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

나는, ‘캘빈주의자’라고 나를 분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깊이있는 개혁주의 신학을 참 좋아한다. – 특히 청교도신학을 참 좋아한다.

예수님을 믿는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결국 그 복음 message의 내용에 내가 동의하고, 믿겠다고 이야기하는 결정일까.

음… 사실 한동안 그렇게 많이 생각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믿음을 갖고 예수님을 믿게되는 과정 속에서,
결국 하나님께서 내 안에 믿음을 주시게 된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성적으로 이해도 되고, 심지어는 감정적으로 동의도 되는데, 막상 ‘저 안에 정말 생명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요즘은,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깊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그 선물을 받는 것에대한 강조를 거의 하지 않은채,
프로그램으로 신자들을 찍어낸다거나,
너무 쉽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것이다’라는 선동으로 사람들을 이끌거나,
아니면 그저 종교적 흥분 / 감정적 흥분을 고취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렇게 하다보니,
이제는 교회를 오래다녔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된다.
심지어는 목사님이나 나이 오래드신 사역자들에게서도 너무 흔하게 발견한다.
이런 분들은, 그 안에 생명이 없으므로, 그저 프로그램 / 종교성/ 사회운동 등으로 자신과 교회를 drive할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복음이 명확하게 드러나게되어,
목사님들, 사역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들을 꿈꾸어 본다.
종교적 감흥이나 의지적 헌신이 아니라, 정말 그 영혼 안에 생명이 들어가는 그런 회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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