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2)

이런 사건을 보고 가슴아파하지 않거나 분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아마 죄일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의 분노는 모두 ‘공의로운 분노’일까?

이 상황에서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의인이 되는 것일까?

인터넷을 보면서 내가 불편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사람들이 이 상황 속에서 많이 마음이 힘들다.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오른다.

그런데…

그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은… 

그냥 평소에 자신이 미워하던 그룹이다. -.-;

그냥 ‘박근혜’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이걸 기회로 잡아 박근혜를 까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리고 그것이 공의라고 믿고 있고)

이걸 바탕으로 ‘사회 기강을 흔드는 종북좌파’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보수 기독교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은 보수 기독교가 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 분노하고 있고,

공직자들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공직 system의 문제를 부각한다.

지금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분노는 그 대상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들에 대해 비판을 해야하고, 그들이 책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깨어진 system에 대한 이슈를 제기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황망한 사태를 만난 김에, 

내가 기존에 미워하던 그룹을 왕창 더 미워하자… 그 사람들을 많이 많이 비난하자… 는 식의 접근은 사태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저들’을 악인으로 만들고 ‘나’ 혹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분노하는 것으로 당신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좀 해주면 좋겠다.

@ 물론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한국의 현 정부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사람이다. 거의 이 정부가 ‘악하다’라고 보는 입장에 가깝다. 또 악할 뿐 아니고 무능하기까지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의 분노도 역시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를 향해 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1)

고난주간에, 

이 뉴스를 들었을때…

나는 마음이 막막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곧 이어 도저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 ‘분노’가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 그 분노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하는 것 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에 주체를 할 수 없었다.

혼자 있는 장소에서는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쌍욕을 내 뱉기도 하였다.

이걸 어떻게 소화하고 처리해야할지 하는 것도 분명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접하는 여러가지 뉴스와 주장이 그저 어지럽게만 느껴졌었다.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사진이나 동영상들도… 나는 차마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도무지 그걸 볼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다.

인터넷 사이트에 그저 작게 보이는 사진에 비추어진 모습들만으로도,

내 마음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절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솔직히 누가 어떤 해답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의 독서법 (7)

개인적으로 내 독서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던 몇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이 시리즈를 정리해야겠다.

1. Christian Theology by Alister McGrath
이게 보니까 최근엔 한국말로 번역이 된것 같았다. 신학이란 무엇인가 이던가…
실제로 이건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재 혹은 부교재로 사용하기도하는데,
나는 이 책이 내가 퍼즐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어떤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주장하는 스타일의 책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책이기에 그런 유익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특히 전반부 1/3 정도는 신학사 (history of theology)라고 볼 수 있는데, 정말 강.추. 한다.
이 책을 읽은게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내 독서생활에 영향을 끼친 책 #1이다.

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by 프란시스 쉐퍼
1번은 내가 영어로 읽어서 제목을 영어로 썼고, 이 책은 내가 한국말로 읽어서 제목을 한국말로 썼다. ^^
프란시스 쉐퍼가 이 책에서 한 이야기를 지금은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머리를 쓰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요청을 내게 가장 강력하게 했던 책이었다. ^^
물론 Francis Schaeffer의 대표작이라면 Escape from Reason, God Who is There,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같은 것을 꼽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접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철학책, 역사책을 사다가 옆에 놓고 함께 공부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 벌써 20여년전에 읽었는데…

그러고나서 국비유학시험준비를 위해서 국사와 국민윤리를 공부했어야 했는데… 세상에, 국비유학시험준비를 위해 했던 국사와 국민윤리를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었다! 완전히 공부에 재미를 들이게 한 책이다.
솔직히, 지금은 내가 다른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추하지는 않는다. ^^
오히려 intellectually stimulating한 것을 읽고 싶은 beginner들에게는, 자크엘룰을 더 추천하곤 한다.

3. Gordon-Conwell NT Survey course
Gordon-Conwell 신학교에 다니던 사람으로부터 NT Survey 한학기 과목 전체가 녹음되어 있는 tape을 구해다가 들으며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와… 나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아… 이런걸 이렇게 누가 좀 설명을 해주면, 혼자서 책들고 끙끙하는것 보다 훨씬 더 좋구나… 하면서 감탄하며 들었다.
그렇게 말하자면 신학교 과목을 ‘도강’한 셈인데… -.-; 이것도 벌써 15년쯤 지난 일이다.
그 후로 나는 강의, 설교 등등을 찾아서 열심히 듣게 되었고, 예전에 신학교 강의 한학기분이 올라와 있으면 그걸 홀딱 가져다 듣는 식으로 배움의 욕구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
지금도 주말에 심심하면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신학강의, podcast들을 들으며 빈둥빈둥하곤 한다.

4. Across the Spectrum
이건 비교적 얇고, 쉬운 책이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이유들을 다양한 신학적 전통에서 바라보아 비교해놓은 책이다.
아마 지금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그 당시 코스타 간사들에게 추천하셨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큰 그림을 이미 희미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세부적인 이슈의 discussion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나의 독서법 (6)

나의 이러한 독서법에는 약점/limitation이 많이 있다. 그중 몇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이런 스타일의 독서법이 모든 이들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나마 계속해서 생각과 배움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는 것으로 내가 나름대로 개발해 낸 것이고, 적어도 내게는 잘 맞는다. 
책을 빨리 읽고 소화해내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비교적 단 기간에 많은 분량을 소화해야하는 필요에 의해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이다.

2. 이러한 독서법은 소위 ‘꼼꼼함’이 떨어진다.
큰 그림을 잡고, 빨리 이해하는데는 유리하지만, 사상이나 생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분석하는 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나는 이런 ‘꼼꼼함’은, 소위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거나, 주변에 꼼꼼하게 책 잘 읽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부 채우려고 노력한다.

3. 다른이들의 (비뚤어진) 생각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A 라는 작가의 책들을 섭렵하려고 도전하면서, 그 A에 대해 설명해 놓은 B 라는 사람의 개괄서를 먼저 읽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A의 생각보다는 B가 해석해놓은 A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A를 그 후에 읽어가면서도 계속 영향을 끼친다.

만일 B의 생각이 어떤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거나 비뚤어져 있다면 나는 그것에 깊은 영향을 받은 채 A를 읽게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나의 독서법 (5)

독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각종 강연/세미나 들도 큰 도움이 된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강연들을 다운받아 놓았다가…. 운전중이나 운동중에 듣곤 한다.

N. T. Wright 같은 사람은 워낙 강의가 올라와 있는 것이 많아서 그것만 들어도 웬만한 책 읽은것 만한 효과를 볼때도 있다.
또한 신학교 강의들도 무료로 풀려있는게 매우 많다. Gordon Conwell 같은 학교는 아주 대대적으로 이걸 풀어서 iTunes U 에서 여러 과목들을 들을수도 있다.
Douglas Stuart가 하는 해석학 강의, David Wells가 하는 신학개론 강의등이 공짜다!

시간이 부족할때는 Audible 같은 데에서 audio book을 사다가 듣기도 한다. Audio book은 운전과 같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 사용에 더 효과적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나의 독서법 (4)

앞에서 쓴 이야기와 좀 겹칠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떤 단편적인 지식의 파편을 얻는 것 보다,
어떤 사상이나 지식의 내용들을 통합(integrate)하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고, 그 책의 단편적인 내용을 인용(quote)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책의 사상과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integrate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난다.
참 안타깝고 답답하다.

나는 책을 읽는 과정을, jig saw puzzle을 맞추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는 큰 퍼즐판이 있는데,
한 저자를 만나면 그 퍼즐판의 어느 영역의 조각들을 맞추어나가게 된다.
한권 한권 책을 읽어 나갈때 마다, 조금씩 조각들을 맞춘다.

때로는 중간에 한두조각 비기도 한다.
나같은 비전문가가, 어떤 사람의 사상을 빈틈없이 다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상, 저자, 분야 등등을 만나면, 내 퍼즐판은 그 새롭게 접한 지식의 영역만큼 확장된다.
그리고 나는 그쪽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쪽의 퍼즐도 맞추어 나가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한줌의 조각들을 발견해서 서로 맞추어 나가게 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부분이 전체 그림에 어떻게 맞게 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연관된 저자나 저작들을 조금 더 읽어나가다보면 전체 그림의 어느 부분에 들어가게 되는지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integrate되지 않은 파편적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나의 독서법 (3)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많이 늦게 읽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책은 한번 읽어서 잘 이해도 안된다. -.-;
뭐 독서, 공부 이런거에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많은 책을 읽지 못한다.

그런데…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하는 책은 많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흐름잡기” 이다.

가령, 독자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빨리 책을 써 낸다는 N. T. Wright의 예를 들어보자.
사실 N. T. Wright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다 읽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그럴 시간도 없다.

나는 그럴 경우, 그 사람의 생각을 대표할만한 한권을 뽑아서 정독한다.
이렇게 하는 책은 두꺼우면 안된다. 얇으면서도 그 사람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책이어야 한다.
음.. 불행히도 N. T. Wright의 경우에는 그런 책을 찾지 못했다. -.-‘;
이 사람의 사상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N. T. Wright의 사상과 저작을 분석해서 정리한 문서나 강의들을 열심히 찾았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Univ. of Virginia의 Center for Christian Studies에서 4주짜리 시리즈 세미나/강의를 한 것이 있었다. 그야말로 N. T. Wright 개관이었다.
나는 그 강의를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N. T. Wright 사상의 줄기가 무엇인지 우선 좀 감을 잡았다.

그리고 나니, N. T. Wright을 읽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심지어 어떤 것은 설렁설렁 읽으면서 아… 여기선 이 양반이 이 얘기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령,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경우…
이 분도 역시 이분의 사상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을 찾지 못했다. 사실 처음 접한 책이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인데, 어떤 의미에서 그분 생각의 개관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분의 경우에 내가 했던 접근은, 이분의 신학적 입장이 어떤 ‘라인’에 서 있는지를 파악한 것이었다.
이것 역시 뭐 간단한 인터넷 서치로 해결된다.
찾아보니… 요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평화주의자라고 나온다.
아하… 평화주의자구나.
그런 관점에서 이분의 책을 읽어나가니, 이해가 빠르고 쉬웠다.

물론, 이런 과정은 feedback을 거쳐야 한다.
가령 N. T. Wight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 처음 강의를 통해서 N. T. Wright의 사상을 소개받았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가면서 N. T. Wright의 사상을 접하면서 그 처음 개관강의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그럴 경우, 독서를 해가면서 내 나름대로의 N. T. Wright 개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독서법 (2)

조직신학, 교회사, 성서신학 등과 같은 ‘기초 신학’ 과목들은 좀 예외가 되겠으나…
그 외에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은 철저히 저자중심이었다.

소위 어떤 사람 한 사람은 ‘꽂히면’ 그 사람을 정신없이 파고드는 방법을 잘 취했다.
뭐 그렇다고 그 사람의 책을 다 읽는다거나 그렇게 한건 아니다. 택도 없다. ^^
그렇지만… 아… 이 사람의 생각과 사상의 범위와 한계가 이렇게 그려지는구나 하고 깨달아 질 때까지 그 사람의 저작들을 읽었다.

대표적으로,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김교신 등은 내가 20대에 정신없이 파고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 이후에도,
자크 엘룰, 마틴 로이드-존스, 최근에는 N. T. Wright에 이르기까지… 나는 철저하게 저자 중심으로 책을 읽었던것 같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렇게 한 저자의 사상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큰 그림을 빨리 잡는데 유리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잘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Holy Week 묵상 –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금요일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제자들은 흩어졌고, 사람들은 절망했다.

악이 마침내 궁극적 승리는 거둔 듯 했고, 하나님은 무력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금요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이 오고 있었다.

금요일의 처절한 절망과 패배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일요일이 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은, Tony Campolo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role model로 여기고 있다고 할수도 있겠다.

그분의 설교중 꽤 유명한 설교가 있는데, 그것은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이다.

(다음의 링크에서 그중 일부를 들을 수 있는데, video가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들을수 있다.)

그렇다.

아직 금요일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우리는,

충분히 절망해야 한다.

여전히 악이 승리하는 것 같아 보이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기력해 보이고,

여전히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을때…

우리는 그 무기력함과 절망감과 아픔을 쉽게 떨쳐 버리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모든 금요일의 무거움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그 금요일의 어두움을 삶에서 겪어 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다가올 일요일에 대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Tony Campolo가 이야기했던 것 처럼,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Holy Week 묵상 – 소망

처음 십가가의 의미를 깨달았을때,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아니 왜…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났고,

내 삶의 모든 영역은 그 십자가의 가치를 중심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매년 이 시즌이 될 때마다,

나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십자가의 의미가 얼마나 shallow한 수준인가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

이 땅을 살면서, 과연 그 십자가의 신비를 다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싶지만…

이렇게 그 영광의 끝자락을 조금 잡는 것 만으로도,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소망을 준다.

…..

옛날에 황 간사님이 어느 세팅에서 설교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Charles Templeton은 복음전도자였다. 빌리그레함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가뭄 끝에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잡지에서 보고, 하나님이 어디계신가 라는 질문을 하다가 결국은 불가지론자(agnostic)가 되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만드는 신이라면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래서 쓴 책이 Farewell to God 이다.

반면,

Mother Teresa는, 인도 캘커타의 빈민촌을 향해 compassion을 가지다가,

결국 그 안에 들어가 평생 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들을 보면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며 그 사람들을 섬겼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의 고통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편안한 자리에서 사진을 보고 하나님을 버렸지만,

다른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자신의 눈물로 여기고 함께 고통에 동참하며 그 사람들을 섬기면서,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에게 소망의 논리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소망의 삶의 방식을 강력하게 요청하기도 한다.

…..

십자가를 바라보며,

처절하게 우리 구주께서 그 위해서 피 흘리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왜 (그렇게 하셨나)’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사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단히 분명한 대답이 주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