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대한 논의를 할때면 늘 ‘공부’를 하는 자세로 접근하게 된다.
나는 것이 현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 공부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도 역시 열심히 공부하려고 늘 나름대로 노력하고, 사람들에게도 늘 공부하라고 이야기한다. ㅎㅎ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공부의 대상만은 아니다.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에는 여러가지 공부가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신문을 보다가 분노해서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일,
가기 싫은 군대에 끌려가는 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른 사람과 침튀기는 토론을 하다가 언성을 높이는 일,
축구 한-일전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일,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충격을 경험하는 일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의 국민됨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뭔가를 ‘경험’해보자… 이웃을 돕는 event를 한번 해보고… 이런 싸우려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나는 현대 기독교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기독교는 21세기에서 유효기간이 지난것 같이 느껴지기 까지 한다.
이것을 돌파해내는 중요한 key는 평신도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러니까 일상을 소소하게 잘 살자… 그런 멜랑콜리한 이야기를 하는게아니다.
실제로 세상에 대항해서 살면서 하나님나라 백성됨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기도하고,
세상에 의해 정복당할것만 같은 두려움 속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경험을 하고,
강력한 세상의 시대정신에 대비해 기독교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절망감도 경험해보고…
이런 과정을 삶 속에서 겪어내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contents가 된다고 생각한다.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 두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요.
(1) “제자”라는 단어 선택 —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학습하는 모습을 연상케 함
(2) 신학교의 교과 과정 — 목회자 양성과정이 전부 책으로 열공하는 것 (이건 서구 기독교도 마찬가지)
네엠~~~
그리고 또 한가지는요,
contents 자체를 계속 top-down으로 하려는 기독교의 분위기도 일부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살으라는 것을 가르치는 분위기
리더가 일방적으로 교리를 주입하는 분위기.
결국 케리그마는 그런식으로 전달될수밖에 없지만,
핵심적인 케리그마 이외에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은 contents를 그런 식으로 만들려고 하니….
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그래서 진심으로 좀 제대로 살면서 생각하는 평신도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일종의 자책도 하고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