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화요일 설교자 교회에서 오신 부교역자 한분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좀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으로부터 “그 교회 자랑”을 많이 들었다. ^^
뭐 이런 세팅에서, 자기 교회 자랑하는 강사들을 많이 보았으므로 대단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 교회 이야기는 들으면서 참 부러운 것들도 많았다.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direction들도 있었지만. ^^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께 물었다.
지금 그 교회의 모델이, M 목사님이 아니어도 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M 목사님 자리에 다른 누가 와도 그 보델이 작동할까요?
그분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M 목사님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런 pace-setter (페이스를 셋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 말은, 내 머리를 띵~ 하고 때렸다.
정말 띵~ 하고, 아주 쎄게 때렸다.
pace setter라.
그래,
비록 그것이 pseudo revival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신앙의 깊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pace-setter가 되는 일이겠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번 언급하긴 했지만,
내게는 깊은 목마름이 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라면, 도대체 그냥 미적지근하게 하나님을 믿는게 불가능한데.
삶에서 compromise를 하면서는 정말 뼈가 녹는것 같이 아파야 하는데.
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목마름이 자신을 바짝바짝 말려야 하는데.
그래서 더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야 하는데…
일차적으로는 나도 더 그렇지 못하고,
내가 주변에서 접하는 크리스천들중 많은 이들은, 아예 그런 것에 관심조차 갖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내게는, 그렇게 너무 유난스럽게 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를 하곤 한다.
아니, 어떻게 다른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밍기적 밍기적 사는게 고통스럽게 느껴지질 않는 걸까?
아니, 어떻게 대충 헌신하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타들어가질 않는 걸까?
저들이 경험한 하나님과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하나님은 다른 분이란 말인가?
그것에 대해 내가 해답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준이 있다면,
나는 그 기준을 가지고, 아직 그 경험과 이해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어도 어떤 특정한 영역에 관한한,
pace setter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것이 아닐까.
이 시리즈의 첫번째 글에서 이야기한 외로움의 문제가,
이런 일단의 만남과 생각을 통해 많이 정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