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사로잡히기 (2)

기독교적 낙관론을 생각하려고 할때,
그럼 무엇이 비기독교적 낙관론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도움이 되겠다.

우선, 기복주의적/물질주의적 낙관론은 비기독교적이다.
이건 뭐 이게 기독교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그 논의 자체가 너무 유치해서 쓰기 조차 민망하지만…
불행하게도 기복주의적/물질주의적 낙관론은 자칭 기독교인들 사이에 가장 powerful 하게 작동하는 낙관론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복을 궁극적 소망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질적인 복은 어떤 의미에서 소망의 자격으로 충분하지 않다.
물질적인 복이 반드시 그 사람이나 공동체나 시대에게 ‘선’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인본주의적 낙관론 역시 기독교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인간에 대한 적극적 긍정을 바탕으로, 인간 이성이 결국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매우 naive한 생각일 뿐이다.
이것은 이미 20세기에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2차 세계대전등을 통해서)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런 naive한 인본주의적 낙관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비기독교적 아이디어임을 명시해야하는 이유는, 매우 shallow한 level에서 보면 기독교적 낙관론과 인본주의적 낙관론이 매우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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