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현 직장과 관련해서 내 고민은 대충 다음의 몇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1) 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는 정말 소중한 가치를 잘 공유하고 있고, 그 가치를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가며 제대로 펼쳐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지금 일하고 있는 기술도 꽤 괜찮은 기술이고, 덕분에 나도 여기저기 학회에 invited talk도 많이 불려다녔다. invited talk을 다 갈 시간이 없어서 최근엔 그냥 대충 거절해왔다.
이건 내가 뭐 각종 학회에 invited talk을 불려다닐만큼 대단해서라기 보다는… 훌륭한 그룹에 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 그룹에 있다는 것 때문에 말하자면 내 ‘몸값’ 이랄까 그런게 높아졌다고나 할까….
정말 좋은 그룹에서 일하면서 많이 덕을 봤다. 나는 뭐 별로 대단히 하는 것도 없는데…
(2) 처음은 그냥 뭐… 일년정도만 일단 좀 있다가 어디 다른데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이 회사에 join 했고, 우리 manager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일년이 후에는 나도 다른데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고, 우리 manager도 내가 다른데 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해서 있게된 것이 이제 7년 반이 되었다.
말하자면 아주 뭐 임시직으로 그렇게 시작해서, 나도 뭐 무슨 야망 그런거 없었고, 그냥 그야말로 일에만 열중했다. 누구든지 이상하다 싶으면 막 대들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잘보이겠다는 생각이나 승진 뭐 그런건 아예 관심이 없었고.
7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룹에서 leadership을 공유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사실상 회사에서 No.2 라고 할 수 있다. CEO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 lab director에 이어서.
이게.. 내 의사와는 전혀 관계 없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는데에는, 우리 lab director의 배려가 참 컸다. 가끔은 가서 당돌하게 따지기도 하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는 나 같은 사람을 그래도 붙들고 잘 있어준 것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내 역량보다 회사에서 너무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부담도 사실 꽤 있다.
특별히 옆에서 우리 lab director를 보면서, 사람을 격려하면서 세워주는 leadership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참 많이 배웠다.
오죽해야 내가 그 사람에게 아예 가서, 나는 네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 다 관찰하고 있고 그걸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내게 늘 constructive criticism을 많이 해주고, 내가 너를 계속 그렇게 지켜보면서 배우는 것을 허락해달라… 며 아주 당당하고 뻔뻔하게 이야기도 했었다. -.-;
어쨌든… 참 많이 배웠다.
(3) 그런데, 최근 한 1-2년 정도는.. 돌이켜보면 특별히 내가 더 배우고 성장했던 것이 그렇게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아…참… 다른 회사와 기술 협약 맺는 것에 좀 involve 되면서 아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는 법률용어들을 좀 더 많이 배웠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협상을 하면서 밀고 땡기고 하는 것도 겪었고, 겉과 속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지난 1-2년은, 내가 좀 성장을 했다기 보다는…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에 involve 되면서… 어찌보면 내 특기가 아닌… 각종 business discussion에 많이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뭐 그걸 통해서 그런 쪽으로 성장하고 훈련받았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내가 계속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하는 것에 대해 사실 확신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낭비로 생각되는 것 같다.
(4) 게다가, 여러가지 회사 사정이 어렵다보니… 계속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뭐 그러면서… 사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월급은… 좀 적은 편이다. -.-;
물론 뭐 지금 우리 회사의 지분을 좀 가지고 있긴 하지만…
(5) 나는 뭐 늘 여기저기 땜땅을 하는게…. 내 천성인가보다. 혹은..뭐 시쳇말로 팔자인가 보다. ^^
그 세팅이 교회가 되었건, 친구들 사이의 모임이 되었건, 아니면 코스타나 뭐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해보면 늘 그렇다.
회사에서, 뭔가 일이 되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 싶으면 그냥 뛰어들어서 내가 그 일을 하고…하고 하는 바람에, 지금 내가 cover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새 꽤 많아져 버렸다. 아주 애매한 형태로 leadership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우리 lab director가 나를 많이 의지하고, 자기가 힘들때 내게 그 힘든것도 털어놓고… 뭐 그런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뭐랄까 지금 회사에서 확 내가 발을 빼가기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금방 누구에게 넘겨줄 수 있는 상황도 물론 아니고.
(6) 그런데, 최근… 내가 좀 더 많이 가지게 된 회의는…
어쩌다보니 내가 회사에서 꽤 중요한 일들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정말 내가 이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운영 방안이, 결국은 성공하게 될 적절한 전략에 근거한 것인가 하는 것에도 좀 회의가 생겼다. 게다가 그 방향으로 가도록 만드는 일에 내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라면……….
나는 사실 이런 일들을 잘 해낼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선머슴이 사람 잡는다고… 뭐 잘 모르고 달려들어 이렇게 내가 하는 것이 결국은 나와 우리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을 참 많이 하고 있다.
(7) 그리고 또한,
내가 지금 이 start-up company에 함께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논리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블로그에서도 시리즈로 글을 적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이 그저… 현실성 없는 naive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저 충분한 현실성에 기반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발상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내가 이 start-up company에 함께 하고 있는 그 근본적 rational에 회의도 생기고 있는 것이다.
(8) 지난 월요일에, 우리 lab director와 이런 이야기를 아예 터놓고 했다.
우리 lab director는…
만일 네가 떠난다면 아마 우리가 돌파구를 마련해서 계속 진행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모두 함께 이걸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만일 너 없이 하는 길을 어떻게 찾는다 하더라도, 네가 떠나면 사람들의 사기문제가 아주 심각할 것 같다. 결국 한사람 두사람 떠나서 그룹이 붕괴되지 않을까 싶다.
뭐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 물론… 네가 떠나고 그렇지 않고는 네 결정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고맙다… 뭐 그런 얘기도 덧붙였다.
우리 그룹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물론 어떤 사람들은 쉽게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 사람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직장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지금 나는 어떻게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 있는 걸까.
내가 지금 그 사람을 휙 버리고 떠날 수는 없는 입장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