애가 황간사님 품에만 가면 그렇게 잘 잠들었다고. 참… 여러가지로 대단한 분이시다.

어쩌면 내가 큰 부담 갖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황 간사님께서 찾아주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KOSTA 후기, 2018 (9)

지난 몇년간 진행되다가 이번에 아주 꽃을 피운 것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표현방법’, ‘예배방법’이었다.

김성환 목사님께서 자비를 들여, 직접 목공 tool들을 LA로부터 가지고 오셔서 전체집회 장소에 만들어놓으신 기도나무,
기도실에 비치된 Grace를 표현한 graphic art,
찬양팀/예배팀에서 기획하고 진행한 ‘drama’와 ‘dance’들,
성경봉독을 입체감있게 여러사람이 한 것, (보소~ 간사님 화이팅 ㅋㅋ)
마지막 파송예배에서 꾸며진 예배의 흐름

등등은 정말 짱이었다.

소위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한다는 명목하에,
살짝 오바를 한다든지, 충분히 잘 준비되지 못한 것이 present 된다든지, 신학적 깊이가 부족한 그냥 실험에 그친다든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쉬운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번 KOSTA에서 시도된 다양한 일들은 아주 절제되면서도 건강한 선을 잘 지켜가며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insight을 제공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지금 20,30대를 잘 이해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이런 여러 시도들이 20, 30대에게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했다.

KOSTA 후기, 2018 (8)

KOSTA를 섬기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stake holder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stake holder들이 각각 다르면서도 배타적인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속에서 그 상황을 적절히 조율하는 줄타기를 하는 것이 늘 적어도 내게는 힘이 들었다. (내가 실무를 할 당시에.. ^^)

그런데,
KOSTA의 stake holder 자체가 바뀌고 있다.
한국 교회의 쇠퇴, 1세대 리더십들의 은퇴, 새로운 강사층의 등장, target group자체의 cultural shift 등등.

KOSTA 1세대(처음 10~15년)에는 KOSTA stake holder가 직접 KOSTA를 운영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동원 목사님, 워싱턴 지구촌 교회, 유성회…
그리고 KOSTA 2세대(그 다음 15~20년)에는 KOSTA 자체가 (간사와 공동대표로 이루어진) 다양한 stake holder의 요구 사이에서 조율하면서 일종의 사역의 ownership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델 자체가 약간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령 젊은 강사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주고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는 모델도 일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지금 LGS와 같이)

언제나 전환의 시기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미국 KOSTA는 그런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뭐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뭐가 얼마나 중요하겠느냐마는… ㅋㅋ)

KOSTA 후기, 2018 (7)

나는 지금 이 ‘젊은 강사 그룹’의 모멘텀을 잘 살리는 것이 KOSTA의 앞으로 10~15년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번성하던 시기,
KOSTA는 한국으로부터 물적 인적 자원들을 계속 공급받았었다.

KOSTA의 강사들이 한국에서 대거 건너왔고,
그로부터 조금 지나서는 KOSTA를 섬기는 사람들이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나 유명한 지역교회 출신들이 많았다.
KOSTA network에 있는 어떤 목사님, 어떤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성장한 사람들이 KOSTA 간사도 하고, 조장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친구들을 KOSTA로 데리고 오는일도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KOSTA에 들어오는 물적지원도 뚝 끊겼을 뿐 아니라,
내 생각에 더 큰 타격은 인적 공급이 끊겼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나 한국의 어떤 교회들에서 성숙한 사람들이 KOSTA 간사진으로 유입되지 않는다.
미국내 여러 청년부나 캠퍼스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며 어떤 보이지 않는 network을 형성하는 일들이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한국교회 번성의 시기의 열매로 나온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는 지금 KOSTA에 참석하고 있는 젊은 강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KOSTA가, 조금 더 확장해서 크게 보면 한국 복음주의권이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resource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건강한 모멘텀을 어떻게 담아서 살려낼 것인가가 KOSTA가 가지는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KOSTA 후기, 2018 (6)

예전부터 KOSTA 관련된 일을 하면서 제일 골치가 아픈 것 가운데 하나는 어떤 분들에 대한 ‘의전’이었다.
소위 강사들이나 어르신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미국 KOSTA는 버릇이 없다” 라던가 “미국 KOSTA는 교만하다”는 식의 반응과 소문이 돌게되었다.
그렇게 하다보면 실제로 KOSTA에 참석해야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섬기는데 써야할 에너지들이 그런 분들 대접하는데 많이 쓰여지게 된다.

KOSTA 이외에, 지역교회나 지역 모임의 세팅에서 나도 수양회를 열어보기도 했고,
또 수양회 강사가 되어서 다른 지역에 가보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ideal한 강사는, 그 수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되면 수양회를 개최하는 사람과 수양회 강사는 ‘팀(team)’이 된다.
수양회 참석자를 섬기는 ‘팀(team)’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적어도 내가 KOSTA를 섬기면서는, 강사들이 정말 나와 함께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었다.
강사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contents들을, 어떻게든 그분들을 잘 대접해서 KOSTA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 뽑아야겠다고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강사들은 KOSTA의 resource이긴 했지만 KOSTA의 동역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몇년동안 그 trend가 많이 바뀌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KOSTA 강사들이 젊어진것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가령, 김성환 목사님은,
자기 돈을 들여서 목재를 다 구입하고, 자신의 목공 도구들을 가방에 무겁게 가지고 와서 학생들을 섬겼다.
게다가 금요일 밤을 새우며 평가회를 하고 있는 간사들을 위해서는 coffee도 사주셨다.
이런 분들이 강사로 와 계시면… 아… 정말 이분과는 같은 team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KOSTA 후기, 2018 (5)

내가 보기에,
금년을 거치면서 지난 몇년간 KOSTA에서 많이 노력해온 ‘새로운 세대의 강사’ 개발의 열매들이 아주 가시적으로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작년 전체집회 강사님들중 나보다 월등히 나이가 위신분은 딱 한분이셨다. 나머지는 나보다 젊거나 나와 같은/비슷한 연배의 분들이셨다.

올해 전체집회 강사님들은 살짝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계셨지만, 그분들의 감각이 젊기도 하고,
금년에는 평균연령을 왕창 낮춘 여성 간사님 덕분에 분위기가 젊은 분위기였다.

세미나, 멘토, LGS 등의 강사진도 확~ 젊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전반적으로 강사들의 dynamics가 젊게 느껴졌다.

첫날 저녁 강사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강사님들이 자기 소개를 하시는데,
이제는 많은 강사님들이 ‘코스타 출신’이셨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인디 코스타 출신’이셨다!
완전 긍정적인 사인이다.
그리고 여성 강사의 비율도 그리 섭섭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금년에는 KOSTA 최초로 한국인 여성 강사가 전체집회 설교를 하기도 했다.

우리 간사들이 이걸 위해 엄청 노력 많이 한걸로 아는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그림이 만들어졌다는게 참 감사했다.

KOSTA 후기, 2018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은혜’라는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도대체 그 은혜라는게 무엇인지, 왜 은혜가 필요했는지, 은혜가 어떤 방식으로 주어진 것인지를 더 듣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그 내용을 몰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 이야기는 내 평생 반복해서 내 귀에 들려졌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평생 그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가 정말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은혜의 적용, 은혜의 consequence, 은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나눈 것 같은데, 은혜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나누어지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

그건 내가 너무 ‘구세대적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KOSTA 후기, 2018 (3)

보통 ‘은혜’라고 하면,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거의 바로 따라나오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은혜의 개인적(personal)인 성격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의 주어는 ‘나’이다. ‘세상’이나 ‘우리’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죄에대한 강조가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에서 주어지는 은혜는 자연스럽게 뜨거운 감사로 연결되게 된다.

그런데,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는 죄의 개인적 차원에서의 강조는 그렇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녁 설교에서 좀 언급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사람들로부터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 보여졌다. 내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관찰이었다.
그런데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메커니즘은 이렇게 보여졌다.

– 세상이 망가져 있다.
– 나도 그 망가진 세상의 일부이다.
– 망가진 세상의 일부로서 그 망가진 모습의 피해를 내가 당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망가진 세상의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나를 건저내시는 분이시다.
– 물론 당장 직접적으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궁극적이면서도 영속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 그러므로 감사하다.

나는 이런 방식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다른 어느 책에서나, 다른 어느 설교등에서 접해본 기억이 없다.
(혹시 아는 분이 있으면 내게 말씀을 해주시길…^^)

전통적으로 은혜는 개인적, 서정적이었다면,
이번 KOSTA에서 이야기된 은혜는 공동체적, 서사적이었다.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presentation은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