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중요한 내용을 잘 지적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
우선 예로 들어주신 포르노 산업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즉, 포르노 산업 근절을 위한 기독교인 연대 이런 식의 움직임이 포르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threat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거지요.
저는 여기서, 몇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치와 방법의 문제입니다.
포르노는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가치’의 문제일 수 있는데요, 그것을 이야기할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든지, 그놈들은 다 사탄이다는 식의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든지,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등의 방법을 택하지 않고 가치를 드러내야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다고 생각하는 바가 옳다면, 그것을 이루어내는 방법 역시 폭력적이지 않은, 옳은 방법이어야 할 것입니다. 방법이 폭력적이 되면, 전하고자 하는 message가 악한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현대의 소위 복음주의자들은, “사랑으로서 진리를 말하라”는 명령을 등한시 한 채, 사랑 없이 진리를 이야기하려다보니 진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개인적 판단에 근거한) 신념과 (본질적 진리에 대한) 신앙의 문제입니다.
대단히 획일적인 신앙교육만을 받아온 토양에서는, 신앙과 신념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사실은 우리가 신앙이라고 믿는 것 안에는, 신앙이라기 보다는 신념에 해당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조론-진화론 논쟁이죠. 성경을 믿는다 = 하나님을 믿는다 = 창조를 믿는다 = 진화를 거부한다.
이런 등식을 획일적으로 신앙교육으로 받아온 사람은 그냥 이걸 통째로 받아들이는데요, 사실은 맨 마지막 등식은 성립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물론, 진화를 거부하는 창조를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창조를 믿는 것이 곧 진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닌데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진화를 거부한다는 신념이 어느새 슬쩍~ 신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과 미국의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갖는 정치적 신념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견고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제는 심각한 왜곡과 오류가 빚어지고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요.
그런데 아직도, 그것을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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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controversial할 수 있겠지만, 동성애를 가지고 위의 두가지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우선, 첫번째로는요, 동성애가 죄라고 인정한다고 합시다.
심지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요, 동성애자를 악당으로 몰아부친다던가, 동성애자들에 대항해서 압력을 행사한다거나, 세를 불려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하는 것은 결국 이들을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에대해 약간의 호의적인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동성애가 죄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아, 이 사람들이 동성애는 정말 죄로 여기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잖아요. ^^
아니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도 그런데, 비그리스도인 동성애자들이 그런 것을 경험하면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동성애자들에대한 폭력, 압력, 폭언, 정죄, 사랑없음….과 같은 비뚤어진 방법은, 전하고자 하는 원래 message 자체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두번째문제는요…
정말 동성애가 죄냐 하는 것입니다.
아… 이거… 참… 잘 못 얘기하면 제가 또 완전히 이단으로 몰리겠습니다만… ㅎㅎ
정말 성경을 역사비평적으로 읽어가면서, 동성애를 어떤 경우에 어떻게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깊이 연구해보지도 않은채 그저… 동성애는 죄다! 라도 외치는 것은 사실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자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동성애라는 이슈가 삶과 죽음의 이슈만큼이나 중요한 것인데요, 우리는 그저 성경 대충 읽다가 틱 하고 떠오른 생각가지고 아, 그거 죄네… 이렇게 정죄해버리고 말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실제로 겪고 당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심각한 것인만큼, 우리도… 혹시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에 우리의 신념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경과 문화와 기타 많은 부분을 연구해가며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목청을 높이는 볼륨에 비례해서, 그것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동성애를 예로 들었으니까요,
제가 존경하는 Tony Campolo가 동성애/동성결혼에 대해 정리한 것을 제말로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서 진리를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로서 적절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만 한 것 같습니다. ^^
Tony Campolo는, 동성애/동성결혼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부인은 동성애/동성결혼이 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만.) 그렇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가령 구약에서 동성애에 대해서 정죄할때, 이것은 윤리적 죄로서 다루어졌다기 보다는 정결예법을 어긴 것으로 다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다시말하면 살인, 도둑질, 간음과 같은 죄의 부류가 아니라, 제사지내기 전에 손을 씻지 않았다던지, 시체를 만졌다든지 하는 정결예법을 어긴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계셨던 로마시대에는 동성애가 (특히 미소년 동성애?)가 꽤 유행했던 시기였는데도,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서신서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다든 것에 주목합니다. 이게 정말 그렇게 big deal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그는 동성애를… gossip 정도 죄의 수준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투의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동성애가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만히 생각해보면, 혼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인정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세상에서는 동성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하게 하라.
다만 교회 내에서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라.
교회 내에서는, 교회 공동체가 인정하는 방식의 혼인을 치룬 부부만이 하나님 앞에서 유업을 함께 받을 부부로 인정되도록 하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Tony Campolo의 주장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입장에 동의합니다.)
최소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대로 가볍게(shallow) 성경을 읽고, 폭력적으로 정죄하고, 압력집단으로서 행동하고, 사랑 없이 정죄를 남발하고… 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저도 완벽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결국은… 그 복음주의권에서 자라난 사람이니 말입니다.
아땅님의 질문을 읽으면서 저는 마틴 루터 킹의 흑인해방과 윌리암 윌버포스의 노예해방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쥔장의 답글대로 그것이 포르노 산업을 얘기하며 동성애 등의 다양한 문제도 다룬다는 면에서 쥔장의 이번 답글에서 포인트를 잡아 쓴 답글이 더 적합한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족을 붙이자면(낼 얘기를 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먼저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 특별히 예를 든 포르노 산업은그 당시 영국 사회에서 노예산업은 지금 현재 포르노 산업보다 더 막대한 산업이었고 아마도 현재 미국의 군산업과 유사할 정도의 그 당시 영국의 흥망과 관련이 있을만한 산업이었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거나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적합하느냐 인군중심적이냐의 문제로 봐야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방법으로 대처하느냐는 또 다른 엄청난 이슈이겠으나 적어도 본질적으로 반성경적 반 인간적 반 하나님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이나 집단에 피해나 손해를 끼치지 않고 그런일을 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상황의 예를 들자면 송인수님의 사교육 없애기 운동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교육 시장이 한국에서는 엄청난 사업임에도 그것이 초둥고 학생들을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에 사교육자들의 협박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진행하고 있지요. 아직은 현실적이지 않으니 엄청난 방해가 있지는 않지만 선행학습 금지법 등이 만약 구체화 되고 현실적으로 진행되는 단계로 가면 실질적으로 엄청난 폭력과 죽음 까지도 생각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쥔장이 얘기한 대로 방법적인 지혜가 필요한 이슈는 사랑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검토하며 방법을 찾아야 되는 문제가 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의의 문제로 목숨을 바치면서 싸워야 할 이슈가 먼저 구분되어야할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두 번째의 문제도 증오나 악의 방법이 아닌 더 큰 사랑을 바탕에 두고 해야할 것은 말할것도 없겠지요. 두서 없는 댓글 이상입니다!
형, 두서 없지 않은데요!!!
제가 빠뜨린 내용을 잘 보충해서 써주셨습니다.
저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civility를 가진 기독교인의 자세에 대해 기술한 것이라면, 형의 point는… 영역주권론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변혁하는 부르심에 대해서 쓴 것이겠죠.
그나저나 형을 이번 여름에 못보는게 영 속이 상합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두서없는 글에 사려깊은 대답을 주시고, 또 팽교수님까지 좋은 댓글을 주시니….
이렇게 글로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저 또한 동성애에 대한 고민은 거의 토니 캄폴로의 의견에 따르기로(?) 정리한 입장이라 어딘가 반갑??습니다. 아주 깊은 고민을 한 건 아니구요;; 마침 그의 정리의 동감이 가서 앗싸하고 덥썩.. 점점 교회가 폭력적인 정죄로 내부의 부패를 가려버리는 행태가 너무나 슬프네요. 그리고 선배님, 저 또 샌프란 근교에 있습니다. 주일 하루라도 시간이 나면 mmpc에 가볼 수 있을까 기대했었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2주를 빠듯하게 지내다가 돌아갈 것 같네요. 저도 서부시입니다, NOW! 😉
오홋!!!!!
저희 동네에 계시다고요?
애고, 와서 일만하다 가시는 모양이군요.
저도 사실 이번주말 이후에 출장 때문에 휘익~ 없을 예정이긴 합니다. -.-;
결국 시카고에서나 뵙겠네요…
멘토로 삼았던 신앙의 선배가 E.P 샌더스의 책을 계기로 무신론자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쇼크를 받았는데요…어떻게 하면 제 혼동을 다잡을 수 있을까요…좀 혼란스럽네요…
아,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글을 쓰신 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무슨 위로를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E.P. Sanders를 충분히 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 신앙의 선배라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학문적 연구와 주관적 신앙,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 일렬로 줄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오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방식으로 이해를 하면, 참 잃어버리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혹시… 그 신앙의 선배님이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냥 잘못 속단하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
답답한 마음과 생각이 잘 정돈되시고, 그 선배님도 다시 돌아오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답글감사합니다. 몇년전 부터 무신론자로 살면서도 개혁주의신앙생활을 한 일종의 이중생활을 했다고 하는데요, 샌더스책을 읽고(역사적예수) 무신론자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두번다시 종교를 가지지는 않을거라네요.
이성과 과학으로 도무지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게 그가 결심을 내린 한 이유인듯 합니다.
제가 혼란스러운건 제가 그분을 멘토처럼 따랐기때문에 무신론에 대한 그의 생각도 따르려고 하는 경향이 제안에 발견된다는거죠.
그 선배는 5년정도 고민하고 결정내린일이라, 절대 돌아오지는 않을거라 확신한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으로 성경과 교회를 보는 관점에서 걸러진 사실 혹은 논리를 가지고 제믿음으로 삼아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도 무신론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아직까지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이 크게 움직이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단지 진지하게 신이없다면 어떨까라고 의문점을 가지고 생각해보게 되었다는점이죠…
여러가지로 고민하게 되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까지 깊은 신앙인으로 살아왔던 분이 사실은 무신론자였다라는 사실에 충격이 너무 큰것 같습니다.
너무 두서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렇군요.
어쩌면… 그분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신앙을 버렸다기 보다는, 신앙을 갖지 않고 있었거나… 신앙을 떨쳐버릴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역사적 예수에 관한 것을 접한것이 그것을 공식화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는 않을까… 그런 조심스러운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이들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를 비롯한 여러 학문적 연구가 오히려 신앙을 더 든든하게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니까요.
‘신이 없다면 세상이 어떨까’ 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건간한 질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 질문을 탐구할때,
diligently, humbly, obediently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지요. (John Stott이 했던 말입니다.)
저는…
기독교신앙을 가진 사람도, 혹은 기독교신앙을 버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정말 diligently, humbly, obediently 고민하는 것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신자도, 비기독교신자도, 매우 약한 기반위에 있는 신념으로 악악거리는 것 같아 보일때가 많고요.
(아, 물론 저도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저도 계속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글쓰신분과 그 선배님께서,
건강한 고민과 건강한 결론에 이르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사실 장문의 글을 남겼는데 조작미스로 삭제되었습니다…대충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통독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고, 각종신학서적들을 두루 섭렵하며, 회심을 경험한 한 교회 청년부 사역자였던 분이 무신론자가 되어 그당시 제자였던 이에게 커밍아웃하고 이중생활을 하는 상황입니다…익명으로 나마 3자의 견해를 듣고싶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구요…더 많은 이해를 돕기위해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은부분이 많이 있는데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말씀드리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네,
제가 적절한 ‘견해’를 말씀드릴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도는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의 넒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말로 다 할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