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3)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때는 사람들이 싸우고 욕하는 모습을 늘 거리에서 많이 봤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시절은 결국 70년대 초반이니까, 

전쟁 후 20년이 지났지만 그로부터 회복되지 못한 세상이었다.

삶을 찍어 누르는 가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것에 눌린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며 싸우고 했던 것이었겠지.

나는,

이번에 이 사고를 접하고 사람들이 보이는 분노에 찬 반응들이,

마치 그런 것 같아 보였다.

삶 속에서 마음이 척박해져서…

그야말로 독기를 품고 증오를 표현하는…

아,

사람들이 정말 많이 힘들구나.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많이. 많이… 눌려 있구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어내던 시절,

복음은 그들이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주는 역할을 했다.

도무지 견디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들이, 예배당 찬 마루바닥에 앉아서 ‘천국복음’을 듣고 눈물로 기도하며 세상을 이겨나갔다.

지금 이 시대에,

이 아픈 사람들에게 복음이 정말 소망을 주는 것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위로를 공급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인, 공적인 복음의 영역에 대한 강조도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개인적 신앙을 강조해야할 보수 기독교는 개인적 정죄만을 남발하고 있고,

공적 신앙을 강조해야 할 진보 기독교는 사회적 정죄만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개인적 신앙을 강조해야 할 보수 기독교가, 이 땅을 초월해내는 신령한 믿음, 하나님을 신뢰하는 개인적 믿음에 대한 강조를 하고,

공적 신앙을 강조해야 할 진보 기독교가, 깨어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에 대한 강조를 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많이 아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이 마음이 상해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주는 생기가 공급되는 간절한 소망이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