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믿음

부활절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celebrate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금요일의 죽음과 고통 가운데 있기도 하다.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직 부활의 아침이 한참 남은, 토요일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어떤 분이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소위 ‘전통적’ 복음주의 신학의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고통’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부활을 기뻐하고 celebrate하는 것과,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어두움과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 걸까.

그저…
‘믿어라’ 라고 얼굴 벌겋게 되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을 실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력있게 이야기하는 key는 무엇일까?

Marcus Borg, John Dominic Crosan, Stanley Hauerwas, Walter Bruggemann 같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한 이해는 각각 어떠한가?

어제 부활절 예배는 참 좋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사순절 기간에 말씀 묵상도,
내게는 참 복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부활절 잘 보내고 나서…
살짝 불량한 생각을 좀 해보았다. ㅎㅎ

4 thoughts on “부활의 믿음”

  1. 시간이 되실때 위에 쭈욱 나열하신 아저씨들의 부활에 대한 이해 뭐 이런거에 대해서 한번 쏴 주시면 캄사하겠습니당.

    1. ㅎㅎ
      제게 늘 숙제를 주시는 아땅님. ^^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크로산이나 보그 같은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육체적 부활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요,
      그것이 당대 혹은 후대의 크리스천들에의해서 ‘각색’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뭐 꼭 악의를 가지고 각색했다기보다, 그것이 신앙고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저도 자세한건 잘 모릅니다. ^^ 아시는 분이 잘 설명해주시는거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다만,
      하우어워스, 브루그만 같은 분들을 어떻게 부활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브루그만은 구약학자 이므로 사실 부활 이쪽에 크게 학문적 관심이 있지는 않겠고,
      하우어워스는 기독교윤리학자 이므로 역시 이런 이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것을 제가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시는 다른분들이 좀 있으시려나 모르겠네요…

  2. 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마커스 보그 같은 경우는 톰 라이트와 함께 썼던 ‘예수의 의미’에서 예수의 정신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것을 부활로 표현했다고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이야기가 부활에 관한 아주 풍성한 은유였다고 이야기 했었지요. 아직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살아계신 예수의 이야기라고요. 이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브루그만의 경우는 부활의 역사성이나 부활에 대한 본인의 믿음에 대해 아주 definitive한 답을 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엄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둘러가는 듯 하지만), 그래도 부활에 대해 무게감있게 다루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예언자적 상상력에서도 그렇고, Sojourners 에 기고했던 묵상 (http://sojo.net/magazine/2011/05/how-do-we-practice-easter-life) 에서도 그렇고, 역사상 단 한번밖에 없었던 사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1. 역쉬 JK 군요. ^^
      이렇게 놓고 생각해보니, 적어도 보그 같은 사람의 부활에 대한 개념이, 적어도 제가 목말라하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기는 더 어려울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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