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7)

나는 facebook이나 twitter 같은걸 별로 열심히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대통령선거 시즌에 황무지가 되어있는 내 어카운트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좀 보았다. 당연히 내가 facebook이나 twitter connection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데 그곳에는 역시 증오와 조롱이 넘쳐났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상황을 이용하는 나쁜 정치가들/리더들은 그렇게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 정말 죽을 것 같아… 그러니 트럼프라도 좀 지지해야겠어…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증오와 조롱을 쏟아붇기도 하고, 그나마 좀 점잖은 사람들은 거기서 도덕교육을 시전하는 거다.

나는, 현대 기독교가 이런 함정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사람들의 꽤 절실한 절규에대해 도덕적잣대로 판단하며 도덕교사를 자청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트럼프를 그렇게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누군가는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black lives matter, feminism등등의 ageda에 대부분 동의하고, political correctness도 중요하다고 보고 (decency 라고 Biden이 표현하고 있는)
그러나 Biden정부가 그 목소리를 잘 들어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기독교가 이런 속에서 많이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여기서 이야기한 두려움에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필요한것은 도덕교사의 훈계가 아니다.
좌절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공감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정치적 세력화로 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정권을 잡도록 하는 정치운동도 다가 아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절망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기독교가 무슨 얘기를 해줄수 있느냐고 물으면…
혹시 이 글을 읽는 몇 안되는 기독교인들은 나름대로의 답이 있는가?

2 thoughts on “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7)”

  1. 이른바 진보적인 진영의 의견에 일견 동의 되면서도 못내 찜찜했던 부분을 콕 찝어 잘 설명해주신 것 같아요. 상대주의를 절대주의처럼 외치다보니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쎄요, 이것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모두’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의 이웃이 되는 Christian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1. 애고, 별것 아닌 글에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더 많이 이야기를 듣고 좀 넓게 포용하는 겸손함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사랑이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겸손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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