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 (2)

이 친구는,
대단히 optimistic 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optimistic할까 신기하다 생각할정도로 그렇다.

젊은 시절에야,
어차피 젊은 혈기로, 누구나 optimistic한 시기를 지내기도 하지만,
이 친구는 유난히 더 그랬다.

반면,
나는 예전부터 pessimistic한 성향이 더 컸다.
치밀하게 분석하여서, 늘 worst case에 대해서 대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는, optimistic한 대신 별로 치밀하지 못하다.
그래서 빈틈이 많지만, 매우 과감한 추진력을 가진다. 내가 보기엔 무모해보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척척 해낸다.

반면,
나는 실수는 적지만,
많이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망설이곤 한다.

이 친구는,
한국의 어떤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일에 involve 되어서 테네시쪽에 그 책임자로 금년부터 와 있게 되었다.

이번에 만나서도,
결국 크리스천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이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아… 그랬지…. 이래서 나는 이 친구와 함께 하는걸 참 좋아했지…
하는 것이 다시 remind 되었다.

내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변혁되지 않는 세상속에서 느끼는 좌절을 이야기하는데…

이 친구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내 고민을 그냥 올킬해버리는 것이었다.

직장 내에서 교묘하게 얽혀있는 알력다툼에 관해서 이야기 하면서,
변하지 않는 system 속에서 integrity를 지키면서도 survive 하는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25년전에 함께 이야기했던 세상을 변혁하는 기독교라는 것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만 이 친구는,
자기는 그런 교묘한 알력다툼 속에서,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패를 다 까고 보여준단다.
그리고 직장 상사에게 늘 직언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래서 잘 되면 좋은 거고.
허억…

나는,
과연 내가 하는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변혁을 꿈꾸어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복잡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냥 이 친구는… 이게 될까 되지 않을까를 많이 고민하지 않고, 그냥 덤덤하고 투명하게 살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것에 대해서 열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상황에 대하여 분석적 비판적으로 보기 보다는,
진취적 긍정적으로 보는 자세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 하시겠느냐…
뭐 그런 식의 믿음이라고나 할까.

오랜만에,
이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옛날에 이 친구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내게 자연스럽게 전염되었던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 신뢰, 진취적이고 용기있는 삶의 자세 등등이 다시 remind 되었다.

참 감사했다.

이 친구가 앞으로 몇년은 테네시에 더 있을 것 같다는데…
좀 더 자주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의 짦은 대화는,
아마 내 삶의 자세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변화의 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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