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5)

마르슬라브 볼프는,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나서… 소위 ‘인종청소’가 이루어진 지역에서 자란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고 했던 그 상황에서 복음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상황에서 화해, 용서는 십자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볼프는,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피해자의 아픔을 품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의 죄까지도 resolve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누가 선이고 악이라는 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정도로… 총체적으로 망가진 세상 속에서,

결국 그 사람들을 다시 구속해내고 회복해내고 화해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라는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지 않는 십자가 해석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approach 말고 다른 대안이 있을까?

나는 이런 도식을,

지금 이 상황에서 너무 성급하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1. 이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 안의 분노가 ‘공의로운’ 것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 열어두고,

2.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향해 깊은 사랑과 관심을 보이고,

3. 이 아픔을 통해 드러난 ‘백성’들의 아픔과 눈물에 공감하며,

4. 깨어진 system이나 사람의 문제들을 잘 짚어내면서 그것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5. 재를 뒤집어 쓰고, 시대의 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써 회개하는 일들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들은, 모두 중요한 덕목들이고,

이것들 가운데 한두가지만 했다고 해서 의인이 된 것 처럼 나대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어떤 특정한 집단이 거의 독접하다 시피 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이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어디에서도 비슷한 voice를 듣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썼지만,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전문가적 시각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쓰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가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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