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1년도 더 지난것 같다.
내가 주일예배를 드릴때 마다, 한편 좋은 가르침에 감사하면서도,
정말 깊이 ‘예배’를 드렸다고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갈증이 내게 있어왔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주님을 높이는 마음이 들고,
그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좋고,
그 주님의 소망이 내 안의 어두움을 몰아고,
주님의 사랑 앞에 흐느껴 우는…
그런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깊이 있었다.
생각을 해보면,
깊은 예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 예배의 감격 등등은,
하나님 나라 신학에 근거한 헌신을 강조하는 base로부터 나오기는 어렵고,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을 깊이 사랑하는 base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설교를 통해 깊은 가르침을 얻는 것이 물론 예배중에 참 여러 유익을 주지만,
‘teaching’에 너무 강조점을 두다보면 ‘worship’을 잃어버리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내가 지금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에서, 늘 좋은 teaching이 있음에도, worship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깊은 목마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그런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복음을 이야기할때,
변증적 가르침이 중요하긴 하지만,
복음을 변증적 가르침에 의존하다보면 선포와 예배등과 같은 초월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새해에는…
어떻게든 정말 깊이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내게도 회복되면 좋겠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hopefully… 어떻게든 공동체 적으로도.
예배라는것이 여러 level 이 있겠지만 남편이 말하는 건 주일예배를 얘기하는거겠죠?
그것과는 좀 다른 예배이지만 역시 <묻고 대답하다>에서 강영안교수님의 말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에배는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것이다.야고보서의 religion 이란 이러한것이다라는 말씀을 인용한것인데, religion = 예배로 해석하신 이유는 religion 의 원어적 의미가 예배에 가까워서래요.
전 주일예배도 그러했음 좋겠지만, 야고보서의 그런 예배를 회복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거 같아요.
물론,
소위 ‘일상의 얘베’라는 차원에서 예배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그런데, 이것과 관련해서 드는 몇가지 의문/생각/comment.
1. 예배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소위 ‘활동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야기하는 일상의 얘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
(뭐 그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에는 물론 나도 포함되지.)
물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위임이라는 차원에서, 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라는 차원에서 사람을 섬기고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행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는 그것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하나님을 cherish하여 그분을 높이는 공동체의 worship을 ‘행동’으로 완전히 대체할수는 없다고 생각해.
2. 가령, 세상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거나 만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충분한 만족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것 말고 뭔가 더 있을텐데…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뭔가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무엇을 더 채워보고 싶은 열망이 보통 많이들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서 사는 삶 자체가 대단히 버겁고 힘들다거나, depression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극도의 stress상태등을 겪고 있다거나 한다면, 오히려 그 세상을 초월하게하는 communal worship을 더 동경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드네.
그런 차원에서,
세상의 무게를 덜 느끼는 사람들이 일상의 얘배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좀 shallow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
3.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개혁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의 얘배, 활동적인 얘배를 더 강조하고 추구하는 반면, 평화주의자들이나 억업아래 있는 사람들이 초월적 communal worship을 추구하는 것은 그런의미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 같아.
4. 나 역시,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으로서 일상의 얘배, 활동의 얘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대로 내 그런 모습이 다소 shallow하게 느껴지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예배가 시작점이고, 할 수 있는한 더 많은 사람을 그런 예배로 인도하는 것이 목표점이라고 할때, 그 중간 과정으로 중요한 것이 야고보서의 예배가 아닐까싶네요.
공동체라는 것을 좀 더 넓게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에 ‘고아’와 ‘과부’를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거 같아요.
그리고 행위와 행동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이웃과 ‘함께 함’ 그런 이웃과’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높임’ 이라는 의미죠.
제가 그런 공동체, 그리고 그런 연대성을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중이라서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