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 있었는데도,
이런 저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이 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코스타의 대선배님과의 대화였다.
저녁집회 시간에, 저녁집회를 다 빼먹고, 그분과 열띤 대화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그것도 꼬박 서서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선배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최근 코스타의 방향 대로라면, 지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자신의 교인들을 거기에 보내는데 우려를 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오는 어떤 어떤 강사를 보니, 내가 거기 갈 자리는 아니구나 하고 느낄만 하다. 적어도 일정부분의 balance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은 balance가 많이 깨어진 것 같아 보인다.
내 항변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지금 방향과 강사 선택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balance는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기계적인 balance를 추구하려고 들다보면 운동성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지금 소위 그 ‘보수적인 목회자 그룹’의 color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판국이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코스타운동에 함께 하지 않는 젊은 그룹도 있다.
적어도 지금 현재는, 보수적 목회자 그룹이나 개혁적 젊은 그룹 양쪽이 보기에 모두 다 불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취해야만 하는 position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양쪽 중 어느 한쪽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보수적 목회자 그룹의 눈치만을 보거나, 개혁적 젊은 그룹의 눈치만을 보고 있자면 코스타만이 해 낼 수 있는 역할을 놓치게 된다.
가령 86년에 코스타를 시작할 당시, 그 당시 ‘보수적 어르신들’이라고 할 수 있었던 교단 정치 목사들을 코스타 운동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그분들과의 balance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로서는 젊은 개혁그룹이였던 신복음주의자들이 이 운동을 시작했고 일으켰고 때로는 날카로운 날을 세워가며 목소리도 높였다.
왜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적용될 수 없다고 보시느냐?
음…
뭐 내 블로그이니까, 당연히 내 주장을 더 길게 썼다. ^^
그분의 말씀과 생각에도 물론 깊이 고려해보고 생각해볼 내용이 있었다.
나중에는 나도 약간 목소리가 커지고 톤이 높아지도록 열띠게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해보면 한참 선배님이신 그분께 버릇없지는 않았는지 후회와 반성이 된다.
그분과의 대화를 한지 3주가 지났는데도, 그 생각이 계속 내 머리에 남아있다.
코스타는 얼마나 ‘날카로움’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