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에게 교회가 할 수 있는 말은

2004년 7월에 다음의 글을 쓴것을 발견했다.
그러부터 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의 상황도, 나 개인적인 깨달음과 성숙도 전혀 발전된 것이 없어 보인다.
가슴이 아프다…

=====

나는 미국에 20세기에 왔고, 지금은 21세기 이니… 두 세기에 걸친 미국 생활 동안 한국이 많이 변한것은 틀림없으렷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심한 과장의 말인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을 들어보면 그것이 전혀 과정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들 ‘이태백’ 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참 꿈을 꾸며 이상에 부풀어 있어야할 나이에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사도행전에 나온 것 같이 ‘은과 금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은과 금이 아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이들에게 어떤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선뜻 이것에 대한 대답을 섯불리 열거하기 이전에 어떤 것들이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1. ‘예수 믿고 (현세적, 물질적) 복 받아라’

건 아닌 것 같다. 이것이 복음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아닐 뿐더러, 실제 그러한 현세적 복을 잃어버린 박탈감에 허덕이고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로 사탕발림을 하려 한다면 복음은 정말 천박한 원색의 룸살롱 광고 찌라시 정도 이상의 attention을
얻지 못할 것이다.

2. 열심히 살아서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말을 돌려서 해서 그렇지, 사실 이건 ‘성공해라’ 라는 말이다. 이들이 성공이 싫어서 그러고 있는 사람들일까. 성공을 억지로 피해서 이태백이 되었을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비복음적인 말에 이들이 거짓 위로라도 받을 것을 기대해 볼수 있으련만.

3. 지금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거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사실 나라도 그렇게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만 참아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풀어주실 테니.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앞에 두고 도박이라도 하자는 건가.

……

어설픈 좌파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이태백들 가운데 다수는 소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들이다.
경쟁 사회 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메시지들을 강단에서 계속 선포하며…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들만 이야기 해왔지 않았는가.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야성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그리고 고지를 점령하자고.

그런데 우리가 이들 이태백들에게 ‘우리에게 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근본적으로 내가,
이 세상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 이 세상을 바라보는 frame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20년 뒤,
텅텅빈 한국의 어느 예배당에서 나와 내 아내가 예배를 드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태백들의 박탈감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품어줄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보고 싶다.

4 thoughts on “이태백에게 교회가 할 수 있는 말은”

  1. 그런 거에 박탈감 느끼는 건, 믿음있는 자의 모습이 아냐.
    혹은 그렇게 어려울 때 생긴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냐…
    뭐 그런 말들을 해 주는 이들도 있지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가슴으로 품어주는게 아니라 가슴을 후벼파는.

    제가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잘 해 주는 말은 3 번 같은 경우가 종종 있는 거 같아요. 언젠가는 취직이 되어서 일 때분에 너무 바빠서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때가 올테니, 그냥 지금을 즐겨라. —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위로. 히히히…

  2. 그래도 …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야성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그리고 고지를 점령하자고”
    는 메세지가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인정하게 되겠죠.
    우리는 어떻게 이태백인 지체에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복음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네요.

    “복음을 살아간다는것?”

    1. 교통사고(?) 휴유증은 없으세요? ^^

      작년의 KOSTA 주제였던…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keyword: transformation)

      금년의 KOSTA 주제인..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keyword : Kingdom of God)

      그리고 내년의 주제로 (yet to be approved by 공동대표) 정해지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keyword : courage)

      결국 이런 것들이 결국 이 세상과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주제를 정할때… 매년 이 시대의 청년 학생들의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address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하잖아요.

      하지만, 사실은 저도 과연 그렇다면 ‘대안’이 되는 tangible한 model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3.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지금 이 세대에게 이 시기의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이렇게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진정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는 이들을
    가라지 중에 알곡으로 가르고 계실지 모른다고…
    그러나 이전보다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safe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상황을 누리고 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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