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섬기고 있는 학생 성경공부 모임에서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주는 사도행전 21장을 공부했는데…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특별히 자신에게 고난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 고난을 감수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영웅으로서 바울을 보면서,
아… 바울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
21장 4절에서 걸렸다.
우리는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서 만나고, 거기서 이레를 머물렀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하였다.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울의 동료들은 바울을 말렸다.
그런데도 바울은 가겠다고 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주석에서는, 21장 4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바울의 동료들이 성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은 바울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은 것은 성령의 지시가 아니라 사람들의 조언이었다. 성령의 지시에 사람들이 자신의 조언을 덧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근거로 20장 22절에 나온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21장 4절에서 정말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바울을 저지한 것이었고, 20장 22절에서 바울이 착각을 했거나, 오해를 한 것이었다면?
특히 20장 22절에 ‘성령’이라는 말은 다른 번역본들을 보면 그냥 ‘spirit'(소문자)으로 해석해기도 했고, ‘심령'(개역성경)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다시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사역자로서의 고집이자 열정이었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집장이 바울은,
자신이 사역에 관하여 뜻을 정하고는 다른 사람의 조언도 듣지 않은 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말씀을 다시 읽어보고 묵상을 하면 할수록,
바울이 자신의 고집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는 해석이 더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아… 바울에 대하여 실망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바울행전이 아니었다!
사도행전은 바울과 같은 고집장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시는 스토리였다!
누가가 바울을 고집장이로 그리면서도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는 것을 그린 것은,
하나님 나라의 전파가, 바울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계획과 뜻에 의한 것이었음을 드러내고자 했언 것은 아니었을까.
바울에 대하여 실망하자마자…
내 마음엔 감동이 밀려왔다.
바울에 대한 실망은, 즉시…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감사함으로 연결되었다.
저는 오히려 초반에는 바울의 고집불통 너무한 거 같은 완벽주의 성향에 유감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다가.. 요즘은 바울을 보면서 나도 하나님 앞에서 좀 뭐랄까 고지식해지고 싶다고… 그런걸 배우고 있었어요. ^^ 그것이 바울의 고집이었던,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던, 바울이 믿었던 하나님의 뜻 앞에서 쭉 그길로 가버린 바울을 멋지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감사함에 대해선 저도 동의합니다~
바울의 어떤 면에 감동하고,
어떤면에 실망하고 하는 것도…
읽는 이의 성품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 보이지요? 그럼에도 깔때기와 같이 그 묵상이 결국은 하나님께로 집중되고…
참 신기하기도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