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이후에 시험 받으신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공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것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시는 선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예수님때문에 이제 나 같은 사람도,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는 것.
십자가의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이후에 시험 받으신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공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것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시는 선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예수님때문에 이제 나 같은 사람도,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는 것.
십자가의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Penal substitution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한동안은 penal substitution 없이 십자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penal substitution 없는 믿음을 나름 거의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나를 사셨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20대에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penal substitution을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
예수님의 희생이 내게 새 생명을 주셨고, 죄로부터의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내가 피할 수 없는 어쩌면 내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살면서 내 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사는 시기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도 궁극적으로 이걸 해결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명백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이외에 내 망할놈의 삶을 회생시킬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
그렇게 나를 사셨다. 핏값을 주고.
이것이 얼마나 불편하든 간에,
이것을 피할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전혀 다른 차원에 가져다준다.
작년, 나는 나 자신에대한 신뢰를 잃고 힘들어했다.
내가 살아가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몰려왔고,
부족한 내 모습에 깊은 절망을 경험했다.
어쨌든 살아보려고 나는 성경을 열었고,
반복해서 익숙한 본문들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또 익숙한 기도를 하고 하고 또 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냐 하는 것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 다는 것.
나는 내 감정의 기복에 따라서,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깊게 실망하거나 낙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 가시지 않는다는 것.
그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의 궁극적 표현은 결국 십자가다.
내가 처음 복음에 제대로 눈을 떴을때,
그 큰 스토리는 내가 쉽게 감당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사셨다/구속하셨다는 이야기는 한편 대단히 감격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이기도 했다.
그것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신비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두렵다고 표현할만한 감정도 있었다.
내가 새롭게 태어났고, 이제 내가 살아가는 삶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내겐 큰 흥분의 기쁨이었다.
나는 정말 새로운 사람이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내게 그 새로운 삶에 대한 것은 기대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예전과 같이 그저 막연한 기대는 아니다.
이제는 했더니 잘 안되더라…는 일종의 경험도 쌓였고,
무엇이 근거 없는 낙관이고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소망인가 하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도 약간 더 생겼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새로운 창조의 새 세상을 열어주셨다는 것만큼 흥분되는 소망이 또 있을까.
50대 후반의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부르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떻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을까?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야기하는것 처럼, 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부르셨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만한 무엇이 없다.
그저 내게 던져진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다.
20대에는 내 부르심이 무엇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내게 그런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냥 최선을 다 해서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하나님과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그리고 여러 상황 속에서 많이 사색하고, 그 사색과 내 말씀 연구/묵상을 연결시켜 내 나름대로 발견하고 깨닫는 복음을 매일 재 발견하고, 기회가 될때 그것을 나누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이 은퇴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지난 2월 말은 로마서 8장을 묵상했다.
그 속에서 이런 부르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도 하고 내 생각과 마음을 다시 추스려볼 수 있었다.
아마 나는…
내 삶을 즐기기 위해 은퇴를 선택할것 같지는 않다.
그럴만큼 내가 충분히 돈이 많은 것도 물론 아니지만.
아마 은퇴를 한다면 그 속에서 또 다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그냥 그렇게 내게 던져질 것 같다.
내가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내가 살아기기 보다는,
그저 그렇게 내게 던져져서 나는 피동적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젊을때 힘들게 일해서 돈을 모으고,
은퇴한 이후 그냥 모아둔 돈을 쓰면서 지내는 삶의 모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은퇴하고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하자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은퇴를 한 이후 얼마동안 더 살 수 있을까?
아주 길면 30년까지도 될 수 있지만,
짧으면 은퇴 이후 몇년, 그냥 평균적으로 생각하면 한 10여년 더 살게되지 않을까 싶다.
10년여년 정도라면, 그건 정말 금방이다.
적어도 내가 보낸 최근의 10여년을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다.
그러니 은퇴를 엄청나게 기대하거나 은퇴를 대단히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은퇴 이후에 겸손하게 내 한계를 인정하고, 여전히 더 깊어지면서, 사랑과 지혜가 쌓여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살짝 은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사실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 배우는 것이 많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갈등하면서,
때로는 화도 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하는…
이런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나는 나와 세상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면서 많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그 생각을 더 정리하고,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며 생각을 더 깊게 만들어 나기기도 한다.
그런데,
은퇴를 하면 그런 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아마 내 사색의 깊이도 얕아지고,
내 생각의 폭도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독서를 통해서 내 좁은 삶의 경험들이 일부 상쇄될 수 있을까?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
아마도 은퇴를 하면,
점점 내 생각의 무뎌지고, 그래서 몇년 후에는 성경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친다거나,
강의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도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아마 은퇴 이후 최대 5~10년 정도 어느 정도의 sharpness가 유지되려나….
어쩌면 그 이후에는 조금 더 새로운 발견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더 깊게 들어가야 할 것 같긴 한데,
내가 그렇게 더 깊게 들어갈만한 충분한 자료와 자원들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사는 생각을 해보면… probably not.
어느정도까지 가능할지, 어느정도까지 내게 허락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힘을 내서 직장을 다니며 경험과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내와 이야기하긴 했는데, 아예 온라인 성경공부를 한주에 3~4일씩 할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몇년동안은) 작년 봄까지만 하더라도 한주에 3일 저녁 온라인 성경공부 class를 했었는데, 그것도 조금 더 신경써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블로그에 하루 글쓰는데 들이는 시간이 보통 한 5~10분정도쯤 된다.
그러니 내 거친 생각들을 적는데에는 적절하지만, 조금 더 싶은 생각을 잘 정리해서 다듬어진 글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조금더 시간을 들여서 블로그의 질도 높이고, 조금 더 정리된 글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또, 나는 전문적인 설교자가 아니지만, 아주 가끔… 내 설교 듣는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한주에 한편씩 나름 혼자서 연구한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해서 archive하는 작업도 해볼만 한 것 같다. 이건 뭐 막 넓게 공개할만한 것은 아니고, 주로는 내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그런 format으로 정리해서 놓는 용도고. 또한 어쩌면 나중에라도… 민우가 아빠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료로 남겨우기 위해서.
나는 책을 내거나 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건 그게 가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책을 쓸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줍잖은 내 생각을 그런식으로 남겨두지는 않을 것 같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은퇴를 하면 개를 키우고 싶다. ^^
아주 어린 강아지는 좀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
나이가 좀 있는 개를 쉘터에서 입양해서 한 7~8년 정도 키우다가 떠나보낼 정도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도 나이가 들면 지나치게 활동적인 개를 매일 돌보는게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
그런데 개를 키우는게 돈이 좀 들어서… 그런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개를 키우기 위해서 악착같이 몇년 더 일해서 돈을 더 모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외엔, 별로 돈을 많이 쓸 계획이 없다.
아마 책을 사는데 돈이 좀 들 것 같긴 하고…
아내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많이 여행을 할 것 같지도 않다.
일년에 한번 정도 좀 맘먹고 2~3주 정도 할 수 있을까.
비싼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마 은퇴하면 나는 내가 음식을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요리라고 할건 아니고, 그냥 끼니 때울 수 있는 건강한 음식들.
사실 지난번 layoff 기간동안에, 나는 그렇게 먹으면서 살도 뺐다.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
지난 가을 layoff이후에 말하자면 나는 강제로 은퇴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
나름 괜찮았다.
아주 규칙적으로 살았고,
많이 사색했고,
책 읽을 수 있었고,
시간나면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밥도 하고,
나름 혼자서 성경 본문 연구도 좀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나면 그때 그때 완전히 엉뚱한 공부들을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differential equation을 혼자서 풀어보다가 완전 좌절하기도 했고,
유대교쪽에서 하는 학문적인 강의 등을 듣기도 했고,
상대성 이론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듣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
나는 python을 잘 몰라서 그걸 좀 배워 보려고 시도도 했고…
나 같이 관심이 난잡한데다 배우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 인터넷에 유명한 대학교의 많은 강의들이 그냥 다 한학기 분량이 다 올라와 있어서…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그런게 배우는 것도 재미있으니 아마 나는 은퇴를 하면 그런데 시간을 많이 쓰게 되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