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독청년’이던 시절에,
나는 내가 어제 글에서 언급한 두가지 종류의 거짓 희망을 기독교적 신념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개인의 영역에서는,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잘되게 하실 것이라는 (혹은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기복주의적 희망을 가졌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땅에 펼쳐내게된다는 인본주의적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모두 신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개인적인 영역에서 더 이상 ‘나를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공적인 영역에서 오히려 역사가 후퇴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젊은 시절에 그토록 울부짖으며 위해서 기도했던 우리의 조국 교회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고,
포스트모던 세대에게 내가 속한 복음주의는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소망이…. 소망이…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이제는 ‘기독중년’이 된 사람들이 함께 겪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한 그냥 이 시대가, 이 시대의 교회가, 복음이 맞닥드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