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impress people, or I can love them. But I can’t do both.
Korean Gov Freeks out after 300 nationals chained by ICE
한국에서 다들 열받아 있는 것에 비해서,
미국에서는 이 문제가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일이 벌어진 날에는 대개 illegal worker라는 말만 뉴스에서 전했고, 실제 이것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을 조금 더 찾아보면,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자세히 다루는 의견들을 조금 더 찾을 수 있고 꽤 정확하게 이걸 짚고 있는 것 같다.
THAAD사태 이후 중국이 한국에 대한 태도 등으로 한국의 반중감정이 대단히 높아졌던 것 처럼,
이 사태 이후 한국 내부에서 미국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그렇게 달라지게 될지 지켜볼 일인 것 같다.
내가 중국이나 러시아라면 이건 매우 좋은 뉴스일것 같다.
한국이 미국과 절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겠지만,
이 사태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가능하면 감정을 배제하고 보려고 노력중이다.
요즘 하는 묵상과 기도
요즘 꽤 많은 시간을 묵상과 기도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job search하고 resume 만드는 일을 매일 열심히 하지만 그것으로 하루 종일일 보낼수는 없다.
내가 apply할 수 있는 job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자기 전에 기도하는것 말고,
매일 짧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을 하는데,
이거 요즘 완전 대박이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input이 들어온다.
하나님의 위로와 꾸중 (주로 꾸중이 더 많은 편)이 넘쳐나서 아마 이 많은 내용들을 맥락이 다른 사람과 다 나누려면 아주 오랫동안 설명을 해야할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 좀 다루어보려고 정리해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 많은 양을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져서 그냥 미루고 있다.
그리고 또 내가 매일 듣는 podcast는 Become New라는, John Ortberg가 주중에 매일 올리는 짧은 비디오다.
이분은, 아는 사람은 알지만 지난 몇년간 개인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내왔다. 그 속에서 이분의 고통을 통해 맺어진 열매가 나누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의 episode 역시 정말 그랬다.
이분의 딸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이분의 개인적 여정을 어느정도 알고 이 episode를 들으면 더더욱 풍성하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이렇게 내게 공급해주시는 것들을 잘 받아먹으며 지내고 있다.
John Ortberg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참 이분께 감사하다.
나름 바쁜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것을 하고 있지 않지만 나름 꽤 바쁘다.
하루에 시간 쓰는게
1시간~1시간 반정도 묵상과 기도,
1시간 반정도 운동
1시간 정도 각종 집안 일들 (물건 정리, 청소, 식사준비)
2~3시간 여러가지 공부
3 시간 job search
1시간 책읽기
1~2시간 빈둥빈둥 놀기
가능하면 사람들과의 접촉과 대화를 줄이고,
더 깊게 사색과 묵상을 하려고 노력중.
Feedback
하루에 적어도 한시간씩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 더 정리가 되면 다음주에는 하루나 이틀정도 근처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참 감사하게도 여기서 운전해서 한 40분 정도 가면 ‘금식 기도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숲속에서 기도하기 참 좋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서 쏟아져들어오는 하나님의 feedback이 장난 아니다. ㅠㅠ
아마도 하나님께서 정말 이렇게 말씀을 내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한편 위로를 주시지만 다른 한편 내 바닥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말씀을 해주신다.
그 많은 것들을 다 정리해서 적는 것이 버거울 정로도 정말 생각이 가득하게 쏟아져들어오고 있다.
참 오랜만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게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시는 경험을 이렇게 갖는 것이.
몇가지 keyword들은,
죄, 두려움, narcissism, 자랑, 생각하지 않음, 조급함, 교만함, 은혜, trust, 왜곡된 자아상, spoiled, 끊어냄, 하나님의 가르치심, I’m not in control, 정죄함,
몇가지 중요한 묵상의 문장들은,
나는 사람들이 보는것과는 다른 사람이다.
멋진 설교와 정보와 지식이 나를 망치고 있다.
Shallow하게 따라하려하지 말고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성공과 성취는 기분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지난주와 이번주 초 며칠은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그저께부터는 밤에 아주 잘 자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feedback을 들으며 급하게 안정되고 있다.
Status Check
당연히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조금 더 늘었는데…
지난주부터 아주 심각하게 내가 많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사실상 거의 믿음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들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다.)
말씀 묵상 본문을 매일 보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짓궂으심(?)에 웃음을 짓게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의 심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를 매우 아프게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지난번 layoff때에는 거의 매일 공개 일기를 쓰듯이 이 블로그에서 내 상태를 썼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보다는 내 영적인 건강상태가 좋았던 것 같고,
지금은 조금 더 깊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듯 하다.
그리고 오히려 조금 더 깊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내 얕은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내는 것 보다 훨씬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때,
손영진의 이 시간 기다려요 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었다.
나름 그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손영진 사모님의 테이프를 넣고 늘어지도록 많이 들었다.
오늘 그 시편 127편을 보면서는,
아… 그때 내 믿음의 천박함에 손발이 다 오그러든다.
그때 나는 마치 신앙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정복한듯이 착각하고 생각하고 행동했었다.
그러면서 감격하고 감사했다.
지금 나의 상태는 그런데,
어쩌면 그때의 나보다 더 퇴보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My status check.
Another One!
회사에서 또 layoff를 당했다.
우리 회사의 모든 hardware 쪽을 다 없앤다고 한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layoff를 당했다.
지난번 layoff를 당했던 것은 거의 10년쯤 전이었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매우 혼란스럽고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내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한단계 더 깊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얼마전 부터 알고 있었다.
회사의 confidential information이어서 모든 것을 여기에 공개적으로 쓸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려고 여려가지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네,.
또 다시 시작이다.
Lord Bless You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the Lord make his face to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you and give you peace.
민수기 6:24-26
챔피언
챔피언이라는 단어는, 보통 어떤 경기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칭한다.
그러나 원래 챔피언의 기원은 당사자 대신 싸워주는 전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대신해서 그 사람을 대표해서 싸우는 사람인것.
그래서 영어에서는 여전히 그런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가치나 명예등을 대표해서 지키는 사람을 챔피언이라고 한다.
또 챔피언을 동사로 쓰기도 하는데, 이때도 어떤 가치등을 지키고 고양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의미에서 보면,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한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챔피언인 셈이다. 한국을 대표해서 대신 싸우는 사람인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어떤 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있는 사람은 그 분야의 챔피언이다. 그 연구분야의 가치를 높이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게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차범근이 독일에서 활약하던 시절,
파독광부로 독일에 가게된 사람들에게 차범근은 챔피언이었다.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그 외국생활의 서러움을 겪던 사람들은 큰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박지성, 박찬호, 류현진에게 열광했고, 손흥민을 응원해왔다.
최근 손흥민에 대한 뉴스가 나왔고, 관심있게 보다보니 내 youtube feed에 손흥민 관련된 영상들이 엄청 많이 뜬다. 손흥민을 칭찬하고 응원하는 것들이 압도적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삶의 영역에서… 내가 챔피언으로 삼아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존경하고 내가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이 내게 희망이 되었고 그분들을 응원했던.
내가 그렇게 챔피언으로 삼고 있던 분들중 어떤 분들은 내가 직접 그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심지어는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있기도 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꽤 오랜시간동안 내가 사랑하고 헌신해서 살아가는 가치들 안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챔피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소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가 그런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제발 아무도 나를 그런 챔피언으로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챔피언이 될만큼, 내가 그들이 따르는 가치와 희망을 대표할만큼 잘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어나길 큰아들로 태어난걸….
내가 삼형제중 첫째이긴 하지만, 그걸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을때의 상황은 이렇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는데,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비판했다.
그러자 잃은 양의 비유, 잃어버린 동전 비유, 잃어버린 아들 비유… 세가지를 말씀하신 것으로 나와 있다. (누가복음 15장)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3절)
그러니 이 이야기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은 바로 이 비유를 이야기하는 대상인 것이고,
돌아온 작은 아들보다는 큰 아들에 대해 더 중점을 두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 큰아들같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규칙 잘 기키고, 시키는 일 잘 하고, 공부 잘하고, 성실하고…
나는 그냥 딱 큰 아들이다.
게다가 삐딱한 작은 아들을 비판하는 모습까지도 매우 닮았다.
나는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매우 쉽게 비판한다.
아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꾸 되뇌이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비판하고 있다….
내가 첫째로 태어난것과 무관하게,
나는 그냥 태어나기를 탕자의 비유의 첫째 아들과 같은 성품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은혜를 이해하는게 정말 내겐 어렵다.
조금만 내가 집중하지 않으면 나는 전혀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내게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고 한다.
아니,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난걸 어쩌라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