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4)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하는 것에 대한 아주 적극적이고 활발한 discussion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상황에서 신앙을 개인적인것으로 가두어버리고자 하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Having said that…

20-30대에는, 선과 악의 기준이,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고 여겼고, 그 반대편에 있는 악을 define하고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선과 악의 기준이 나를 가르고 있음을 본다.

돈을 더 벌기 위해 규정을 어기고 무리하게 배를 운영한 사람들,

허가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허가를 내어준 사람들,

리더로서 책임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난만 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

책임지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움직인 무능한 사람들,

아이들을 살리지 않고 배를 포기한 어른들…

등등이 정말 악한 모습이고 그것에 분노해야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심지어는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과의 일종의 ‘연대의식’을 가지고 재를 뒤집어 쓰는 모습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칙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모습..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책임을 피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모습… 바로 내 모습이다.

아이들이 죽더라도 나만 살면 된다는 어른들의 욕심이 지금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있지 않은가.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한국의 남북나눔운동에서, 소위 ‘다니엘 기도’라는 것을 design해서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남북 상황의 깨어짐을 만들고 있는 죄의 모습이, 

바로 나의 죄, 우리의 죄라고 인정하고 기도하라고 촉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그렇게 기도하던 청년들은,

신사참배가, 독재정권에 협력한 것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정말 ‘우리’의 죄라고, 좀 더 좁혀서는 ‘내’ 죄라고 고백하며 눈물흘려 기도했다.

그리고는 인간 띠 잇기를 하면서 우리의 개인적 신앙의 공적인 표현을 해내었다.

사회적 악을 향한 공분,

이 사건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이런 것들이 다 중요하고, 모두 해야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또 한가지 일은,

재를 뒤집어 쓰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하는 voice를 듣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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