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미국의 자칭 복음주의 교회도 그렇지만 한국의 주류 자칭 복음주의 교회는 더더욱…
지금보다 아직 한참 더 망하게 생겼다.

아직 최소 십여년은 더 개독교 소리를 들을 것 같고,
기독교는 계속해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것이고,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교회들이 무너지고,
정상적인 지각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 교회를 어떻게든 집단적으로 살려내려는 노력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건강하지도 않은 것 같다.

이것에 대해 무감각하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혹은 이것에 대해 잘못된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후에 깊이 땅을치며 이를 갊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이런 시대에 대한 깊은 아픔을 가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고,
나도 역시 이에대해 충분히 더 많이 아파하고 싶다.


Comments

아무리 생각해도 — 4 Comments

  1. 유시민: “망할때 잘 망해야 소망이 있다.”
    (부흥을 뭐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은 부흥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 ‘잘 망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망하는 길일까요?
    무엇은 지켜야 하고 무엇은 버리면서(고치면서) 망해야 할까요?

    • 아주 훌륭한 지적이십니다!
      최근에 Stanley Hauerwas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Christianity가 decline하고 있다. 이렇게 power를 잃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자.

      저는 완전 동의합니다.
      사실 어제 저희 목사님과 다른 몇분이 함께 이 관련된 이야기를 좀 했었는데요…

      저는 이런 시기에 해야하는 중요한 것은 ‘깊어지기’ 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 건강한 신학의 정립
      – 다수보다는 소수에 집중하는 관심
      – counter-culture의 ‘야성’을 기르기
      – 대안적 lifestyle을 encourage
      등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변혁시킨다는 식의 신학을 다소 좀 포기하고,
      세상에 저항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고요.

      우리의 문제는 우리는 세상에 있지 않고, 세상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 감사합니다.

        변혁보다는 저항이라는 말씀에 꼿혀서…^^ 좋은 말씀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훨씬더 수동적/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적극적)저항보다도 훨씬 passive 한태도, 그러니까 버팀, 견딤, 매여있음 과
        같은 단어들이 제가 생각하는 단어들입니다. (그 위에서 말씀하신 ‘야성’과는 거리가 좀 많이 먼…-.-; )

        피동성(passiveness)이 망함을 목도하는 세대에서는 유용한 가치가 되지 않을까 고민해 봅니다.

        • 네,
          피동성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오게되는 (따라와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의존과 신뢰가 대단히 중요하다는데 완전 동의합니다.
          예레미야나 다니엘서 같은 책들을 읽으며, 목놓아 울고,
          때로는 거룩한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항이라고 할때,
          새속 사회에서의 저항은 결국 ‘깃발들고 서서 버티기’가 될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작정 신뢰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옵소서… 그렇게 가슴을 쳐가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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