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묵상하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내게 필요한 것일까?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내게 정말 부족한 그리고 필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은혜’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게 슬쩍 찌르셨던 것 같다. (He nudged me)
도대체 그럼 내가 어디서 은혜를 다시 깊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은혜의 개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과연 내게 의미 있는 은혜라는 것을 어떻게 다시 재발견할 수 있을까?
은혜에 대해서 내가 읽은 책들중에 가장 방대하고 여러웠던 책은 Paul and the Gift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었다.
그 은혜가 과연 내게 의미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재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서를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아마 지난 3개월여동안 로마서를 한 100번쯤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권의 책들을 다시 읽었다.
피터 엔즈의 확신의 죄,
박영선의 하나님의 열심,
찰스 스윈돌의 은혜의 각성
같은 책들.
하나님의 열심이나 은혜의 각성은 내가 한국에서 대학원 다닐때 읽었던 책들이니, 읽은지 거의 30년 만에 다시 읽은 것이다.
그리고 로렌 커닝햄의 책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벼랑끝에 서는 용기… ) 등을 읽으려 했으나, 그 책을 주문해서 읽기 전에 job을 찾았고, 다시 바빠져서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조만간 다시 한번 읽어보려 한다.)
이런 책들은, 내 20대 초반에 읽었던 책들이고,
어쩌면 그로부터 진화해온 내 신앙의 여정 속에서 어느새 좀 많이 잊혀진 스타일의 신앙이 담긴 책들이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살짝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기도 하고.
그러나… 이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내가 혹시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린 그러나 잊으면 안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이 책들중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은 특히 내게 다시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에서 살짝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이제는 있지만, 그럼에도 박영선 목사님이 그 책에서 하고자 하는 그 이야기들은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잊어버린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